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ELCOME TO ZANCHI! · 신촌을 사랑하고, 추억하고, 기록하다
· 로그인
ART 2020 · 04 · 27

바람이 분다

Editor 왕 잔치

바람이 분다 – 시원한 바람이 필요한 지금,

 

(1)

2020년 4월, 한국의 초봄 하늘은 먼지 한 점 없는 화창한 날씨의 연속이었다. 북쪽에서 불어오는 각종 금속먼지가 우리의 호흡기를 파고들었던 매년 이맘때와 달리, 맑은 날씨에 안도한 벚꽃과 개나리는 도심을 다채롭게 물들였다. 하지만, 꽃들의 빛깔보다 더욱 다채로운 사람들의 표정은 어떤 방법으로도 볼 길이 없었다.

 

 

길을 걷다가 무심코 맞닿아 이내 떨어지는 네 개의 눈동자들 사이엔 형용하지 못할 허무함이 오고 갔다. 그 눈빛은 아마 조각난 일상에 적응하느라 쌓인 피로와 국가적인 불안이 엉킨 복잡한 마음의 반영이었을 것이다.

그것을 느낀 순간, 저마다의 사연으로 가라앉은 사람들의 마음을 붕 하고 떠올릴 시원한 바람이 불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미안하지만, 사람들이 상처를 털고 마스크를 벗을 수만 있다면 그 바람에 꽃잎이 후두둑 떨어져도 속상하지 않을 것 같았다.

 

 

(2)

한편, 이럴 때일수록 세상이 돌아가는 모양새를 더 잘 알아야할 듯싶어, 매일 아침 늦은 잠에서 깨자 마자 포털 사이트 뉴스 칸에 들어갔다. 침대에 세상 편하게 드러누워 이불을 두른 채 손가락 하나만 이따금씩 까딱였다.

몸이 편했다.

 

까딱,

바이러스로 인한 사망자 수 추이를 보여주는 그래프가 나타났다 사라졌다. 그래프에 찍힌 투박한 점에선 가족의 장례도 제대로 치르지 못하는 유족들의 울음소리가 들리는 듯했다.

 

까딱,

바이러스에 감염된 사람들이 완치 후에도 지속적인 심리 상담을 원한다는 기사가 나타났다 사라졌다. 그들은 바이러스보다 사람들의 시선에 더 아팠다고 했다. 혹시라도 바이러스를 향한 내 두려움과 불안이 그들에게 상처를 준 건 아닐까 생각했다. 눈치없이 발송된 <00동 00번째 확진자 동선 공개 알림> 문자를 한참이나 째려봤다. ‘재난’ 알림이라며 삐용대는 꼴이 정신사나웠다.

 

까딱,

26만명을 처벌하자는 청원에 200만명이 참여했다는 문장이 나타났다 사라졌다. 26만과 200만이라는 숫자를 내 머릿속 저울 양끝에 얹어봤다. 어느 쪽이 무거워 가라앉는지 확인해보고 싶었다. 그리고 내가 머릿속에서 본 기울임이 현실에서도 보이길 바랐다.

 

또 한 번

까딱,

하려는 순간 휴대폰 화면에 비친 내 모습이 보였다. 가만히 누운 채 손가락만 까딱이면서 온갖 세상일은 나 혼자 짊어진 듯 잔뜩 인상을 쓰고 있었다. 그 모양이 꼭 시체 같았다. 뉴스 속 사람들은 모두 삶과 죽음의 경계에서 외줄타기를 하고 있는데, 나는 그 외줄타기에 실패해 죽은 사람 같았다. 갑자기, 이 관짝 같은 침대에서 몸을 일으키고 싶어서, 정확히 말하자면 살고 싶어서, 일어나 방 창문을 열었다. 고였던 공기는 빠지고 새로운 바깥공기가 밀려오는 과정에서 내 옷소매가 나풀거렸다.

 

 

(3)

난 원래 바람을 싫어했다. 여러가지 이유가 있었다. 우선, 정돈된 머리가 망가져서 내 볼을 때릴 때면 바람에게 맞는 기분이라 언짢았다. 가뜩이나 약한 1호선 전철이 바람을 맞아 좌우로 흔들릴 때면 서 있는 채로 중심 잡기가 어려웠고, 바람이 지나간 후에 남는 냄새가 싫었다. 유리창이 덜덜거리다 깨져 내 몸에 상처 날까 두려웠고, 밖에서 일하는 아버지가 돌풍에 날리는 표지판에 맞아 잘못되는 상상은 하기도 싫었다.

 

 

그런데 작년 겨울, 경의선 숲길 옆 길목에서 맞은 바람은 좀 다르게 느껴졌다.

그 때의 나는 지금보다 훨씬 차가웠던 것 같다. 몰아치는 시험, 프로젝트 모두 ‘잘 해내야 한다’는 강박에 시달리며 내 안에 칼바람을 품고 있었다. 그 와중에, 친구가 자신이 즐겨 듣는 밴드의 기타리스트 분이 카페를 운영하신다며 수업이 끝난 나를 불렀다. 같이 홍대로 공연을 보러 가기로 했던 날이라, 관람 전에 속도 데울 겸 그 카페, <하바나 인디 클럽>에 들렀다 가기로 했다.

지하철역에서 그 카페까지는 걸어서 5분 정도로 아주 가까웠는데 주택이 빽빽하게 들어선 골목길을 지나가야 했다. 바람은 우리를 엉망진창으로 만들었다. 우리의 진로와 반대 방향으로 부는 바람 때문에 걷기도 힘들어지자 인내심도 바닥이 났다,

‘거지 같은 바람’.

바람이 피부를 엘 정도로 날카로웠던 탓에 우리는 지도 앱도 켜지 못했고, 결국 여러 번 헤맨 끝에 경의선 숲길 옆 카페에 도착할 수 있었다. 이땐, 앞으로의 시간이 날 어떻게 바꾸어 놓을지도 깨닫지 못했다.

간단히 말하자면, 나는 이 카페의 모든 부분이 좋았다.

쿠바 가정식 커피 가게라는 독특한 컨셉, 사랑이 많은 사장님, 그녀의 쿠바인 남편분, 넓지 않고 아득한 공간, 한 쪽에 자리잡은 기타, 외벽을 가득 둘러싼 쿠바 엽서들, 그 공간을 채우는 이국적인 노래, 중간중간 섞여 나오는 사장님의 곡들, 달달한 디저트, 그리고 동행한 친구까지. 세상에 이런 완벽한 따뜻함이 있던가 싶었다.

 

오늘은 어떤 기타가 놓여 있을까, 사장님이 그때그때 자주 사용하시는 기타를 배치해 놓는 듯 했다.

 

한 시간 가까이 친구와 이야기를 나눈 후 카페 건물을 나왔다. 단 하나를 제외한 모든 것이 그대로였다. 바람의 방향이 바뀐 듯했다. 여전히 내 머리 위엔 거대한 홍합이 앉아있고 베일 듯한 추위 때문에 피부가 아팠지만, 바람은 전처럼 나를 밀치지 않았다. 오히려 내가 걷는 방향으로 부는 바람 덕분에 걸음을 뗄 때마다 조금씩 앞으로 밀리는 기분이었다. 죽은 듯 가라앉았던 상념과 감정들이 바람을 만나 다시 떠오르는 듯한 느낌에 정신이 번쩍 들었다.

숲길의 나무들이 촤- 하며 나부끼는 소리는 얼핏 파도 같기도, 관중이 퍼포머에게 보내는 박수갈채의 울림 같기도 했다. 그냥 좋은 곳에서 커피 한 잔 마셨을 뿐인데 내 인식의 방향은 완전히 달라져 있었다.

사실 내 속의 차가운 응어리를 녹여준 존재는 바람이 아니라 친구 혹은 사장님일 가능성이 크다. 하지만 적어도 지금의 나는 그 길목에 갈 때마다 늘 불었던 바람을 그리워하고 있으며, 그 바람을 맞으며 느꼈던 살아있는 감각을 생경하게 기억하고 있다.

바람은 종종 밖에서뿐만 아니라 내 안에서 시작되기도 하는데, 그 내면의 바람은 내가 ‘살아있음’을 자각하거나, ‘살고 싶다’는 마음을 갖춤과 동시에 불기 시작한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는 듯하다.

 

 

『해변의 묘지』라는 시의 마지막 연에서 폴 발레리는 “바람이 분다,… 살아야겠다!”고 말했다. 불어오는 바람을 온몸으로 받아들이며 살아있음을 자각하라는 말처럼 들린다. 사실 바람은 언제든 어디서나 부니까, 그런 사소한 순간들조차도 우리가 살아야 하는 이유로 받아들이라는 뜻일 것이다. 이 유명한 문장을 다시 생각해보면, 결국 바람도 우리가 살아있어야 부딪힐 수 있는 감각이기에, 우리는 매순간 사소한 바람을 좇으며 살아야 한다고 해석할 수도 있겠다.

 

나와 눈동자를 마주쳤던 사람들, 매일 아침 뉴스로 만난 사람들에게도 바람이 불어오기를, 그리고 그들 안의 바람을 잃지 않길 바라며 이 글을 마친다.

왕 잔치
AUTHOR PROFILE
왕 잔치

잔치의 시선으로 신촌의 장면과 사람, 장소를 기록합니다.

COMMENTS

댓글 0

아직 댓글이 없습니다. 첫 이야기를 남겨주세요.

댓글 남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