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 연희 교차로 터널
연희 교차로 터널 – 연희로
언젠가의 토요일. 연희동에서의 교육봉사를 마치고 신촌으로 향하는 버스를 탄다. 1년 이상 해오던 일이다. 이제 신촌의 카페에서 오랫동안 보지 못했던 친구를 만날 것이다. 요즘 페이스북에 줄기차게 올라오는 유명 카페의 유명 빙수를 하나 시켜놓고, 친구가 인스타그램에 올리기 위한 사진을 찍는 동안 난 누가 연락하지는 않았나 카카오톡을 확인할 터다. 빙수는 원래 있었는지도 모르게 순식간에 해치우고 미뤄둔 얘기들을 하겠지. 동창 A가 어디에서 인턴을 한대. 나 남자친구랑 식어서 헤어졌어. 머리 밝게 염색했는데 티 안 나? 두 시간 동안 주섬주섬 말들을 늘어놓고 헤어지면 난 작년부터 가르쳐온 과외학생을 가르치러 목동 행 버스를 타고.
플레이리스트에 잔뜩 담아둔 무한도전 가요제의 노래들을 듣고 머리는 창에 처박으며 대충 저런 생각들을 한다. 이제 막 진입한 연희 교차로 터널. 무섭도록 익숙한 신촌으로 들어가기 위해 좌회전을 하기 전 신호가 걸린다. 정지한 버스 안에서 시선은 여전히 창 밖으로 무심하게 던지-려고 하는데 터널 벽에 뭔가 쓰여있다.

말을 곱씹는다. 당신의. 살아있는. 부분은. 남들과. 달랐던. 그 순간. 뿐이다.
왠지 멋이 폭발하는 문장 같아 얼른 사진을 찍는다. 사진을 찍자마자 타이밍 좋게 출발하는 버스.
그리고 생각해본다. 내가 방금 미리보기한 오늘의 일정 중 내가 살아있는 부분은 얼마? 오늘의 내가 살아있을 부분은 몇 퍼센트가 될는지? 이 동네의 누군가께서 휘갈긴 잠언 덕에, 5분 뒤면 내릴 버스에서 뜬금없이 인생에 대해 반성하고 있다. 어쩐지 기분이 우울해진다.
지이이이잉
어디쯤 오냐는 친구의 카톡에 핸드폰이 울린다. 그 김에 방금 찍은 사진을 확인한다. 음, 이 정도면 한동안 내 카톡 커버를 장식해도 좋다. 얼른 커버를 바꾼 뒤 답장한다. 나 좀 있으면 도착.
귓가에 들리는 노래는 레옹. 오늘 먹을 빙수가 기대된다.
이 글귀를 쓰시는 분은 연희 교차로 터널과 연희로의 벽을 좋아하시는 모양. 연희동에서 동교동 삼거리 쪽으로 가는 길에서 이 분의 다른 글귀도 찾을 수 있다. 여러분의 “남들과 다를 수 있는 그 순간”을 위해 다른 글귀는 직접 찾아보시기를 추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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