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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LACE 2024 · 05 · 15

222. 신촌 기억 아카이빙 – 신촌(X, Y, Z)

Editor 수풀

공간(空間) [공간]

「명사」

「2」 물리적으로나 심리적으로 널리 퍼져 있는 범위. 어떤 물질이나 물체가 존재할 수 있거나 어떤 일이 일어날 수 있는 자리.

 

다른 말로,

우리가 존재하거나 우리의 모든 일이 일어날 수 있는 자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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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간이 공간 그 자체로 기억되는 일은 거의 없습니다. 우리는 우리 각자의 고유한 기억들로 공간을 구기고 펼치고 찢고 합치고 오리고 붙이고 좁히고 넓혀 재구성하죠. 때로는 딱딱하게 만들거나 말랑하게 만들기도 하고요. 그러한 공간에 관한 우리의 기억에는 상황이 있고, 감정이 있고, 사람이 있습니다. 그 공간에서 어떠한 상황 속에 있었는지, 어떠한 감정을 느꼈는지, 누구와 함께했는지 같은 것들이요.

 

야, 거기 주소 좀 찾아봐.

응. 연세로2나길 57로 찍으면 되네.

 

거기가 어디에 있더라?

주민센터 위쪽으로 언덕 타고 올라가면 있을걸?

 

이런 도로명주소와 대략적인 위치 표지 말고도, 우리에게는 공간을 정의할 새로운 방법이 필요합니다. 공간은 누구에게나 다르게 기울고 기억되고 기록되니까요.

그래서 저는 공간을 (X상황, Y감정, Z사람)로 정의 내리려 합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서 있는 이 땅 ‘신촌’의 곳곳에는 어떤 (X, Y, Z)들이 새겨져 있을까요. 누가 신촌의 어디에서 누구와 함께 어떤 방식으로 그날그날을 기억했을까요. 과거와 현재와 미래에 우리는 신촌의 곳곳을 무엇이라 정의 내려왔고, 또 정의 내리게 될까요.

신촌의 대학가에서 청춘을 보내고 있는 이들, 그리고 저 자신에게 물었습니다.

당신의 신촌(X, Y, Z)는 무엇인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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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빨간 잠망경 앞

 

 

나의 빨간 잠망경 앞(X, Y, Z)(알딸딸함, 행복함, J와 후배들)이다.

재작년 가을쯤, 친애하는 나의 J가 아끼는 학과 후배 둘을 소개해 준 일이 있었다. 이후 자연스레 우리 넷은 자주 보는 사이가 되었고, 넷 다 홍대생이지만 J가 신촌에 살아서 그런지 신촌으로 넘어와 2차 술자리를 가지는 일도 잦았다. 작년 7월 초 어느 날도 다 함께 술을 마신 후 적당히 취해 알딸딸한 기분으로 나와 빨간 잠망경 쪽까지 걸었다. 그 앞에서 탕후루를 사 먹고 빨간 잠망경 거울 앞에서 셀카를 찍었던 기억이 난다.

그날은 연남동의 한 가게에서 타투 스티커를 사 온 날이기도 해서, 후배들의 손목에 타투 스티커를 하나씩 붙여 주었었다. 그러고는 빨간 잠망경 앞에서 플래시를 잔뜩 켜 가며 우리들 손목과 손가락과 팔뚝에 하나씩 자리하고 있는 타투를 막 찍어댔다. 당시의 웃음소리, 행복했던 기분, 들떴던 마음, 알딸딸한 취기까지. 모든 것이 어제 일처럼 선명히 기억난다. 날은 더웠지만, 이상하리만치 시원했던 그때 그 기분과 감정. 낮에도 밤에도 빨간 잠망경 앞을 지날 때마다 작년의 그날이 생각난다.

 

 

 

 

2. 신촌역 2번 출구 앞

 

 

나의 신촌역 2번 출구 앞(X, Y, Z)(반가움, 감사함, 빅이슈 할아버지)이다.

아는 사람은 알겠지만, 신촌역 2번 출구 앞에서는 종종 홈리스의 자립을 돕는 ‘빅이슈’라는 잡지가 판매된다. 좋아하는 캐릭터가 빅이슈 표지 모델(?)이 되었다는 소식을 우연히 접하고 기뻐했건만, 그건 이미 나온 지 오래된 과월호. 내심 실망하며 그것을 구할 수 있을 거라는 기대를 버리고 지내던 날들 중 어느 날, 신촌역 2번 출구 앞을 지나는데, 세상에. 죽 늘어져 있던 빅이슈 잡지들 중 내가 찾던 그 과월호가 있었다. 반가운 마음에 저벅저벅 걸어가 빅이슈 판매원 할아버지께 말씀을 건넸다.

‘이거 잡지 하나에 얼마예요?’라는 물음에 들을 수 있었던 가격은 7천 원. 생각보다 더 저렴한 가격인 것만으로도 기뻤는데, 빅이슈 판매원 할아버님은 오히려 한 명의 구매자가 생긴 것이 기분 좋으셨는지 함박웃음을 지으시며 갑자기 내게 온갖 칭찬과 덕담을 쏟아내 주셨다. 당시에는 칭찬 폭격(?)에 당황스럽고 머쓱해 할아버님께 제대로 감사함을 표하지 못했었던 것이 나름의 아쉬움으로 남는다. 요즘은 그 빅이슈 판매원 할아버님을 자주 뵐 수가 없지만, 다시 뵙게 되면 잡지 한 권을 더 구매하며 감사함을 제대로 표하리라는 다짐을 늘 하고 있다.

 

 

 

 

3. 현대백화점 앞

 

 

나의 현대백화점 앞(X, Y, Z)(처음, 생경함에서 익숙함으로, 아끼는 친구)이다.

‘얘들아 대박 소식. 나 자취해.’ 고등학교 1학년 때부터 친하게 지내던 친구들 단톡방에 올라온 한 친구의 메시지. 우리 중 처음으로 자취를 시작하게 된 그 친구의 소식에 신기하면서도 뒤숭숭한 감정을 느꼈던 기억이 난다. 마냥 애 같았던 우리도 슬 어른이 되어 가는구나 하고 내 일도 아닌 일에 괜스레 센치해졌던 그날.

친구의 자취방 소재지는 신촌이었고, 친구네 집들이를 하러 간 날은 내 인생에서 처음으로 신촌에 간 날이었다. ‘어디로 가면 돼?’ ‘어, 버스 타고 오지? 거기 현대백화점 있거든. 일단 그 앞에서 내려.’ 아직 번화가에 충분히 익숙해지지 않은 몸을 이끌고는 어색한 기분으로 현대백화점 앞 버스 정류장에서 내렸다. 커다란 건물과 그 근방으로 정신없이 바쁘게 나다니는 사람들. 그것은 신촌 현대백화점에 대한 나의 첫인상이자 신촌에 대한 나의 첫 기억이었다.

현대백화점을 지나 골목으로 들어서 조금만 걸으면 나오는 연세로9길 쪽에 터를 잡은 내 친구. 취향이 유달리 비슷한 그 친구의 집에 자주 드나들며 검정치마 3집 LP를 들었고, 함께 빙수를 먹으면서 <헤어질 결심>을 보았으며, 이소라의 노래를 듣고는 새벽까지 뜬눈으로 사랑 이야기를 나누었다. 나는 그 친구와 함께 경의선숲길을 따라 걸으며 정훈희의 <안개>를 들었고, 서강대 앞 벤치에 앉아 새벽 4시에 덜덜 떨며 40도짜리 양주에 콜라를 타 나눠 마시기도 했다. 또 한겨울의 깊은 밤, 친구의 자취방에서 노닥거리다가 답답함에 퍼뜩 뛰쳐나온 후에는 망원한강공원에서 말도 안 되는 영하 10도짜리 낭만을 즐기기도 했다.

경의선숲길, 서강대, 망원한강공원 그 친구와 함께한 이 모든 기억은 돌이켜 보면 신촌의 현대백화점 앞에서부터 시작되었다. 그저 생경하기만 했던 이 신촌이, 친구와의 추억에 이제는 더없이 익숙해진 것도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다. 신촌과 그 친구를 떠올리면 으레 그렇듯 내 기억은 자연스레 현대백화점 앞으로 회귀한다.

 

 

 

 

4. 창서초등학교 앞

 

 

나의 창서초등학교 앞(X, Y, Z)(우연, 기대감, 혼자거나 함께거나)이다.

창서초등학교 앞에서의 기억들에는 공통점이 있다. 바로 ‘우연성’. 이곳에서는 늘 무언가 우연히 행해졌다.

신촌에서 자취하는 친구와 한밤중 창서초등학교 앞을 지나는데, ‘오빠네옛날떡볶이’가 눈에 띄어버렸다. 검정색 비닐봉투에 요깃거리를 바리바리 포장해 갖고 와 친구네 자취방의 작은 상 위에 늘어 놓고는 기대감에 잔뜩 부풀어 맛있게 먹었던 그날. 급식이 맛없으면 그 친구와 함께 학교 앞 떡볶이집으로 달려가 든든히 배를 채웠던 고등학생 시절의 기억이 오버랩되었었다. 떡볶이는 언제 어디서나 우리를 즐겁게 해 주었다! 근데, 오빠네옛날떡볶이는, 진짜 특히나 더 맛있더라.

그 옆 ‘엘라도’도 마찬가지였다. J와 함께 ‘투비위드유’에 처음으로 가게 된 날, 투비위드유는 외부 음식 반입이 가능하다는 어떤 블로거의 이야기를 보고 무얼 가져갈지 고민을 잔뜩 했었다. 이미 배를 충분히 불린 뒤였기에 가벼운 것이 필요했고, 결국 젤라또를 먹기로 했다. 그 길로 우리는 엘라도로 향했다. 젤라또를 먹어보자고 갔건만 손에 들고 나온 것은 커스터드와 소르베였지만, 아무렴 어떤가. 우연히 맛보게 된 커스터드와 소르베도 기대에 부응할 만큼 무지 맛있었고, 나는 엘라도를 사랑하게 되었다.

그래서 얼마 전, 우연히 창서초등학교 앞을 지나다 눈에 띈 엘라도에 다시 들렀다. 이번에는 혼자서. 익숙한 것을 좋아하는 나는 저번처럼 그린티 커스터드와 레몬 소르베를 사 먹었다. 신기하게도 예전에 처음 먹어보았을 때보다 더 맛있었다. 이유는 불명이다. 진짜로 더 맛있어졌을 수도 있고, 기분 탓이었을 수도 있겠지. 다만 이것 하나는 확실하다. 이날로 나는 창서초등학교 앞에서의 우연성에 내 기억을 한층 더 쌓아 올리게 되었다는 것.

 

 

 

 

5. 연세대학교

 

 

나의 연세대학교(X, Y, Z)(산책과 선선함, 들뜸, 사랑하는 이)이다.

남의 학교에 이렇다 할 추억이 있다는 게 웃기긴 하지만, 연세대학교는 좀 다르다! 산책하기 좋은 환경이었기 때문. 애인과 함께 신촌의 술집에서 배를 채운 뒤, 귀가하는 버스를 타기까지 시간이 애매하게 뜨면 연세대학교로 향하곤 했었다. 정문 초입의 벤치에 앉아 하교하는 연세대학교 학생들을 죽 둘러보기도 하고, 학교 안에서 우르르 쏟아져 나오는 그들을 거슬러 산책하며 연세대학교 안쪽으로 향하기도 했었다.

연세대학교를 산책할 때면 거의 매번 날씨가 좋았다. 선선하게 부는 바람에, 신촌의 밤공기까지 모두 완벽했다. 어느 날은 자정이 다 되어가던 탓에 학교 안으로 들어가는 이도, 학교에서 나오는 이도 없어 이곳이 마치 우리들만의 소유물인 것처럼 산책로 위에서 괄괄하게 굴었던 기억이 난다. 어쩌면 이곳은 내가 우리 학교 다음으로 애정을 붙일 만한 학교일는지도 모르겠다.

 

 

 

 

6. 명물길

 

 

나의 명물길(X, Y, Z)(기다림, 유치함과 한심함, 혼자)이다.

봄이면 벚꽃이 흐드러지게 피고 수많은 청춘이 오가는 명물길이지만, 나는 유독 이 거리를 지날 때면 다시 느끼고 싶지 않은 감정이 종종 떠오른다. 지금 빨간색 외관의 베이글 가게가 자리하고 있는 명물길의 어느 지점에는 몇 달 전까지만 해도 노란색 외관의 바게트 가게 ‘르바게트 메종’이 있었다. 모처럼 신촌에 온 날, 어쩌다 르바게트 메종에 들렀고, 혼자 카페에 앉아 있으니 떠오르는 이가 있었다. 그이는 마침 근처에 사는 사람인지라 어쩌면 내가 부르면 모든 것을 내팽개치고 와 주겠지, 하고 막연한 기대를 했던 것도 같다.

하지만 그 사람에게는 분명히 다른 일이 있어 이곳으로 와 주지 못할 것을 잘 알고 있었다. 그 사실은 분명 내가 제일 잘 알았다. 그럼에도 나는 혼자만의 투정을 부렸다. 보고 싶은데 오면 안 되나? 카페 문이 닫힐 때까지 여기 있으면 일이 끝나고 와 주지 않을까?

스스로도 너무나도 유치하고 한심한 투정임을 알기에 속으로만 삼켰다가, 참지 못하고 결국 입밖으로 내뱉었다. 그리고 그것은 독이 되어 그 사람에 대한 약간의 원망으로까지 번져나갔다. 마음이 나와 같지 않나? 틀린 짓인 줄을 알면서도, 카페에 앉아 있던 몇십 분간 나는 입술을 잘근잘근 씹으며 기다림과 원망과 스스로에 대한 단죄를 되풀이했다.

명물길에 좋은 추억이 없는 것은 물론 아니다. 하지만 모두가 즐거워 보이는 명물길, 특히 르바게트 메종이 있던 그 자리를 지날 때면, 속상하고 찝찝하고 또 꽤 유치한 마음을 가졌던 그날의 내가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일인가 보다.

 

 

 

 

7. 신촌 에스컬레이터 & 신촌문화발전소 길목

 

 

나의 신촌 에스컬레이터(X, Y, Z)(목전에 둔 만남, 설렘, 혼자)이다.

신촌 에스컬레이터를 처음 마주한 건 신촌이라는 장소에 처음 오게 된 날보다도 훨씬 더 뒤의 일이었다. ‘이게 뭐지?! 신촌에 이런 게 있었다고? 길 한복판에 왜 이런 게 있지?’ 싶었지만 어느새 이 신문물(?)의 편안함에 익숙해져갔다.

좋아하는 이의 집은 이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올라가 몇 분만 걸으면 나오는 주택가에 있었다. 편안함도 편안함이었지만, 에스컬레이터에 다다랐다는 것은 그 사람을 보기까지 몇 분 남지 않았다는 뜻이기도 했기에 나에게 이곳은 늘 설렘의 장소였다.

‘목적지까지 OOO 미터 남았습니다.’ 에스컬레이터는 나만의 내비게이션이 되어 주었다. 윙-윙-거리는 기계음에 몸을 실은 나의 눈높이가 조금씩 조금씩 높아질 때면 마음도 조금씩 조금씩 더 부풀곤 했다.

 

 

나의 신촌문화발전소 길목(X, Y, Z)(잔치와 노을, 즐거움, 혼자)이다.

“함께 벌입시다, 잔치!” 신촌문화발전소로 향하는 길목은 잔치 회의를 위해 거쳐 가야 하는 일종의 통로다. 가파른 언덕 때문인지 이곳을 오르는 몸은 늘 피로하지만, 회의를 하다 보면 마음만큼은 늘 저 위에 둥실둥실 떠 있게 된다. 그래서인지 이 길목을 지날 때면 항상 피곤함보다는 즐거움의 감정이 더 크다.

특히나 이 길목에서 보이는 노을은 오늘 내가 지고 온 모든 걱정을 잊게 할 만큼 아름답다. 언젠가 높은 곳에서 내려다보는 신촌이 그리울 때면, 노을 지는 신촌의 풍경이 떠오를 때면, 또 잔치가 문득 생각날 때면 나는 자연스레 이 길목을 찾게 되겠지. 길거리는 아무나와 누구나의 추억이 묻어 있는 공간이기는 하지만, 이 길목만큼은 나와 잔꾼들이 가장 깊이 새겨져 있는 곳으로 남겨 두고 싶다!

 

*노을 사진은 도리 에디터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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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촌의 곳곳에서 울고 웃던 이들의 (X, Y, Z)는 물론, 아주 사적입니다.

그렇지만 때로는 아주 사적인 각자만의 기억이 가장 중요하게 여겨져야 하지 않을까요.

우리 각자의 기억들이 모여 과거와 현재와 미래의 신촌을 완성해 왔고, 또 완성해 나갈 테니까요.

우리와 당신이 없었다면 이 공간도 결코 이토록 다채롭지 않았을 테니까요.

 

그렇다면, 여기까지 읽어 준 당신에게도 묻고 싶습니다.

당신의 신촌(X, Y, Z)는 무엇인가요.

 

 

 


신촌

영업 시간 | 당신이 신촌에 발을 딛고 있는 모든 순간

문의처 | 당신의 친구, 동기, 선배, 후배, 연인, 가족, 반려동물, 그리고 당신 자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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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디터 수풀입니다. 언제나 '그럼에도'를 말하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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