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ELCOME TO ZANCHI! · 신촌을 사랑하고, 추억하고, 기록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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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RT 2023 · 05 · 01

목철성

Editor 단

원통 고철이 있었다. 

 

고철을 처음으로 전달 받아 신촌의 길목으로 운반한 구청직원은 그것을 어느 공원에 내려놓았다. 그는 바지춤에서 윙윙 울어대는 작은 기계를 꺼내어 유리 표면을 보더니 귓가에 가져다 댔다. 

 

네, 쓰레기통 배치 끝났습니다.

한번 지켜보시죠. 

 

고철은 ‘쓰레기통’이라고 불렸다. 

 

 

 

 

그것의 하루 일과는 간단했다. 앞을 본 채 서서 입구를 제때 열어주면 될 뿐이었다. 고철을 사용하는 자들은 구청직원처럼 번쩍번쩍한 조끼를 입고 있지는 않았다. 하지만 그보다 더 고철을 자주 찾았다. 길어봤자 10초 남짓, 손에 쥐고 있던 것들을 넣고 가는 게 전부였다. 그래도 고철은 매일같이 수많은 인간들을 만났다. <쓰레기통>, 그 네 음절이 무엇을 뜻하는지 알 수 없었으나 자신을 부르는 것임을 알고 있었다. 고철은 반복을 통해 역할을 학습했고 누군가 머리뚜껑에 손을 댈 때마다 활짝 열어주었다. 고철만의 환영인사였다. 

 

어느 날이었다. 모자를 깊게 눌러 쓴 인간이 햄버거 봉지를 버리곤 뚜껑을 안 닫고 가버렸다. 고철 또한 굳이 닫지 않았고 한참을 그대로 있었다. 따사로운 햇빛에 고철의 속이 점점 달궈졌다.

 

“너무 눈부시잖아!”

 

앙칼진 음성이 울려 퍼졌다. 고철의 안에서 나오는 소리였다. 군데군데가 헝겊으로 기워져 있고 실밥이 마구 튀어나온 솜 인형이 잡동사니들 틈에서 고함치고 있었다. 

 

“뚜껑 닫아, 닫으란 말야!”

 

고철은 그냥 그대로 있었다. 온몸을 뜨겁게 만드는 감각을 계속 느끼고 싶었기 때문이다. 그 감각은 고철을 아주 깊은 곳에서부터 고양시켰다. 

 

“이 멍청한 쓰레기통, 닫으라구!”

 

인형이 누렇게 변색된 머리를 앞뒤로 흔들어 고철의 벽면을 쳐댔다. 고철은 어떤 고통도 느낄 수 없었으나 일단 뚜껑을 닫아주었다. 인형은 계속 씨익씨익 몸을 떨었다. 

말을 하면 들어야 할 거 아냐, 쓰레기통 주제에 내 말을 무시해?

 

고철은 인형의 말을 잠자코 들었다. 인형은 일주일 전 고철 속으로 들어왔다. 인형은 들어온 이후부터 나흘을 고함 지르고 머리를 팍팍 치며 스스로를 괴롭혔다. 보통 하루를 주기로 고철의 속은 비어졌지만 인형은 꼬박 일주일을 버텼다. 형광 조끼 인간이 고철을 거꾸로 뒤집고 탈탈 털어댈 때면 인형은 고철 속에 나 있는 작은 흠에 몸을 꽉 끼워놓았다. 인형 또한 왜소했고 흠에 몸을 구기다시피 밀어넣곤 했기 때문에 떨어지지 않고 계속 남게 되었다.

 

인형은 고철의, 그러니까. 

고철이 가장 잘 알고 있는 무언가였다. 고철의 곁에 가장 오래 남아있는 무언가이기도 했다. 

 

고철은 뚜껑을 열고 속 구석구석 햇빛 쬐는 것을 즐겼다. 그것은 고철만의 취미였다. 하지만 인형 때문에 자주 할 수는 없었다. 그럴 때면 고개를 돌려 앞을 바라보았다. 그저 앞을, 하염없이. 

 

고철의 맞은편에는 아주 커다란 것이 있었다. 몸통 색깔은 사뭇 달랐으나 고철과 비슷한 인상을 주었다. 머리에는 녹색의 작은 것들이 빼곡하게 차 있었는데, 바람이 불 때면 살랑살랑 나풀대곤 했다. 인간들은 그것의 그림자 아래서 쉬기도 하고 잠깐 기대어 상념에 잠기기도 했다. 고철은 그 광경이 따스운 햇살보다도 좋아 보였다. 

 

고철이 그것에 가 닿고 싶다는 생각을 하던 어느 날이었다. 인형이 퉁명스럽게 [나무]라는 이름을 알려주었다. 

 

고철은 계속 앞을 바라봤다.

나무. 

고철은 그 음절이 주는 생경한 감각에 고취되었다.

 

나무. 

나무. 

나-무- 

 

 

 

 

 

 

 

 

 

 

“쯧쯧, 고철들이란. 내가 ‘집’에 있을 때 말이야. 거기도 수많은 고철덩이들이 있었지. 딱딱하고 둔한데다 멍청하기까지… 하윤이는 걔네를 전혀 사랑하지 않았어! 고철덩이에 손을 대는 것도 처음 한 두번이 끝. 그것도 금방 질려서 나를 포옥 안아주곤 했지. 고철은 진짜 사랑을 모른다니까!”

 

인형이 소리쳤다.

 

사랑? <한 두번밖에 손 대지 않았다>는 게 사랑하지 않는다는 의미인가. 그렇다면 고철은 인형이 알고있는 다른 ‘고철덩이’들과 다를 터였다. 인간들은 고철을 고작 한 두번 이용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들은 고철을 정말 많이 찾았고 머리에 손을 대 주었다. 

 

“몇 번 만진 거 갖고 착각하기는. 누가 한번이라도 꽉 안아준 적 있어? 엷게 웃으면서 두 팔을 벌려 품 안에 넣어준 적이 있냐고. 없겠지! 그럼 말 다 한 거야. 널 별로 아끼지 않는 거야.”

 

고철은 다시 앞을 바라봤다. 건너편에 있는 커다란 것. 그러니까 [나무] 역시 안아주는 사람은 없었다. 가끔 손을 들어 쓰다듬는 사람은 있었지만 그마저도 고철에게 닿는 횟수보다 적었다. 

 

“당연하잖아. 너나 나무나 똑같이 딱딱하니까 안아주지 않는 거지. 사람들은 포근하고 말랑한 걸 좋아한다구, 나처럼.”

 

인형의 말은 커다란 충격이었다. 사람들이 포근하고 말랑한 걸 좋아한다는 사실에 놀랐던 것은 아니었다. 왜 안아주지 않는지에 대해서는 의문이 남았으나 그래도 고철에게는 사람들이 자신을 아낀다는 경험에 근거한 믿음이 있었다. 하지만 자신이 [나무]와 같이 딱딱하다는 것. 그러니까 [나무]와 똑같은 무언가를 공유한다는 사실이 고철의 단단한 몸뚱아리에 내리꽂혔다. 인형은 고철보다 인간에 대해, 그리고 세상에 대해 잘 알고 있었다. 까칠하긴 해도 거짓말을 하지는 않았다.

 

고철은 왜 [나무]를 틈만 나면 바라보았는지, 왜 살랑거리는 그 머리에 가 닿고 싶었는지 깨달았다.

 

수많은 인간들이 오가는 길목에 홀로 우두커니 서 있는, 

누군가 필요로 하지만 안아주지는 않는, 

딱딱한 것. 

 

고철은 그 속성을 알게 된 이후부터 나무에 대해 더 많이 생각하게 되었다. 나무를 보면 슬프기도 기쁘기도 했다. 인간들은 고철 뚜껑이 열려있을 때 종종 그 앞까지 오지 않고 멀리서 물건을 던져 넣곤 했다. 속 안에서 요란하게 뒹구는 느낌이 좋지 않았으나 그 불쾌함 마저 상쾌했다. 바로 맞은 편에 있는 나무를 아무 방해 없이 볼 수 있었으니까. 고철은 햇볕이 내리쬐는 정오 시간대가 더이상 기껍지 않았다. 나무를 볼 때면 속이 절절 끓는 것과 더해 뜨거운 햇살이 몸을 부술 듯 달구었기 때문이다. 애가 닳는 것은 파괴되는 것과 비슷하구나, 고철은 또다른 속성을 깨달았다. 

 

뜨겁고 부숴질 것 같은 어느 날이었다. 나무의 머리에 하얗고 붉은, 아주 작은 것들이 자라 있었다. 그 전부터 살랑거리는 녹색 사이로 무언가가 생겼다 사라졌다 했는데 그 현상과 관련 있는 것 같았다. 인형은 그것들을 [꽃]이라고 알려주었다. 

 

 

 

 

[꽃]이 생긴 이후로 나무 주변 광경은 크게 달라졌다. 인간들은 나무를 더 많이 찾기 시작했다. 유리가 붙어있는 기계에서 <찰칵> 하는 소리가 쉴틈 없이 들려왔다. 그들은 소란스레 웃고 떠들었다. 심지어는 엷게 미소지은 채로 두 팔 벌려 나무를 품에 안기도 했다. 품에 안다니. <안아주다>니! 고철은 나무의 속성을 재정의할 수밖에 없었다. 

 

수많은 인간들이 오가는 길목에 서 있는,

누군가 필요로 하고 안아주기도 하는,

딱딱한 것. 

 

나무와 고철은 여전히 똑같이 딱딱했다. 왜 나무를 안아주기 시작했는지 알 수 없었다. 인형은 나무의 [꽃]이 예쁘기 때문이라고 답했다.  [꽃]? 확실히 꽃이 생기고 나서부터였다. 고철은 나무와 자신의 속성을 다시 따져보기 시작했다. 겉이 단단하다는 점에서는 같았다. 하지만 속이 달랐던 것이다. 나무는 속이 예뻐서 그 안에 꽃을 갖고 있었던 것이다. 속이 아름답기에 그걸 밖으로 꺼냈을 때 모두가 좋아했던 것이다. 고철은 문득 나무처럼 하고 싶다는 욕망에 사로잡혔다. 

 

먹구름에 가려 온통 잿빛이던 어느 날이었다. 고철이 힘껏 발을 굴렀다. 쿵, 요란한 소리가 나며 속에 있던 것들이 쏟아져 나왔다. 인간들은 잡동사니를 피해 물러났다. 바로 앞에 서 있던 몇몇은 비명을 지르기도 했다. 그들은 일그러진 표정으로 옷을 툭툭 털었다. 몇몇은 혀를 찼고 몇몇은 고철이 뱉어낸 것들을 발로 찼다. 고철은 볼품없이 엎어진 채 머리맡에 닿곤 했던 무수한 손길에 대해 생각했다. 이런 것은 익숙하지 않았다.  평소처럼 인간들이 스쳐지나가는 길목일 뿐인데 고철에게는 모든 것이 생경했다. 인간의 눈빛과 정면으로 마주칠 때면 쇠로 된 몸뚱아리가 쪼개질 것 같았다. 잡아먹힐 듯 조여오는 한기가 두려웠다. 고철은 바닥에 축 늘어진 채 햇볕의 따스함을 더듬었다. 당연히 싸늘할 뿐이었지만 그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납작하게 뭉개질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아, 아야. 뭐하는 짓이야!”

 

인형이 뒤집어진 채로 버럭 소리쳤다. 

 

“얌전히 쓰레기나 담을 것이지 뭐하러 다 쏟았어!”

 

왜?

속을 꺼내 보이면 모두가 좋아하는 게 아니었던가?

 

“나무가 피운 것과 네가 쏟은 것을 봐. 아무리 아는 게 없어도 뭐가 흉측하고 아름다운지는 알겠지. 너와 나무는 근본부터, <본질>부터가 달라. <본질>이 뭔줄이나 알아?”

 

…우리는 둘 다 딱딱해.

 

“그건 본질이 아니야. 본질은 하나로만 결정되는 게 아니거든.”

 

그럼 내 본질은?

 

“쓰레기통이 쓰레기통이지 뭐겠어. 쓰레기 담는 통! 쓸데없는 거 궁금해하지 마. 네가 감상에 젖느라 나도 같이 쓰러졌잖아!”

 

인형은 한참 동안 <쓰레기통>을 입에 담았다. 또한 좀 전의 상황을 근거로 인간들은 <쓰레기통>을 좋아하지 않고 앞으로도 안아주기는커녕 불결하게 여길 것이라고 말했다. <쓰레기>를 혐오하기 때문이라고도 덧붙였다. 고철은 진저리를 치며 <본질>을 부정했다. 기묘한 조급함이 들었던 것이다. 평소에 그랬듯 인형에 말에 수긍한다면. 이 순간조차 그렇게 한다면 무언가가 잘못될 것 같았다. 고철은 필사적이었다.

 

본질은 하나로만 결정되지 않는다고 했잖아.

인간들도 <쓰레기> 하나만 보려고 하지 않을 거야.

본질은,

하나로 결정되는 게 아니잖아.

 

인형은 조소하며 다시 한 번 넘어져보라고 일갈했다. 쓰레기통인 이상 당연한 거야, 비아냥거리는 인형의 말을 어떻게든 반박하고 싶었으나 할 수 없었다. 또 한 번 넘어져서 속을 모두 보여줬을 때 그 싸늘함을 견딜 자신이 없었으므로. 인형은 끝장을 보려는 듯 계속해서 <쓰레기통>은 <쓰레기>를 담기 때문에 더럽다고 이야기했다. 그럴 때마다 <쓰레기통>은 자신을 <통>이라고 부르라며 받아쳤다. 하지만 그것은 반박인 동시에 시인이었다.  더이상 스스로의 역할이 기껍지 않고 존재가 자랑스럽지 않다는, 인정이었다.

 

 

 

 

 

 

어느 날부터 공원에는 민원이 잦아졌다. 쓰레기통이 엎어져 있는 경우가 부지기수였기 때문이다. 플라스틱 용기와 찌그러진 알루미늄 캔이 카각카각 소리를 내며 바닥을 긁고 지나다녔다. 얼룩덜룩한 이면지는 볼썽사납게 공중을 휘저었다. 보도에는 먹다 남은 음식물이 나뒹굴었다. 사람들은 더럽다며 불평을 늘어 놓았고 구청직원들은 골머리를 앓았다.

 

인형은 항상 흠에 몸을 우겨넣고 있어야 했다. <쓰레기통>이 언제 심술을 부릴지 알 수 없었기 때문이다. <쓰레기통>은 인간들이 쓰레기를 버릴 때마다 발을 굴러 다시 뱉어냈다. 더럽고 불결한 속을 울컥울컥 게웠다. 공원은 언제나 토사물 범벅인 채였다. <쓰레기통>은 그 무엇도 담아두지 않을 것처럼 비우고, 비우고, 비워냈다. 인형은 아래 위로 세차게 흔들리는 진동을 느끼면서 생각에 잠겼다. 인간도 속의 것을 전부 내보낼 때가 있다. 하윤이는 대개 물을 내보내는 편이었다. 맑고 투명한 물이 고였다가 줄기가 되고, 끅끅 소리가 날 때면 여러 갈래로 나뉘어 세차게 흘렀다.  인형은 밖으로 떨어지는 와중에도 인간과 <쓰레기통>의 모습을 겹쳐보았다. 물을 떨어트리는 인간은 격정적이기 마련이었는데 그건 위태롭다는 증거이기도 했다. 결국 <쓰레기통> 밖으로 튕겨나온 인형은 바닥에 축 늘어진 채로 조용히 말을 건넸다. 

 

“<쓰레기통>, 왜 그래…?”

 

아무 대꾸가 없었다.

 

“이봐 고철…”

 

적막했다.

 

“…통!”

 

그때였다. 어느 틈엔가 형광조끼 인간이 불쑥 나타나 <통>을 집어 올렸다. 그러고는 바닥판에 공구를 들이대고 뭔가 작업하기 시작했다. 구청직원은 <통>이 넘어지지 못하도록 고정해놓았다. 작업을 마치고 여기저기 널브러진 쓰레기를 주웠다.

 

“시발. 드러워 죽겠네.”

 

내가 왜 이런 잡일까지… 인간이 <통>의 입구를 열고 쓰레기를 들이밀며 투덜댔다.  인형은 그 광경을 보며 새어나올 리 없는 비명을 질렀다. 그 말을 통 앞에서 해서는 안 됐다. 적어도 그 말만은.

 

구청직원이 돌아간 뒤 공원에는 카강, 콰작 무언가 부숴지는 소리가 울려 퍼졌다. 위잉거리는 공구 소리와는 사뭇 달랐다. 고철이 찌그러지는 소리. 정확히는 쓰레기통의 입구가 우그러지면서 나는 소리였다. <통>은 쇳소리를 내며 자신의 머리를 부쉈다. 닿았던 손길을 하나씩 지워내며 스스로를 파괴했다. 이윽고 아무것도 넣을 수 없는 상태가 되어 스러졌다. 인형은 사물이 스스로 기능을 말살하는 촌극, <통>의 죽음을 엎어진 채로 지켜봤다. 그러고는 솜이 얼기설기 튀어나온 팔을 힘겹게 들어 눈가를 쓸었다. 물이 흘러나올 리 없었다. 그러나 속에 있는 것을 전부 토해내고 싶은 기분이 들었다.

 

<통>은 인형의, 그러니까.

친구였다.

 

버려졌다는 사실에 욱씬욱씬 아플 때 모든 심술을 받아주던 친구. 버려진 것들을 모아놓는 주제에 순수하기만 했던 그 우직함이 질투가 났었다. 인형은 계속해서 눈가를 비비며 언젠가 <통>이 깨달았던 속성을 떠올렸다.

 

애가 닳는 것은 파괴되는 것과 같구나.

애가 닳는 것은…

 

별안간 바람이 일어 나무의 벚꽃이 떨어졌다. 분홍색 잎들이 나풀대며 인형의 머리에, 고철의 우그러진 입구에, 버려져 길거리를 뒹구는 기물들에 가 닿았다.

 

마치 안아주는 것 같은 온기를 느끼며 인형은 서서히 눈을 감았다.

마지막이었다.

 

 

 

 

 

*

 

 

 

 

 

 

신촌 공원의 쓰레기통에는 철거 결정이 내려졌다. 배치해놔도 길거리가 청결하지 않아 효용에 의문이 든다는 이유에서였다. 형광조끼 구청 직원들이 쓰레기통 바닥판을 떼어내는 것을 지켜보던 남성이 주머니에서 진동을 느끼고는 휴대폰을 꺼냈다.

 

“어. 여긴 거의 정리 단계.”

 

배불뚝이 남자가 허리춤에 손을 대며 말을 이었다.

 

“아 그거- 찌그러진 거 복구하려면 오히려 돈이 더 들대? 그럴 바엔 하나 새로 사는 게 낫지.”

 

남자가 발로 바닥에 널브러진 플라스틱 부스러기를 툭툭 차기 시작했다.

 

“폐기 오늘이야. 아니 아니, 몸통은 용광로에 넣고 왔어. 철만 고대로 건져서 다른 거 만들어야 돼. 그래야 수지타산이 맞지 않겠어? 아- 이 사람! 재활용 해야지, 요즘 같은 온난화 시대에! 하하하.”

 

남자의 웃음소리가 울려 퍼졌다.

 

 

 

 

 

*

 

 

 

 

 

목철성 木鐵性

: 나무와 철의 속성

본질은 무엇입니까.

 

 

 

Fin.

 

 

 

 

 

 

*

 

 

 

 

 

 

 

 

 

 

 

 

 

 

 

 

 

 

 

 

 

 

 

 

 

 

 

 

 

 

Epilogue

잘 읽히는데 불친절한 글을 써보고 싶었습니다.

한 번 읽고나서 이 글이 정확히 뭘 말하는지 모르겠고 일단 찝찝하시다면

그게 제 의도입니다.

해석은 오롯이 독자의 영역이지만

해설집은 있기 마련이지요.

다시 한 번 말씀 드리지만 해설을 펴보고 말고는

여러분에게 달려 있습니다.

무성의한 이야기 속에서 불가지한 정취를 느끼셨기를 바라며.

(아래 첫 ‘#’ 표시와 마지막 ‘#’ 표시까지 전체를 드래그 해보시기 바랍니다)

 

 

 

 

 

 

 

 

 

#

 

 

 

목철성 자체는 여러 대도시에서 쓰레기통을 일부러 감축하는 추세라는 기사를 접하고 나온 글입니다.

신촌의 길목은 확실히 유동인구에 비해 공공 쓰레기통이 거의 없는 편입니다.

종량제 봉투 값을 아끼려고 집 쓰레기를 길거리 공공 쓰레기통에 투기하는 경우가 많아져서 오히려 거리가 더러워지기 때문에 그렇다고 하더군요. 

이건 상당한 아이러니라고 할 수 있습니다.

필요에 의해 생겨난 것이 그 필요에 의해서 결국은 사라져버리는 모순.

저는 인간의 삶 역시 이런 모순이 있다고 생각했고 본질이라는 주제로 글을 확장시켜보았습니다.

 

 

 

목철성은 결국 본질에 관한 글입니다.

고철은 처음 만들어지고 거리에 놓여 [쓰레기를 모아놓는] 역할을 하게 됩니다.

이때 고철은 <쓰레기통>이라는 명칭을 신경쓰지 않습니다. 문자 그대로 쓰레기, 통. 자신의 사명을 뜻하는 명칭일 뿐이었으니까요.

근데 나무를 사랑하게 되면서 나무의 속성을 생각하다가 자신은 누구나 필요로 하지만 누구도 사랑하지 않는 존재라는 것을 깨닫습니다.

고철은 이 괴리를 견딜 수 없어합니다.

고철은 자신을 공원으로 데려다 준, 어떻게 보면 최초의 기억이라고 할 수 있는

바로 그 구청직원마저 자신을 멸시하자 스스로의 기능을 죽여버립니다.

쓰레기통으로서의 자살인 거죠.

사람들은 고철이 쓰레기통으로서의 기능을 상실하자마자 즉시 폐기해버립니다.

쓰레기통으로서의 고철은 다시한번 용광로에 녹고

무언가로서의 고철이 될 것이라는 암시를 남긴 채

이야기는 끝이 납니다.

 

 

 

이제 제목으로 회귀해볼까요.

목철성,

나무와 철의 속성. 

이 둘의 공통점이 뭘까요?

단단하다

그리고 

<무엇이든지 될 수 있다>

 

 

 

우리 모두는 나무와 철의 속성을 갖고 있습니다.

하지만 가끔씩 스스로가 더없이 왜소하고 연약하고, 그저 부정일 뿐이라는 생각이 들 때도 있을 겁니다.

혐오감과 무력감을 통제할 수 있는 인간은 없기에 당연한 일입니다.

그래서, 당신은 쓰레기통일까요?

어쩔 수 없는 부정과 더러움을 담아둔다고 해서 기꺼이 멸시당해도 되는 존재일까요.

글쎄요 저는 잘 모르겠습니다.

 

 

 

쓰레기통의 본질은 쓰레기통이 아니라 고철이었듯

당신의 본질 또한 그 부정함이 아닙니다. 물론 정확한 답은 당신이 찾아야 하겠지만요.

 

 

 

하지만, 아니라는 것 자체.

그 사실이 일단 중요하지 않을까요.

고작 글 뿐이지만

당신이 용광로에 녹기 전에 다시 한 번 사유하게 하는 보루가 되기를 바라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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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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잔치의 시선으로 신촌의 장면과 사람, 장소를 기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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