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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LACE 2015 · 10 · 01

15. 연희슈퍼

Editor 고니

연세대 학관에서부터 이대 후문까지 가려면 세브란스를 가로질러 치과대학 건물을 넘어 가는 게 가장 가깝다. 이 경로대로 걷다 보면 동네 골목이 나오면서 내리막길이 시작되는데, 다 내려오지 않고 반쯤 와서 왼쪽으로 고개를 틀면 슈퍼의 흔적이 있다. 동그란 간판에 빨간 테이프로 붙인 듯한 네 글자 ‘연희슈퍼’. 딱 봐도 아는 사람만 알 것 같은 강렬한 비주얼.

슈퍼야 파는 물건이 다 비슷비슷하겠지만, 이 곳을 언젠가 일부러 찾아갸야겠다고 마음먹게 된 건 간판의 빨간 테이프에서 포스가 느껴졌기 때문이었다. 엄청 오래된 것만 같은 느낌이 스멀스멀!

들어서려는 순간 1) 이 문은 멀쩡한 것인가 2) 어떻게 여는 건가 이 두 가지를 고민하게 되었다. 멀쩡한 문 맞고, 앞으로 살짝 밀면 접히면서 옆으로 정돈되는 접이문이었다. (미시오 라고 써 있음)

 

주인 아주머니께서는 계산대 옆에 있는 방에 계시다가 나오셨다. 인터뷰는 흔쾌히 응해 주셨는데 녹음을 한다니까 목소리가 안 예쁘다고 걱정하셨다. 어차피 내 목소리도 별로 안 예쁘므로 그냥 녹음을 강행함.

 

 

*여기는 얼마나 됐어요?

-연희슈퍼로 낸 지는 17년 됐어요.

 

헐. 엄청나게 앤티끄한 곳일 거라 예상했는데 나보다 젊은 슈퍼였다.

 

*그 전에는?

-상회가 있었어요. 순덕상회라고… 예전에는 이 동네에 상회가 많았는데 순덕상회는 한 42~43년 운영했었죠.

 

*상회일 때는 뭐가 있었나요?

-라면 위주였죠. 여기 연대 운동부 기숙사 5개가 다 있었는데….

 

이때 손님 등장. 던힐 1갑 구매 후 퇴장.

 

*방해하는 것 같아 죄송해요.

-아니에요. 아 그래서 … 연대에 운동부 기숙사가 다 있었을 때는 할머니가 가게를 운영하셨죠.

 

 

*요새는 CU처럼 프랜차이즈로 된 편의점이 많은데 어떻게 자리를 잘 지키고 있는 건가요? 위치도 되게 외졌는데..

-의대 기숙사가 있었어요. 의료센터에 있는 분들이 이 밑에 CU가 들어오기 전부터 오던 손님들인데, 그 사람들이 계속해서 오고 있어요. 시작할 때는 운동부 기숙사가 있어서 재미 좋았구.

 

*오랫동안 함께 해 온 단골들이 있는 거네요. 옛날이랑 비교해 봤을 때 오시는 손님들이 많이 달라졌나요?

-일단은, 매출이 화끈하게 줄었죠. ㅎㅎㅎㅎㅎ

 

*으엌ㅋㅋㅋㅋㅋㅋ죄송합니닼ㅋㅋㅋ

-세브란스에서 동네 몇 집을 매입하면서 손님 층이 좀 줄었어요. 다른 손님들은 환자, 환자 보호자, 병원 직원들, 그 외에는 연대 학생들, 박사들 정도?

 

*기억에 남는 손님이나 에피소드가 있나요?

-글쎄… 그 때는 딱히 에피소드가 있었다기보다는 그냥 되게 정겨웠던 것 같아요. 그 당시에는 담뱃값도 지금에 비해 아주 저렴했는데도 담배 사 가면서 “백 원이 모자라요.”하는 경우가 있었어요. 학생들이다 보니 그러면 다음에 가져다 달라고 하고 그냥 갔는데, 지금은 카드가 있으니까 백 원이 모자라도 “카드로 주셔도 돼요” 이렇게 된 거죠. 나라는 사람은 계속 그대로인데 세상이 바뀌고 손님들이 변해가면서 빡빡해졌죠. 외상이 없어졌다는 것.

 

*손님들이 주로 카드로 내나요?

-네. 요새는 잔돈도 별로 준비 안 해 놔요.

 

연희슈퍼의 연희는 연희전문학교에서 따온 것도, 사장님 부부의 딸 이름도 아니다. 초기에 남편분과 같이 슈퍼를 열었을 때 남편 이름 한 자 본인 이름 한 자 따서 지었다고.

 

*제가 지도에서 찾아봤는데 차가 여기까지 못 오니까 로드뷰 사진도 없고 연락처 등록이 안 되어 있더라고요. 혹시 업데이트하실 의향은 없으세요?

-예전에는 네이버 같은 데에 띄워 놨었어요. 세브란스 장례식장 같은 데서 가장 가까운 데를 검색하면 우리 집이 나오니까 주문을 받아서 배달도 해 주곤 했는데, 지금은 주로 파는 게 담배다 보니까 업데이트해도 별 소용 없을 것 같네요.

 

*17년 됐다고 하셨는데 혹시 17년 뒤에는

-할 거냐고요? 네, 할 거예요. (확고)

 

*어떤 모습일까요? 저는 왠지 매장이 이 모습 그대로일 것 같아요.

-맞아요. 나는 별로 바꾸는 거 좋아하지 않아서 ㅎㅎ.. 여기는 손님층이 굉장히 고급져요. 앞으로도 이런 손님층을 가지려면 여기 이 슈퍼, 이 모습일 수밖에 없을 것 같아요.

 

 

인터뷰를 간략하게 마친 후 밖에 나가서 사진을 찍는데 아주머니가 본인이 직접 발명한 거라면서 위에서 언급한 접이문을 보여주셨다. 그래서 처음 의도와 달리 준비한 코너

 

<연희슈퍼 주인아주머니의 발명품>

  • 방충망이 있는 접이식 문 : 외부에서 벌레나 쥐가 들어오는 것을 막아준다. 목재틀을 직접 공수해서 만드셨다. 돈 아끼려고 그렇게 자재를 산 건데 그 돈이면 완제품을 살 수 있었다고 한다.
  • 측면 안내판 : 정류장에 일렬로 선 버스들의 번호를 쉽게 확인하기 위해 출입문 위쪽에 부착한 버스 측면 안내판에서 아이디어를 얻었다고 한다. 골목 안으로 다 들어오지 않고도 슈퍼가 열었는지 알 수 있게 OPEN 이라고 쓰인 안내판이 부착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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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 모습 그대로’ 정도의 테마를 기획하고 무작정 찾아갔지만, 연희슈퍼는 사람으로 치면 고등학교 1,2학년 정도의 나이였다. 송창식의 곡 ‘담배가게 아가씨’에 나오는 담배가게가 이런 모습일까. 프랜차이즈가 난무하고 수시로 가게가 사라지고 새로 생기는 게 일상인 신촌에 이런 동네 슈퍼가 있다. 외진 곳임에도 꾸준히 담배 사러 오는 단골이 그래도 꽤 된다니 다른 가게들의 귀감이 될 만 하다.

목이 말라 칠성사이다 한 캔을 샀다. 아까의 인터뷰를 떠올리셨는지 아주머니가 카드로 내도 된다고 했지만 나는 굳이 현금으로 냈다. 마치 예전 법대생 손님이 된 것처럼.


위치 :서울 서대문구 연대동문길 11-30

연락처 : 070-4242-9384

운영 시간 : 8:00 AM ~ 8:00 PM 이지만, 아주머니가 피곤하신 날이면 8시 15분에 열지도 모름.

*이 기사는 새로운 잔치꾼 수습팀원 “정은정” 양의 글입니다 :D

고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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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니

곤작 쓰는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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