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98. chillig, chiller.
더위가 한 풀 꺾인 초가을. 그럼에도 유독 지쳤던 지난 여름의 잔열이 가끔 숨을 턱 막히게 하곤 합니다. 슬슬 걱정되는 중간 시험, 자가증식하는 할 일들. 나 빼고 다 열심히 사는 것 같은 사람들을 보며 느끼는 불안감. 아마 공통의 침잠감일 것입니다.
그런 지친 청춘에게 딱 필요한 처방제가 있다면, 그리 독하지도, 그렇다고 밍밍하지도 않은… 그래요, 딱 하이볼이 제격이지 않을까 싶습니다.
지금의 계절과 기분을 이해한다는 듯, 9월 한 달 동안 많은 이들의 시름을 달래 준 한 잔의 하이볼이 있습니다. 대학생들이 직접 창업하여 박스퀘어에 입점한 브랜드 ‘칠러’를 만나 보겠습니다.
왼쪽부터 오희수 (25, 경영학) 나하영(24,경영학) 임지원(24, 경영학) 조수빈 (24,컴퓨터공학)
안녕하세요! 간단한 자기소개 부탁드립니다.
안녕하세요, 저희는 ‘칠러(chiiller)’입니다. 이화여자대학교 경영학과, 컴퓨터공학과 학생 4명이 창업한 브랜드입니다. 저희는 1학년 때 경영대학 개강총회에서 처음 만난 사이인데요. 그 이후로 친해져서 같이 여행도 다니고, 수업도 같이 들으며, 4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계속 인연을 이어왔습니다. 그리고 어느덧 이렇게 창업도 같이 하게 되었네요.
브랜드 ‘칠러’에 대해서도 소개해 주세요.
칠러의 ‘chill’은 시원한, 릴랙스, 놀다 등 다양한 의미를 갖고 있는데요. 이 의미들과 저희 브랜드가 추구하는 방향성이 부합하다는 생각에 -er을 붙여, 시원하게 하는, 릴랙스하게 하는 등의 의미를 표현하고자 하였습니다.
저희 브랜드와 제품을 통해 여러분이 ‘chilling’ 할 수 있는 하루를 보내도록 하는 것이 저희 슬로건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칠러의 주력 메뉴, 하이볼.
‘칠러’는 먼저 ‘팀 화이볼’로 대동제에서 에이드를 팔아 큰 인기를 얻으셨죠! 그때부터 박스퀘어 입점 계기가 있으셨다고 했는데, 아주 오래전부터 브랜드를 준비하신 것 같아요. 창업 계기가 어떻게 되셨나요?
처음은 같이 경영학 수업을 듣고 창업에 관심을 갖게 됐던 거예요. 저희는 경영학을 전공하는 학생이니까, 지속적인 기업가 정신과 역량을 갖추어 미래에 창업에 도전하려는 목표가 생겼습니다. 이후 교내에서 자신의 꿈에 맞는 활동을 수행하면 장학금을 지원해주는 도전학기제라는 프로그램에 지원했어요. 지원 당시 지역 특산물(로컬 푸드), 그 중에서도 못난이 농산물을 결합하여 수제 로컬 과일청 하이볼을 메인 아이템으로 선정하여 기획해 보았습니다.
결국 최종 선발은 되지 못 하였지만 해당 아이템에 대한 연구는 계속 진행했어요. 지난 겨울에는 ‘(주) 슈퍼파머스 겨울방학 프로젝트‘에 참가해, 제주도 현지 농장에 직접 방문하여 못난이농산물 활용 방안에 대해서 더 열심히 고민했습니다. 특히 못난이 유자 수제청을 사용한 하이볼 레시피를 직접 개발해보고 다른 참가자들 30명에게 샘플 테스팅을 하여 피드백을 얻어보기도 했고요.
그 이후 레시피를 더욱 개발하고 구체화면서 본격적인 아이템 판매와 시장 진출 등 실제 ’창업‘을 해보아야겠다고 느꼈습니다. 결국 지난 5월 대동제 때는 ‘가자! 팀 화이볼! (highbolic)’ 이라는 이름으로 부스를 열어 기획했던 아이템을 판매했어요. 당시 소비자 반응도 괜찮았고, 이대로 끝내기엔 아쉽다는 생각에 동일한 주제로 청년키움식당에 지원하여 선발이 되었습니다.
청년키움식당에서 메뉴 교육, 운영 교육 등 다양한 멘토링 교육을 지원해주셨고, 교육을 진행해주신 황재만 셰프님을 비롯한 여러 교수님들께서 박스퀘어의 지리적 특성, 주변 상권, 타겟 소비자의 선호도를 고려하여 새로운 방향성을 제안해주셨습니다. 이후, 8월 한 달간 여러 시도 끝에 브랜드도 전면 리뉴얼하고, 이름, 로고, 컬러, 아이덴티티 모든 것을 수정했습니다. 그렇게 지금의 칠러가 탄생했네요.
청년 키움 식당은 생소한 곳이에요. 자세히 설명해 주실 수 있나요?
청년키움식당 신촌점은 농림축산식품부와 한국농수산식품유통공사가 주관하고, 서대문구, 이화여대, 이푸드랩 컨소시움이 운영하고 있습니다. 창업 아이디어를 보유한 청년 사업가라면 모두 예비 창업 팀으로서 지원할 수 있습니다. 사업계획서와 메뉴 기획안 등을 먼저 제출한 뒤, 실기 심사를 거쳐 최종 선발이 돼요. 선발이 되면 메뉴 교육, 홍보 브랜딩 교육, 위생 교육, 디자인 등 운영에 필요한 교육을 받을 수도 있습니다.
다양한 지원과 교육을 거친 후 박스퀘어에 입점하게 된 칠러.
창업을 위한 다양한 방법이 있었을텐데, 그 중 박스퀘어*에 자리잡은 이유도 있으실까요? 박스퀘어에서 영업을 하시는 건 어떠신지 궁금해요.
아무래도 저희가 모두 대학생에, 거주지랑 대학교가 다 신촌에 위치해 있어 박스퀘어가 가장 익숙했어요. 또한 청년키움식당에서 여러 지원과 교육 등을 제공해주기 때문에, 저희 같은 초기 청년 창업가들이 발판을 마련할 수 있는 좋은 기회라고 생각했습니다.
박스퀘어에서 가게를 운영하면서는, 확실히 학생으로서 알지 못 했던 박스퀘어 상권, 신촌과 이대 상권에 대해서도 알게 된 것 같아요. 특히 주 이용층인 학생들이 어떤 메뉴를 선호하는지 파악할 수 있었습니다. 셰프님과 교수님들께 멘토링 교육을 받으며, “주변 상권을 분석하는 것이 중요하다. 주변 상인들이 무엇을 파는지 보면 어떤 것을 판매해야할지 알 수 있다.”라는 말씀을 듣기도 했고요.
*서울시 서대문구 신촌역로 22-5 (신촌기차역 앞)에 위치한 복합문화공간
저희도 (영업) 초반에는 하이볼과 곁들일 간단한 핑거푸드를 판매하는 정도로만 생각했고, 가격도 지금보다 높게 책정했거든요. 하지만 이후 주변 상권 분석 후, 주 이용층이 학생이라는 점, 주변 거주 인구가 1인 가구라는 점, 주변 상권에서 모두 밥 대용으로 먹을 수 있는 가성비 메뉴를 판매하고 있다는 점을 파악했어요. 그래서 저희도 안주 메뉴를 더욱 포만감을 느낄 수 있는 꼬치 메뉴로 수정했고, 가격도 모두 낮추어 지금의 메뉴가 탄생하게 됐습니다.
멘토링 교육을 받으면서 느꼈던 신촌 이대 상권의 특징이나, 학생들의 선호 메뉴에 대한 이야기를 좀 더 자세히 해주실 수 있나요?
학생들의 선호 메뉴는 아무래도 밥 대용으로 먹을 수 있으면서도 먹기 간편한 음식인 것 같아요. 파스타나 국수 같은 것들이요. 박스퀘어 관계자분들께서도 방문자들이 파스타를 가장 많이 찾는다고 하셨는데, 박스퀘어에 입점하고 나서 보니 정말 파스타가 가장 인기 많은 메뉴임을 실감했습니다.
하지만 저희는 다른 입점 식당들과 차별화된, 특색있는 브랜드로 가고자 꼬치 메뉴를 더욱 연구하고 개발하였습니다. 박퀘에 주점은 없었기 때문에 브랜드와 메뉴가 전부 리뉴얼되는 과정 속에서도 주류를 판매하는 주점으로 가야겠다는 생각은 확고했어요. 그래서 저희의 아이덴티티와도 잘 부합하면서 포만감을 줄 수 있는 지금의 안주인 꼬치를 개발했습니다.
꼬치에 애호박, 버섯, 토마토, 대파 등 여러 종류의 야채를 활용하여 학생들에게 조금 더 건강하고 포만감 있는 한 끼 식사를 제공하면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또 저희만의 특제 소스로 꼬치에 특별함 더했고요. 파스타집이 가장 인기가 많은 것은 사실이지만, 저희만의 특색있는 메뉴로 어느덧 단골 손님도 생겼고 칠러의 아이덴티티를 더욱 구체화할 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
브랜드를 창업하고 준비하시면서 힘든 일이 있었다면, 어떤 일일까요?
아무래도 저희가 학업을 병행하고 있기에 근무 시간 조정이 힘들었습니다. 8월 한 달동안은 방학이어서 창업 준비에 모든 시간과 노력을 쏟을 수 있었지만, 개강을 하고 모두 학교 스케줄이 생기면서 준비 및 근무 시간 확보가 어려웠어요. 그래서 부득이하게 모두 근무가 어려웠던 목요일은 휴무일로 결정했고, 모두 수업이 끝난 저녁 시간부터 영업을 하기로 했습니다. 점심 시간에 많은 손님이 오는 박스퀘어 특성상 점심 영업을 못 한다는 것은 큰 타격인 것을 알기에 아쉬움이 컸지만, 대신 저희가 완벽하게 준비된 상태에서 좋은 퀄리티로 손님분들을 만나고 싶었기에 최선의 선택이었다고 생각합니다.
또 칠러 매장 위치가 박스퀘어 중앙광장의 뒷편에 위치해 있어서 홍보가 덜 된 영업 초반에는 방문자들도 칠러가 있는지 모르는 경우가 많았어요. 심지어 저희 영업 시간인 저녁에는 칠러와 같은 라인에 있는 모든 매장들이 문을 닫아서 애초에 이쪽으로 발걸음을 안 하시더라고요.
그래서 칠러가 박스퀘어에 존재한다는 걸 알리기 위해 갖은 노력을 다 했어요. X배너를 직접 제작해 유동인구가 많은 지점에 세워놓기도 하고, 칠러에 가는 방법을 안내하는 인스타 게시물을 업로드 하기도 했어요. 음악부터 조명, 포스터까지, 소비자를 후킹할 수 있는 방법을 꾸준히 고안하고 준비했습니다. 더불어 발길이 잘 닿지 않는 위치에 있다보니, 한 번 방문해주신 고객들에게는 재방문을 유도하는 이벤트 기획도 했고요.
마지막으로 깨달음이 있었다면… 이번 청년 키움 식당을 통해 사업 실현 가능성과 실제 시장성을 확인할 수 있었고, 메뉴별 분석, 소비자별 분석을 통해 홍보 방안을 고민하는 등 실제 창업에서 겪는 일련의 과정을 몸소 경험할 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 그리고 저희의 관심 분야이자, 목표였던 창업에 한 발자국 다가갈 수 있는 계기가 되어 확실히 의미 있었던 경험이었다고 생각해요.
대동제부터 지금까지 있었던 인상 깊었던 일이 궁금해요.
칠러 오픈 준비를 위해 메뉴 교육을 받던 시기가 제일 인상깊어요. 영업 준비 당시, 가장 골칫덩어리였던 식자재를 직접 손으로 들고 신촌에서부터 학교 교육장소까지 나르는 일이 있었거든요. 차가 없어 대중교통을 이용해야 했는데… 심지어 자재 가격도 마트마다 제각각이어서, 발품을 팔아 가격을 비교하고 좀 전에 갔던 마트 물건이 더 저렴하면 무거운 짐을 든 상태로 다시 돌아가는 일을 자주 반복했어요. 이제 와서 생각해 보면 메뉴 개발과 교육에 쓰이는 재료비를 아껴봤자 얼마나 많은 돈을 아낄 수 있다고, 여름에 땀 뻘뻘 흘려가며 그렇게 했는지. (웃음) 조금은 바보 같기도 하지만, 저희 4명 모두가 같은 마음이었기 때문에 힘들어도 재밌다고 웃으면서 임하지 않았나 싶어요. 그만큼 칠러에 대한 설렘과 기대감이 있었기 때문이겠죠?
또 5월 대동제 때 부스를 방문해주신 손님분들이 칠러를 재방문 해주셨을 때도 기억에 남아요. 당시 저희가 손님분들께 9월에 박스퀘어에서 매장 오픈 예정이니 찾아와 달라는 말을 했었는데, 4개월이 지난데다가 브랜드명이 하이볼릭에서 칠러로 변경되었는데도 저희를 기억하시고 찾아와주셨을 때 정말 뿌듯했어요.
경영인으로서 신촌 상권에 바라는 점이 있다면?
현재는 경영인이지만 동시에 신촌에서 학교를 다니는 학생으로서 상권에 바라는 점이 있다면, 1인 가구 자취생, 학생들이 밥 대신 즐길 수 있는 가성비 집밥 식당이 더욱 많아졌으면 하는 바람이 있습니다. 박스퀘어에 오는 손님들의 목적과 특성을 파악해보면 모두 ‘가성비 있고, 맛있는 밥’에 대한 니즈가 있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거든요. 박스퀘어뿐만 아니라, 주변에 이러한 밥집이 활성화 된다면 좋을 것 같다는 생각입니다.
칠러에서 가장 인기가 많은 메뉴 중 하나인 막걸리 빙수.
칠러의 앞으로의 목표가 있으실까요?
이제 영업일이 약 1주일 정도 남았습니다. 앞으로 더 많은 손님이 찾아와주셨으면 하는 욕심도 있지만 무엇보다도 오랜시간 함께해온 칠러 팀이 끝까지 즐거운 마음으로 일했으면 좋겠습니다. 또 아직 정해진 바는 없지만 저희 팀원들이 이루고 싶은 목표가 생기면 언제든지 모여서 같이 해내고 싶어요.
칠러 경영인이 아닌, 개개인으로서의 목표도 궁금해요.
우선 저희 팀원 대부분이 막학기를 다니고 있다보니 무사히 졸업을 하는 것이 개개인의 목표입니다. (웃음) 또 칠러를 경영하면서 마케팅, 기획 측면에서 ‘고객이 무엇을 원할까’를 가장 많이 고민했었는데요, 이 부분을 잘 캐치할 수 있는 매체나 인사이트를 얻고 싶습니다.
마지막으로 이 글을 읽는 독자들에게 한 말씀 부탁드려요!
글을 끝까지 읽어주신 독자님께 감사하다는 말씀 드리고 싶습니다. 그리고 칠러를 애정있게 봐주시고 찾아주셨던, 앞으로 찾아오실 모든 손님 한 분 한 분 잊지 못할 거예요. 모든 손님들이 맛있고 즐거운 시간 보낼 수 있도록 끝까지 노력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하이볼 한 잔 쭉 들이켜 봅시다.
적당한 포만감과 기분 좋은 시원함. 혼자라면 혼자만의 사색이, 여럿이라면 여럿만의 쾌활함이. 어느 쪽이든 지금 내가 즐기고 있는 것은 바로 이 순간 아니겠습니까. 과거의 후회와 미래의 불안은 이 한 잔에 털어버리고, 지금은 잠시 이렇게 쉬어갈 수 있음에 안도를 느낍니다.
덕분에 용기와 기력을 충전했다면, 그것은 비단 알코올의 알딸딸함만이 아니라, 칠러 팀의 여름을 닮은 노력이 담겨있어 그렇게 느낀 것일지도 모르겠습니다.
미련 그득 담긴 나의 여름은 이제 놓아주고, 남은 올해를 멋지게 보내기 위해 노력해 봅시다. 이제 할 일을 해야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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