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ELCOME TO ZANCHI! · 신촌을 사랑하고, 추억하고, 기록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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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RT 2025 · 10 · 06

채도(債道), 신촌의 색을 찾아서

Editor 왕 잔치
01. 파랑

파란색. 450~500 nm가량의 파장을 갖는 색으로, 보라색 다음으로 빛의 굴절률이 크다. 하지만 파장이니 굴절률이니, 머릿속으로는 잘 그려지지 않는 것 같다. 역시 숫자는 색을 표현하기엔 너무 정적이고 추상적이다. 조금만 더 감성을 가지고 색을 표현해 보자. 

우리는 어쩌면 파란색에 감싸 안겨 살고 있는지도 모른다. 저 높다란 푸른 하늘 아래 우리는 숨을 쉰다. 또한, 지표면의 70.8%는 푸른 바다로 덮여 있다. 발밑 세상이든 머리 위 세상이든 전부 푸르르다. 그러나 실제로는 하늘과 바다는 푸른색이 아니며, 단지 빛의 산란 때문에 푸르게 보일 뿐이다. 아무렴 어떤가, 우주에서 본 우리네 세상은 창백한 푸른 점이었는걸!

파란 구의 세상에서 살고 있기 때문일까, 파란색을 향한 우리의 사랑은 열렬하다. 자유, 신뢰, 이성, 겸손, 고귀함과 차분함 등 좋은 이미지란 이미지는 전부 파란색에 붙여준 것 같다. 그뿐인가, 파란색은 감정의 이름(blue)이 되기도 했다. 

이 사랑스러운 색깔을 이곳저곳에 칠하고 싶었겠지만, 파란색 염료는 원래 무척이나 귀했던 존재였다. 청금석으로 만든 울트라마린 블루 염료는 그 엄청난 가치 때문에 성모 마리아의 채색에만 간간이 사용될 정도였다. 그러나 여전히 분배의 불균형은 존재한다만, 인간 역사상 가장 풍요로운 시대인 21세기의 신촌에서는 파란색이 원 없이 사용되고 있었다. 

이른바 대학 밀집 구역인 신촌은 덕분에 젊음의 거리라 불리게 된 지 오래다. 젊음은 예로부터 靑春, 푸른 봄이라고 하지 않았던가. 파란 구의 세상에서 가장 파란 도시 신촌. 이곳에서 찾은 색을 보고해 보겠다.

 

 

 

 

먼저, 이화여대 정문 바로 옆 공사장에서 발견한 파란색이다. 요새 정문 근처에서 공사가 여러 진행되고 있다. 코로나 이후 유동 인구가 늘어서 그런 것 같기도 하다. 

어쩌면 저기에 오피스텔이 들어설지도 모른다는 소식을 전해 들었다. 말 그대로 전해 들은 소식이니까, 이 글을 읽는 당신이 너무 신뢰하진 않았으면 좋겠다.

그래도 정문 바로 옆에 오피스텔이 들어서면 월세가 무서울 정도로 비쌀 것 같다.

 

 

 

밤에 본 신촌 기차역 네온사인은 파란색이었다. 나는 대학에 오고 나서야 신촌에 첫발을 들였다. 당시에는 신촌 기차역과 2호선 신촌역을 구분할 줄 모르던 시기였다. 그래서, 신촌 기차역을 보면서 ‘불쌍한 연대생들. 지하철역에서 정문까지 열심히 걸어가겠구나.’라며 혼자 생각하곤 했었다. 다행히 지금은 그 둘의 차이를 확실히 알고 있다. 

신촌 기차역 주변에는 항상 보드를 타는 사람들이 있다. 그들은 낮이고 밤이고, 여름이고 겨울이고 보드를 탄다. 저 조그마한 나무 막대기 위에 내 두 발을 전부 올려놓고 묘기를 부리는 모습은 언제나 경이로울 지경이다. 언젠가는 나도 저들처럼 두려움이 사그라들었으면 한다.

 

 

 

생각해 보니, 교통 표지판도 파란색이다. 

일방통행이라는 말은 들을 때마다 기분이 쌉싸름해지는 것 같다. 오로지 한 쪽으로만 통하는 길은 복잡하고 재미없다.

 

 

 

나는 지하철보다는 버스를 선호하는 편이다. 지하철에서 볼 수 있는 풍경이라곤 피곤함에 찌든 사람들의 모습뿐이다. 하지만 버스는 창밖의 풍경을 볼 수 있기 때문에 지하철보다 백만 배는 재미있는 것 같다.

상경한 지 얼마 되지 않았을 적 탄 서울버스는 가히 충격적이었다. 이화여자대학교 후문에서 시작해 독립문, 광화문, 경복궁을 지나 창덕궁에서 내렸던 적이 있었다. 서울 사람들만 이렇게 멋진 버스 노선을 매번 타고 다녔던 건가 싶어 배가 아팠다.

지금은 나도 나름 서울 사람이라, 그때만큼의 감동은 없는 것 같기도 하다.

 

 

 

횡단보도 보행자 신호등은 빨간불과 ‘초록불’로 이루어져 있다. 하지만 가끔 이 초록불을 ‘파란불’이라고 부르는 사람들이 있다. 파란색과 초록색을 구별하지 못하기에 그런 것은 아니고, 다른 재미있는 이유가 있어서 그렇다. 

사실, 푸르다는 개념은 파란색과 초록색을 포괄하는 개념이다. 이는 한자, 청록(靑綠)에서 쉽게 알 수 있다. 때문에 파란색이 초록색을 대신 지칭하는 경우가 종종 생기는 것이다. 

인생의 靑신호라고 많이들 하지 않은가. 누군가가 초록불을 파란불이라고 말한다고 해서 이상하게 생각할 필요는 없는 것이다.

 

 

 

이렇게 하여 파란 도시에서 파란색 찾기 여정은 끝이 났다. 아이러니하게도 파란색은 자연계에서 발견하기 아주 어려운, 극도로 희귀한 색상이라고 한다. 그러니 파란 도시를 살아가는 파란 사람들아, 우리에게 온 소중한 파랑을 조금만 더 사랑해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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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 잔치
AUTHOR PROFILE
왕 잔치

잔치의 시선으로 신촌의 장면과 사람, 장소를 기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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