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66. 내 심장에 초록을 심어줘요.
우리에게 가장 익숙한 반려를 떠올려 보자. 대부분은 반려자, 반려동물, 반려견, 반려묘 등을 떠올릴 것이다. 그러나 21세기의 사람들은 인생을 평생 함께할 반려로 더 다양한 선택지를 고를 수 있게 되었다. 크게는 사람부터, 작게는 달팽이와 식물, 특이하게는 돌까지. 신촌에 들어선 아파트 안, 콘크리트와 둘러철근으로 싸인 몇 평뿐인 방에서도 사람들은 정을 붙일 무언가를 끊임없이 찾아 헤메고 있다.
오늘의 인터뷰는 평생의 반려로 식물을 선택한 된 ‘식집사*’들의 이야기이다. 식집사는 식물 + 집사가 합쳐진 신조어이다. 반려묘와 사는 사람이 자신이 고양이를 모시고 사는 집사라며 자조적으로 ‘냥집사’라 이야기하듯, 식물을 키우는 사람들은 자신을 식집사라 칭한다.
본인을 식집사가 아닌 ‘식초보*’라 명명한 대학생 윤예원님의 인터뷰와, ‘드루이드*’ 식집사이자 어엿한 사회인 허지혜님의 이야기를 소개하고자 한다. 식물에 관심 있고, ‘식집사’를 꿈꾸는 신초너들을 위해 이 글을 바친다.
*식집사: 식물과 집사의 합성어로 반려 식물을 기르는 사람을 일컫는다.
*식초보: 식물과 초보의 합성어로 반려 식물을 기른지 얼마 안 된 사람을 일컫는다.
*드루이드: 다른 사람들에 비해 식물을 매우 번성하게 만드는 능력을 가지고 있거나 동물들이 잘 따르는 사람을 이르는 인터넷 용어.
‘식초보’, 윤예원님 인터뷰
안녕하세요, 간단한 자기소개 부탁드리겠습니다.
저는 현재 홍익대학교 휴학 중인 23살 윤예원입니다. 집사 초보 된지는 지금 한 2년 반에서 3년 정도 된 것 같아요.
식초보가 된지 꽤 되셨네요. 본인을 ‘식집사’이자 ‘식초보’라고 명명하셨는데 그렇게 말씀하신 이유와 본인이 생각하는 식집사와 식초보 차이에 대해 말씀해 주세요.
식집사라고 하면 집사라는 이름 값이 있잖아요. 그러면 뭔가 식물을 체계적으로 관리하고 가끔 쓰다듬어 줘야 할 것 같은데 저는 식물과 함께 성장하는 입장이기 때문에 집사라기 보다는 식초보에 가깝습니다. 집사라고 보기에는 실려 나가신 식물들이 더 많거든요. 그래서 섬기는 주인이 많이 바뀌는 그런 차이가 있는 것 같네요(웃음).
그렇다면 키우고 계신, 그리고 키우셨던 식물 몇 가지 소개 부탁드립니다.
지금은 올리브 나무와 몬스테라, 아스파라거스와 호야를 키우고 있습니다. 그리고 연말이니까 포인세티아도 돌보고 있습니다. 거의 다 무난하게 키울 수 있는 식물들입니다. 제일 큰 건 몬스테라인데, 그 크기가 80cm 정도 됩니다. 그 친구는 허리까지 오지만 주먹만큼 작은 식물들도 있습니다.


올리브나무와 손가락 만한 인트리타카
올리브나무의 꽃말은 “평화”. 인트리타카는 꽃말이 없다.
그렇다면, 각자 붙여준 이름이나 애칭이 있을까요?
자취를 처음 시작하면서 제일 먼저 키운 게 몬스테라였어요. 제 본가에 여름이라는 고양이가 있거든요. 여름이의 대용으로 잠깐 몬스테라를 여름이라고 부르긴 했어요. 그런데 몬스테라가 살아 있긴 하지만 살아 움직이지 않으니 이름으로 부를 일이 없더라고요. 그게 처음이자 마지막 애칭이지 않았을까 싶습니다. 말을 걸거나 이름을 부르기보다는 그냥 ‘여기 존재하는구나, 잘 살고 있구나’ 라고 인식하는 것 같아요.
식물들 각자의 특성 같은 것도 있을까요?
분명히 있을 거예요. 그냥 제가 엄청 그 특성에 맞춰서 케어하는 성격이 아니긴 하지만… 포인세티아의 경우 연말에 맞게 빨간색 초록색으로 변하는 게 포인트인데 햇빛을 너무 많이 맞으면 모두 다 초록색으로 변해버립니다. 그런 특징들도 있고, 각자 습도를 조절해야 하는 부분들도 있고, 물을 주는 주기도 다 각각 다릅니다.

크리스마스 장식으로 흔히 볼 수 있는 포인세티아. 또 다른 이름은 ‘크리스마스 꽃’이다.
포인세티아의 꽃말은 “뜨거운 마음으로 축하한다”.
포인세티아에게 그런 특성이 있었군요(웃음). 몬스테라는 쑥쑥 자라기로 유명한 식물 아닌가요?
그럼요, 무섭게 성장하죠. 처음에는 되게 쁘띠한 애였는데 시간이 지나면서 굉장히 공격적으로 자라더라고요 그래서 지금 아주 난감한 상황입니다. 제가 만약 화분갈이에 익숙하고 잘 분리할 수 있었다면 분양을 보낼 수 있을 것 같은데 제가 초보다 보니 아직 엄두를 못 내고 있긴 해요.
감당하지 못해서 자라만 나고 있는 상황이군요(웃음). 몬스테라를 처음으로 들이게 된 경로도 궁금합니다.
처음에 서울에 오고, 길러봐야겠다고 결심했을 때 그냥 동네에 있는 화분집에 들어가서 큰 고민 없이 데리고 나오는 그런 편이었어요. 그런데 나중에는 식물 종에 대한 관심이 조금씩 생기니 인스타그램 태그를 통해 찾은 가게로 가게 됐어요. 전문적인 쪽에는 발만 담갔다고 보시면 될 것 같아요.
몬스테라를 들이기 전부터 식물에 관심이 있으셨던 건가요?
처음주터 관심이 있었다기보다는 다른 사연이 있습니다. 스무 살 전에는 본가에 살았었는데 어머니께서 식물을 키우는 경력과 애정이 모두 있는 굉장한 식집사세요. 좋아하는 친구의 이파리가 실수로 하나 쳐서 떨어지면 눈물을 찔끔 흘리실 정도로 (식물을 좋아하시고) 애정이 깊으세요. 그 영향이 크지 않았나 싶습니다. 식물을 자식처럼 키우세요. 워낙에 그걸 보고 자라다 보니 세뇌가 된 게 아닐까 싶어요(웃음).

공격적으로 자란 몬스테라
몬스테라의 꽃말은 “기이함”이다.
식물을 키우며 평소 주위를 보는 시각이 바뀌었을 수도 있을 것 같은데 어떻게 변했는지 말씀해 주실 수 있을까요?
사실 제가 식물 그 자체를 보며 위로를 받는 편은 아니었던 것 같아요. 세뇌를 당했다고 했잖아요? 처음에 데려왔을 때도 엄마가 같이 가서 사자 해서 들여오게 된 건데, 키우다 보니 시각이 바뀐 건 있는 것 같아요. 저는 요즘에 되게 자극적인 것, 뭔가 시간을 많이 들이지 않고 순간적인 노력의 결과를 받길 바라는데, 식물은 그런 게 아니잖아요. 그 지속적인 관심과 일상에 녹아있는 관리 이런 게 되게 중요하다는 생각을 했어요. 그런 부분에서 많이 배우는 게 있는 것 같아요.
좋네요. 식물을 키운다는 것은 동물을 키우는 것과는 확실히 다를 것 같은데 그 장단점이 궁금합니다. 고양이(여름)와 비교해 주셔도 될 것 같아요.
일단 식물은 그냥 제가 놓은 자리에 그대로 있고 제가 굳이 하루에 세 번씩 밥 주고 사냥 놀이를 하지 않아도 무관심 속에서 피어난다는 장점이 있죠. 하지만 키우기 쉽다고 해서 키워봤지만 그렇게 쉽지도 않다는 단점이 있어요. 그리고 벌레가 생기는 단점도 있었어요. 흙을 잘못 가져오면 그 흙 안에 숨어 있던 벌레들이 피어나는…. 일이 또 있죠. 제가 벌레를 싫어하다 못해 공포스러워하는 사람이었는데, 그걸 보고 기절할 뻔한 경험이 있었어요. 지금은 흙을 철저히 관리하고 있어요.
옛날 교육자료 중 좋은 말을 해준 양파와 안 좋은 말을 해준 양파가 다르게 자라는 영상이 있었던 것 기억나시나요? 지금은 틀린 가설로 받아들여진다지만 식집사들은 은연 중에 영향을 받을 수도 있을 것 같아요. 식물들에게 좋은 말을 들려주려 노력하시는 편인가요?
영향이 있긴 한 것 같아요. 네, 뭔가… 제 기분에 따라 아우라가 나온다고 생각하거든요. 같은 환경에서 자라더라도, 제가 너무 바쁘고 집에 머무는 시간이 적고 할 때는 식물이 자라지 않고 시드는 거예요. 그런데 제가 더 관심을 기울이고, 아니면 한 번이라도 더 커튼을 열어주고 환기를 시켜주면 잘 자라는 것 같더라고요. 제 기분이 정말 영향을- 사이비가 아니라요! 진짜 영향이 있습니다(웃음).
기분이 안 좋을 때는 아무래도 주변에 신경을 덜 기울이게 되잖아요. 식물들도 그런 집사의 마음을 아는 거겠죠. 다음 질문입니다. 불멍과 물멍에 이어 ‘식멍*’, ‘풀멍*’ 등 식물을 보면서 멍 때리는 것에 대한 신조어가 생겼죠. 혹시 그렇게 식물을 보며 멍 때리는 일이 잦을까요?
아침에 밥 먹을 때나 자기 전에 식물을 바라보며 멍을 때리는 시간을 갖긴 합니다. 식멍은 뭔가 다를 거란 기대를 하실 수도 있겠지만, 벽지 보는 것과는 별반 다르지 않은 것 같아요.
*식멍, 풀멍: 식물, 풀과 멍이 합쳐진 신조어로 식물을 보며 멍 때리는 것을 의미한다.

아침을 먹으며 바라본 하늘 아래의 호야.
호야의 꽃말은 “고독한 사랑”, “아름다운 사랑”이다.
식물을 바라보거나 물을 주는 일상적인 루틴에서 마음의 안정을 얻는 일이 많을 것 같아요. 마음이 안 좋은 날에는 위로를 얻으실 것 같은데 가장 위로가 되었던 날이 있으신가요?
뭔가 진짜 가슴 따뜻한 위로를 준다기보다는 일말의 책임감으로 나를 움직이게 하는 힘이 있는 것 그런 부분에서 위로를 (받습니다). 그래도 나를 필요로 하는 것들이 있으니까, 관리해야 되는 것들이 있으니까 일어나자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사람을 강하게 만들어주는군요. 지금은 초보 집사지만 나중에 더 크거나 까다로운 식물들도 키울 의향이 있으실까요?
사실 자취를 처음 할 때는 되게 욕심이 났어요. 식물을 많이 들여서 정글처럼 만들고 싶다. 식물 인테리어에 대한 막연한 로망을 가지고 있었어요. 그런데 혼자 살아보니까 제 몸 하나 건사하기가 어렵더라고요 그래서 제가 경제적으로도, 환경적으로도 여유가 있을 때 좀 더 공부를 해보고 싶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제가 1년 반 전인가 분재 소나무를 데려 왔었는데 죽어버렸어요. 경제적으로도 여유가 된다면 다시 한 번 모셔보고 싶습니다.
무언가를 키우게 되면 그에 맞는 소비가 필요하잖아요. 식물을 키울 때 필요한 물품들은 어떤 게 있을까요?
집에서 화분 갈이를 하게 되면 화분 자체가 필요하기도 하죠. 그리고 화분 아래 까는 깔망이나 흙도 되게 종류가 다양하더라고요. 흔히들 생각하는 까만 흙도 있고, 무조건 배합을 해야 되는 돌멩이들도 있습니다. 좀 더 욕심을 내면 영양제나 광택제도 있어요.
보통 몇 시에 식물들을 관리해 주나요?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물을 주는 것 같아요. 제가 알기로는 저녁보다 아침에 물을 주는 게 좋다고 하더라고요. 한 7시 반 정도에 일어나기 때문에 그때 물을 주고 아침밥을 먹습니다.
혹시 식물을 키우다가 포기하고 싶었던 순간도 있었을까요?
지금 몬스테라가 너무 무섭게 자라나고 있어요. 너무 잘 자라서 기쁘지만 예쁘게 자라지 않고 희한하게 자라고 있어요. 1평 정도의 방을 차지하고 있어서 곤란합니다(웃음). 그리고 한 번 바쁘고 정신없는 날에 화분이 넘어진 거예요. 온 바닥에 돌멩이와 흙이 흩뿌려져서, 이걸 어떻게 처리해야 되나 막막한 순간이었습니다. 그때가 가장 절망적인 순간이 아니었나 싶어요.
그럼 앞으로도 쭉 식물을 키울 계획이신까요?
살다 보면 계속 키우게 되지 않을까 싶어요. 뭔가 더 살 생각은 없고, 지금 있는 아이들을 사랑으로 키우자는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마지막으로 공통 질문 몇 가지 하고 마칠게요. 자신의 인생이 시간이라면 지금은 몇 시라고 생각을 하시나요?
저는 오전 10시 정도인 것 같아요. 휴학을 하고 나면 생각보다 시간이 많이 남아요. 그런데 눈은 일찍 떠지더라구요. 그렇게 7시 반에 기상하면 이런저런 루틴이 있어요. 정리를 하고 이것저것 하다 보면 9시가 됩니다. 그런데 약속은 12시 이후이기에, 그 사이의 시간이 굉장히 뭘 해야 되는지 모르겠다는 고민에 빠지는 시간이더라구요. 갈피를 못 잡는 시간인 것 같아요.
갈피를 못 잡는 시간이라는 시각도 굉장히 신선한 것 같네요. 좋은 답변 감사드립니다. 그렇다면 마지막으로, 만약 자신의 인생이 오전 9시에 와 있다면 무엇을 하고 싶으신가요?
제 인생이 9시에 와있다면… 글쎄요. 옆집의 알람소리로 부산스러운 새벽이나, 잠에서 완전히 깨어난 점심도 아닌 애매한 시간이네요. 그런데 저는 이 애매한 시간이 불안하면서도 좋아요. 뭘 해야하나 막연하면서도 무궁무진한 시간이잖아요.
요즘 저의 오전 9시는 그 전날 밤에 참아낸 욕망을 마음껏 채우는 시간이에요. 컵라면을 먹거나 드라마 정주행을 하는 등, 건강을 위해 다음날 아침으로 미룬 갈망을 해소하는 시간입니다. 그렇게 시간을 보내고 나면 결핍없는 완벽한 하루를 보낼 수 있을 것만 같은 기분이 들어서 좋아요.
사실 저는 요즘 인생이 9시 즈음에 와 있다고 느끼고 있어요. 갈피를 못 잡는 것도 같지만, 지금을 좀 더 만끽하면서 힘을 비축하고 싶네요. 불안할 정도로 평화롭고 이상할 정도로 낙관적으로 변하게 되는 이 시간을 즐기고 싶어요. 다가올 전투의 시기를 위해서요! 불안은 조금 줄이고요. 저에게 하는 말이기도 하네요.
예원님다운 답변이었다는 생각이 듭니다(웃음). 인터뷰 감사드립니다.
드루이드 식집사, 허지혜님 인터뷰

안녕하세요. 자기 소개 부탁드립니다.
안녕하세요, 저는 5년차 식집사 허지혜입니다. 연세대학교를 졸업한 뒤, 아산병원 수술실에서 간호사로 일하고 있습니다.
키우고 계신 또는 키우셨던 식물 종 중 몇 가지 소개 부탁드립니다.
정말 많아요. 맨 처음에 키웠던 아이는 집에 있는 페페라는 아이에요. 그리고 키우고 있는 애들 중 몇몇만 말씀드리자면 마오리 소포라, 안스리움, 얘는 이름이 따로 있는 걸로 아는데 제가 데려올 때는 이름이 천룡이라고 들었어요. 이 친구는 소나무에요. 그리고 또 못 데려온 친구 중에 유칼리투스가 있어요. 이외에도 먹을 수 있는 식물은 상추나 치커리, 블루베리, 바질, 로즈마리 이런 허브도 키웠습니다.
정말 많은 식물을 키우셨네요. 각자 붙여주신 이름이나 식물마다 중요한 특성이 있을까요?
이름은 처음에 조금 붙여주다가 너무 많아져서 안 붙이게 되었어요. 특징에 대해 말씀을 드리자면, 페페라는 친구가 동그랗게 생긴 것이 동전을 닮아서 돈을 불러온다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키우기가 정말 쉬운 친구예요. 물을 적게 줘도 잘 살아서 입문용으로 페페를 많이들 키우더라고요. 그리고 이 친구는 마오리 소포라인데 연두색 새 잎을 퐁퐁 피어냅니다. 보면 모두 잎이 7개씩 나있어요. 얘가 호주에서는 잡초에요. 호주의 길가에서 쉽게 볼 수 있는데, 우리나라에서 유행을 해서 카페에서 흔히 볼 수 있다는 특징이 있습니다.
일조량이나 계절 시간에 따라 변화하거나 꽃을 피우는 식물도 있으신가요?
아무래도 꽃을 피우거나 열매를 맺는 과실수가 계절을 많이 탑니다. 블루베리 같은 경우에는 봄에는 잎과 꽃을 피우기 시작하고 여름에 열매를 맺고 가을에는 낙엽이 져요. 단풍이 지고 낙엽이 떨어지면 겨울에는 겨울잠을 자거든요. 월동을 해요. 블루베리가 계절을 가장 심하게 타는 친구가 아닐까 싶습니다. 처음에 겨울에 데려와서 잎이 없는 상태로 데려왔었어요. 죽었는지 아닌지 구분하는 건 감인 것 같아요. ‘내가 물을 주면 다시 살아날까?’ 하는 의구심이 들기도 하지만, 그걸 확인하려면 결국 봄까지 기다리는 수밖에 없어요.
역시 드루이드시네요. 키운 허브나 채소로 음식을 하는 것도 즐기시는 편이라고 들었습니다. 시중에서 판매하는 상품을 사 먹는 것과는 어떤 차이가 있을까요?
보람이 큰 것 같아요. 제가 키운 걸 먹는다고 생각하면 그 자체로 좀 더 행복합니다. 가족들에게 줄 때도 안심이 돼요, 농약 없이 키우는 친구들이니까(웃음).
처음으로 키웠던 식물과 키우게 된 계기가 궁금해요.
제가 단골로 가는 카페가 있어요. 연남동에 “벌스 하우스”라고, 커피 쿠폰을 모으면 화분으로 바꿔주는 곳인데, 거기서 데려오기 시작했어요. 본격적으로 데려오기 시작한 건 페페부터였어요. 그 이후로 공부하면서 힘이 드니까 집에서 위로를 받을 방법을 찾다가 화분을 한두 개씩 모으다 보니 이렇게까지 커지게 됐습니다.

인터뷰 이후 에디터에게 선물해주신 필리아 페페
꽃말은 “뜻밖의 행운보다 지금의 행복”이다.
특별히 아끼시는 화분이 있으실까요?
안스리움이라고, 이 친구가 제가 입사할 때 받은 친구에요. 얘가 처음에는 꽃대가 아예 없고 풀만 있었어요. 주는 사람이 저랑 같이 성장을 했으면 좋겠다, 같이 꽃이 폈으면 좋겠다는 의미로 선물을 해줬어요.
제 수술실 진료과가 3개월마다 바뀌어요. 지금은 이비인후과, 예전에는 비뇨기과와 산부인과, 이런 식으로 3개월마다 텀을 두고 있는데 그때마다 꽃대가 하나씩 올라오는 거예요. 사실 두 개가 올라왔다가 얘네가 피면서 그 친구들이 졌어요. 이름을 과 이름으로 지어주고 있어요. 넌 산부인과, 넌 비뇨기과, 이런 식으로요. 얘가 약간 저 같아서 더 아끼게 되는 것 같아요.

이비인후과 (안스리움의 꽃대, 2개월)
안스리움의 꽃말은 “꾸미지 않은 아름다움” 이다
정말 지혜님과 함께 자라고 있는 화분이네요. 키웠던 식물 중 가장 까다로웠던 친구를 소개해주세요.
얘도 진짜 까다로웠어요. 소포라도 진짜 까다로운데, 오늘 못 데려온 유칼립투스가 정말 까다롭습니다. 팬더가 먹는 식물로 유명한 그 유칼립투스인데, 이 친구가 환경을 너무 잘 타는 거예요. 예민하더라구요. 처음에 저는 비염에 좋다는 말을 듣고 데려왔었습니다. 근데 처음에 데려왔을 때 실패를 했어요. 물을 언제 줘야 할지를 모르겠고, 물도 엄청 좋아하는데 햇빛도 좋아하지만 직사광선에 두면 잎이 타버려요. 그래서 밝은 곳인데 햇빛은 직접적으로 들지 않는 곳에 둬야 해요. 처음에 환경 잡는 게 어려웠던 것 같아요.
물을 주는 타이밍은 어떻게 알 수 있으신가요?
매일매일 이 친구들을 봐요. 주로 아침에 밥 먹으면서 보는데, 잎 상태가 괜찮다 싶으면 안 줘도 돼요. 그런데 가끔 잎이 헹~ 하고 쳐지고 자기주장을 할 때가 있어요. 그러면 그 친구에게 물을 주는 거에요. 새로 난 잎이 그런 게 티가 많이 나는 편이에요. 물이 부족하면 새 잎이 바로 쪼그라들거든요. 그때 바로 물을 주면 CPR한 것처럼 다시 살아나요.
비유가 간호학과다우신 것 같아요(웃음). 능숙한 집사가 되기까지 실패도 겪어보셨을 것 같은데 그동안 실려나간 식물들도 있나요?
처음에는 바람이 중요하고 통풍이 중요하다는 것도 잘 몰랐고 물을 언제 줘야 되는지도 감이 안 오는 거에요. 무조건적으로 물을 많이 주고 따뜻하면 좋겠지, 했는데 벌레가 정말 많이 생기더라구요. 초반에는, 볼 수 있는 벌레란 벌레는 다 보고 벌레 때문에 식물이 많이 진짜 실려나가고 그랬어요. 침공을 당했는데 약을 칠 수조차 없는 상황이 돼서 처음에 그렇게 많이 보냈죠.
화분들을 구매하고 정보를 수집한 방법이 궁금해요.
온라인이랑 오프라인 다 이용하고 있어요. 그런데 수형을 보고 싶으면 오프라인 양재 꽃시장이나, 아니면 근처의 꽃집을 가요. 내가 요즘 마음에 들어했던 게 있나, 하면서 보고 수형이 좋은 것 같으면 바로 데려오고 그래요. 그리고 온라인으로 주문해도 되겠다 싶은 건 온라인에서 사는 편이에요. 예를 들어 상추나 채소처럼 먹는 애들은 모종을 네이버에서 주로 주문을 해요. 씨앗부터 키우고 싶을 때면 다이소에서 씨앗 사서 키우고 있어요.
수형이라고 하셨는데 그건 무엇인가요?
나무의 형태를 수형이라고 해요. 이 마오리 같은 경우는 사방으로 퍼지는 예쁜 친구인데 이렇게 퍼져 있는 걸 사고 싶어서 직접 가서 보고 샀습니다. 폴리안 같은 경우도 나무가 일직선을 자라는 애가 있는 반면에 두 개로 Y자로 자라는 애가 있어요. 그래서 나는 왜목대, 그러니까 나무처럼 목대가 하나인 친구를 키우고 싶다, 아니면 이렇게 퍼지는 걸 사고 싶다 하면 그런 걸 생각해두고 직접 가서 수형을 보는 거에요.

마오리 소포라, 7개의 잎이 난 가지들이 옹기종기 모여있어 나무를 축소한 듯 보인다.
마오리 소포라의 꽃말은 “황제의 꽃”.
그럼 조그마한 분재들 보는 것처럼 꼼꼼히 보고 데려오시는 거네요. 혹시 옛날부터 식물에 관심이 많으셨나요?
아기 때부터 만물에 관심이 많았던 것 같아요. 자연 보면서 걸어다니는 것도 좋아했구요. 그러다가 키우고 싶다고 생각한 것은 공부하면서부터였어요. 공부를 하면 주로 책상에 앉아있고, 어딜 못 가다 보니 집에서 할 수 있는 취미를 만들고 싶어지더라고요. 그래서 그런지 수험 생활을 시작한 19살 때부터 관심이 많이 생겼던 것 같아요.
식물을 키우면 평소 주위를 보는 시각이 바뀌었을 수도 있을 것 같은데 그런 것에 대해서 말씀해 주세요.
두 가지가 있어요. 첫 번째로는 벌레에 대한 시각이 조금 바뀌었던 것 같아요. 처음에 벌레는 다 안 좋다고 생각을 했어요. 이건 해충이고 이건 익충이다. 이렇게 이분법적으로 구별하는 것도 어느 순간 이게 너무 사람 기준이라는 생각이 들더라구요. ‘참 인간 기준으로 평가되는 게 많구나’, 라고 느꼈습니다. 화분 안에서는 분명 이게 해롭거나 이롭다는 것 없이 이들만의 체계가 있을 텐데, 제가 약을 친다든가 하는 행위가 너무 인위적으로 개입하는 건 아닌가 이런 생각이 들게 되더라구요. 그 다음부터는 벌레들을 하나의 개체로 존중하게 된 것 같아요.
아 윤리관이 생기셨군요.
네, 이제는 벌레가 징그럽지도 않고, ‘그래, 어딘가에서 잘 살아라.’ 생각하고 있어요. 이렇게 벌레에 대한 관점도 좀 바뀐 것 같고 하나의 생태계로 받아들이게 된 것 같아요.
그리고 두 번째로, 자연에 대한 생각이 바뀌었어요. 평소에는 자연을 보면 예쁘다는 생각뿐이었어요. 그런데 이렇게 직접 키우고, 얘네가 존재하기 위해서 어떤 과정을 겪는지 직접 보다 보니 조금 더 시선이 애틋해지고 애정 어리게 변한 것 같아요. 얘네가 예뻐 보이니까 제가 있는 공간 자체가 되게 사랑스럽게 보이더라고요. 단순히 길을 걷는데도 기분이 마냥 좋고, 출퇴근길도 거기 자연을 보니까 좋고, 이렇게 바뀐 것 같아요.
자연을 더욱 애정어리게 바라보게 되셨군요(웃음). 식물을 키운다는 것은 동물을 키우는 것과는 확실히 다를 것 같은데, 그 장단점이 궁금해요.
장점은 조금 책임감이 덜하다는 거에요. 적당히 무관심해도 된다는 것, 이게 장점이라고 생각합니다. 단점의 경우는 물론 둘 다 말을 못하지만, 얘는 표현을 너무 안 한다는 것인 것 같습니다. 언제 물이 필요한 건지, 햇빛이 모자란 건지, 바람이 모자란 건지 알 턱이 없어요. 무관심 사이의 관심이, 그리고 센스가 조금 더 필요한 것 같습니다.
옛날 교육 자료 중 좋은 말을 해 준 양파와 안 좋은 말을 해준 양파가 다르게 자란 영상이 있어요. 현재는 그게 틀린 가설로 받아들여지지만 식집사들은 은연 중에 영향을 받을 것 같아요. 혹시 식물들에게 좋은 말을 주로 해주려 노력하시는 편인가요?
얘네들 보면서 나쁜 말은 당연히 안 나오긴 하는데, 좋은 말을 해준다기보다 음악 틀 때 같이 듣는 것 같아요.
음악이 효과가 있어보였나요?
그건 사실 제가 너무 이과생이라서(웃음) 크게 신경을 쓰지 않는 것 같아요(웃음).
‘식물멍’, ‘풀멍’ 등 부르는 이름이 다양한데 식물들을 보면 멍 때리는 일이 잦은가요?
입사를 올해 3월에 했는데, 그전에는 국가 고시 준비하느라 책상 위에 앉아 있는 시간이 많았어요. 제 책상에 오후 3시쯤부터 빛이 엄청 들어오는데, 잎에 햇빛이 닿으면 되게 맑은 빛이 나와요. 그걸 보고 있으면 공부하다가도 언제 어디서든 힐링을 얻을 수 있더라고요. 그때 정말 식물멍을 많이 때렸던 것 같아요. 가족들도 얘네가 베란다에 많으니까 주말에 커피 마시고 음식을 먹을 때 얘네를 보며 쉬더라고요. 유튜브 대신인 것 같아요. 내가 데려왔는데 가족들이 저보다 더 좋아하시는 것 같아요.

작은 소나무.
꽃말은 ‘변하지 않는 사랑’ ‘불로장생’ ‘영원한 푸름’이다.
그러면 식물을 바라보며 마음의 안정을 찾는 일도 많으셨네요. 가장 위로가 되었던 날은 언제였나요?
국가고시 준비할 때 앉아서 공부만 해야 했었는데 그때 맞춰서 바질 씨앗을 심었었어요. 하루가 다르게 커가고, 얘네가 잘 자라는 게 너무 위로를 많이 받았었어요. 얘네를 키우려면 공부를 열심히 해서 국가고시를 꼭 통과해야겠구나 싶었어요.
더 크거나 까다로운 식물들도 키우고 싶으실 것 같아요. 혹시 요즘 눈길이 가는 식물이 있다면 어떤 건가요?
식물보다는 분재에 관심이 좀 많아요. 얘네를 키우다 보니까 점점 나무에 관심이 많이 생기더라고요. 집에 블루베리 나무도 있는데 집에서 나무를 키우려니 한계가 있더라고요. 공간적으로요. 분재는 작으니 키워볼 만하지 않을까? 싶어요. 이 정도 레벨이 됐으면(웃음). 그런데 워낙 까다롭다고 하고 알아본 것도 되게 비싸더라고요 그런 것 때문에 아직은 조금 망설이고 있습니다.
혹시 식물 말고 화분에도 관심이 있으신가요?
처음에는 토분에 관심이 많았어요. 사실 데려오고 싶었던 식물 중 토분이 예쁜 게 있었어요. 사실 식물들은 이런 플라스틱보다는 흙 재질로 된 화분을 선호해서 하나씩 모으고 있습니다. 유약 화분이라고 유약을 발라서 반짝반짝하게 만든 화분도 요즘에 관심이 있습니다.
무언가를 키우게 되면 그에 맞는 소비가 필요한데 식물을 키울 때 필요한 물품들은 어떤 게 있을까요?
크게는 영양제나 화분이 필요합니다. 조금 더 감성을 보태고 싶다면 물 주는 것도 예쁜 걸로 살 수 있겠죠. 흙도 종류가 너무 너무 많아요. 이런 마감재로 위에 까는 돌들도 다 달라요. 돌에도 돈이 많이 들고, 정말 비싼 건 토분인 것 같습니다. 하나에도 10만 원 정도 해서요. 처음에는 작은 사치로(웃음) 하나씩 구매를 했었던 것 같아요.

토분에 담긴 천룡과 새 장식물
그럼 이런 새 같은 장식물들도 구매를 하신 건가요?
제가 이런 화분을 좋아하다 보니 친구들이 해외에 갔을 때 이런 피규어들을 사오더라구요. 집에 레고가 있어요. 그 레고 중 농부 레고(웃음)가 있어서, 하나씩 올려주면 인테리어가 되고 더 귀엽더라고요.
귀엽네요(웃음). 보통 몇 시에 식물들을 관리하시는지 궁금합니다.
주말 저녁에 관리를 많이 하는데, 평일에 제가 출퇴근을 하니까 너무 시간이 없어서 주말에 한 번에 다 욕조로 데려가서 물 샤워를 시켜요. 낮에는 햇빛을 봐야 되니까 안 건드리고 저녁에 한 번씩 해주는 것 같아요. 커다랗고 무게가 많이 나가는 친구들은 베란다에서 바로 호스로 물을 쏴줘서 샤워를 시켜줍니다.
책임감도 크게 느끼실 것 같은데 가장이 된 느낌도 있으신가요?
엄마가 되는 기분을 많이 느끼는 것 같습니다. 아무래도 제가 바빠서 얘네를 잘 못 챙길 때는 바로 티가 나더라구요. 잎이 떨어진다든지 하는 식으로 (티가 나요). 너무너무 미안하더라고요. 그런 식의 책임감을 느끼는 것 같아요.
마지막으로 공통 질문을 몇 가지 드리겠습니다. 자신의 인생이 시간이라면 지금은 몇 시쯤인 것 같으신가요?
아침 7시인 것 같습니다. 다들 하루를 시작하는 시간이어서 시작이라는 개념이 있잖아요? 그래서 앞으로의 나날들을 위해 부지런히 몸을 깨우고 하루에 제일 바쁜 게 7시라고 생각을 해요. 가장 바쁜 시기에 와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네 감사합니다. 자신의 인생이 아침 6시에 와 있다면 무엇을 하고 싶으신가요
어차피 바쁠 테니까 좀 쉬어라, 오늘 하루 걱정 없이 쉬라고 얘기해 주고 싶어요.
정말 좋은 답변 감사드립니다. 인터뷰 여기서 마칠게요.
누구나 초보일 때가 있다. 뭘 알아야 제대로 할 수 있는지조차 모르는 채로 실패를 반복하는 나날들도 있다. 처음으로 모시게 된 식물을 대할 때처럼, 가끔 사회는 정답이 없는 얼굴을 내밀어온다. 그 질문에 나름의 답을 적고 한 발 한 발 나아가다 보면, 꽃이나 열매가 없더라도 초록은 피어나, 제 나름의 위로를 내어줄 것이다. 그리고 어느새 사방을 가득 채운 초록 속에서, 당신은 자신이 꽤나 능숙한 집사가 되었다는 것을 깨닫게 될 것이다.
식물은 그 자리에서 제 초록을 자랑하며 존재한다. 바람에 씻기며 흔들리는 이파리를 보다 보면 그 생명력에 경외와 함께 반려에 대한 책임감이 생긴다. 그 조금은 간지러운 감정은 집사에게 힘을 주고, 반려를 제대로 모시고 싶다는 집사의 본능을 일깨운다. 그렇게 집사는 오늘도 주인에게 물을 주고 햇빛을 쬐어주며 아침을 준비한다. 광합성을 할 때다.
선뜻 반려식물들을 소개해 주시고 인터뷰해주신 인터뷰이 윤예원(잔치의 욘 에디터)님과 인터뷰이 허지혜님께 감사의 인사를 전합니다.
아직 댓글이 없습니다. 첫 이야기를 남겨주세요.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