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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RT 2022 · 11 · 14

Flight of the Bumblebee

Editor 히피

Hymn to Freedom

0:00 ────────────── 6: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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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         성         은

 

 

탈리에서 글감을 찾던 중에 어느 재즈 밴드의 라이브를 보았다. 정말 우연한 합석이었다.

이들의 등장 전까지 경쾌하게 나폴거리던 플레이리스트는 일시 정지 버튼 위로 착지했다. 베이스는 왜 안 와. 지각이래요. 그냥 해. 홀이 작은 터라 세션과 정반대에 눌러앉아 있던 나에게까지 날것의 대화가 들려왔고, 느닷없이 막이 열렸다. 드럼과 키보드가 만들어내는 리드미컬한 사운드가 나와 그들 사이 경계를 말끔히 지웠다. 최면사가 뿌려 놓은 요술 가루 더미를 홀딱 뒤집어쓴 기분이랄까. 이렇게 완전체 재즈 트리오는 듣는 귀마다 한 음 한 음 내리꽂으며 순식간에 분위기를 바꾸었다.

겉보기에도 열 자리가 넘는 테이블은 짝을 잃은 지 오래돼 보였고 그 대신 옹기종기 붙어있었다. 단 네 군데에서 정겨운 온기가 올라왔으니 급기야 거기에 있던 사람들마저 각자의 일에 집중하기 바빴다. 베이글을 커팅하며 짧은 감탄사를 음미하고, 시덥잖은 대화를 나누는 식으로. 아랑곳하는 기색 없이 연주하는 저들을 보니 귀가 먹먹하도록 웅장한 소리가 부끄러울 정도였다. 한 곡이 끝나고 잠시 뜸을 들이는 순간도 박수 소리는 좀처럼 들리지 않았다. 부조화를 이루는 이 상황에 자꾸만 웃음이 새어 나왔다.

 

오래 작업이 이루어지지 않아 열기가 식어 버린 새까만 노트북 화면에 탁한 실루엣이 비쳤다.

 

 

 

 

 

 

명성은 한 마리 벌.

노래를 가졌고—

침을 지녔지—

아, 또한, 날개도.

 

Fame is a bee.

It has a song—

It has a sting—

Ah, too, it has a wing.

 

BY EMILY DICKINSON

 

 

 

한         마         리         벌

 

 

어릴 적 피아노를 좀 다뤘다면 ‘왕벌의 비행’이라는 곡에 손을 대봤을 거다. 악보를 읽지 않아도 이것이 얼마나 고된 손놀림을 요구하는지 3초면 파악할 수 있다. 원곡은 관현악곡으로 작곡되었지만 아마추어 연주자들에게 피아노를 위한 편곡으로 흥밋거리가 되어 왔다. 왕벌의 비행을 안다는 사람은 주로 뇌리에 박히는 도입부를 떠올리며 ‘알고 있다’라는 전제를 쉽게 증명해낸다. 그런데 명성에 반해 곡 전체를 흥얼거릴 수 있는 사람은 그렇게 많지 않을 것 같다. 마치 새해맞이 다이어리에 3월까지만 빼곡히 쓰려는 심리를 연말이 되어서야 알아채는 것처럼 말이다. 도입부가 꽤나 강렬해서인지 빠른 템포의 연타 때문인지 어쨌거나 정신없이 움직이는 벌떼를 만난다고 가정한다면 달아나기 바쁠 테니까 그럴듯하다.

도무지 어디로 날아갈지 알 수 없는 벌의 궤적을 악상으로 풀어낸다면 이 곡이지 않을까 싶다. 여왕벌을 제외한 다른 벌의 수명은 일 년을 채 넘기지 못한다는데, 60년은 거뜬히 살아내는 사람도 자유를 갈망하지 않는가. 한 생물의 다소 공격적인 생애 주기가 이처럼 중구난방이어도 탓할 겨를이 없다.

 

새벽 세 시의 흐름은 벌들이 그리는 생과 비슷했고,
이 외로운 음악가들도 서너 마리의 벌 같았다.

 

 

 

노      래      를      가      졌      고

침      을      가      졌      지

 

 

 

“당신은 음악을 합니다. 하지만 음악가는 아니에요.”

 

‘음악을 한다’와 ‘음악가’에는 어떤 차이가 있을까?

하물며 노래를 가진 것과 노래와 침을 가진 것, 노래와 침 또한 날개도 가진 것에는 어떠한 차이가 있을까.

 

춥지 않은 어느 날 신촌의 빨잠 옆에서 가지런한 소리를 들었다.

클래식 피아노를 연주하는 음악가였다. 소리가 크게 공명하지 않았기에 행인들은 동그랗게 모여 있었다. 슬프게도 바로 그 건너편에는 록밴드의 쇼가 진행되고 있었다. 어찌나 쩌렁쩌렁하게 소리를 지르던지 이 서바이벌에 홀로 출전한 피아노 연주자가 안쓰러울 정도였다. 낭랑하게 테마곡 연주를 선보이려던 참가자도 이내 비트에 고개를 까딱이면서 승복하려던 걸 참고 있었으니까. 어떻게 페달을 밟는 발마저 고독한 맨발의 사나이였다.

나도 스피릿을 외치려다 내 몸에 잔류하던 흥을 찬찬히 녹이기 위해 이쪽으로, 정확히 말하자면 귀를 쉬게 두려고 피해 온 것이었다. 그런데 이곳에는 잘 들리지도 않는 엷은 소리에 걸음을 멈추고 굳이 그 건반의 외로운 전투를 따라가려는 사람들이 여럿 있었다. 내 옆에는 단정한 정장을 입은 백발의 노신사가 지긋이 그 연주자를 쳐다보며 조용히 자리를 지켰다.

이동식 피아노를 빙 둘러 자체적으로 울타리가 된 관객에게 이 우연한 연주자는 그저 음악을 하는 생계인일 수도 있을 테고, 절실한 순간의 변곡점으로 오인할 만한 음악가일 수도 있겠다.

 

음악가가 되고 싶었으나 음악을 하는 것으로 타협하는 일에 신물 나서 이제는 음악을 하려면 엄청난 용기로 도전 의식을 치러야 하는 사람에게 위의 멋진 말을 변형해서 건네려 한다.

 

“당신은 음악을 해야 합니다. 대단한 음악가는 아니어도.”

 

노신사에게 이 스치는 연주자는 음악가로 존재했길 바란다.

 

 

 

아      또       한        날        개         도

 

 

다시 고막을 강타하는 재즈 인 탈리로 돌아가 본다. 관중 없는 공연을 마치고 나면, 돌아가는 길 날개가 달려 훨훨 날아가는 것도 아닌데 어떻게 희망을 운운하려는 걸까. 

절전된 화면에 쨍한 불이 들어오고 멀찍이 떨어져 있던 라이브홀의 조명도 하나둘씩 꺼진다. 모두가 깊이 숨을 내쉴 시간, 반구의 들숨 날숨이 하늘을 이루는 시간, 늦게나마 지난 하루와 작별할 시간이다.

03시가 저물 무렵, 시침은 미련 없이 자리를 옮긴다. 제법 정각이라는 안정권에 들어서 더 힘차게 째깍째깍 초침을 굴린다. 잠은 오질 않고 하루를 미처 보내지 못한 가여운 영혼은 동이 트는 시간을 늦추고 싶다. 휘몰아치는 생각에 날개가 달려 원하는 곳으로 데려다준다면 얼마나 좋을까.

 

재즈는 이내 멈췄지만 멈춘 것이 요동치는 선율이 아니길.

요동치는 것이 음악이 아닌 예술을 대하는 낮은 마음이길.

여린 몫이 부디 나만의 것이 아니길. 

다시 재즈가 이륙하는 비행의 산증인이 된다면,

미련 가득한 사람들이여 부디 둔중한 가락을 쉬이 감길.

 

멋대로 활보하는 야간 비행은 날개도 없고 처소도 없지만 때론 무질서가 질서로 거듭나기도 한다.

 

재즈처럼. 명성은 한 마리 벌.

 

 

 

히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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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피

잔치의 시선으로 신촌의 장면과 사람, 장소를 기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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