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가 웃으면 나도 좋아
아직 아무것도 정해진 게 없으니 뭐든 할 수 있을 것이라는 말이, 내 미래는 온전히 내 손에 달린 거라는 무시무시한 말로 들리기 시작한 대학교 3학년. 한 학기를 휴학하고 오랜만에 탄 2호선은 유난히 낯설었다. 언제 와도 사람들로 가득 찬 지하철의 손잡이를 잡으며 문득 처음 학교를 가던 1학년 때가 생각났다. 그때는 학교생활이 두렵고 막막하긴 해도 조금의 설렘은 있었던 것 같은데, 지금은 닳고 닳아 그 설렘은 무뎌지고 불안만 남았다.
불안이 꼭 나쁜 것인가? 많은 사람들은 생각이 많은 게 덤벙거리는 것보다는 낫다고, 많은 것들을 대비할 수 있는 장점도 있다고 한다. 하지만 ‘이러면 어떡하지?’ 하는 불확실성 때문에 오는 스트레스는 불안이 주는 장점들을 너무 쉽게 압도한다. 불안이 머릿속을 너무 가득 채울 때는 총으로 머리를 쏘고 싶다는 생각이 들 때도 있다. 이것 보라, 불안하지 않고 싶다고 말하면서도 또 이렇게 불안에 대해 생각하고 있다. 이럴 때는 생각의 고리를 끊는 것이 가장 효과적이라지만 그게 말처럼 쉽지가 않다.
그럴 때 해볼 수 있는 건 이미 문제를 해결한 사람들의 방법을 따라해보는 것이다. 에디터의 언니도 꼭 에디터와 같은 모습으로 불안해하고는 했다. 그런 그녀가 나아지기 시작한 건 홍대 인디 밴드 공연을 보러 다니기 시작하고서였다. 어떻게, 누구를 만나서 나아졌는지는 모르지만, 동생은 언니의 모든 것을 따라한다고 하지 않는가. 벼랑 끝까지 내몰린 열여덟은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언니를 따라 구원을 꿈꾸며 홍대로 향했다.
칼바람이 불던 겨울이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아직 고등학생이었던, 슈퍼밴드 1을 보고 밴드에 입문하기 시작했던 시절 학원의 굴레에 지쳐 아무것도 정해놓지 않고 도망치듯 홍대행 지하철에 몸을 실었다. 그리고선 충동적으로 평소에 가고 싶었던 공연장인 롤링홀로 가기로 마음먹었다. 그날 공연이 있는지 없는지도 확인하지 않았다. 허탕 친다면 그것 또한 내 운명이겠거니, 하는 마음이었나. 아니 그냥 어디든 여기서 도망치고 싶었던 것 같다. 그렇게 도착한 롤링홀은 다행히 그날 공연이 있었고, 심지어 평소에 좋아하던 인디 가수의 공연이었다. (솔직히이때운명이라고느꼈다) 그렇게 들어간 공연장은 약간 어색하고 뻘쭘했다. 평소에 친구들을 따라 몇 번 아이돌 콘서트는 가봤지만 이렇게까지 무대와 객석이 가까운 공연장은 처음이었다. 진짜 주책이지만 입술 색 없어진 것까지 보일 것 같아서 틴트 다시 발랐다. 슬슬 공연 시간이 임박하자 짧은 정적 후 공연이 시작됐고, 공연을 보는 두 시간 내내 그해 그날 그곳을 갔던 것을 제일 잘한 일로 꼽을 만큼 행복했다. 너무 앞자리에 앉아서 그런지, 착각이겠지만 가수랑 계속 눈이 마주치는 것 같아 부담스러워, 후반부에는 가수 눈을 보지 않고 기타만 뚫어져라 쳐다봤다. 도망친 곳에 낙원은 없다고 하지만 도망치는 사람들은 낙원까지 바라며 도망치는 것이 아니다. 그냥 지금을 잊을 수 있는 몇 시간의 공백이 필요한 것이다. 누군가는 차라리 그 시간에 공부를 더 했어야지, 하며 질책할 수 있지만 나는 아직도 그때 잘 도망쳤다고 생각한다. 그때 도망간 기억으로 고등학교를 어떻게 어떻게 잘 버텨냈기 때문이다.
새 학기엔 새 교과서가 필요한 것처럼, 새 고통에는 새 구원이 필요했다. 대학교에 들어와 갑작스럽게 찾아온 건강 상태 악화로 기대했던 것들은 그저 희망 사항으로만 남겨 놓아야 했고, 하루 종일 침대에 누워 나아지기를 기다리는 것밖에 할 수 없는 날들이 지속됐다. 그렇게 송장같이 살던 중 참아왔던 억울함이 툭, 터져 나왔다. 뭘 그렇게 잘못했길래 내 청춘은 이렇게 낭비되어야 하는가? 이 상황에서 도망치고 싶다. 심장이 뛰고 너무 행복해 질식할 것 같은, 살아있는 느낌을 받고 싶었다. 근래 처음으로 무언가를 하고 싶다는 생각이 강하게 들었다. 근간 그런 느낌을 받았던 건 앞서 언급한 롤링홀에 갔던 경험이 유일해, 다시 홍대에 가기로 마음먹었다. 마침 그날은 같이 인디 밴드를 좋아하는 친구의 생일이었고, 만나기로 했던 날이었다. 그렇게 대학생이 되어서도 어김없이 재-구원을 바라며 홍대행 지하철에 올라, 이번엔 언플러그드로 향했다. 즉흥적으로 출발한 것이었지만, 당일 오하아사 5위답게 그날도 마침 공연이 있던 날이었다. 운은 억세게 좋은 것 같다. 처음 들어보는 가수였지만 친구는 이미 알고 있던 인디 밴드였다.
주황색 문을 열고 들어가자 큰 리트리버가 우리를 반겼다. 음료를 주문하고 잠깐 대기하면서, 정말 아무런 정보를 모르는 밴드였기에 롤링홀 때보다 큰 설렘이 느껴졌다.. 이후 입장해서 보인 공연장은 저번보다 더욱 가까웠다. 시작 전 암전도 되지 않고, 그저 가수가 저벅저벅 걸어와 무대에 앉으면 공연 시작이었다. “저 어제 아빠 생신 선물 샀는데 아빠 카드 긁어서 산 거예요”, “저 알바하고 와서 옷에서 샌드위치 냄새나도 이해해 주세요”. 무대 위 가수가 곡 사이사이 전하는 말들은 지극히 일상적이였다. 그동안 다녔던 대형 공연장은 공연이 끝나면 “자, 행복했지? 이제 다시 현실을 살아“라고 하는 것만 같이 공연과 일상의 경계가 뚜렷했다. 하지만 이번은 달랐다. 일상 사이사이 공연의 행복을 끼워 넣어 현실을 살면서도 계속 행복할 수 있음을 전달했고, 그걸 깨달은 공연 내내 울컥했다. 괴로움에 불평만 하던 나와는 달리, 그 가수는 자신의 일상을 영위하며 동시에 그가 사랑하는 일을 누구보다 반짝이는 눈으로 해내고 있었기 때문이다.
미래에 대한 불확실함만 가득한 상태에서 사랑하는 일을 찾은 사람을 보는 것은 그 자체로 위로를 준다. 무대를 하는 게 너무 행복해서 죽겠다는 표정으로 관객석을 바라보는 사람이 짓는 그 미소를 지키고, 거기에 나도 일조하고 싶어진다. 그가 읽을지도 모르는 편지에 이걸 보고 웃을지 모른다는 마음으로 말을 다듬어 설레는 마음으로 한 글자씩 적게 된다. 이미 하고 싶은 일을 찾아 행복해하는 사람을 보면 질투에 기인한 불안감과 죄책감만 들 법도 한데, 공연을 보는 동안에는 처음으로 행복해하는 걸 보는 것만으로도 내가 행복해지는 경험이 가능했다.
그렇다고 해서 그들이 내 상황을 해결해 주지는 않는다. 다만 그들은 나도 당신과 똑같이 아프고, 당신만 힘들어하는 존재가 아니라 말하며 관객들과 함께 방황한다. 그리고 방황하는 일상 사이 어떻게든 행복을 그려내 끝끝내 서로를 보며 입꼬리를 올리는 관객과 가수는 언젠가는 괜찮아질 거라는 위안을 함께 얻어내고야 만다. 힘든 상황의 해결책은 보통 본인만이 알 수 있고, 사실 이미 다 알고 있는 경우가 많다. 그들은 그저 그 겨울을 홀로 보내게 두지 않을, 피식 헛웃음이라도 짓게 해줄 누군가의 존재가 필요할 뿐인 것이다.
자신이 좋아하는 것만으로 채운, 가수가 준비한 두 시간 남짓의 시간은 머리 아픈 현실을 잊게 해주기에 충분하다. 실제로 에디터는 힘들 때 공연을 보고 나오면 몽롱하고, 꿈을 꾼 것 같은 느낌을 받는다. 행복한 일만 물 밀려오듯이 생겼는데 그 시간이 너무 빨리 지나가 기억도 잘 나지 않고 치유된 느낌만 남아 신기루같은 느낌. 잠시나마 온전히 마음 편하게 행복하기만 할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시끌벅적한 신촌과 홍대 가운데서 계속 인디밴드를 찾게 되는 이유가 된다.
그렇다면 앞서 언급한 이유 외에도 어떻게 인디밴드 문화는 신촌과 홍대 일대에서 지속될 수 있었을까. 여기에는 제도적 변화와 지역적 특성이라는 배경이 존재한다. 먼저 역사적으로 1990년대에는 인디 밴드들을 억압했던 사전심의제도가 철폐되었다. 이 제도는 정권에 대한 비판이나 저항을 담은 음악을 정부가 사전에 심의해 가수들이 이를 발매하지 못하게 만들었다. 이 규제가 풀리자, 자연스레 예술가들의 중심지였던 홍대 중심에서 인디 밴드들이 활발히 활동했고, 그로 인해 인디 음악 하면 자연스럽게 홍대가 연결되었다.
또한 신촌과 홍대 일대는 지리상으로 마포구, 서대문구에 위치하며 서울의 한복판은 아니다. 하지만 한강을 끼고 유동인구가 많은 종로구와 중구 옆에 위치해 외부에서 통근하는 직주 분리 현상이 일어난다. 따라서 굉장히 다양한 연령대의, 다양한 직업과 고민을 가진 사람들이 모인다. 하지만 동시에 연세대학교, 서강대학교, 이화여자대학교, 홍익대학교 등 대학가에 근접하기에 직장과 주거지가 가까운 직주근접도 나타난다. 또한 대학가의 주변이라는 특징에서는 경제적, 진로적으로 ‘불확실성‘을 가진 사람들이 많다는 사실이 드러난다. 대학교에 입학하기만 해도 지방에서 올라오는 사람들은 수년간 살았던 익숙한 곳을 떠나 처음 보는 곳에서 지내야 한다. 에디터는 서울 사람이고, 아무리 홍대를 자주 와봤다고 해도 여기서 학교를 다니는 것은 완전히 다른 이야기다. 또한 치열했던 고등학생 때의 대한 보답으로 이제는 좀 숨을 돌리나 싶었다. 하지만 대학교에 온 결과, 또 다른 진로에 대한 고민이 시작됐다. 고등학생 때처럼 무얼 하라고 누가 제시하지도 않고, 그렇다고 무슨 일을 시작하기에는 아무것도 이뤄놓은 것이 없고, 모든 게 낯설고 어색하기만 해서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상황인 사람들이 많다. 호기롭게 세상에 도전장을 내민 대학생들은 현실의 벽에 부딪혀 저마다의 긴 밤을 보내고 있으니.
이런 불확실성 때문에 홍대에서는 대중음악보다는 개인의 내면 혹은 불안, 우울 같은 감정을 상대적으로 많이 전달하는 인디 음악이 발달했다고 유추해 볼 수 있다. 즉, 인디 문화 향유자들은 불확실성 때문에 고통받지만 동시에 인디 밴드 문화가 가진 그 불확실성 때문에 이를 향유 하는지도 모른다는 것이다. 그게 감정의 해소의 방향이든, 현실을 잊게 해주는 잠시 동안의 도피처로서의 기능이든. 불확실하다는 건 소속감이 잘 느껴지지 않는다는 말과도 비슷하니 표면적으로는 어느 학교의 학생이라도, 모든 것이 낯설고 어색해 맞지 않는 신발을 신은 것 같은 기분을 공연을 보는 동안은 잊을 수 있으니.
마지막으로 에디터가 좋아하는, 그리고 좋아했던 인디 밴드들에게 고맙다는 말을 전하고 싶다. 한창 그들을 좋아했던 그때는 매일 공연 날만 기다렸고, 지금은 무엇을 하고 사는지 소식도 모르긴 하지만 어느 시간 어디에 있든지 당신의 안녕을 빌 것이다. 서로가 없더라도 함께였던 시간을 부적 삼아 미래로 나아가는 것이 우연한 운명으로 만난 우리의 해피엔딩. 그저 서로의 시간이 운 좋게 잠시 겹쳐 같이 방황할 수 있었던 것만으로도 이미 구원은 이루어졌으니.



틴트를 다시 바른 시점부터 미소로 읽어낸 글
저는 이제 대학을 졸업할텐데 잔치는 영원히 대학생이겠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