붕어빵

“그거 알아? 우리가 먹는 붕어빵은 사실 잉어빵이래.
붕어빵은 전부 멸종해 버리고 잉어빵이 그자리를 채우고 있는거야.”
담담하게 말을 이어가고 싶었지만,
부글부글 끓는 단팥이 입안에 가득 차 입에서는 하얀 김만 서린다.
자취를 시작하며 하루 한끼는 꼭 집에서 먹겠다고 다짐 아닌 다짐을 했다. 유튜브 때문일까? 그래도 요리를 좀 한다고 생각했는데, 좁은 집만큼, 좁은 주방에서 꾸역꾸역 만들어 접시로 옮긴 음식은 담음새처럼 맛도 엉성하고 밋밋하다. 난 요리가 아니라, 그냥 먹는 걸 좋아한다는 것을 그때는 알지 못했다. 그렇다고 사 먹는 밥이 맘에 드는 것도 아니었다. 맛이 괜찮다 싶으면 가격이 괜찮지 않았고, 가격이 괜찮으면 어딘가 비어 있는 맛이었다. 화려하고 비싼 밥을 먹고 싶은 게 아니라, 가득 찬 밥을 먹고 싶었다. 먹고 살자고 하는 짓인데, 먹는게 제일 공허했다.
“인스턴트 음식은 나의 허기를 채우기에는 부족했다.
배가 고파 돌아왔다는 나의 말은 빈말이 아니었다.”
– 영화 리틀 포레스트 (2018)
그렇게 어중간하게 버티던 가을이 자리를 비키자, 얼음이 얼 듯 갑자기 겨울 날씨가 찾아왔고, 쌀쌀한 바람에 반가운 냄새가 담겨있었다. 밀가루 반죽을 구운 냄새, 와플 냄새와는 또 다른 달달하고 고소한 냄새, 붕어빵. 이끌리듯 들어간 붕어빵 노점에서는 마침 붕어빵을 새로 굽고 있었다. 달짝지근한 팥 아니면 슈크림 그리고 천원에 세 마리. 몇 년이 지나도, 어디를 가도 붕어빵의 법칙 (사실은 잉어빵의 법칙)은 달라지지 않았다.

3마리에 천원은 국룰이다.
내 기다림을 모르는지, 사장님은 여유롭게 빵 틀 하나 하나에 밀가루 반죽을 채우고, 팥을 넣고서는 한번 뒤집고 빵틀을 빙글빙글 한 칸씩 돌리기를 반복한다. 한 바퀴가 돌고 나서야 이목구비 또렷한 붕어의 자태를 볼 수 있었다. 하얀 종이 봉투 안에 줄지어 들어있는 붕어 세 마리, 뜨거워 잡지 못하다가 처음으로 입에 넣은 붕어는 펄펄 끓는 팥을 쏟아 냈다. 입안 가득 팥의 온기가 맴돌았고, 입을 열고 김을 내뱉었다. 그렇게 꼬리 끝까지 팥이 꽉찬 붕어 세마리를 먹어 치우고 세 마리만 산 것을 후회했지만, 오랜만에 느낀 따스함에 설레었다.

원래의 붕어빵은 좀 더 쫄깃쫄깃한 식감이었지만,
바삭한 잉어빵에 밀려 거의 사라졌다.
그날 이후 매일 붕어빵을 먹었다. 집으로 돌아가는 길, 지하철 역의 무거운 계단을 곱씹으며 올라가면 붕어빵 노점이 있다. 알록달록한 비닐 천막 안, 밝은 전구 아래에서 붕어들이 몸을 뒤집으며 빙글빙글 돌아가고 있다. 아크릴 칸막이 안을 보며 슈크림인가 팥인가 고민하게 된다. 왜 슈크림은 천원에 두 마리 밖에 안주는 걸까? 결국 2천원치를 산다. 오늘도 사장님 계좌로 돈을 보내 드리며, 다음에는 현금을 챙기리라 다짐한다. 이상하게도 갓 구운 붕어보다는 줄지어 아크릴 통 안에서 기다리고 있는 붕어가 더 맛있다. 얼마나 기다렸을지 모를 붕어는 눅눅하지도 않고, 팥도 적당히 꾸덕꾸덕해서 입안에서 흐른다. 따뜻한 붕어를 손에 쥐고 머리부터 한 입하고 꼬리는 바삭한 마무리를 위해 아껴둔다.
그렇게 또 저녁먹을 타이밍을 놓쳤다.

호떡도 있고, 국화빵도 있지만 역시 겨울에는 붕어빵이다.
머리부터 꼬리까지 팥으로 꽉 찬 붕어빵, 든든한 한끼는 못되더라도 마음만큼은 배부르다. 소박하면서도 달짝지근하고, 맛을 속이지도 않는데 천원이면 먹을 수 있다. 몇 년이 지나도 붕어빵에는 붕어는 없어도 따뜻함이 있다. 날씨가 추워지고 신촌에도 여기저기서 붕어빵을 팔기 시작했다. 붕어빵 사장님들은 약속한 듯이 때가 되면 언제나 그 자리에 돌아온다. 학교 앞 붕어빵집에서 붕어가 구워지기를 기다리는 동안 사장님은, 단골 때문에 매일 같은 시간 반복해서 빵틀에 반죽과 팥을 넣는다고 하셨다. 사장님은 별 의미없는 말에 이번 겨울이 춥지만은 않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직 댓글이 없습니다. 첫 이야기를 남겨주세요.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