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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RT 2023 · 04 · 10

새터마을 동화집

Editor 누하

넘고 물 건너 아주 머나먼 곳에는 새터마을이 있어요. 새터마을의 중앙에는 커다랗고 지혜로운 나무들이 사는 숲이 있는데, 그 숲은 새터마을이 생기기 전부터 자리를 지키며 마을을 오래오래 지켜주고 있었답니다. 숲이 있기에 새터마을은 항상 푸르고 행복했지요. 여느 날처럼 평화롭던 어느 날, 한 아이가 새터마을을 찾아왔어요. 먼 길을 걸어온 아이는 무언가를 잃어버렸는지 불안한 얼굴로 주위를 계속 두리번거렸고, 한참을 울었는지 눈은 빨갛게 부어있었어요. 가만히 아이를 지켜보고 있던 숲의 나무들이 아이에게 말을 걸었어요.

 

“안녕 아이야, 무엇을 잃어버렸니?”

“나도 잘 모르겠어. 뭔가를 잃어버렸는데, 그게 뭔지 모르겠어. 그걸 너무 찾고 싶어.”

 

말을 마친 아이의 눈에 눈물이 넘실 차올랐어요. 나무들이 말했어요.

“얘, 이리 가까이 와서 우리에게 기대어 앉지 않을래? 우리와 이야기를 나누며 잃어버린 것이 뭔지 생각해보자.”

 

오랜 길을 걸어 지친 아이는 나무들의 밑에서 쉬고 싶었어요. 아이는 고개를 끄덕인 후 숲으로 걸어들어가 한 나무에 기대앉았지요. 나무들은 아이의 지친 눈에 그늘을 드리워주었어요.

 

“아이야, 나도 너처럼 무엇인지 모를 무언가를 잃어버린 적이 있었어.”

한 나무가 말했어요.

 

“너는 그럴 때 어떻게 했어?”

아이가 물었지요.

 

“나는… 아주 작은 것부터 먼저 생각해보았지.”

“아주 작은 거?”

 

아이는 고개를 갸웃했어요. 나무가 웃으며 이야기했어요.

 

“응, 너무 작고 사소해서 신경도 쓰지 않았던 것 있잖아.”

“그런 게 뭐가 있더라…”

“예를 들면… 아주 작은 소리가 있지. 지금 우리의 잎을 스치는 이 바람 소리같이 작은 소리.”

 

나무의 말이 끝나자 아이의 귀에 바람 소리가 들려왔어요. 나무들의 푸른 잎을 스치는 소리가 아이의 귀를 간질였지요. 아이는 긴장이 한 겹 더 풀어졌는지 눈을 사르륵 감았어요.

 

“정말… 바람 소리가 들려…”

“이 바람은 아까부터 우리 잎에 부딪히고 있었어. 네가 너무 고되어 듣지 못했을 뿐이지.”

“이런 작은 소리에 대한 이야기를 들려줄 수 있어? 잃은 것을 찾는 데에 도움이 될 것 같아.”

 

아이가 눈을 감은 채로 웅얼거렸어요. 나무들은 몸을 굽혀 아이의 발끝까지 그늘을 덮어주었지요.

 

“그래, 우리가 알고 있는 작은, 아주 작은 소리의 이야기들을 들려줄게. 아주 달달할 수도, 조금은 외로울 수도, 섬뜩할 수도, 더없이 포근할 수도 있는 이야기들이야.” 

아이가 기대어있는 나무가 말했어요.

 

“그럼 내가 먼저 시작해볼까?”

단내가 나고, 단정하고, 단단해보이는 하얀 나무가 신이 나서 말했어요. 나무는 봄이 왔는지 머리에 꽃을 잔뜩 달고 있었지요.

“봄날의 딸기향이 가득한 이야기란다.”

 

나무가 꽃을 살랑이며 첫 번째 이야기를 시작했어요.

 

 

 

부를 하긴 했지만 썩 잘하진 못하는 학생이 있었습니다. 그는 시험을 보러 가는 길이었고 가진 돈이 별로 없었습니다. 있는 거라곤 주머니에 달랑 지폐 두 장과 가방 속 물통이 전부였습니다. 학생은 길을 걷던 중 나무의자에 몸집에 매우 작은 노인이 앉아 있는 모습을 보았습니다. 노인은 안색이 좋지 않았고 몹시 지쳐 보였습니다. 학생은 가방에 물통이 있던 것을 떠올리고는 노인에게 조심스레 말을 건넸습니다. 

 

“어르신. 혹시 몸이 편찮으신 건가요? 저한테 물이 좀 있는데, 이거라도 드릴까요?”

 

노인이 천천히 고개를 들고는 학생을 마주 보았습니다.

 

“나 돈 있는데?”

 

노인은 주머니에서 노오란색 지폐를 꺼내 보이고는 말을 이었습니다.

 

“근데 쓸 줄 몰라. 아직 세 살이라.”

 

학생은 조금 놀랐지만 노인의 상황을 이해해보려 노력했습니다.

 

“하하, 그러시군요. 음… ”

“비읍.”

“네?”

“내 이름. 비읍. 저기, 이 돈으로 마실 것 좀 사다 주겠어? 목이 너무 말라.”

 

학생은 돈을 받아 들었지만 어찌할 바를 몰랐습니다. ‘마실 것’의 범위가 너무나 넓었기 때문입니다.

 

“그냥 네가 마시고 싶은 거. 그거면 돼. 근데 물통은 주고 갈래? 당장 뭐라도 마셔야겠어.”

 

비읍은 마치 학생의 생각을 읽기라도 한 듯 말했습니다. 학생은 노인에게 물통을 준 뒤 근처 가게로 향했습니다. 마침 신선한 딸기가 눈에 아른거리던 참이었습니다. 달콤하고 상큼한 딸기 음료수가 먹고 싶었습니다. 학생은 생딸기를 얼음과 함께 가득 갈아넣은 스무디를 사고는 비읍에게로 돌아갔습니다.

 

“여기요, 비읍.”

 

학생이 노인에게 딸기 스무디와 잔돈을 건넸습니다. 비읍 또한 물통을 학생에게로 건넸습니다. 물통은 텅 비어있었습니다. 비읍은 빨대로 쪼옥, 음료수를 마시면서 입을 열었습니다. 딱 한 번 빨아들였을 뿐인데도 반이 사라져 있었습니다.

 

“이봐. 누가 어떤 소원이든지 들어준다고 했을 때 어떤 소원을 빌고 싶어?”

 

학생은 한참을 고민했습니다. 계속해서 머리를 굴려봤지만 특별히 떠오르는 게 없었습니다.

 

“음, 지금은 그냥 이 물통에 시원한 물이 가득 차 있었으면 좋겠네요.”

“하핫! 고작?”

 

비읍이 크게 웃었습니다.

 

“다른 건?”

 

학생은 또다시 고민에 빠졌습니다. 노인의 장담에 의문을 품으며 이번에는 좀 터무니없는 무언가를 말하기로 했습니다.

 

“음… 하늘에서 딸기 스무디 비가 내렸으면 좋겠어요.”

“하하핫! 재밌구만. 근데… 에이, 이거 별로네. 그냥 너 마셔.”

 

비읍이 몸을 젖히며 웃다가 갑자기 정색하고는 스무디를 건넸습니다. 분명히 스무디 절반이 사라졌었던 걸 봤는데, 음료는 하나도 줄어있지 않았습니다. 학생은 새 것 같은 딸기 스무디를 받았습니다.

 

“또 다른 건 없어?”

 

학생은 다시한번 고민해야 했습니다. 어떻게 대답하면 노인을 더 크게 웃길 수 있을지 생각에 잠겼습니다.

 

“음… 끈적한 딸기 시럽 괴물이 나타나서 사람들을 놀래켰으면 좋겠어요.”

“크하하하핫! 어처구니가 없구만. 뭐, 즐거웠어. 여담이지만 음료수 조금씩 마시라고. 그 빨대는 흡입력이 굉장히 강해서 한 번 들이마시면 음료를 전부 비워버리고 말걸? 마음만 먹으면 그걸로 연못물도 1분 안에 동낼 수 있어. 아무튼 시험 잘 보고.”

 

학생은 비읍의 축객령을 듣고는 고개 숙여 인사를 했습니다. 노인을 뒤로하고 발걸음을 옮기며 자신이 시험 이야기를 한 적이 있나 되돌아보았습니다. 학생은 이상한 노인이 건넨 딸기 스무디를 마시려 빨대에 입을 가져다 댔습니다. 노인의 말처럼 쪼옥 들이마시니 음료를 단숨에 몽땅 비워버렸습니다. 딸기 스무디를 다 마신 그 순간, 하늘에서 비가 내렸습니다. 학생은 가방을 머리 위로 들고 비를 막으려고 했습니다.

 

“어! 핑크색!”

 

누군가가 소리쳤습니다. 그 소리를 듣고 학생은 하늘을 쳐다 보았습니다. 비가 분홍색이었습니다. 학생은 비읍을 떠올리며 혀를 내밀곤 비를 조심스럽게 맛보았습니다. 틀림없이 딸기 스무디 맛이었습니다. 학생은 감탄을 금치 못하며 배낭에서 물통을 꺼내 딸기 스무디 비를 담으려고 했습니다. 근데 이상한 일이었습니다. 분명히 비었을 거라고 생각한 물통이 묵직했습니다. 뚜껑을 열어보니, 정말 차가운 물이 가득 차 있었습니다.

 

“이건 도대체…”

 

학생은 비읍을 떠올렸고, 자신이 빌었던 소원을 떠올렸습니다. 그 노인의 정체가 무엇이었는지 궁금증이 커져갔습니다. 꿈 같은 순간임에 분명했지만, 학생에게는 목적지가 있었습니다. 학생은 시험 시간에 늦지 않기 위해 딸기 스무디 비를 맞으면서 발을 쉬지 않고 움직였습니다.

 

“끄아아아아악!!”

 

시험장에 다 도착했을 때 즈음, 큰 비명이 들려왔습니다. 시험장 건물에 진분홍색 액체가 잔뜩 묻어 있었습니다.

 

“괴물이다!!”

 

사람들이 겁을 집어먹은 채 소리 질렀습니다. 학생은 건물에 묻은 찐득한 액체를 손에 묻혀 맛 보았습니다.

 

“딸기… 시럽…”

 

학생은 자신이 빌었던 터무니 없는 소원들이 전부 실현되었음을 알아 차렸습니다. 자신으로 인해서 다치는 사람들이 있어서는 안되는 일이었습니다.

 

“사, 살려주게!”

 

어디선가 교수님의 목소리가 들려왔습니다. 건물 2층, 시험장이었습니다. 학생은 재빠르게 계단을 올라 목소리가 들린 장소로 향했습니다. 시험장 안에는 겁에 질려 창백한 교수님과, 다른 학생들 여럿이 딸기 시럽 괴물과 대치하고 있었습니다. 괴물은 몸을 질질 끌며 시럽을 여기저기 묻히는 중이었습니다.

 

“히익! 저 괴물에게 닿는다면 내 필기본이 무사하지 못할 거야!”

“내, 내 노트북! 내 패드!”

 

다른 학생들은 공포에 질려 절규하고 있었습니다. 절체절명의 순간, 학생에게 묘안이 떠올랐습니다. 학생은 재빨리 가방을 열어 물통을 손에 쥐었습니다.

 

“희석되어라!!!”

 

학생이 물통을 괴물에게 조준하고 물을 뿌렸습니다. 분명히 물통 1개 분량의 물은 진작에 다 나왔을 텐데도 차디찬 물이 쉼없이 흘러 나왔습니다. 괴물의 찐득한 시럽이 조금씩 묽어지기 시작했습니다. 학생은 물통을 앞뒤로 흔들며 더 많은 물을 투척했습니다. 물이 폭포수처럼 흘러나왔고, 괴물은 물에 완전히 녹아 형체를 잃게 되었습니다. 학생은 만약 물통에 물이 아니라 우유를 채워달라고 했다면 맛있는 딸기 라떼가 되었을 텐데, 후회가 되었습니다.

 

“안 돼, 이대로면 시험지가 다 젖고 말아!”

 

어디선가 조교가 소리쳤습니다. 학생은 노인이 건넸던 딸기 스무디 음료 컵의 빨대를 물고는, 딸기 시럽 물을 힘차게 흡입하기 시작했습니다. 단 열 번의 꿀꺽임으로 시험장을 가득 메웠던 물이 다 없어져버렸습니다.

 

“괴물이 사라졌다!”

“우린 모두 살았어!!”

 

다른 학생들이 크게 소리를 지르며 자신의 물건을 챙겼고, 몸을 추슬렀습니다. 모두의 얼굴에 안도감이 피어올랐습니다. 하지만 마냥 기뻐할 수 없었습니다. 시험을 봐야했으니까요. 그 때였습니다.

 

“어- 일단 시험지가 젖었고 소란을 틈타 유출됐을 가능성도 있어서, 금일 시험을 취소합니다. 과제 대체하겠습니다. 갑작스러운 통보인 것을 감안해 학생 여러분들에게는 충분한 말미를 줄 예정입니다. 걱정 말고, 공지할테니 돌아가도 좋습니다.”

 

교수님의 말씀에 시험장이 한순간에 조용해졌습니다.

 

이윽고,

 

와아아아아아-

여기저기서 환호성이 터져 나왔습니다.

 

“시험이 사라졌다!!”

“우린 모두, 진짜로 살았어!!”

 

모두가 감동의 눈물을 흘리며 서로를 얼싸 안았습니다. 학생은 그 광경을 지켜보며 조용히 미소지었습니다.

온통 딸기 풋내가 나는, 행복한 날이었습니다.

 

 

“꿈속에서 일어나는 일인 것 같았어.”

아이가 눈을 반짝이며 이야기했어요. 

 

“꿈은 잊고 있던 무의식의 것들이 마구 나타나는 곳이지. 그나저나 네 눈에 생기가 도니 정말 좋다.”

이야기를 끝낸 나무가 흐뭇한 미소를 지었어요.

 

“다음으로 내 이야기를 들어볼래?”

블루베리가 가득 열린 브리지타 나무가 말했어요. 나무의 잎과 열매에는 여름이 넘실거렸지요. 

“잊고 있던 아주 작은 것들의 이야기야. 아이야, 네 주머니 속에는 어떤 잊힌 것들이 있니?”

 

아이는 자신의 주머니 속으로 스을쩍 손을 넣어보았어요.

“동전이 있어. 아주 옛날부터 있던…”

“그래, 그 동전들의 소리를 따라가보자.”

 

짤랑, 짤랑. 아이가 주머니 속 손을 움직이자 동전들이 부딪히는 소리가 들렸어요.

 

 

 

랑… 짤그락. 팅~ 핑그르르 뚝.

분명 반질거렸을 텐데 그 광을 잃어 이젠 반짝이지 않는 500원,

이제는 끝이 뭉뚝해져 버린 100원짜리 동전,

어디에 써야 할지 도무지 감이 잡히지 않는 50원짜리 두 개와

형체를 알아볼 수 없게 녹슬어버린 10원짜리 동전 하나.

그의 지갑, 그것도 들고 다니지 않는, 서랍 속에 처박힌 지갑 속에는 동전들이 모여 있습니다.

버리기엔 아깝고, 쓸 곳은 없고.

 

동전 중 그 가치가 제일 큰 500원으로도 요즘엔 살 수 있는 게 없네요.

이 지갑에 안 쓰는 카드, 명함, 친구들의 증명사진 따위를 정리하다가

손가락 사이를 가까스로 빠져나간 100원짜리 하나가 땅에 떨어졌습니다.

그는 정신없이 지갑 정리를 하느라 100원짜리 동전이 떨어진 것도 모르는 것 같습니다.

 

지갑에 남은 오백원은 며칠 전 백원과의 대화를 회상했답니다.

 

“나는 나가고 싶어.”

백원은 따뜻한 지갑 속이 어둡고 답답하다며 말했어요.

 

“우린 나가도 쓸모가 없어. 이젠.”

오백원은 바뀐 세상에 대해 너무도 잘 알고 있었어요.

 

오백원은 자신이 나가도 아무것과도 교환될 수 없으며, 자신의 가치가 예전에 비해 작아졌다는 걸 알고 있었기 때문에 어둡지만 안락한 지갑 속을 벗어나고 싶지 않았어요. 일종의 회피였죠.

“꼭 뭔가를 살 수 있어야 쓸모 있는 건 아니야.”

백원이 말했어요.

“누군가에 의해 쓰이기보다는 내가 하고 싶은 걸 해보고싶어.”

  

네에, 접니다. 결국 해낸 백원이에요. 스스로 나가고 싶었음에도 우연만을 기다리고 있던 내가 드디어 기다리고 기다리던 바깥세상에 나가게 되었어요. 열심히 굴러서 주인 놈이 자주 가던 타코야키 포장마차도 구경해보고, 그가 항상 한숨으로 지나치던 한강에도 가볼래요. 그곳에 가면 그가 느끼던 감정들을 나도 느껴볼 수 있을까요?

나는 언니랑은 다르게 살 거예요. 안 가본 곳도 가보고 새로운 친구들도 만들 거예요. 안일하게 살지 않을 거라는 말이에요!

 

다행히 이 집은 3층밖에 되지 않아요. 단단한 몸을 가진 나는 어렵지 않게 집 창문으로 떨어져 나와 바깥 공기를 쐴 수 있었어요. 앞 동 704호에 사는 강아지가 산책을 나왔나 봐요. 잠깐 바짝 엎드려 혼자는 움직일 줄 모르는 동전인 척.

 

휴 이제 다시 출발해볼게요. 사람들 눈에 띄지 않게 조심 또 조심.

엄청난 경사를 굴러서 내려오니 여기 바로 눈앞에 타코야키 트럭이 있어요. 음. 코를 타고 들어오는 기분 좋은 냄새. 그가 왜 항상 이 트럭을 그냥 지나치지 못했는지 이제야 조금 알 것 같아요. 이렇게나 가까운 곳이었다니. 대학생들이 줄을 서서 기다리고 있어요. 나도 모르게 뒤에 따라 섰다가, 아차차. 나는 동전이지.

 

옆으로 조금 가보니, 어휴. 이제 좀 힘드네요. 이 넓은 세상을 다 알기엔 시간이 너무나도 부족한 것 같아요. 사람과 차와 건물과 빛이 있는 이 길은 매미 소리로 꽉 차 있어요. 이렇게나 예쁜 걸 이제야 보게 되다니. 매일같이 이곳을 지나다니며 이 예쁜 장면을 누릴 수 있는 사람들이 정말 부러워요.

 

앗. 이제 중고등학생들도 학교가 끝나는 시간인가 봐요! 어리숙한 몸들에 교복을 걸치고 휴대용 선풍기를 하나씩 들고는, 마라탕 먹으러 가자, 하루필름 찍으러 가자. 참 하고 싶은 것도 많아요. 매일 똑같은 코스인데 질리지도 않는지 뭐가 그렇게 좋다고 까르르 까르르 웃어대네요.

 

지갑 속에 있을 때 따라갔던 한강에 가고 싶어요. 그런데 아무래도 그것까지는 무리일 것 같아요. 이 햇빛에 계속 돌아다니다간 녹아버릴 것만 같거든요. 한강에 혼자 힘으로 가려니 그곳은 생각보다 아주 먼 곳이네요. 그땐 꽤 금방 갔었는데.

인간이라는 건 정말 큰 축복일 것 같아요. 마음만 먹으면 어디든 갈 수 있는, 지구상에 존재하는 생물 중 가장 빨빨거리길 좋아하고, 가장 궁금한 게 많은 존재랄까? 그들이 만들어놓은 세상에 그들의 필요로 인해 그들에 의해 만들어졌던 나인데. 왜 이들은 간사하게도 그 가치를 점점 깎아내리며 자꾸만 새로운 것을 추구하는 걸까요? 하마터면 나도 이들처럼 무작정 새로운 것만을 향해 나아가며 뿌듯해할 뻔했지 뭐예요.

 

나와보니 언니가 많이 보고싶어요. 그리고 따뜻하고 포근했던 지갑 속도 그리워지네요. 가끔 나와서 산책하는 건 계속 하겠지만, 오늘은 이만 집 쪽으로 돌아가봐야겠어요. 우연히 그가 날 보고, 방금 잃어버렸던 동전이란 것도 모른 채, 운이 좋다며 주워 들어 또 그 지갑 안에 넣어줄지도 모르잖아요?

 

참 웃긴 것 같아요. 늘 새로운 것을 열망하고 좋아하는 사람들이 어리석다고 생각했는데, 결국 저도 똑같았나봐요. 원래의 것이 무조건 좋은 것은 아니지만, 그 소중함을 잊어서는 안돼요.

저도 오늘에서야 알았네요. 아, 이제 정말 집으로 돌아가봐야 할 것 같아요. 언니가 저를 변하지 않는 따뜻함으로 반겨줬으면 좋겠어요.

 

이 세상에는 오래되어서 더 값진 것들이 있답니다. 아무리 세상이 바뀌었다 한들 아무도 집에 나뒹구는 동전들을 갖다 버리지 못하는 것처럼, 세상이 변해도 그 가치가 변하지 않는 것들이 있죠. 무작정 새로 나온 트렌드, 신상품만 좇다가는 우리가 가지고 있는 것의 가치를 잊어버릴지도 몰라요. 그러기엔 우리에게 주어진 것들이, 그리고 그것에 얽힌 영원한 기억들이 너무 소중하잖아요. 

 

 

“영원한 기억들….”

아이가 나지막이 읊조렸어요. 그때 아이의 가슴 한쪽이 욱신거렸어요.

“아야!”

“왜! 무슨 일이야?”

아이가 아파하자 나무들이 놀라 잎을 파르르 떨었어요.

 

“그냥… 여기가 갑자기 너무 아파서….”

아이는 욱신거리는 부분에 손을 올리고 꾸욱 눌렀어요. 아까보다도 몸이 묵직해진 기분이 들었지요.

 

아이가 기대어있던 나무가 말했어요.

“너무 오랜만에 쉬어보지?  이런 소소한 이야기들도 오랜만이고. 갑자기 쉬면 몸이 어떻게 쉬는지 몰라 놀라기도 할 거야.”

 

“이 나무 이름이 누하거든. 어떤 나그네가 붙여준 건데, 히브리어로 쉼이란 뜻이래. 이 나무에 기대면 그렇게 잘 쉴 수 있다나 뭐라나.”

옆에 있던 브리지타 나무가 말했어요.

 

“덕분에 내가 이렇게 푹 쉴 수 있네. 고마워.”

소년이 말했어요.

 

“그래, 그럼 다음엔 내가 이야기를 들려줘도 될까?

누하 나무가 이야기했어요.

“조금은 섬뜩할 수 있는 이야기야. 마음도, 목표도 없이 움직이고 있는 어떤 이들의 이야기지.”

 

단풍으로 가득 물든 나무의 잎이 산들거렸어요.

 

 

 

터마을 사람들은 모두 다른 재료로 만들어졌어요. 어떤 사람은 의자 다리로, 어떤 사람은 마시멜로우로, 어떤 사람은 유리로. 사람들은 자신을 이루고 있는 재료의 특징을 가지고 살아갔어요. 쇠막대로 만들어진 사람은 굳건하고도 고집스러움을, 고무로 만들어진 사람은 유연함을… 서로 다른 사람들이 복닥복닥 살아가던 어느 날, 독수리 한 마리가 사과씨를 물어와 바람언덕에 톡 던져두고 떠났어요. 비가 오고 몇 주가 지나니 씨가 떨어진 자리에 커다란 사과나무가 자라났어요. 낮에는 담홍색 꽃이 피고 오후엔 빨갛고 탐스러운 사과가 열리는 사과나무 멋진 사과나무였지요. 모두가 나무의 먹음직한 사과를 탐냈지만 사과나무는 바람언덕의 주인인 난쟁이 삼형제의 소유였어요. 난쟁이 삼형제는 자전거 체인으로 만들어진 사람들인데, 그들이 움직일 때는 ‘찌르륵 찌륵’ 자전거 체인 소리가 나고는 했어요. 난쟁이들은 해가 질 때쯤 집 밖으로 나와 나무에 열린 사과를 모두 따서 집으로 들어갔어요. 때문에 저녁이면 사과나무는 벌거숭이가 되었답니다.

 

마을 사람들은 바람언덕 위 탐스러운 사과의 맛이 몹시 궁금했어요. 그래서 난쟁이들에게 찾아가 사과의 맛을 물었어요. 그때마다 난쟁이들은 이렇게 말했어요.

 

“맛을 못 봤지! 하나도 맛을 못 봤어!”

 

마을 사람들은 이해가 되지 않았어요.

 

“저 많은 사과를 따다가 어디다 쓰는 거야? 하나도 나눠주지 않고!”

“내 말이, 나라면 저 사과를 팔아다가 큰돈을 벌겠다!”

 

사람들이 아우성 치자 난쟁이들은 버럭 소리를 질렀어요.

 

“다 우리 거야! 하나도 나눠주지 않아!”

 

사람들은 이제 사과의 맛보다도 사과의 행방이 궁금해졌어요. 난쟁이들이 매일 먹기에는 너무 많은 양의 사과가 열리고, 그들도 그 사과의 맛을 못 봤다면 도대체 사과는 어디로 가는 건지 알 수가 없었죠. 하지만 아무리 궁금하다해도 알아낼 길이 없었어요. 난쟁이들이 워낙에 거칠고 성격이 고약하여 사과나무 근처에도 가기 어려웠기 때문이죠. 사과의 행방에 대한 궁금증은 점점 커져만 갔어요. 어느 날, 궁금함을 참을 수 없던 동네 사람들은 자전거를 타고 소식을 전해주는 소녀를 불렀어요. 소녀는 마을 소식지를 전해주느라 난쟁이네 집에 가장 가까이 갈 수 있는 사람이었지요.

 

“이봐, 자네가 저 사과나무 아래 난쟁이 집의 비밀을 알아내면 우리가 큰돈을 주지!”

 

소녀는 재미있는 일이라 생각하고 고개를 끄덕였어요.

“좋지!”

 

해가 저물어 갈 때 소녀는 바람언덕 위 난쟁이 집으로 향했어요. 언덕 밑에 있는 고래바위 뒤에 숨어서 보니 세 난쟁이가 작은 통나무집에서 걸어 나와 사과나무로 향하는 모습이 보였어요. 난쟁이들은 사과나무에서 사과를 모조리 따서 집으로 옮기기 시작했어요. 소녀는 그들이 사과나무에 가까이 가 있는 틈을 타 집에 가까이 접근했어요. 그때, 난쟁이들의 대화가 들렸어요.

 

“오늘은 꼭 성공을 하자고!”

“맛을 봐야지! 하나라도 맛을 봐야지!”

 

소녀는 저들의 대화가 이해가 되지 않아 고개를 갸우뚱했어요. 아직도 사과를 먹지 못한 건가? 도대체 왜? 소녀의 궁금증은 커져만 갔죠. 소녀는 난쟁이들의 우체통 옆 쪽문을 알고 있었어요. 난쟁이들이 집 안으로 다 들어가서 바깥이 조용해진 후, 소녀는 쪽문을 살짝 열고 몰래 집안으로 숨어들었어요. 두껍고 작은 나무문이 움직이는 소리가 너무 크게 느껴졌어요. 소녀가 안도의 한숨을 내쉬는 순간, 집안을 가득 채운 썩은 과일 냄새가 강하게 밀려왔어요.

 

“윽!” 

냄새에 깜짝 놀란 소녀는 황급히 코와 입을 감싸 쥐었어요. 주위를 둘러보니 집안의 모든 불이 꺼져있고 안쪽 거실 불만 환히 켜져 있었어요. 그곳에 난쟁이들이 모여있는 것 같았어요. 조심조심, 거실 쪽으로 갈수록 진흙 같은 무언가 커다란 무더기로 쌓여있고 엄청난 양의 초파리가 달라붙어 있는 것이 보였어요.

 

소녀는 소름이 끼쳤어요. 가까이 다가가 자세히 들여다보니 썩은 사과 무더기였어요. 그런데 이상했어요. 어떤 사과는 완전히 얇게 갈린 채로, 어떤 사과는 동그랗게 깎여 껍질이 덕지덕지 붙은 채로 쌓여있었거든요.

 

소녀는 이 기괴한 광경에 놀라며 한 발 한 발 불빛이 있는 거실 쪽으로 향했어요.

 

거실에는 세 난쟁이가 쪼르륵 앉아 사과를 깎고 있었어요. 모두 각자의 일에 집중했는지 소녀의 존재는 눈치채지도 못한 듯했지요. 그런데 그들이 작업을 하는 모습이 참 이상했어요.

 

한 난쟁이는 둥글게 사과를 돌리며 껍질을 깎고 있었어요. 그런데 사과의 껍질이 다 벗겨졌는데도 사과를 계속 둥글게 따라가며 얇게 깎기를 계속하는 거예요! 둥글게 둥글게 깎아진 사과는 긴 끈처럼 바닥에 떨어졌어요. 사과가 바닥에 떨어지자 첫 번째 난쟁이는 다시 다른 사과를 들어 똑같이 깎기 시작했어요. 마치 깎고 나서 멈추는 법을 모르는 듯했죠.

 

두 번째 난쟁이는 껍질을 잘 벗겨내고는 사과를 한참 들여다보았어요. 그러다 갑자기 무엇이 맘에 안 들었는지 분노하며 옆에 있는 접착제와 떨어진 사과 껍질을 주워들지 뭐예요? 그러고는 다시 사과의 과육에 껍질을 붙이기 시작했죠. 덕지덕지 사과 껍질을 붙여둔 후 씩씩거리던 난쟁이는 그마저도 맘에 안 들었는지 뒤로 휙 던지고 새 사과를 들어 똑같이 깎기 시작했어요. 마음에 들 때까지, 사과는 입에도 안 댈 고집으로 보였어요.

 

세 번째 난쟁이는 사과를 앞에 둔 채 한참을 칼만 갈고 있었어요. “연장이 좋아야 잘 되지.” “아냐 주변 정리도 해야 해” 자꾸만 주변 정리만 하고 칼만 닦을 뿐, 사과를 깎지는 않았죠. 시작하기 위한 핑계가 많아 보였어요.

 

소녀는 너무나 화가 났어요. 껍질을 벗겨냈으면 다른 방법으로 과육을 깎아내야 하는 법을 모르고 계속 같은 일만 반복하는 첫 번째 난쟁이도, 맘에 안 든다고 결과물을 괴롭히다 아무것도 못하는 두 번째 난쟁이도, 이 핑계 저 핑계 대며 아예 시작도 안 하고 있는 세 번째 난쟁이도 도무지 이해되지 않았죠. 이런 식으로 사과를 낭비하고 있다니! 도대체 이들이 왜 이러고 있는지 이해가 안 되어 벙쪄있던 소녀의 귀에 난쟁이들의 자전거 체인 소리가 들렸어요.

 

찌르륵 찌륵.

찌르르륵.

후진이 안되고 앞으로만 나가는 자전거 체인 소리였어요.

 

찌르륵. 찌륵.

체인이 감기는 소리가 소녀의 귀에 점점 더 크게 들려왔어요. 

 

 

“있잖아.”

이야기를 다 듣고 한참을 가만히 있던 아이가 입을 열었어요.

“나도 무언가를 잃어버린 후로… 그 난쟁이들 같았어.”

아이는 푹 고개를 숙였어요. 후드득, 눈물방울들이 떨어졌지요.

 

나무들은 아이의 눈물방울이 동날 때까지 가만가만 잎사귀를 흔들어주었어요. 잎이 움직이는 소리에 아이의 흐느낌이 숲 밖으로 새어나가지 않았어요.

 

“괜찮아.”

한참을 바닥만 보던 아이가 고개를 들며 말했어요. 아이는 슬퍼보이지 않았어요. 오히려 아까보다도 더 생기가 있는 얼굴이었지요.

 

“다음 이야기도 듣고 싶어!”

아이가 말하자 하얀 눈꽃으로 장식한 이팝나무가 미소를 지었어요.

“그럼 내가 마지막 이야기를 들려줄게. 네 눈물이 아주 뽀송히 마를 따뜻한 이야기야. 우리 같이 깊고 포근한 밤으로 떠나보자.”

 

이팝나무의 꽃이 한겨울 눈처럼 나리며 마지막 이야기가 시작됐어요.

 

 

 

늘은 별님도 달님도 잠든 아주 깜깜한 밤입니다. 아가도 엄마도 곤히 잠든 아주 새카만 밤입니다.

그런데 여기를 보세요, 아가와 함께 잠들었던 엄마가 슬며시 눈을 뜹니다. 쌕쌕, 아가는 고른 숨소리를 내며 세상모르고 잠들어 있습니다. 엄마는 아가 몰래 아주 천천히 이불을 걷고, 깨금발로 걸어갑니다.

 

꼬르륵!

 

아가 숨소리 말고는 아무것도 들리지 않는 조용한 밤에 엄마 뱃속에서 천둥소리가 울립니다. 아하, 엄마는 배가 고팠군요. 아가야, 일어나보렴. 너희 엄마가 너 몰래 아주 맛있는 걸 먹으려는 모양이야.

 

쉬이잇!

 

아이코. 엄마가 우리를 째려봅니다. 손가락을 입에 가져다 대고는, 조용히 하라는군요! 엄마한테 혼나는 건 무서우니 괜히 잠자는 아가를 깨우지는 말아야겠습니다. 엄마는 방문을 열기 전에 마지막으로 아가가 잘 자고 있는지 확인합니다. 괜찮아요, 오늘 밤은 아주 깊고 아가는 누가 업어가도 모르게 잠들어 있답니다.

 

끼히힉!

 

엄마의 뱃고동 소리에 이어 두 번째 방해꾼입니다. 엄마가 문고리를 당기자 방문이 마녀 웃음소리를 내며 열립니다. 그러게, 방문 경첩에 미리 콩기름을 먹여주지 그랬어요. 방문도 엄마처럼 배고프기 마련인데 엄마가 엄마 배고픈 것만 생각해서 일어난 일이랍니다. 마녀 웃음소리가 작은 방에서 메아리치다가 사라집니다. 다행히 아가는 깨지 않았습니다.

 

달그락!

 

엄마가 부엌에서 아주 맛난 밤 간식을 먹으려고 준비합니다. 엄마는 아가가 세상에 태어나고 나서는 달콤하고 끈적거리고 몸에 나쁜 음식들을 먹지 않았어요. 세상에, 오렌지 주스와 분홍색 막대사탕, 폭신폭신한 카스테라를 먹지 못한 지 얼마나 된 걸까요? 엄마가 냉장고를 열자 유산균이 가득한 우유, 비타민A가 가득한 시금치, 칼슘이 가득한 마른 멸치가 모습을 내밉니다.

 

드르륵!

 

어머나, 저 건강한 음식들은 다 겉치레였군요! 엄마가 냉장고 속 작은 서랍을 열자 달콤한 초코우유 한 팩이 나옵니다. 그 옆에 있는 하얀 종이봉투는 뭘까요? 엄마가 조심스럽게 초코우유와 종이봉투를 꺼내듭니다.

 

부스럭!

 

정답은 붕어빵이었습니다! 집에 들어오는 길에 아가 몰래 붕어빵 트럭에서 사 온 모양입니다. 그래요, 붕어빵은 겉의 빵을 기름으로 바삭하게 구워내서 아주 고소하고, 속의 팥앙금엔 설탕이 잔뜩 녹아 있어서 매우 달콤한 간식입니다.

잠깐! 달님도 별님도 아가도 잠들어서 아가의 숨소리밖에 들리지 않는 이 평온한 밤에, 아가의 쌕쌕거리는 숨소리가 들리지 않습니다! 아가는 부스럭거리는 소리가 들렸을 때, 눈을 번쩍 떴습니다. 엄청난 먹보인 아가는 그런 소리를 절대 놓치지 않습니다. 아가의 경험으로는 그건 분명 먹을 거 소리입니다! 아가는 자꾸만 감기는 눈을 애써 뜨면서 가만히 귀를 기울입니다.

 

바스락!

 

엄마가 초코우유팩에 붙은 빨대 봉지를 뜯었습니다!

이런, 아가의 눈이 똘망똘망해졌습니다. 아주 초롱초롱합니다. 반짝반짝 빛납니다.

 

엄 마 !

 

엄마가 깜짝 놀랍니다. 아가가 방문 밖으로 뛰어나옵니다. 아가야, 뭔가를 먹기엔 너무 늦은 시간이야. 다시 코 잤다가 내일 아침에 먹는 건 어때?

저런, 아가에게 이런 말은 들리지도 않나봅니다. 엄마는 한 손에는 붕어빵을, 다른 한 손에는 초코우유를 든 채로 얼어버렸습니다. 아가에게 무슨 변명을 해야 할지, 어떻게 아가를 달래고 다시 재울지 고민하는 표정입니다. 아가가 자기도 먹고 싶다고 엄마를 보챕니다.

 

안 돼, 이빨이 다 썩어!

 

엄마가 단호하게 말합니다. 아가는 잠에서 깹니다. 해가 뜨기 전의 푸른 빛이 커튼 밑으로 새어듭니다. 아가가 시계를 봅니다. 오늘밤은 적막하고, 아직 아침 알람이 울리기에는 한참 먼 시간입니다.

 

바스락!

 

아가는 배가 고파서, 오렌지 주스 한 팩을 꺼내서 빨대를 꽂습니다. 아무도 아가를 말리지 않고 누구도 아가를 나무라지 않습니다. 아가는 이제 마음대로 할 수 있는 나이가 되었거든요.

아가는 엄청난 먹보여서, 뱃속의 아우성을 무시하기가 어렵습니다. 고소한 붕어빵 냄새가 어디선가 실려오는 것 같기도 한데, 어쩌면 아가가 잠에서 덜 깬 것일지도 모르죠. 아가의 귓가에 누군가의 목소리가 아직도 맴도는 듯합니다.

 

안 돼, 이빨이 다 썩어….

 

아가가 중얼거립니다. 양치를 해야 입 속에 숨어있는 병균들이 모조리 없어질 텐데요. 다리가 너무 무겁고 화장실이 너무 멀어서, 아가는 차마 발이 떨어지지 않습니다. 아가는 이빨 사이에 남은 찝찝한 단맛을 혀로 훑고, 다시 침대에 몸을 누입니다. 자장자장, 아가가 잠에 듭니다. 달님도 별님도 아가도 잠들어서 아가의 쌕쌕거리는 숨소리 밖에 들리지 않는 고요한 밤입니다.

 

 

“맞아… 나도 저렇게 엄마와 보내던 시간이 있었는데.”

아이가 말했어요. 

“참 많은 걸 잊고 있었구나.”

 

나무들의 이야기가 끝나자 아이는 깨달았어요. 자신이 잃어버린 것이 무엇인지요.

 

“고마워, 나무들아. 덕분에 잃은 것을 찾았어!”

아이는 신이 나서 몸을 벌떡 일으키려 했어요.

 

“앗!”

아이는 깜짝 놀랐어요. 가슴에 추를 단 것처럼 몸이 무거웠거든요. 원래대로 몸을 가눌 수가 없었어요.

 

“이, 이게….”

아이가 놀라자. 나무들이 웃으며 말했어요.

“네가 잃어버린 것, 마음이었지? 마음은 아주 무거운 것이란다. 그래서 마음을 품고 살기 버거운지, 사람들은 줄곧 마음을 두고 다니더라. 텅 빈 게 오히려 편한가봐. 그렇게 마음의 존재까지 잊어버리고 말이야. 하지만 그 공허함이 결국 자길 아프게 하는지, 너처럼 울며 잃은 것을 찾으러 오는 사람들이 있어. 이젠 잃어버리지 마. 잘 품고 가길 바라.”

 

아이는 조심히 몸을 가누며 천천히, 익숙지 않은 발걸음을 떼기 시작했어요. 한 발 한 발 걸음마 연습이 끝나고 묵직해진 몸에 적응이 되니, 어느새 마을의 입구까지 와 있었어요. 아이는 뒤를 돌아 나무들이 있는 숲을 향해 손을 크게 흔들었어요. 고맙다는 인사인 거겠죠? 마을 밖으로 나가려는 아이의 눈에 표지판이 하나 보였어요. 새터마을 표지판이었어요.

 

 

아이는 생긋 웃으며 마을 밖으로 힘차게 걸어나갔어요. 마음을 찾은 아이의 뒷모습은 아주아주 행복해 보였답니다.

 

 

 

 

 

 

 

누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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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하

잔치의 시선으로 신촌의 장면과 사람, 장소를 기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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