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61. 노을에 잠긴 눈동자
21살 바다의 이야기
인터뷰이 바다(가명)님과 본격적인 인터뷰를 진행하기 앞서, 신촌의 라멘 맛집 <렌게> 에서 그를 만나보았다. 그곳에서 나는 바다님의 지난 삶에 대한 깊은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그러나 대화 중 바다는 자신이 특정되지 않기를 바란다고 밝혔으며, 그 강력한 의지에 따라 신상정보에 대한 질문이 대부분 생략되었다. 그의 바람에 따라 최소한의 정보만을 글에 담았음을 밝힌다.
바다는 한국에서 태어나고 돌이 막 지났을 무렵 가족들과 함께 먼 나라로 떠났다. 한국과 시차가 무려 7시간 차이 나는 곳. 그는 그 곳에서 20년을 살았다. 그러나 한국인이라는 정체성을 지닌 탓에, 그리고 그곳 사람들과는 다른 외모 탓에 늘 이방인이었다. 이방인으로 자라난 그는 성인이 되고 20년 뒤 모국인 한국으로 돌아와 신촌에서 유학생활을 하게 되었다.
이 이야기만 듣는다면 20년만에 고향의 품으로 돌아온 감동적인 재외국민의 스토리라 생각할 수 있겠지만 전혀 아니다. 오히려 한국은 그에게 물리적으로만 모국일 뿐, 고향이라 부르기에는 너무나 멀고도 낯선 나라였다. 이 인터뷰는, 언어만 같을 뿐 모든 것이 낯선 먼 도시, 신촌에서 홀로 어른이 되어가는 어린 청년에 대한 이야기이다.
Q 자기소개 부탁드립니다!
A 안녕하세요 저는 신촌 소재 대학교에 재학 중인 21살 바다고요 외국에서 20년 동안 살다가 작년에 한국에 들어왔습니다.
Q 바다님께서는 외국에서 20년을 살았던 만큼 그곳이 고향이라 느껴질 수 있을 것 같은데 한국과 본가 중 어느 쪽을 고향이라 느끼실까요?
A 저는 사실 외국에 있을 때 제가 이방인이라고 느꼈습니다. 한국에 있을 때도 여기가 완벽하게 나의 고향이라고 느끼지 않았기 때문에 한국도 외국도 제게는 고향이 아닌 것 같아요. 그 대신 제가 20년 동안 살았던 그 집이 저의 고향인 것 같습니다. 때문에 그 나라의 문화보다는 본가에 두고 온 저의 추억, 친구들과 가족들 등이 그리운 것 같습니다.

바다의 본가
Q 그 나라에서도 이방인이라고 느꼈다고 하셨는데, 그에 대해 말씀해 주실 수 있을까요?
A 어린 아이들 특유의 유치한 괴롭힘과 인종차별이 있었어요. 사실 그렇게 외국인이라며 놀림 받기 전에는 제가 외국인이라는 자각도 없었는데, 천천히 알게 되었죠. 여기서는 내가 이방인이구나, 하며.
Q 그렇다면 본가에 계신 가족들이 그리울 때 그리움을 달래는 바다님만의 방법이 있을까요?
A 사진을 많이 찾아보는 것 같습니다. 그리고 가끔 구글 클라우드에 1년 전 오늘의 사진이 뜨더라고요. 2~3년 전은 제가 그 나라에 살던 시기여서 향수를 불러 일으키는데, 가족들이 그리울 때면 과거의 사진을 많이 보는 것 같습니다.
Q 일상에서 문득 가족들이 떠오를 때도 있을 것 같은데 어떤 때 떠오르나요?
A 제가 지금 기숙사 생활을 하고 있는데 입사 하던 날 짐을 옮길 때 다른 분들은 가족들이 와서 도와주고 그러더라고요. 입사 수속을 할 때 가족들이 응원하고 작별인사를 하는 모습을 보면서…. 저는 입사 수속을 혼자 하고 집도 혼자 옮겼거든요. 그럴 때처럼 다른 가족들이 함께 있는 모습을 볼 때 제 집이 그립습니다. 가끔 혼자서 밥 먹을 때도 생각이 나요. 저희는 대가족이라서 다 같이 시끌벅적하게 식사를 할 때가 많았는데, 혼자 먹을 때면 그때가 그리워지더라고요.
Q 가슴이 아프네요. 한국에 오기 전, 막연하게 한국과 그곳에서 대학생활을 하는 본인을 상상해보신 적이 있으실 것 같아요! 특별히 기대했던 것이나 걱정했던 것에 대해 말씀해 주세요.
A 일단 제가 태어난 지 100일이 되었을 때 외국으로 나갔습니다. 그러고 나서는 한국에서 살아본 경험이 7살 때 한 달, 고1 때 한 달 살아본 경험뿐이어서 한국이라는 나라를 제가 잘 몰랐었고요. 그런 만큼 기대도 했지만, 두려움이 더 컸었던 것 같아요. 이 나라에서 어떻게 혼자 살아갈 수 있을까. 이 나라에서도 이방인이었는데 한국에 가서도 이방인으로 살아가야 한다면 어떻게 하지? 한국에서도 섞여 들어가지 못할까봐 걱정을 많이 했었습니다.
Q 그렇다면 현재 한국에서도 이방인이라고 느끼고 계실까요? 아니면 소속감을 느끼고 계실까요?
A 걱정했던 것보다는 소속감이 큰 것 같아요. 제가 말을 할 때 문화적인 차이나 억양 탓에 재외국민인 게 티가 날 줄 알았습니다. 한번 말을 할 때마다 “어, 너 외국에서 살다 왔니?” 라는 말을 들을까봐 걱정했는데 그런 일이 한 번도 없더라고요. 다들 제가 말을 할 때까진 몰라서 도리어 조금 섭섭하달까? (웃음) 다행히 제가 인복이 있어서 좋은 친구들을 사귀고 그들 덕분에 잘 적응하면서 살고 있습니다.
Q 타지에서 생활을 하시다 보면 예상치 못한 사건이 생기기도 하는데, 바다님께서도 신촌에 와서 가장 당황스러웠던 사건이 있었을까요?
A 일단 ‘도를 믿으십니까’ 를 묻던 분들을 맞닥뜨린 적이 있었는데요, 외국에서는 하지 못하는 경험이다 보니 정말 많이 당황했던 기억이 나네요. 안 그래도 가족들이 한국에 오기 전에 ‘이 순수하고 때 묻지 않은 아이가 한국생활을 잘 헤쳐나갈 수 있을까,’ 하며 엄청 걱정을 해주시더라고요. 그렇게 걱정하시면서 여러 가지를 알려주셨었는데, 만약 길에서 도를 믿냐며 말을 걸면 무시하고 지나가거나 바쁘다며 양해를 구하고 도망치라고 했던 적이 있습니다. 그렇게 가족들이 저를 잘 준비시켜 준 덕분에 사이비라는 것을 알아채고 “죄송합니다 제가 좀 바빠서요” 하고 도망갔던 기억이 있습니다.
Q 웃지 못할 일들이 생겨도, 또 재밌는 일이 생기는 게 우리의 삶이죠. 신촌에서 가장 즐거웠던 기억은 어떤 게 있을까요?
A 그 나라에 있을 때는 부모님과 함께다 보니 저를 사랑하는 만큼 간섭도 많이 하셨었어요. 그런데 한국에서는 부모님과 떨어져 있다 보니 더 자유롭게 놀러갈 수 있고 늦게까지 밖에 있을 수도 있어서 더 즐거운 것 같습니다.
Q 그렇다면 신촌에서 “오늘 운이 조금 좋은데?” 라고 생각했던 기억이 있을까요?
A 오늘 인터뷰하러 나올 때 그랬던 것 같아요. 오늘 기숙사에서도 엘리베이터가 바로 와주고 나갈 때도 버스를 한 번도 놓치지 않고 신호등도 딱딱 바뀌어줘서 편안히 왔던 것 같습니다.
Q 매일 그런 날만 반복되면 좋겠네요(웃음). 신촌에 처음 왔을 때와 지금을 비교하면 어떤 차이점이 있나요?
A 작년 초에 처음 신촌의 거리에 와있을 때는 이곳이 너무 낯설었습니다. 주변에 아는 사람이 한 명도 없었으니까요. 모두가 각각 제 갈 길을 가는 모습이 따뜻함보다는 차가움으로 다가왔어요. 모르는 곳에 정말 나 혼자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었는데. 하지만 지금은 오히려 아무도 모르니까 거기서 오는 자유로움을 발견하게 돼서, 그런 점에서 이 나라가 더 따뜻하게 느껴지는 것 같습니다.
Q 문화차이도 느껴보신 적이 있을까요?
A 한국에 와서요? 네 느껴본 것 같습니다. 그 나라에 있을 때도 한국인이라는 정체성 때문에 문화차이가 있었는데, 한국에서도 토종 한국인이 아니다 보니 마인드가 조금 서양스럽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저 같은 경우에는 개인주의적인 마인드가 강한 편인데, 한국은 집단주의가 외국보다는 강한 나라라는 것을 느꼈어요. 그걸 술자리에서 더 크게 느꼈던 것 같아요. 제 나라에서는 보통 각자의 술잔을 들고 본인이 마시고 싶을 때 자신의 페이스대로 따라 마시는 편인데, 한국에는 건배사를 한다거나 술잔을 부딪히고 다 같이 마시는 문화가 있죠. 저는 한국에 술자리 예절이나 문화가 그렇게 많다는 걸 친구들과 술을 마시며 처음 알게 되었어요(웃음).
Q 바다님께서는 본가에서 반려동물과 함께 살고 있다고 알고 있어요, 말티즈 가족에 대해 잠깐 소개해주실 수 있을까요?
A 네! 말티즈 가족은 엄마 아빠와 딸 둘이 살고 있어요. 엄마는 솜이, 아빠는 구름이, 그리고 첫째딸 모찌와 저희집 막둥이, 둘째 딸 슈가가 함께 살고 있습니다!

본가에 있는 말티즈 가족
Q 신촌에 와서 여기도 다 사람 사는 곳이라고 생각했던 순간이 있을까요?
A 이곳이 차갑게 느껴졌다 했었잖아요? 사람들이 서로 모르는 척 지나가는 게 차갑다고 느껴졌었는데, 자세히 관찰해보면 그들이 자신의 삶을 살아가고 있는 모습이 보이더라고요. 친구들과 놀고 밤늦게 돌아가는 사람들이라거나, 연인과 앉아서 좋은 시간을 보내고 있는 커플이라거나, 하루종일 열심히 일하다가 집으로 돌아가시는 분들이라거나…. 이런 모습들을 보면서 “아 여기도 사람이 사는 곳이구나” 했어요. 그때부터 이 나라가 많이 따뜻하게 느껴졌던 것 같습니다.
Q 네, 그런 모습을 보며 서서히 정을 붙이게 되는 것 같아요. 만약 자신의 인생을 24시로 표현한다면 몇시라고 생각하시나요?
A 지금은 해가 뜨기 시작하는 5시 정도인 것 같습니다. 지난 20년 동안 외국에서 살아왔지만, 지금은 새로운 하루가 시작되는 기점이 아닐까. 제 인생의 새로운 분기점이 되는, 새 하루를 위한 시간이라 생각합니다.
Q 만약 자신의 인생을 24시간으로 나타냈을 때 지금이 오후 6시라면 무엇을 하고 싶은지?
A 일단 따뜻한 목욕과 함께 그 하루를 열심히 산 제 자신을 칭찬해주고 싶네요. 그리고 잘 준비를 해야죠. 노을이 지기 시작했다면.

바다가 찍은 본가 노을 사진
Q 추상적이네요(웃음) 바다님처럼 타지에서 공부하거나 자신만의 삶을 다른 나라에서 다져가는 이들을 위한 응원이나 조언을 해줄 수 있을까요?
A 용기를 내라는 말을 해주고 싶어요. 생각보다 제 능력치가 높더라고요. 저는 한국에 와서 제가 생각보다 강하고 가능성이 높은 사람이었다는 걸 깨달았어요. 물론 지금은 힘들고 무서울 수 있겠지만 미래의 자신을 믿으며 살아가다 보면 버티고 나아가는 힘을 기를 수 있을 것입니다.
그리고 또다른 이방인, 21살 에디터 뜬구름의 이야기.
이방인의 시선에서 본 신촌은 그 누구도 나를 모르기에 자유로운 곳인 동시에, 끈 떨어진 연이 된 듯한 착각을 주는 곳이다. 때로는 사랑스럽게, 때로는 냉혹하게 구는 도시.
이 도시에서 상실한 고향의 향수가 덮쳐올 때면 외로움의 고통이 폐부를 찔러온다. 더는 필요하지 않아 잘려나간 아가미에서 발생하는 환상통처럼. 태어날 때부터 없던 신체 기관에서 통증을 느낄 수는 없으니, 아무래도 내게도 고향은 있었던 것 같다는 결론을 내린다. 벌써 12년 전의 일이지만 여전히 그곳의 푸른 잔디와, 향기로운 라일락 꽃 덤불과, 이름 모를 주황색 네발나비가 눈에 선하다. 언제부터 고향이 잘려나간 것일까. 아무래도 8살 무렵, 5년을 살았던 유럽에서 낯선 한국에 돌아왔을 무렵.
그곳을 떠올리면 푸른 고독이 마음속에서 넘실거린다.
돌아가지 못하는 고향에 고독을 느낄 때면 연세로 벤치에 앉아 지나는 사람들을 바라본다. 사람들은 자신만의 표정을 당당히 치켜들고 저마다의 지향을 향해 걸어간다. 때로는 혼자, 아니면 친구들과, 그것도 아니면 가족이나 연인과. 그 생기 넘치는 장면에서 나는 안도를 느낀다. 수많은 사람들이 살아 숨 쉬는 장면에서 위안을 받는다. 왜일까. 내가 확인하고 싶은 것은 당신의 실존일까, 아니면 나의 실존일까. 내가 확인하고 싶은 것은 당신의 그저 그런대로 굴러가는 삶일까, 아니면 이 신촌 위를 부유하는 나의 삶일까. 행복해 보이는 사람들을 보고 있자면, 나도 그들처럼 이곳에서 웃음 짓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 같은 곳에 살면 같은 표정을 짓게 되던가.
그렇게 앉아있다 보면 어느새 사람들의 머리 위로 해가 내려앉는다. 백색 빛 중 붉은 빛만이 살아남아 천하를 붉게 물들인다. 땅과 하늘이 모두 주홍빛으로 물들어, 땅과 하늘의 경계가 느슨해진다. 바쁘게 걸어가다가 하늘이 주홍빛으로 물든 것을 깨달은 사람들이 고개를 들어 걸음을 멈추고 하늘을 바라본다. 누군가는 눈에, 누군가는 마음에, 누군가는 카메라에 붉은 해를 담는다. 나도 함께 그곳을 바라본다. 주홍빛으로 물든 사람들을 바라본다. 마스크를 벗고 숨을 천천히 들이쉬면, 붉은 빛이 폐 속으로 차오른다. 넘실거리던 푸른 고독은 노을에 물들어 제 힘을 잃은 지 오래다. 잘려나간 아가미에서 오던 환상통이 사라진다. 모든 것이 붉게 물든 세상에서 나 역시 붉다. 오직 노을만이, 자신을 과시하듯 당당히 빛난다.

신촌역 1번 출구에서 본 노을 사진
붉은색. 가시광선 중 가장 파장이 길어 약한 에너지를 가지고 있지만, 그 덕에 산란되지 않고 더 멀리까지 가닿을 수 있는 광선. 그에 대해 생각하다 보면 마음이 차오르며 알 수 없는 전능을 느낀다. 고향이 없기에 약하지만 그 덕에 어디로든 떠나 멀리까지 가닿을 수 있는 이방인의 능력. 나는, 어느새 세상을 주홍빛으로 물들일 노을이 되어있다.
힘이 들 때면 세상의 일부를 적시고 있을 붉은 해를 떠올린다. 이곳은 아직 하늘이 푸르고 해가 중천이지만, 내 고향은 아직 노을이 한창일 테지. 그리고 당신의 고향도, 당신이 삶을 다지고 있는 외딴 타지도, 몇 시간만 지나면 하늘과 땅의 경계가 지독히 느슨해질 테지. 나와 닮은 당신도 거기서 위로를 얻을 테지.
노을 진 아름다운 산과 바다의 풍경을 사진으로 남기며 고향에 대한 애정을 느끼는 당신을 생각하면, 어느새 그곳에 더 존재할 수많은 인생까지 사랑하게 된다. 나는 지리를 한번도 배워본 적 없는 바보라서 춘천, 대전, 부산, 광주가 요 땅덩어리 어디쯤에 붙어있는지 늘상 헷갈리지만, 당신의 인생에 그 지명이 고향이란 이름으로 선명히 새겨져 있다는 것만은 알지. 내가 이 나라에 이방인으로 살면서도 이 땅덩어리에서 작은 희망을 발견하는 것은 다 당신 덕분이다. 당신이 찍은 노을 사진에 듬뿍 담긴 애정이 단 한 번도 고향이라는 걸 가져본 적 없는 내게 작은 안식처가 되어주는 것이다.
이방인으로서 존재할 수 있는 누군가의 고향, 신촌이 붉게 물든 6시, 그리운 집을 향해 바쁘게 걸어가는 사람들의 틈바구니에 섞여 나 역시 집으로 돌아간다. 집으로 돌아가는 길, 아가미가 잘려나간 곳에서 새살이 돋는다. 집에 가면 몸을 씻고 침대에 지친 몸을 뉘이고 잘 준비를 해야지. 고독은 다시 푸른색을 되찾고 상처는 언제 나았냐는 듯 다시 곪겠지만, 내일은 내일의 노을이 질 테니 나는 계속 살아갈 수 있다. 당신도, 그렇게 살아갈 수 있다.

이화동산에서 바라본 노을 사진
이 짧은 위로의 편지를 먼 미국과 일본, 캐나다에서 유학생활을 하고 있는 나의 그리운 친구들과, 타지인 한국에서 홀로 어른이 되어가는 고마운 인터뷰이 바다님께 바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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