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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RT 2024 · 11 · 25

득의성상

Editor 고골리

       

        그런 날이 있지 않은가. 누구랑 뭐라도 얘기하면 좋겠는데, 마침 불러낼 사람이 한 명도 없는 그런 날 말이다. 하긴 요즘이야 기술이 좋아져서 chat-gpt와 대화하면 되는 것 아니냐고 반문할 수도 있겠다. 하지만 이미 영화 <Her>을 감명 깊게 봐 버린 나로서는 그럴 수 없다. 기계와 대화라니. 그것도 인간적인 교감을 기대하면서 몰두하라니. 나를 상대할 때 녀석은 그저 귀찮은 정보들을 보기 좋게 정리해 주는 시종의 역할에 머무는 것에 만족하는 것이 좋을 터다.

 

        그렇다고 벽지의 문양이나 바라보면서 저건 또 무슨 그림일까 하는 공상에 젖어 하루를 마무리하기엔 너무 아쉽다. 우리는 인구 천만의 격동하는 도시 서울에서, 소문난 잔치에 먹을 것 없다는 옛말을 정통으로 반박하는 신촌에 있지 않나! 그러니까 그런 날에는 미술관에 가는 것이 제격이다. 거기엔 더할 나위 없이 흥미로운 대화 상대들이 우리를 애타게 기다리고 있으니 말이다. 그러나 말 좀 나누겠다고 큰 돈을 풀 수는 없는 법. 여기서 ‘큰 돈 풀기’란, 통장의 잔고가 줄어드는 모든 행위의 집합을 뜻한다. 그래도 걱정 하덜덜 마라. 예술이란 원래 배고픈 일이다. 예술가들 또한 주머니 사정 걱정에는 이미 도가 튼 이들이란 거다. 감수성 촉촉한 그들은 우리의 주머니 사정 또한 넉넉하게 걱정해 주고 있으니, 그 결과물 중 하나가 <황창배 미술관>이다.

 

 

        값싸게 떡볶이로 배 채울 수 있는 홍대 삭의 뒷골목. 그곳에 가고 나서야 이번 전시 제목이 <득의성상>임을 알았다. 상대의 이름을 알았으니, 대화는 벌써 시작하고도 남는다. 득의성상(得意成像) 이라니, 이게 무슨 어불성설인가. 성상 씨, 뚫린 입으로 어디 말 좀 해봐. 당신도 익히 알겠지만, 동양에서는 흔히 “득의망상(得意忘像)”을 덕으로 삼지 않던가? 그러니까 예를 들어 보자면, 내가 손가락으로 달을 가리켜 보았다고 치자. 크고 노란 달이 보일 테지. “아, 달 참 밝다!” 하면서 당신은 이제 달을 바라볼 거고, 더 이상 내 비루한 손가락 따위는 신경 쓰지 않겠지. 의미를 알게 되었으니 그 수단, 혹은 이미지는 이제 잊어버림이 마땅하다는 거요. 그런데 득의성상은 그 과정을 거꾸로 세운, 떨어진 폭포수가 역행하여 다시 골짜기 위로 솟구친다는 말과 같지 않은가. 이치를 알게 된 이가 굳이 다시 상(像, 이미지)을 세우는 헛수고를 어째서 저지르겠나. 정리해 보자면 대충 이런 내용을, 짐짓 점잔을 빼면서 그에게 전달했다.

 

        성상 씨는 대답하지 않았다. 아마도 아직 자기 얘기는 시작도 안 했는데, 대뜸 내가 이치를 따지니 퍽 속상했나 보다. 엄동설한에 그의 대답을 마냥 기다리기에는 무리다 싶어 안으로 향했다.

 

 

       그러면 그렇지. 입구를 정면으로 바라보고 있던 이 세 그림이 성상 씨의 첫 번째 대답이렸다. 수묵화에는 나도 꽤 조예가 있다. 그림은 그리고 싶은데 내 성질 때문에 색칠이라는 귀찮은 일을 도저히 완수할 수 없음을 알았던 나는, 붓과 먹만 있으면 만사가 해결되는 이 행위를 참 좋아한다. 이렇게 실없는 운을 띄워 보면서 그와 대화의 물꼬를 틔워 보았다. 그는 내가 수묵화를 좋아하듯 한자를 좋아했다. 특히 한자의 조형 원리에 관심이 있다고 했다. 글자와 그림의 경계가 희미해지는 그 순간, 그 찰나에 굉장한 만족감을 느낀다고. 수풀 림(林) 자를 반복해서 써 보면 정말로 우거진 숲이 된다고. 또 이것도 봐 바. 대나무를 정성스럽게 그려 보면 필경 대나무 죽(竹)과 닮지 않았냐고 껄껄 웃었다. 자세히 보면 여기에 흙(土)의 형상과 위(上)의 관념까지 중첩되어 있으니, 대나무가 땅에서 솟아 위로 향하는 심오한 본질까지 단박에 표현할 수 있다고 으스댔다. 좀 이상한 놈이다 싶었다. 그럼 이 산은 뭐냐고 물으니, 산은 그냥 산이라고 했다. 성상 씨에 대한 평가가 확신으로 굳어갔다.

 

        성상 씨는 꽤 영민한 두뇌를 가진 것이 분명했으니, 그가 내 태도의 변화를 알아차리고 재빠르게 농담 비슷한 것을 시도했기 때문이다.

 

 

어이가 없었다.

이게 도대체 뭔데.

내가 한자를 잘 안다고 어디서 큰소리치고 다니지는 못해도, 요즘 애들 코딩 배울 시간에 한자 받아쓰기로 알알이 채워낸 공책만 수 권이다. 그런데 이런 엉터리 글자는 일찍이 본 적이 없다. 그렇게 역정을 냈다.

 

       

 

 

       성상 씨는 태연하게 글자를 만드는 일은 전혀 어려운 일이 아니라고 했다. 캠밸 수프 “캠” 자와 치토스 “치” 자라고. 각자 밀가루 면() 자와 범 호(虎) 자를 자기 식대로 비틀어 봤다고, 자신의 재치가 어떠냐는 식으로 꺼드럭댔다. 그러면서 나처럼 상상력이 메마른 딱딱한 사람은 어떨지 몰라도 창작의 유희를 아는 위인이라면 지금쯤 본인도 몇 자 새로 탄생시켜 볼 흥분과 기대감에 휩싸일 것이라고 했다. 다른 것은 몰라도 따분한 대화 상대를 만나는 일은 정말 최악이다. 나는 그것을 도저히 참지 못한다. 그런데 지금은 내가 그 모욕적인 대상으로 여겨지고 있었던 거다.

 

        수프 깡통과 치토스를 표현의 객체로 삼은 것이 참 수상하다. 작고 하찮은 존재들 아닌가. 그런데 당신은 일부 초라한 공산품 곁에 거대하고도 숭고한 자연을 배치시켰다. 그것도 전혀 다른 화풍으로. 게다가 자본주의의 부산물에 불과한 물품들에 고유의 글자까지 부여하면서, 존재의 격상을 시도하고 있다. 작은 것과 큰 것이 대동소이하다고 말하고 싶은 것이 아닌가? 만일 그러하다면 이는 불교에서 말하듯이 영겁 속에 찰나가 있고 찰나 속에 영겁이 있다는 만고불변의 지혜를 담고 있는 듯하다. 일단 잘 알지도 못하는 어려운 개념들을 점철해 가며 칭찬을 해 두었다. 우스운 꼴이 되는 것이 따분한 것보다야 백배 낫기 때문이다.

 

       

       그와 나눈 마지막 대화는 이 흘러가는 글자들에 관한 것이었다. 정교하게 여러 재질의 판을 겹쳐 둔 것으로 보였다. 그로 인해서 바라보는 각도에 따라 보이는 글자들이 달랐으며, 심지어 특정한 각도에서는 모든 것이 불투명해져 아무것도 알아볼 수 없었다. 나는 그가 말하는 바를 적확히 이해했다고 자신한다. 득의망상이 도대체 다 무슨 소용인가! 그래 깨우친 자는 기뻐서 눈물을 한 바가지 쏟아낼 것이다. 이제 다 알게 되었으니 상을 다 지워 버려도 문제가 없겠지. 그런데 나머지 남겨진 이들은, 아직 뭐가 뭔지 모르겠는 우리는 불투명한 망상만을 바라보며 애를 써야 하지 않나. 서로 바라보는 층위가 전혀 다르니 대화할 수도 없고 영 재미없는 꼴만 남는다. 성상 씨는 그래서 득의망상하지 않고 득의성상 한다. 우리들이랑 몇 마디 나누는 유희를 위해서. 나 또한 요즘 기억이 예전 같지 않다. 소주 씨와 자주 대화하다 보니 득의망의하는 경우가 잦아졌다. 별 대단한 것을 알게 된 것은 아니지만 나누고 싶은 말이 있어 나도 이렇게 상(像)을 남겨 본다.

 

 

 

황창배미술관

서울특별시 서대문구 연희동 188-80번지

11:00~19:00, 일요일 휴무

작품은 첫 사진부터 마동원, 지민석, 신학 작가님.

참 재미있으니 꼭 가 보길 바란다.

 

고골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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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골리

잔치의 시선으로 신촌의 장면과 사람, 장소를 기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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