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5. 네 하루는 내겐 선물
어느 날 친구가 내게 물었다.
인정하는 말
함께하는 시간
선물
봉사
육체적 접촉
“이 중에서 네가 생각하는 사랑의 언어는 뭐가 가장 우선순위야?”
나는 아무런 망설임도 없이 선물이라 답했다.

이미지출처 unsplash
“나는 물질적인 게 좋아.”라고 그 이유를 실없이 이야기하긴 했지만 좋아한다는 감정은 눈에 보이는 거라 굳게 믿어 왔다. 사랑은 눈으로 볼 수 있어야 하고, 매번 느낄 수 있어야만 한다. 표현하지 않으면 절대 느낄 수 없는 게 사랑이니까.
나는 나의 사랑을 눈에 보이는 형체에 담아 표현하기로 결심했다. 선물을 하는 건 그 과정 자체가 즐겁다. 선물을 줄 대상의 평소 모습을 한번 떠올려본다. ‘좋아하는 게 뭐였지? 오이는 싫어한다고 했어, 아 얼마 전에 자취 시작했다고 했는데 필요한 게 있으려나?’ 꼬리에 꼬리를 무는 질문들이 머릿속에 떠오른다. 그날 하루는 내 일에 집중도 잘되지 않는다. 온종일 선물 생각만 하느라. 그리고 이렇게 고심해서 고른 선물을 주었을 때 돌아오는 상대방의 사랑스러운 반응은 곧 죽어도 행복할 만큼 소중하다. 선물은 주는 사람도 받는 사람도 모두 사랑을 느낄 수 있는 사랑의 언어라 생각한다. 오죽하면 새 학기 첫 만남에 마이쮸를 주며 ‘안녕?’이라 인사하는 게 친구 사귀는 최고의 방법이라 정평이 나 있겠어.
그렇다면 가장 쉽게 내 마음을 표현할 수 있는 것은 무엇이 있을까?
음….
아무래도 디저트?
구하기는 쉽지만 그 달콤함에 쉽게 헤어나오지 못하는, 그래서 더 중독적인.
What’s your color(왓츠 유얼 컬러)

첫 번째로 소개할 장소는 What’s ur color(왓츠 유얼 컬러)이다.
신촌 주택가에 위치한 디저트 전문점으로, 포근한 크림색의 외관과 투명한 유리 너머로 얼핏 보이는 디저트들은 사람들의 발길을 사로잡는다.
오늘의 라인업은 황치즈뽀또갸또, 블루베리레어치즈 케이크, 레어치즈 케이크, 딸기 우유생크림 케이크, 버터바 그리고 티그레라 불리는 구움과자들이다.
티그레(Tigre)는 ‘호랑이’라는 뜻으로 구워진 모습이 호랑이 무늬와 같다는 의미에서 지어진 이름이다.
아직 먹지도 않았는데, 눈에서부터 달달함이 가득 차오르는 것 같다.
눈물이 아닌 설탕물이 잔뜩 흘러나올 것만 같은 기분. (아 행복해)

What’s ur color?에서는 디저트뿐만 아니라 음료도 함께 판매하고 있다.

가게 한편에는 올해의 첫 계절을 반갑게 맞이하는 샛노란 꽃과

아직은 보내지 못한 작년의 추억들이 함께 자리하고 있다.

고심해서 메뉴를 고르고 사장님께 포장을 맡긴다.
내가 주문한 메뉴는 황치즈뽀또갸또, 우유쨈 티그레, 에스프레소 버터바이다.
박스에 담기는 케이크를 보고 있으니 절로 마음이 흐뭇하다.
황치즈와 우유쨈 티그레는 선물로 주어 맛보진 못했지만 황치즈의 경우 선물상자에서 황치즈 향이 솔솔 올라올 정도였기에 진한 치즈 맛이 예상됐다! 에스프레소 버터바는 꾸덕함과 부드러움이 공존하는 식감을 가지고 있었다. 또 버터와 에스프레소 향이 적절하게 어우러져 먹는 내내 기분이 좋았다. 아메리카노도 좋지만, 아이스 카페라테와 함께 먹는다면 너무나 잘 어울릴 것만 같았다. 이곳의 시그니처 메뉴는 티그레인데, 버터바 또한 가벼운 선물로 부담 없이 소중한 사람에게 마음을 표현하기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
이걸 받을 누군가가 떠오르기 때문일 수도 있고, 정성스레 만든 디저트가 제 주인을 잘 찾아갔다는 사장님의 뿌듯한 마음이 느껴져서 일 수도 있다. 어쩌면 우리가 케이크를 냉장보관 해야 하는 이유는 설렘에 뜨거워진 우리들의 온기를 감당하지 못해서가 아닐까?

포장을 기다리며 가게를 다시 둘러본다.
마스코트인걸까?
가게 이름이 물음표로 끝나 독특하다고 생각했는데 캐릭터도 물음표와 함께이다.
물음표(?)는 가게 이름을 묻는 손님의 말끝에 불어져야 하는 게 일반적이다.
하지만 이곳은 ‘What’s ur color?’라 되려 손님에게 질문을 던지고 있다.
나의 색은 무엇일까?
가게 이름의 의미를 곰곰이 생각하다 보니 전체적인 분위기까지 생각하게 된다.
가게가 전체적으로 화이트 톤으로 꾸며진 것도 흰색 도화지를 의도한 것 아닐까?
가게를 방문하는 사람들이 닮고 싶어 하는 색으로 흰 도화지를 가득 채워 나가겠다는 사장님의 포부가 담겨 있는 건 아닐지 조심스레 추측해본다.

디저트가 사랑의 언어가 될 준비를 마쳤다.
이제 진짜 주인에게 전달될 차례만 남았다.
Poundary Bakeshop(파운더리 베이크샵)

두 번째 장소는 Poundary Bakeshop(파운더리 베이크샵)이다.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에 등장하는 시계 토끼가 열심히 쿠키를 굽고 있을 것만 같은, 동화 속 한 장면을 떠오르게 하는 외관이다.


이대역에서 서강대 방향으로 걸어 내려가다 보면 보이는 주택가의 골목에 있기에 찾기 어려울 수 있겠지만, 친절한 표지판들이 가게의 위치를 열렬히 알려주고 있다.


진한 초록색과 붉은색, 잔잔한 오렌지빛 조명, 그리고 원목 가구들이 만들어 내는 따뜻함.
벽난로는 가게 어디에도 찾아볼 수 없음에도 내 오른편에서는 장작불이 타닥타닥 타들어 가는 소리가 들린다.


문을 열고 차례로 놓인 디저트들을 마주한 순간,
달력은 아직 봄을 가리키고 있음에도 내 영혼은 벌써 크리스마스에 다다른 기분이었다.
가장 좋아하는 캐럴인 마이클 부블레(Michael Buble)의 Holly Jolly Christmas를 들으며 함박눈이 펑펑 내리는 거리, 견딜만한 추위를 뚫고 마침내 따뜻한 난로와 디저트들이 기다리는 제과점에 도착한 것만 같은 이 기분. 몇 달을 더 보내야 올 크리스마스를 더 기대하게 한다.
2단으로 된 진열장 위층에는 휘낭시에들이 자리하고 있었고, 아래층에는 초코, 뽀또, 솔티 초코 휘낭시에들과 다채로운 색의 마들렌들이 저마다의 색을 뽐내고 있었다.

모두가 퇴근하고 난 뒤에는 이 고양이들이 잔뜩 커져 살아 움직이지 않을까 하는 상상.
(헐 너무 귀엽겠다 어떡해 라따뚜이같애, 냥따뚜이)

포장 상자까지 가게 주인의 섬세함이 돋보인다.
진한 초록과 빨간 색감이 매력적인 상자는 그 속에 담길 디저트의 달콤함을 극대화 시켜준다.
코끝이 시려지는 크리스마스가 생각나게 만들면서 말이다.

뽀또 휘낭시에까지 서비스로 함께 넣어주셨다.. ◠‿◠
주문한 메뉴는 차례로 솔티초코 휘낭시에, 빠다코코낫 휘낭시에, 카라멜 피칸 휘낭시에, 얼그레이 마들렌이다.
솔티초코 휘낭시에는 소금 맛이 잘 안 느껴질 거라 예상하고 먹었는데 단짠 그 자체였다. 달달함과 짭짤함이 잘 어우러진 꾸-덕한 휘낭시에랄까. 빠다코코낫 휘낭시에는 겉에 구운 코코넛 토핑이 함께 올라가 있어 코코넛 맛을 온전히 느낄 수 있었다. 코코넛을 사랑하는 사람이라면 입안에 휘낭시에가 머무는 내내 행복을 연발하게 된다. 뽀또 휘낭시에는 사이에 발린 뽀또크림이 무척 매력적인데, 진한 뽀또 맛이 휘낭시에의 달달함과 어우러져 기분 좋은 달콤함을 만들어냈다. (아 또 먹고싶어)

이젠 크리스마스에서 다시 봄으로 넘어올 시간.
상자에 담긴 디저트를, 아니 내 사랑을 전달하러 발걸음을 옮긴다.
부디 내 선물이 마음에 퍼즐처럼 들어 맞기를 바라며.
이 글을 보고 있는 여러분에게도 묻고싶다.
여러분이 생각하는 1순위 사랑의 언어는 무엇인가? 함께하는 시간? 육체적인 접촉? (내 친구가 말하기를 플라토닉 러브는 사랑이 아니라고 했다.)
각자의 마음에 품고 있는 사랑의 언어는 저마다 다를 것이다. 하지만 모두들 이 말에 공감할 것이라는 생각은 분명하다.
좋아한다는 말은, 사랑한다는 말은 해도해도 부족하다는 거.
네 하루는 내겐 선물이다.
수줍게 건네는 선물과
금방 사라지는 말로는,
다 표현할 수 없겠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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