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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EOPLE 2022 · 09 · 28

360. 연극이 끝나고 난 뒤

Editor 한 여름


연극이 끝나고 난 뒤

숨소리만 들리는 고요한 정적을 깨고 무대 위 조명이 켜진다. 배우는 때론 얄미운 악역이 되어 가시 돋친 대사를 내뱉고, 때론 사랑을 갈망하는 연인이 되어 달콤한 말들을  속삭인다. 

일상에서의 우리는 어떨까. 학교에서는 밥 잘 사주는 멋진 선배로서 든든한 조언을 건네기도 하고, 아르바이트를 할 때는 어느새 소울리스좌가 되어 기계적인 말들을 내뱉기도 한다. 이렇게 우리는 매 순간, 만나는 사람과 공간에 따라 서로 다른 페르소나를 한 겹씩 씌워간다. 이렇게 배우 보다 더 배우 같은 일상을 보낸 뒤 집에 돌아오면, 벗겨지지 않는 마지막 페르소나가 매만져질 때까지 얼굴을 닦아낸다.

우리가 화장과 함께 하루 동안 덧대진 페르소나를 흘려보내듯, 무대가 막을 내리면 배우들도 분장을 지우며 현실 속 그들의 모습으로 돌아온다. 그리고 무대 위의 배역과는 또 다르게 온전한 그들의 모습으로 채워지는, 연극이 끝나고 난 뒤의 순간이 시작된다.

어둠이 살포시 깔린 밤 9시. 마지막 공연을 마친 뒤, 한 연극회의 솔직담백한 이야기 장에는 막이 열린다.

 


이화여대 총연극회의 마지막 연극이 끝난 후

 

– 안녕하세요! 간략한 동아리 소개 부탁드립니다. 

안녕하세요. 저희는 이화여자대학교 중앙연극동아리 ‘총연극회’입니다. 지난 22일에서 24일까지 가을 정기공연으로 <아주 이상한 기차>를 올렸어요. 

 

– 이번에 준비하신 연극과 맡으신 배역에 대한 간략한 소개 부탁드려도 될까요?

김은비(연출) : <아주 이상한 기차>는 김재엽 작가님 원작으로, 저희는 총연극회의 방향성에 따라 각색을 했어요. 이상한 기차에 타게 된 여행자는 기차에서 이상한 승객들을 만나고, 이 기차에서 내릴지 말지에 대한 고민을 반복하며 기차 여행을 떠나게 돼요. 현재에 멈춰있는 것을 두려워하는 사람들에게 조금이나마 위로가 됐으면 하는 마음으로 극을 만들었어요! 

안해인(배우) : 저는 호사가 여행자를 맡았어요. 호사가 여행자는 다른 인물들과 마찬가지로 주인공이 쓴 책 속의 인물이에요. 간섭꾼 여행자와 대립하는 가치관을 가지며, 지난 꿈에 대한 아픔은 잊고 현실 속에 살아가자고 설득하는 듯 하지만 결국엔 진정한 선택의 의미를 알려주고 떠납니다.

 


“우리 이상한 역을 찾아주셔서 감사합니다. 오늘도 변함없이 그 시간에 그 자리에서 출발합니다.”

 

– 드디어 마지막 공연을 끝내셨는데, 연극이 끝난 뒤 어떤 느낌이 드셨는지 말씀해 주실 수 있나요?

김은비(연출) : 극장 문을 잠그기 전에 모든 무대장치가 빠진 텅 빈 무대와 텅 빈 객석을 바라보는데 조금은 공허한 느낌이 들었어요. 일주일 동안 극장에서 살다시피 했는데 내일부터 다시 일상으로 돌아가 극장에 오지 않는다고 생각하니 제가 거대한 연극 밖으로 빠져나가는 기분이 들었어요.

안해인(배우) : 아직도 실감은 잘 안 나요. 그래서인지 생각보다 아쉬움은 덜 한 것 같아요. 어쩌다 보니 주어진 기간보다 더 오래 연습했어서 후련한 마음이 가장 컸어요. 무대에 대한 아쉬움보다는 이제 이 대본과 제가 맡았던 캐릭터를 보내주어야 한다는 것이 아쉬워요. 정이 들어서..!

 


힘찬박수도 뜨겁던 관객의 찬사도 이젠 다 사라져 객석에는 정적만이 남아있죠.

 

-무대가 아니라 평소 일상 속에서도 ‘내가 지금 연기하고 있구나’하고 생각하신 순간이 있으신가요? 

김은비(연출) : 이번 극에서 주인공의 대사 중에 이런 말이 있어요. “누구나 자신의 가면을 쓰고 살아가는걸요. 우린 모두 거대한 연극 속에 살고 있는 거나 다름없어요.” 이 대사는 어빙 고프만의 연극론을 생각하면서 썼어요. 저는 삶이 연극 자체라고 생각하거든요. 우리는 모두 사람과 상황에 따라 적합한 배역을 설정하고 그 배역을 연기하려고 노력해요. 동아리 대표로서의 저와 학교에서의 저와 집에서의 제가 모두 다른 것처럼요. 이러한 페르소나에 대한 고민도 저희 연극의 주제 중 하나였어요.

안해인(배우) : 지금 당장 생각나는 건 피자 2조각 먹고 ‘배부르다’ 할 때인 것 같네요. 요즘은 1인 피자도 나오긴 하지만 아무래도 여럿이서 먹을 일이 많잖아요. 그럴 땐 항상 평소보다 훨씬 적게 먹게 되는 것 같아요. 서로 눈치 보다가 남을 것 같아도 조금만 더 기다려보면 누군가는 먹더라고요. 그래서 가끔씩은 여럿이 나눠먹는 식사를 하고 나면 집으로 돌아가 무언가를 더 주워먹기도 해요. (웃음)

 


“누구나 자신의 가면을 쓰고 살아가는 걸요. 우린 모두 거대한 연극 속에 살고 있는거나 다름없어요.”

 

-극에 맞는 새로운 자신을 설정하고 연기를 하시는 과정에서 어떤 고민이나 어려움이 있었는지 여쭤봐도 될까요?

안해인(배우) : 초반부에는 밝은 느낌을 살리는 것이 어려웠어요. 조금 뻔뻔하면서도 유쾌한 느낌을 주는 인물이어야 하는데, 아무래도 제 성격 자체와 거리가 멀었어요. 그리고 저는 기쁨보다는 슬픔, 행복보다는 짜증이 연기하기 편하게 느껴져서 자꾸 그쪽으로 끌고 나가려 했던 것 같아요. 하지만 ‘호사가 여행자’에 대해 연출님과 조연출님께 많은 이야기를 들으며 조금씩 방향을 바로잡아 나갈 수 있었어요.

 

-배역과 실제 배우님의 성격 사이에 어느 정도 거리감이 있으셨군요. 그럼  연기하신 극중 인물과 현실 속 본인 사이에 가장 큰 공통점이나 차이점이 있다면 무엇인가요?

안해인(배우) : 어떤 선택도 윤리적으로 어긋나지만 않는다면 틀리지 않았다는 생각, 그리고 모든 선택은 응원받아 마땅하다는 생각을 갖고 산다는 점이 비슷한 것 같아요. 그런데 아이러니히게도 제 개인적인 삶의 모토는 호사가 여행자와 대립 인물이었던 ‘간섭꾼 여행자’와 더 닮아있어요. 논리를 따지기는 하지만 저는 언제나 이상을 좇는 사람이거든요. 누구나 자신이 좋아하는 일을 하면서도 눈치 보지 않을 수 있는 이상적인 사회를 꿈꾼달까요. (웃음) 사회 분위기까지는 제가 바꿀 수 없더라도  저 자신만큼은, 적어도 제 인생만큼은 좋아하는 일을 끝까지 사랑하며 살고 싶다는 이상을 품고 살아요. 이런 부분이 배역과 실제 저의 가장 큰 차이점이었던 것 같아요. 

 

– 기억에 남는 공연 비하인드에서 있었던 일이 있으시다면 말씀해 주실 수 있나요?

김은비(연출) : 모두가 셋업을 진행하다가 오후 10시쯤에 퇴근을 하면 조명 담당인 후배와 연출인 저는 새벽까지 남아 조명 작업을 계속했어요. 이번에는 학기 중에 공연을 진행하게 되어 무대를 셋업 할 시간이 너무 부족했거든요. 그런데 저희는 이렇게까지 셋업 기간이 촉박할 줄 모르고 야간 사용 신청을 미리 하지 않았어요. 그래서 둘이 경비실에 찾아가 사정사정하며 새벽 사용 허가를 받아냈던 일이 기억나네요.

*셋업이란 공연 전, 무대에 필요한 소품, 조명, 음향, 그리고 의상 등을 공연이 이루어지는 극장에 세팅하는 작업을 의미한다. 셋업 기간은 팀원들이 극장에 적응하는 데에 중요한 기간이기도 하다.

 


오퍼실에서 바라본 연극이 끝나고 난 뒤의 모습과 백스테이지의 비하인드 컷

 

-그럼 기억에 남는 뒤풀이 비하인드 스토리도 말씀해 주실 수 있나요?

김은비(연출) : 뒤풀이에서는 연극을 준비할 때는 보지 못했던 부원들의 색다른 모습을 볼 수 있어서 재밌었어요. 연극을 준비하며 힘들었던 친구들이 술을 마시면서 이야기를 하다 보니 눈물을 흘리기도 했거든요. 그 모습이 처량하면서도 귀엽고 또 안쓰럽기도 해서 다 같이 위로하며 웃었던 일도 기억이 나요.

안해인(배우) : 뒤풀이에서 부원들이 저에게 연기에 대한 칭찬을 많이 해주었어요. 물론 알코올이 들어간 상태이다 보니 그 말들이 진심일지는 모르겠지만요. (웃음) 저는 취하지 않아서 조금 안절부절못하면서 칭찬을 받긴 했지만 내심 너무나 기쁘고 행복했어요. 그리고 노래방에 갔다가 내향형 사람들끼리 잠시 나와 평상에서 바람을 쐬었던 것, 학생문화관 한편에서 첫 차를 기다리며 조용히 수다를 나누었던 것이 기억에 남네요.

 


마지막 공연이 끝난 뒤풀이 자리에서 오갔던 따뜻한 편지와 선물들


-뒤풀이 장소를 고르는 회장님만의 기준이 있으신가요? 

김은비(연출) :일단 공연을 진행하는 것 자체가 체력 소모가 심할뿐더러 끝난 후에 무대 철거도 해야 하기 때문에, 공연이 끝나면 체력적으로 부원들이 굉장히 지친 상태에요. 그래서 든든하게 배를 채울 수 있는 곳을 후보로 정하려고 해요. 그리고 동아리에 비건인 친구들도 있어서 이 친구들이 먹을 수 있는 게 많은 곳으로 회식 장소를 정하는 것 같아요.

 

-그럼 이번 뒤풀이 이동 동선을 여쭤봐도 될까요?

김은비(연출) :우선 신촌 양꼬치에 갔다가 배스킨라빈스에서 해장을 한 후, 사진을 찍었어요. 그리고 막차를 놓쳤거나 기숙사 통금 시간이 지난 부원들은 동방으로 이동했어요.(웃음)

 


어디로 가든 틀린 목적지는 없으니까요.  -이상한 기차 대사 中-


-공연만큼이나 정말 알찬 뒤풀이 코스네요! (웃음) 그럼 총연극회 뒤풀이 분위기와 그때 주로 어떤 이야기를 하시는지 말씀해 주실 수 있나요?

김은비(연출) :물론 다 함께 만드는 연극이지만 각 팀마다의 자세한 사정을 잘 알지 못하기 때문에 몰랐던 다른 팀들의 사정을 듣기도 해요. 또 준비하면서 힘들었던 일들을 말하기도 하며 그동안 쌓였던 심적 고통을 조금은 덜어놓을 수 있는 것 같아요. 그러니 대부분 연극을 하면서 있었던 재미있는 일들을 회상하면서 웃어요. 

안해인(배우) : 1차에는 주로 신나는 분위기가 지배적이고 모임이 거의 끝나갈 때 즈음 누군가는 집에 가고, 누군가는 잠들고 할 무렵부터 보다 깊은 얘기들이 오가는 것 같아요.

 

-점점 분위기가 무르익으면서 공연에 대한 깊은 얘기가 오가는군요! 혹시 어떤 이야기인지 조심스럽게 여쭤봐도 될까요?

안해인(배우) : 공연 준비 과정에서 느꼈던 감정에 대해 주로 이야기해요. 굳이 말하지 않았던 힘들었던 점, 스트레스 받았던 점들도 말하게 되는 묘한 분위기가 생기거든요. 개인적으로 저는 이번 공연에서 무대에 오르기 직전에 극심한 부담과 스트레스를 느꼈었는데, 막상 마지막 공연까지 마치고 나니 너무나도 아쉽고 몇 번 더 올리고 싶다는 얘기를 했어요. 아무래도 동아리 공연, 학생 공연이다 보니 이 대본으로 무대에 설 수 있는 기회가 한 번으로 한정되잖아요. 다시는 이 호사가 여행자라는 친구로 연기할 일이 없다는 생각이 드니까 제법 슬프더라고요. 연출 언니가 이 대본을 각색하며 얼마나 고생했는지를 봤기 때문에 더 그랬던 것 같아요. 그래서 막공이 끝난 이번 뒤풀이에서는 모두 아쉬운 마음들이 묻어나는 얘기들, 연극에 대한 피드백과 응원의 말이 오갔어요. 

 

– 이렇게 다양하고 깊은 감정이 오가는 연극이 끝난 뒤,  밤의 대화 시간이 동아리에 어떤 영향을 준다고 생각하시나요?

김은비(연출) : 다음 연극으로 가기 위한 도약을 마련해 준다고 생각해요. 사실 이렇게 짧은 시간 동안 준비해서 연극을 올린다는 것이 체력적으로도 심적으로도 굉장히 힘들거든요. 함께 고생한 사람들끼리 모든 연극이 끝난 뒤 가지는 뒤풀이는 정말 후련한 기분이 들게 해요. 또 부원들 간 친목에도 도움이 되어서 더욱 즐겁게 다음 연극을 준비할 수 있게 만들어주는 것 같아요.

안해인(배우) :  혼자였다면 감상에 젖어, 혹은 아쉬움에 짓눌려 눈물 흘렸을지도 모를 시간을 함께 했던 사람들과 즐겁게 보낸다는 것이 좋은 것 같아요.

 

-낮에 하는 대화의 온도와 밤에 나누는 대화의 온도를 생각해 본다면 각각 몇 도 정도라고 생각하시나요? 

김은비(연출) : 낮에 하는 대화는 100도라면 밤에 나누는 대화는 150도라고 생각해요. 이렇게 말하면 낮의 대화가 밤의 대화보다 낮다고 들릴 수 있지만 사실 100도도 낮은 온도가 아니죠. 사실 이건 연극에만 한정된 온도이긴 한데 연극을 하는 사람들은 절대 온도가 내려갈 수가 없거든요. (웃음) 심지어 뒤풀이에서는 더욱 뜨겁게 올라가요. 공연을 하면서 나오는 아드레날린이 딱 뒤풀이에서 최고치를 찍는 것 같아요. 이 모든 걸 끝냈다는 후련함과 짜릿함, 심지어는 아쉬움조차도 뜨거운 온도가 되어서 부원들의 분위기를 올리는 것 같아요.

안해인(배우) : 저희 동아리는 밤이 되면 오히려 뜨거워지는 것 같아요. 낮에는 차분하게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다가 밤이 되면, 스멀스멀 분위기가 올라와요.

 

-어느 정도 뒤풀이가 진행되고 점점 쌀쌀해지는 밤 9시가 총연극회에게는 오히려 뜨거워지는 시간이군요. (웃음) 그럼 인생이 24시간 중 밤 9시에 와있다면, 어떤 걸 하고 싶으신가요?

김은비(연출) : 제 인생이 밤과 같은 시간대라면 지금까지 해왔던 일을 하나하나 끝내기 시작하는 시기인 것 같네요. 그게 직장이든 꿈이든 마무리하는 시간이요. 그러나 시간이 지나 다시 24시가 지나면 아침이 올테니 잠시 쉬어가는 시간이라고 생각이 듭니다. 저는 이 시간에 해왔던 일들을 돌아보고 새로운 일을 시작하기 전에 잠시 쉬어가는 시간을 가질 것 같아요.

안해인(배우) : 조금 슬프네요. 그래도 남은 시간을 더 잘 보내기 위한 준비를 할 것 같아요. 웬만하면 좋아하는 일을 최대한 하려고 노력할 것 같아요. 23시에 연극을 시작하여 24시에 막을 내릴 수 있도록 연습을 하며 보내는 것도 괜찮을 것 같네요. 너무 추상적인가요. (웃음)

 

그렇게 그들은 제법 쌀쌀해진 밤 속 아직 식지 않은 열기로 서로를, 그리고 이 밤을 데운다.


-뒤풀이에서 자주 하시는 건배사가 있으신가요? 

김은비(연출) : “깨어있는 연극을 위하여”라는 문장이 저희 동아리가 추구하는 방향을 그대로 담은 문장이에요. 실제로 공연에 들어가기 직전 모두가 모여 파이팅 콜로 외치기도 하는 문장이라 자연스럽게 건배사로도 사용하는 것 같아요. 

안해인(배우) : 아무래도 연극 동아리이다 보니 대사를 활용한 건배사를 자주 하게 되는 것 같아요. 또 동아리 전통으로 내려오는 ‘총연가’ 라는 구호(노래)가 있어요. 건배사로 제가 유난히 좋아하는 구절인  “반짝이는 조명 움켜쥐고 어이!” 이 부분을 하기도 해요.

 


연극을 하려거든 목숨 바쳐라.

연극은 그럴 때 아름다워라.

술 마시고 싶을 땐 한 번쯤은 목숨을 내걸고 마셔보아라. 

무대에서 맺어진 동지가 있다면 바쳐! 바쳐야 한다. 

죽는 날까지. 아낌없이 바쳐라! 

반짝이는 조명, 움켜쥐고 어이!

바쳐라 총연아, 그날을 위해, 이 한 목숨 바쳐라! 이총!

총연가-

 

-그럼 오늘의 동아리 건배사는 무엇으로 하고 싶으신가요?

오늘의 건배사는 정기공연이 끝난 지 얼마 안 된 만큼 “우리의 연극은 계속된다” 하고 싶네요. 정말 계속되었으면 좋겠어요. 동아리를 졸업한 뒤로도요.

 


무대 위 연극은 끝났지만, ‘우리의’ 연극은 계속된다.


총연극회 연극이 끝나고 난 뒤의 밤. 무대 위 조명은 꺼졌지만, 뒤풀이 공간에 또 다른 불빛이 비치고 그 불빛은 동방까지 이어진 그들의 발걸음을 따라 움직인다. 그들은 배역을 연기하는 과정에서 마침표를 찍지 못했던 생각들을 완성하고, 배역과 실제 자신 사이를 맞대었을 때 비죽 튀어나온 부분을 뭉툭하게 매만져 본다. 그렇게 그들은 ‘내가 아닌 나’를 연기하며 느낀 즐거움을 나누고, 쌓인 고민과 눈물은 함께 흘려보내며
아쉬움과 후련함, 그리고 약간의 취기가 한 스푼 얹어진 숨을 내쉰다.

 

어쩌면 이 밤은 삶이라는 거대한 연극 속에 살아가는 우리에게  ‘숨’을 불어넣는 시간이 아닐까.

 

일상 속에서 여러 모습으로 존재했던 우리는, 밤이 되면 잠시 페르소나를 내려놓고 가장 나다운 얼굴로 돌아오곤 한다. 후배 앞에서 펼쳤던 어른스러운 선배의 모습도 넣어두고, 손님을 맞이했던 자본주의 입꼬리도 살포시 내려본다. 그러고는 한없이 아이 같은 아들딸로 투정을 부리기도, 혹은 가족 같은 친구들과 정제되지 않은 말들을 내뱉기도 하며 낮 동안 펼쳤던 연극을 곱씹어 본다.

 

그렇게 우리는 연극이 끝나고 난 뒤의 밤에 이런저런 감정이 뒤섞인 숨을 내쉬고,

공백으로 가득한 내일의 각본을 써 내려가기 전, 

거대한 숨을 들이 마신다.

한 여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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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여름

잔치의 시선으로 신촌의 장면과 사람, 장소를 기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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