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3. 카레, 히메지 2호점, 쉬어가는 곳
어, 여기야, 여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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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 찾아왔네! 이렇게 만나는 건 오랜만이지? 갑자기 나올 수 있냐고 연락받아서 놀랐겠다. 네가 나와줘서 다행이야. 별일은 없지. 그냥 보고 싶어서 보자고 한 거야.
요즘 어떻게 지내?
네 인스타그램 봤어. 바쁜 것 같더라. 오늘 같은 5월의 끝자락이면 괜히 마음도 싱숭생숭, 널 멀리서만 지켜봐야 할 것 같은 기분이 들어서 갑자기 불렀어. 내가 아직은 널 이렇게 충동적으로 불러낼 수 있는 사람이란 걸 증명받고 싶었던 것 같기도 하고.
걸어가면서 이야기할까?
반소매 입었네! 이젠 정말 밤에도 반소매가 춥지 않은 날씨인 것 같아. 너, 5월은 어땠어?
계절도 옷을 갈아입고, 과제는 끝도 없고. 해야 할 일도 밀려오고. 몸이 바빠지니까 마음도 복잡해지는데, 매일 쓰러지듯 잠들다가도 이렇게 평생 살아가야 하나 싶고. 적어도 내가 아는 너는 그런 생각도 하며 지냈을 것 같네.
너는 누구보다 강인한 사람이지만 엄청 여리기도 하잖아. 나는 가끔 너를 책을 읽듯 분석해 보고 싶고는 했거든. 너라는 사람은 무엇으로 이루어진 걸까, 무엇을 가지고 살길래 이토록 단단한 동시에 연약한 매력을 가지고 있는 걸까, 하고. 나는 그런 너라는 복잡함을 뚫고, 네게 가장 소중한 사람이 되고 싶었지. …부끄럽네.
근데 오늘은 그냥, 맛있는 밥 한번 먹자고 부른 거야. 내가 아는 쉬어가기 좋은 공간이 있거든. 이 시기면 가장 복잡하고 힘들다는 거, 누구보다 내가 잘 아니까. 그래서 오늘 메뉴는 뭐냐고?

히메지의 기본 카레 라이스
카레, 좋아한다고 했었나?
나는 카레를 그렇게 좋아하는 편은 아니거든. 근데 여기만 오면 집밥 먹는 것 같은 기분이 들더라고. 그냥, 그런 곳 있잖아. 마음이 편안해지는 곳. 작은 공간인데 생각보다 무심하고 다정하게, 그래서 담담하게 위로해 주더라. 오늘은 나랑 맛있게 먹고, 다음엔 혼자 와도 좋을 것 같아.
나도 카페를 가려다 우연히 발견한 곳인데, 그때부터 꽤 자주 찾는 곳이 되었지 뭐야. 알고 보니 연희동에 여기 말고도 가게를 두 개나 더 운영하는 사장님이 하시는 곳이더라고. 이 골목을 따라 쭉 걸으면, 저기 노란 간판 보여? 히메지 2호점. 오늘 우리가 갈 곳이야.

카레, 히메지
이게 보이면 도착이야! 난 이런 단순하고 존재감 넘치는 입간판들이 그렇게 좋더라. 요란하지 않아도 나 여기 있다고 말하고 있는 느낌이 들잖아. 밖에서 봐도 가게가 꽤 아담하고 귀여워. 들어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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뭐 먹을래? 카레는 라이스나 우동 두 가지 중에 선택할 수 있어. 나는 카레 우동도 맛있더라. 알잖아, 나 면 좋아하는 ‘면순이’인 거. 내 선택은 항상 기본 카레 우동에, 연두부나 가라아게야. 오늘은 너랑 같이 왔으니까 둘 다 시켜서 나눠 먹어야지. …뭐? 네 메뉴도 골라달라고? 그래!

그럼 너는, 새우 카레 라이스 어때? 큼지막한 새우튀김이 올라가 있어. 바삭바삭! 그런 소리가 날 것 같기도 하고. 그리고 힘낼 땐 든든하게 밥을 먹어야지. 한국인은 아무래도 밥심이니깐. 강황으로 노랗게 물들인 밥이 카레랑 찰떡이거든. 음… 그리고 우롱차도 하나 시켜 나눠 마실까? 우롱차를 캔으로 팔아. 내가 아주 좋아하는 포인트야.

캔 우롱차.
탄산음료 마시기는 싫고, 그냥 물 마시기에는 아쉬울 때.
아까 하던 얘기나 계속할까! 너는 어떻게 지내는지 물었지.
그건 사실 네가 너무너무 궁금해서 그런 것도 있지만, 뭐랄까. 네가 해주는 네 이야기를 듣고 싶은 것 같아. 네가 표현하는 일상, 어떤 단어와 어떤 표정으로, 어떤 마음을 선택해서 말하는지. 그런 너는 어떤 감정으로 매일을 살아가는지가 궁금했던 것 같아. 이렇게 말하면 네가 좀 부담스러우려나.
음, 내가 보기엔 어떠냐고? 내가 보는 너는…
너는 늘 바쁘게 살고 싶다고 했었잖아. 아니, 열심히 살고 싶다고 했었나?
근데, 가끔은 이렇게 소박함을 찾을 필요가 있지 않나 싶어. 의도적으로 브레이크를 걸어주는 것처럼 말야. 나는 그런 날이면 마냥 집에 있기보다는 익숙한 바깥 공간에 가고 싶어지더라고. 어, 맞아. 나 진짜 집순이인데. 웃기지.
그럴 땐 마냥 걷는 것 같아. 신촌은 좀, 한여름 같은 곳 아냐? 지글지글 끓고, 웃고, 터지는 곳. 거기서 조금만 더 걸으면 연희동 같은 공간이 나오는 게 난 가끔 신기해. 여기라고 항상 조용한 건 아니지만. 그래도 히메지에서는 운이 좋으면 여유롭고 조용하게 한 끼를 먹을 수 있거든.

아담한 내부.

가게 크기는 작지만 최대 4인까지 앉을 수 있는 테이블이 있어.
덕분에 가끔 엄마아빠 손을 잡은 아기 손님을 보기도 해.
혼자 급히 밥을 먹는 사람 옆에 느긋하게 한술을 뜨는 사람. 그 옆에 단란한 가족. 그리고 그다음엔 손을 꼭 잡은 연인이나 눈을 맞춰 웃는, 너랑 나 같은 친구들. 조용하고 소박하게 한 끼를 먹을 수 있는 곳이라는 감상이 드는 공간이야. 그래서 늘 목적지 없이 걷다가도 여기에 도착하더라. 아까도 말했지만 난 카레를 그렇게 좋아하는 사람이라고는 생각해 본 적이 없는데, 나도 모르게 이곳을 계속 찾아오게 돼. 또 그러니까 카레가 좋아지기도 하고. 좋아하는 건 사실 그렇게 단순한 거잖아. 반복하면 할수록 깊어지는 마음.
어라, 얘기하다 보니 음식이 다 나왔네.

가쓰오부시가 잔뜩. 쯔유를 휘릭, 두른 간단하고 맛있는 연두부.
혹시 가쓰오부시 좋아해? 난 이 연두부 메뉴가 참 좋더라. 몽글몽글, 부드러운 연두부와 입안에서 퍼지는 가쓰오부시의 짭짤한 향. 카레가 조금 매콤한 편이라 난 늘 연두부를 한 입 먼저 먹곤 해. 먹기 전에 위장을 보호하는 게 ‘먹짱’의 자세니깐. 너도 한 입 먹어봐!

너 를 위 한 든 든 한 새 우 카 레 라 이 스 !
여기 카레, 되게 맛있지. 솔직하게 나는 처음 먹었을 땐, 특별한 게 없는 ‘그저 카레’라고 생각했거든. 근데 그게 사실 매력이었던 거야. 어느 날엔 ‘그저’ 존재하는 것조차도 버거울 때가 있으니까. 그렇게 꿋꿋하게 ‘그저’ 존재하는 카레가 흔한 건 아니더라고. 어디 자랑해야 하는 인위적인 꾸밈새가 아니어서 마음이 더 편안하고.
내가 먹어왔던 많은 카레가 생각나기도 해. 엄마가 해줬던 버터 향이 가득한 카레, 급식실에서 먹던 국물 가득한 카레, 지금 다니는 대학교 앞에 자주 가는 카레집도…(이렇게 늘어놓으니까 사실 나, 카레 좋아했나?) 사실 그것들은 돌아보면 어디 자랑할 만큼 삐까뻔쩍한 멋진 모습을 가진 건 아니지만, 하나 같이 맛있기만 했었거든. 지나고 보면 그런 것들이 더 오래 기억에 남기도 하는 것 같아. 그렇게 생각하면 소소하고 소박한 것들이 사실 인생을 지탱할 만한 기둥이 돼주는 게 아닌가, 싶기도 하고.

큼지막한 가라아게.
내가 진짜 좋아하는 가라아게도 빼먹을 수 없지. 우리 저번에 갔던 학교 앞 술집에서도 가라아게 먹었었잖아. 거기도 맛있었는데. 여기는 또 다른 매력이야. 큼지막한 닭고기에 가득 스며들어 있어서, 무심코 한 입 먹으면 입술이 다 덴다구. 조심해. 나는 여기 가라아게를 너무 좋아해서 혼자서 카레랑 시켜서 다 먹은 적도 있어. 그때 배가 불러서 터질 뻔했는데… 오늘은 같이 먹는 네가 있어서 다행이다. 덕분에 이런저런 이야기도 하구.

근데, 혹시 눈치챘어? 여기 일하시는 분들은 일본어를 하시더라고. 아마 일본인 점원분들이 계시는 것 같아. 그래서일까, 갑자기 여행 온 듯한 기분이 들기도 하지. 그래, 맞아. 너한테도 그런 기분을 선물하고 싶었어.
사실, 말은 못 했지만… 요즘 너, 되게 바쁘고 힘들어 보였거든. 가끔 연락하고, 간간이 올라오는 SNS 게시물을 보는 게 다지만. 그래도 우린 서로 알 수 있는 게 있잖아. 네 어떤 순간은 온전한 공백으로, 소소한 음식으로, 노란 카레만으로 존재했으면 좋겠다, 그런 생각을 했지 뭐야. 나랑 만나는 건 덤이고.
그런 순간에 히메지는 최고의 선택인 것 같아. 여기 카레는 아주 특별하진 않은 것 같아도, 자세히 음미하다 보면 섬세하고 꼼꼼한 면이 있거든. 오랜 시간 만들어진, 내게 오기 위해 꾸준하고 수많은 정성을 거친 카레라는 느낌이 들지. 잘게 다져진 양파, 브로콜리, 그 사이에 큼지막하게 썰린 감자도. 계속 먹다 보면 슬며시 느껴지는 매콤함까지. 입안이 카레로 가득해질 때쯤 입가심으로 우롱차를 한 모금, 연두부를 한 입 퍼먹어주면 다시 전투력이 원상 복귀. 내가 21살에 히메지 카레 우동과 가라아게를 전부 먹을 수 있었던 이유를 알겠지…

기본 카레 우동과 가라아게의 조합.
어느새 그릇을 다 비웠네! 네가 잘 먹는 모습 보니 좋다. 바로 옆에는 포장을 전문으로 하는 공간이 있더라고. 항상 올 때마다 다음에는 포장해 봐야지, 하곤 해. 여기까지 오면 끝내 참을성을 발휘하지 못하고 매장에 들어가서 먹어버리지만.

포장을 전문으로 하는 공간. 식사를 할 수 있는 홀 바로 옆에 있어.
슬슬 일어나자. 못다 한 이야기는 카페 가서 할까? 그때 만난다던 그 사람은 어떻게 됐는지 엄청 궁금하거든! 이제 네가 이야기를 해 줄 차례야. 요새 관심사가 뭔지, 네가 찾은 일상은 어떤 형태를 띠는지, 나의 히메지처럼, 네 일상 속 어떤 소박함이 있었는지도 전부 다.
내가 또 커피 맛집을 알지. 오늘 나오기 전에 인스타그램을 좀 찾아봤거든.
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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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메지는 그 자리에서 꼿꼿하게 우리를 기다려주더라.
노란 카레가, 쉴 곳을 찾는 우리를 기다리고 있어!
어이, 거기 너!
나랑 맛있는 카레 한 끼 먹자. 서로 바쁜 일상에 위로가 되어주자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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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메지 2호점
서울 서대문구 연희로11길 41
영업시간 월-금 12:00-21:00 (매주 수요일 정기 휴무)
토-일 13:00-2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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