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ELCOME TO ZANCHI! · 신촌을 사랑하고, 추억하고, 기록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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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RT 2025 · 10 · 27

​신촌콜링; 신촌로터리에는 눈이 내린다

Editor 빈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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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처음으로 ‘신촌로터리’ 안내판을 마주한 겨울이 떠오른다. 바야흐로 눈이 펑펑 내리던 작년 크리스마스, 삼삼오오 팔짱 낀 커플을 뒤로하고 나는 샛노란 택시에 올라 기사님의 인생 교훈을 듣고 있었다. 등 뒤에는 이케아 타포백을 가득 채운 이삿짐이 가득했지 아마. 인천에서 서울 기숙사까지 혈혈단신으로 이사를 감행하는 황당한 아가씨에게 택시 기사님은 걱정 어린 인생론을 늘어놓았다. 남자친구는 도우러 오지 않고 뭐 하냐, 하필 크리스마스에 무슨 개고생이냐, 고생하는 아가씨나 빨간날에 일하는 나나 도긴개긴이라는 둥… 남자친구는 없고 기숙사가 하필 크리스마스에 내쫓네요- 따위의 반박은 안으로 삼키고 그저 하하 웃기나 했다. 아저씨 말마따나 개고생 중인 나 또한 마음이 싱숭생숭했으므로. 이어지는 따스한 잔소리를 한 귀로 흘리며 내다본 창밖에 신촌로터리가 보였다. 이게 내가 원하던 2호선 신촌의 모습이구나. 생각보다 어수선하고 시끄러웠던 기억이 난다. 당시에는 그저 크리스마스니 그렇겠거니 했지만, 글쎄. 평범하기 그지없는 오늘도 신촌은 어수선하고 시끌벅적하다.

 

 눈발을 뚫고 당차게 상경에 성공한 그 겨울, 나는 이곳을 미워하게 될 것임을 직감했다. 새로운 기숙사의 문을 열자 날 맞이한 것은 차가운 방바닥과 한 줌짜리 방에 쌓인 먼지였다. 앞으로 다가올 한 해의 서막이었을지도 모르겠다. 그 해는 뭐랄까, 너덜거렸다. 누구에게나 처음은 있다. 그러나 모두가 이토록 엉망진창인 시작을 경험하는 건 아니다. 나의 신촌 새내기 라이프는 그야말로 우여곡절이었다. 먼저, 학교에 사람이 많다는 당연한 사실이 내겐 참 어려웠다. 다양한 나이대, 국적, 진로를 가진 사람들이 백양로를 드나들었다. 각자의 인연으로 나를 스쳐간 수많은 타인이 떠오른다. 그들과 매일같이 함께했지만 외로웠고, 외로움은 사람으로 달랜다고 해결되는 문제가 아니었다. 차라리 혼자 있기를 택했다. 저마다의 꿈을 안고 달리는 사람들이 너무나도 반짝여서 고개를 들기가 싫었기 때문이다. 전공은 모호했고 미래는 갈피가 잡히지 않던 그 시절, 눈에 보이는 치열한 사람들을 따라 달려 봤다. 중앙 도서관 24시 열람실이 그러하듯 하루하루 최선을 다 해 살아봤다. 소위 생산적인 일을 하기 위해 노력했고, 이런저런 인재상에 맞추어 나를 칵테일 얼음처럼 박박 깎았다. 그렇게 시간을 거듭하고 계절이 바뀌며 나는 이곳에 익숙해졌지만, 막상 나 자신이 누구인지는 알 수 없었다.

 

 그래. 죄다 이 빌어먹을 네온사인 때문이었다. 명물거리를 지나면 달라붙는 일일호프 광고가, 행복하다는 얼굴로 달라붙어 있는 연인들이, 고소하다는 듯 바람에 흩날리는 벚꽃잎이 나를 사무치게 만드는 것 같았다. 온 세상 젊은이는 다 모아 놓은 듯 북적거리는 신촌로터리의 활기가 미웠다. 일진이 유독 거지 같았던 날이었다. 면접은 떨어지고, 끼니 때울 시간 없이 온종일 수업을 들었더니 며칠을 기다린 약속이 파투났다. 덩그러니 남겨진 나는 길바닥 벤치에 털썩 주저앉았다. 메신저 창을 열자 더 이상 연락할 사람이 없었다. 이리 치이고 저리 치여 추악한 자기연민에 빠졌던 날. 와중에 눈앞에 펼쳐진 명물거리가 너무나도 활기차서, 나만 빼고 다들 청춘인가보지- 하는 모난 마음에 나는 신촌 탈출을 꿈꿨다. 알량한 자존심에 그렁그렁해진 눈물을 삼키며, 다음 이사가 오는 날에는 이 지긋지긋한 대학가에서 벗어나고야 말겠다는 다짐을 반복했다. 그렇게 몇 달이 지났다. 불행인지 다행인지 나는 1년을 함께한 기숙사 뺑뺑이에서 탈락을 면치 못했고, 타이밍 좋게도 다른 동네의 지인이 셰어하우스 다음 타자를 구하고 있었다. 럭키!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다음 이사를 계획했다. 시간은 빠르게 흘러 나는 또 한 번 혈혈단신으로 짐을 옮겨 날랐다. 이사 날에는 또 한 번 눈이 내렸다. 그간의 노하우로 최소화한 짐을 둘러메고, 학교 반대 방향으로 향하는 버스에 올랐다. 김 서린 창밖으로 신촌로터리의 조잡한 안내판이 보였다. ‘미세먼지 양호, 광화문 방향 혼잡’.  바야흐로 진정한 신촌 탈출이었다.

 

 노아의 방주마냥 신촌을 떠난 지 반년이 지났다. 그간 적립한 경험을 바탕으로 나는 공간의 박자를 생각했다. 광화문의 각 잡힌 분주함, 복작거리는 용산의 부산스러움, 고즈넉한 서촌의 너그러움, 잔잔한 혜화의 고요함까지. 달라지는 풍경만큼이나 공간의 소리는 다채로웠다. 어쩌면 공간을 구성하는 개개인의 삶을 집약한 노래였을지도 모르겠다. 크기가 다른 톱니바퀴를 끼운 것처럼 다양한 삶이 맞물리는 곳이 있는 반면, 균일한 크기로 찍어내는 공장처럼 비슷한 생활이 반복되는 장소도 있었다. 신촌으로 향하는 버스에서 창밖을 바라보았던 기억이 난다. 소극장 티켓을 든 관객들, 점심시간을 즐기는 직장인 무리, 하원하는 유치원생과 등교하는 대학생을 차례로 지나쳤다. 같은 시각-다른 방향으로 나아가는 각자의 일과를 보내고 있었다. 문득 생각에 잠겼다. 인생의 박자는 발걸음에서 나오는 게 아닐까? 창밖을 바라보았다. 광화문 직장인의 발걸음은 정박에 맞춘 메트로눔 같았고, 혜화의 걸음은 연극티켓 할인 부스 앞에서 잠깐씩 머뭇거렸다. 아장아장 어린이의 보폭과 큼직한 회사원의 보폭까지. 다양한 걸음이 모여 공간을 감싸는 분위기를 만들고 있었다. 그러다 불현듯 어느 장단도 맞추지 못한 채 어색한 스윙을 하는 나를 발견했다. 

 

내가 어쩌다 이곳에 왔더라?

 

 무르팍에 자를 대고 전교생의 교복을 단속하던 중고교 시절, 내가 있을 곳은 고향이 아니라고 생각했던 것 같다. 오기로 서울 상경을 꿈꾸기 시작했다. 옛말에 말은 제주로 보내고 사람은 한양으로 보낸다고 했나. 일단 상경을 하면 어떤 형태의 자유든 누릴 수 있을 줄 알았다. 부정하지 않겠다. 장담하건데 대한민국에서 가장 자유로운 신분은 대학생일 테다. 꿈에 그리던 서울에서, 그것도 대학생의 신분으로 살 수 있다니. 하지만 아직 세상이 낯선 이십 대 초반의 내게 자유는 고달팠다. 자유는 강제의 부재를 의미한다. 강제가 부재함은 곧 일률적인 박자가 갖춰지기 어렵다는 이야기이기도 하다. 앞서 공간의 속도는 삶의 집약이라고 했던가. 무엇 하나 강제 없는 삶 속에서 타인과 발맞추고 동질감을 느끼기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그래, 창밖으로 바라본 평화로운 일과에 영원히 속할 수 없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렇게 아무한테도 이해받지 못하면, 평생 옆 사람의 속도를 따라가지 못하면 어떡하지 하는 조바심에 많이도 울었던 것 같다. 그러다 신촌오거리에 도착했다. 문이 열리자 굉음 같은 버스킹과 광고 확성기 소리, 행인들의 활기찬 대화가 쏟아졌다. 소음에 가까운 불협화음은 뭐랄까… 재즈였다. 방금까지 클래식 교향악단의 꼴찌 연주자가 된 기분이었지만, 문이 열리자 당장이라도 길바닥 즉흥 연주에 끼어들 수 있을 것 같은 자신감이 솟아났다. 그렇다. 누군가는 120bpm, 누군가는 70bpm으로 명물거리를 누비는 신촌의 발걸음은, 이따금 공백이 있는 드림 필인 같았다.

 

 정답 없는 박자를 타는 신촌이 좋았다. 역설적으로 몸은 다른 공간에 있지만 나의 마음은 여전히 초록색 신촌로터리 안내판 아래 머물러 있었다. 울고, 웃고, 토라지거나 감동했던 모든 처음의 기억이 여전히 불협화음 속에서 공명한다. 아직도 정박을 곧잘 놓치는 나는 신촌의 속도에 섞여 있는 사람이다. 네온사인은 무고하고, 내 삶의 박자는 여전히 그곳에 있다. 방황 끝에서야 깨달았다. 내가 미워한 것은 인생의 템포를 찾지 못한 스스로였다는 것, 그 겨울의 신촌은 그들을 질투한 나의 신기루였다는 것을. 비로소 현재로 돌아온다. 나와 충분히 친해진 나는 나의 속도로 이 정신없는 대학가를 물들인다. 그래서 신촌의 박자는 무엇이냐고? 카오스 그 자체다. 불안과 눈물과 환희와 낭만이 뒤섞인 -짙은 빛깔의 에너지. 수많은 삶이 공존하는 탓에 빠르다가 느리다가 하는 정체불명의 리듬이 신촌이다. 모든 구성원이 고유한 속도로 화합하며 기분좋은 불협화음을 낸다.

 

 지금에서야 인정하려고 한다. 비록 좀 꾀죄죄하고 붕 떠다니는 것 같아도, 나는 이 거리가 좋다. 매년 셀 수 없는 설렘이 함께하는 이 동네가 마음에 든다. 저마다의 속도가 모여드는 곳, 그렇지만 영원히 섞이지만은 않는 삶의 교차로. 그 에너지가 끝끝내 섞이지 않기를 바라며 오늘도 꿈꿔본다. 다음 눈이 내릴 때는 신촌로터리로 돌아가리라. 정지와 출발이 교차하는 한가운데 꼿꼿하게 서서, 나의 박자를 재보듯 신호음 소리를 들어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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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쩌면 신촌의 카오스는 내게 가장 정확한 메트로놈이었을까?

 

빈정
AUTHOR PROFILE
빈정

잔치의 시선으로 신촌의 장면과 사람, 장소를 기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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