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0. 코로나가 머무는 동안 신촌은 임대의 나라

2020년 2월 말, 3월 16일까지만 비대면 강의를 실시하겠다고 학교에서 발표한 공지는 한 학기가 끝날 때까지 연장되었다. 2학기 개강이 조금 지난 10월도 모두가 예상했던 대로 비대면 강의가 한창이다. 타인과의 접촉이 위협이 되어버린 상황은 그동안 당연하게 여겼던 일들에 물음표를 던지는 계기가 되었다. “회사 꼭 출근해야 돼?”, “학교 꼭 등교해야 돼?”, “우리 꼭 만나야 돼?”같은 질문들 말이다. 우리는 대안으로 주어진 화상채팅을 통해서 꼭 해야만 하는 만남의 문제를 해소하고 있다.
불과 일 년 전까지만 해도 신촌은 나의 삶의 터전이었다. 강의 들으러 매일 학교에 가야 했고, 수업이 끝난 후에는 학교 친구들과 신촌 거리로 나와 밥을 먹거나, 술을 마셨다. 신촌 근처의 빵집에서 아르바이트도 하고, 근처 영화관에서 영화를 보고, 카페나 도서관에서 공부도 했다. 하루의 대부분을 신촌에서 보낸 셈이다. 이것은 개인적인 이야기가 아니라 신촌의 대학생과 주민, 신촌과 밀접한 누구라도 공감할 수 있는 우리의 이야기이다.
‘몸은 멀리, 마음은 가깝게’라는 표어를 볼때마다 현실적으로 가능한 말인가 의심이 든다. ‘몸에서 멀어지면 마음에서도 멀어진다’는 말처럼 자주 만나지 않으면 서로 잊어버리게 되지 않나, 하는 의문 말이다. 학교에 가지 않고도 수업을 들을 수 있게 되자 신촌은 물리적 거리 만큼이나 심리적으로 멀어졌다. 이제 신촌은 일상이 아니라, 마스크와 혼잡한 대중교통, 수많은 사람들이라는 부담을 감수해야 갈 수 곳으로 바뀌었기 때문이다. 코로나가 없는 신촌이 어떤 모습이었는지 벌써부터 가물가물했다. 또, 사람들의 발길이 끊긴 지금의 신촌은 어떤 모습인지 아무것도 상상할 수 없었다. 언제부터 신촌이 낯설어진거지, 이게 다 망할 코로나 때문이다, 라는 생각이 꼬리를 물고 물고 물다가 급기야 화까지 났다. 휴학했을 때도 매일 신촌으로 출근 도장을 찍었던 내가 신촌의 근황을 모른다는 사실이 억울했던 것이다. 이대로는 안되겠다 싶어서 서둘러 나갈 준비를 마치고 집을 나섰다. 학교에 가지 않는 시대 속에서 등교하는 길의 신촌을 담아보겠다고 결심했다.

틀린 그림 찾기
지난 금요일 세시 즈음에 신촌을 방문했다. 역내에 이동하는 사람들 수는 학교 다녔던 때보다 확실히 적었다. 신촌역을 찾은 건 오랜만이었지만 몸은 익숙하게 3번 출구로 움직였다. 몇년 째 같은 자리에 있는 토끼 인형을 지나 계단을 올랐는데 작년 9월에 있었던 떡집 대신 처음 보는 빵집이 으리으리하게 차지하고 있었다. 이어서 계속되는 계단을 올라 지상으로 벗어나자 익숙한 오거리가 한 눈에 들어왔다. 금요일 세 시 이후였기 때문에 차 없는 거리 표지판이 연세로 초입에 언제나처럼 서 있었다. 코로나가 휩쓸고 가더라도 서대문03 버스 노선에는 변함이 없었다. 정신 없이 달리는 자동차들도 여전했다. 여기까지는 기억하는 대로라는 안도감에 몸을 돌리려는데 무엇인가 낯선 흔적이 스쳐 지나갔다. 2번 출구 앞 24시 카페, 그 앞에는 두 블록으로 나뉜 횡단보도가 있었고, 횡단보도를 지나면 백화점이 우뚝 솟아 있었다. 백화점 전면에 매달린 스파오 광고도 몇 년 째 그대로였지만 무엇인가 낯설다는 기분을 지울 수 없었다. 한참을 그 자리에 서서 무엇이 다른 걸까, 틀린 그림 찾기를 하듯 백화점을 보다가 백화점 꼭대기에 매달린 ‘이마트’ 간판을 발견했다.

구멍 뚫린 연세로
본격적으로 연세로를 따라서 산책을 시작했다. 쭉 뻗은 길을 걸으려니 등교할 때의 악몽이 떠올랐다. 역에서 강의실까지 자그마치 삼십 분을 걸어야 했던 끔찍했던 일상은 이미 일 년도 더 지났지만 어제 일인 것처럼 생생하게 떠올랐다. 연대앞 횡단보도까지 꽤 많이 걸어야 했는데 은근히 경사가 나 있어서 횡단보도에 도착하면 숨이 찼다. 문제는 연세로가 아니라 그 다음부터였다. 연세로만큼 길고 연세로보다 가파른 백양로를 지나, 스키장만큼 가파른 언덕을 지나야 겨우 강의실에 도착할 수 있었다. 통학의 악몽을 곱씹어보니 편히 누워서 수업듣는 지금이 더 행복할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하다가 문득 어제 일처럼 생생하게 기억하는 스스로가 우스웠다. 신기한 일이었다. 신촌을 다 잊은 줄 알았는데 막상 신촌으로 돌아와 길을 따라 걷다보니 사소한 순간들이 하나 둘 떠올랐다.
확실히 코로나의 여파 때문인지 연세로를 걷는 사람이 거의 없었다. 안타까운 소식은 줄어든 사람 수만큼이나 ‘임대문의’라고 적힌 글자들이 눈에 띄었다는 것이다. 신촌역과 가장 가까운 곳에 위치한 올리브영, 랄라블라, 스무디 킹, 아리따움, 그리고 기억에서조차 사라진 가게들도 상당히 많았다. 신촌역 3번 출구에서부터 연세대 앞 횡단보도까지 걸으면서 발견한 ‘임대문의’가 무려 일곱 군데나 되었다.


원래 어떤 매장이었을까?
알록달록한 간판과 각자의 정체성에 맞게 꾸며진 인테리어는 사라지고 시멘트만 남은 공간들은 서로 비슷해 보였다. 가게는 꽤 오랜 세월동안 자리를 지켰지만, 사람이 빠져나가고 간판과 인테리어가 사라지는 시간은 순식간이었다.

스트로베리 익스트림이여 안녕
골목으로 들어가자 더 많은 임대 표시들이 간판을 대신하고 있었다. 노래방이었던 공간은 사업뿐만 아니라 삶 자체가 망해버렸다는 사장님의 목소리로 덮여 있었고, 치킨 집이었던 커다란 건물은 통째로 허물어져 있었다. ‘칠칠 켄터키’라는 상호가 붙어 있던 이곳은 터를 보고 짐작할 수 있듯이 신촌에서 큰 건물로 손꼽을 만한 장소였다. 커다란 덩치 덕분인지 ‘칠칠켄터키’는 이 골목, 저 골목 비슷하게 생긴 신촌의 골목에서 지표로서 중요한 역할을 맡기도 했다. 예를 들면, “그 가게 어디라고 했지?” “칠칠 켄터키 있는 골목으로 들어오면 보일 거야.”와 같은 방식으로 신촌이 낯선 친구들에게 훌륭한 길잡이이었다.

폐허가 되어버린 칠칠켄터키
추억 속으로 떠나 보내기에는 너무 아쉬운 가게가 있는데 바로 ‘마녀똥집’이다. 가격도 적당한데 양도 많고 맛도 좋고 적은 인원이든 많은 인원이든 뒤풀이 장소로 제격인 주점이었다. SNS에서 요즘 가게 사정이 많이 어렵다는 사장님의 글을 몇 번 읽었는데 결국 가게는 신촌을 떠나고 말았다. 지금은 ‘본 도시락’이라는 새로운 배달전문 음식점이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마녀똥집’이 있었을 때보다 더 깔끔해진 모습을 보니 괜히 울적해졌다.

마녀똥집을 도시락으로 만든 코로나의 저주
헐벗은 신촌 거리를 걷다보니 2018년 4월 11일을 마지막으로 사라진 신촌역 3번출구 맥도날드가 떠올랐다. 더 이상 신촌역 맥도날드에서 만나자는 말은 못 하겠다며 아쉬운 목소리를 남기는 사람들이 많았던 것으로 기억하는데 나는 별 생각 없이 지나갔던 것 같다. 신촌 생활을 막 시작했을 무렵이라 맥도날드에서 추억을 쌓을 여유도 없었고, 연세로에는 이미 맥도날드와 버거킹, 맘스터치가 있었기 때문에 맥도날드 하나 없어도 괜찮다고 생각했다. 오히려 햄버거 대신 다른 매장이 들어선다는 소식이 반갑기도 했다.
맥도날드가 있던 자리가 떡집이었다가 드러그스토어였다가 빵집이 되었듯, 우중충한 신촌도 금방 새로운 가게와 사람들로 채워질 것이다. 옛 신촌을 아는 사람들도 언제 그랬냐는 듯 새로운 신촌에 적응할 테고 모든 변화는 자연스럽게 진행될 것이다. 까짓 추억이야 새로 쌓으면 그만 아닌가 싶다가도 옛 신촌을 완전히 잊어버릴까봐 슬퍼졌다. 사라져버린 가게들이 아쉽기만 한 이유는 단지 그 가게들이 맛있고, 값이 저렴하고, 분위기가 좋았기 때문만은 아닌 것 같다. 가게 안팎에서 쌓아왔던 추억들을 과거 안으로 묻어야 한다는 사실을 받아들이기 힘든 까닭이지 않을까. 맥도날드가 옛 신촌을 향유하던 사람들에게 단순한 맥도날드가 아니었던 것처럼, 코로나 이전 신촌의 거리도 우리에게 단순한 신촌 이상의 의미를 지녔다.

맥도날드였던 자리
스무디킹, 칠칠켄터키, 마녀똥집… 셀 수 없이 많은 추억을 안겨준 신촌 거리를 잊기 전에 한 번 더 기억하는 시간을 가지기로 하였다. 홀로 기억한다고 해서 무슨 소용인가 싶지만 소중한 기억을 갈무리하기도 전에 새로워질 신촌에 익숙해지는 건 옛 신촌에 대한 예의가 아닌 것 같다.
아직까지 버티고 있는 신촌의 가게들, 사람들에게 한 마디 응원을, 떠나간 사람들에게 그동안 고마웠다는 인사를 전하며 글을 마무리 한다.
신촌 소식, 대신 전해드립니다



정말 잘 읽었어요!! 옛 신촌이 어땠는지, 글로써 알게 되네요. 그리고 그 신촌을 기억하는 사람들의 심정과 지금 신촌을 보는 사람들의 마음이 어떤지도 알게되서 너무 좋았어요!! ㅎㅎ 잘 읽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