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이지 않는 모습들
서울 중서부에 위치하여 주변에 대학만 4개가 넘는 이곳, 젊음의 거리라고도 불리는 이곳.
여기는 ‘신촌’ 입니다.
11월 중순으로 접어들면서 날씨가 제법 쌀쌀해졌습니다.
추위는 청년들의 열정을 시기하는 듯 거세지고 낮의 시간을 줄여가며 열기를 조금씩 식혀 나갑니다.
바람이 거세지며 낙엽과 함께 섞여 날아가는 무언가가 곳 곳에 보입니다.
바로 ‘쓰레기’ 입니다.
겨울이 되어가면서 바람 때문인지 유난히 쓰레기들이 잘 보입니다.
최고의 대학가 신촌과 가장 낮은 곳에 있는 쓰레기, 이 둘의 이야기 ‘잔치 1일’ 에서 지금 시작합니다.

아침 10시.
겨울로 들어스며 해를 볼 수 있는 시간이 짧아졌습니다.
가장 활기찰것 같은 오전에는 의외로 조용합니다. 학생들이 다 수업을 듣고 있어서 일까요?
누군가 정리를 끝낸지 얼마 안 된 듯 거리는 잘 정돈되어 있고 깨끗하며 여유롭습니다.

오후 5시.
엊그제까지만 해도 해가 중천에 떠 있던 것 같은데 벌써 하늘이 노을로 물들기 시작하네요.
조용했던 신촌 거리에 햇빛은 떠나가고 그 빈자리에 북적임이 들이찹니다.
따끈한 음식들을 파는 주변 노상점들도 역 근처를 둘러싸며 하나 둘 늘어갑니다.
그 수에 맞추듯이 쓰레기도 하나 둘 늘어가기 시작합니다.

저녁 7시.
밤이 더욱 일찍 오면서 학생들의 겉옷도 두꺼워졌습니다.
청년들은 길거리 버스킹을 구경하기도 하고 포장마차에서 김 나는 꼬치를 먹으며 일찍 찾아온 밤을 즐깁니다. 학생들이 즐길 수 있는 진짜 시간이 시작된 겁니다.
그리고 쓰레기의 시간도 시작되었습니다.

큰 길거리.
사람들이 많이 다니는 큰 거리에는 의외로 쓰레기가 많지 않습니다. 눈에 띄는 곳은 한눈에 봐도 깔끔하다고 생각이 드는 거리입니다. 그리고 길목마다 쓰레기통이 있어서 몇 발자국만 더 가면 자신의 무거운 짐을 해결할 수 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다니다 보니 꽤 신경 써진 듯 쾌적한 거리를 볼 수 있었습니다.



골목.
하지만 조금만 눈길이 띄지 않는 곳으로 시선을 돌리면 상황은 달라집니다.
하나하나 낱개에서 한 무더기, 두 무더기로 골목으로 들어갈 수 록 쓰레기의 양은 점점 늘어 갑니다.
쓰레기 무단 투기 금지 표지판이 무색할 만큼 그 앞에는 여러 종류의 쓰레기들이 쌓여있습니다.
자세히 살펴보면 버린 사람을 추리 할 수 있을 정도로 적나라한 생활용품과 쓰레기들 쉽게 볼 수 있습니다.
무단 투기를 하려는 사람들은 눈에 잘 띄는 행동을 취합니다. 주변을 힐끔힐끔 쳐다보고 눈치를 보는 둥 주머니를 만지작거립니다. 그런 사람들은 쓰레기를 주머니에서 밖으로 꺼냈다가도 촬영하는 듯한 모습을 보면 황급히 다시 주머니로 쓰레기를 집어넣습니다.
이런 행동은 하면 안 된다는 사실을 알아서 일까요? 어쩌면 작게나마 남아있는 양심 때문일까요?

밤 11시40분.
자정을 넘어가면 깨끗했던 큰 길거리도 결국 쓰레기와 한 몸이 되어버립니다.
촬영하는 중간에도 한 사람이 순식간에 쓰레기를 버리고 갑니다. 일반 쇼핑백 한 봉지에 꽉 차게 모아 자연스럽게 버리는 모습은 자주 해본 듯 익숙해 보입니다.
이 쓰레기들은 강풍과 함께, 빗물과 함께 이리저리 날아가고 이동하며 어느 순간 신촌을 벗어나 다른 지역으로 건너갑니다.
쓰레기는 계속해서 나오고 또 그 빈자리는 다시 새로운 쓰레기로 채워지겠죠…

아무 일 없었던 듯 다시 여유로움을 되찾은 아침의 거리.
다음날 아침이 되면 거리는 다시 깨끗해져 있습니다.
밤새 정신없이 얽혀있던 쓰레기는 재활용되어 있고, 길거리에 흩날렸던 전단지는 사라져 원래의 깨끗한 바닥의 모습으로 돌아왔습니다.
해가 떠올라 세상이 보이는 아침과 해가 저문 뒤 보이지 않는 밤. 그 차이는 생각보다 컸습니다.
그러나 아침이 되면 우리는 다시 일어나서 같은 골목을 지나고 익숙한 길을 걷듯이 이 밤과 아침의 이질적인 모순을 어느새 당연하게 생각하며 일상을 보냅니다.
쓰레기를 무단투기한 사람이 사람들이 많이 돌아다니는 공간에서 대놓고 버렸을까요?
쓰레기를 치우는 사람을 잘 알고 있다면 쉽게 쓰레기를 버렸을까요?
내 집 앞이었다면 어떻게 행동했을까요?
신촌은 한 공간이지만 큰 거리와 골목으로 나눠집니다. 그리고 쓰레기가 이 둘 사이에 양심의 경계를 짓습니다.
시야가 트인 큰 거리에서는 타인의 시선을 느껴가며 깨끗해 보이게 치운 척합니다.
하지만 가려져 있는 골목에선 나밖에 없다는 듯이 쉽게 쓰레기를 내팽개쳐버리죠.
이 경계는 우리들이 만들어갑니다.
오늘도 그 경계를 내 손으로 그어버린 건 아닌지 다시 생각해보는 것이 어떨까요?
보이지 않는 공간, 보이지 않는 우리의 양심.
신촌에서 24시간 이상 ‘잔치 1일’ 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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