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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RT 2026 · 05 · 18

기록의 역사

Editor 데이

인간은 직접 겪어보지 않은 일에 대한 이해를 유보한다. 

 

그것도 비극적인 경우에는, 더욱이. 사람들은 자신의 이익을 위해 사실을 왜곡하고, 교과서는 불의에 맞선 수많은 저항을 건조한 한 줄로 정리해 버린다. 슬픔의 전염성에 대한 두려움 때문일까, 진실을 감추고 싶은 누군가의 노력 때문일까. 변형되는 진리와 반복되는 축약은 죽음의 무게를 마모시키는데 이르러, 타인의 희생에 대한 둔감을 초래했다. 때로는 시공간의 간극과 당장의 삶을 버티는 것만으로도 버거운 현실이 희생에 대한 감수성 저하를 정당화한다.

 

 

 

 

 

 

 

 

 

 


하지만
생각해 보자. 그 비극이 당신이 매일 걷는 길에서 벌어진 것이라면 어떨까. 이대역 2번 출구를 나와 이화여자대학교 정문으로 가는 길.

 

 

 

 

 

 

 

 

 

 

그 중간쯤 자리한 대현문화공원을 지나칠 때마다 보게 되는 걸상 하나가 있다. 일별하면 평범한 벤치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니, 대리석에 새겨진 붉은 불꽃 문양과 글귀 하나가 눈길을 사로잡는다. 

 

 

그대 젊음이여 아시는가? 

1980년 5월 그날의 역사를..

그러하면 나 또한 기억해주오.

23살 젊음인 김종태가 광주를 고발하며 

이곳 신촌 거리에서 산화했음을..

 

 

*김종태 열사가 정신적 타격을 크게 입은 것은 ’79년 9월 12일 Y.H 사건 이후 ‘한울 야간학교’ 교사들이 경찰서로 연행되고, 학생들은 강제 해산될 때부터였으며, 방위병에 소집된 후에도 그렇게 기다리던 민주주의가 광주 학살로 무너지는 과정을 지켜보며 분노를 참지 못했다. 1980년 6월 7일 동지는 ‘광주 시민의 넋을 위로하며’라는 내용의 유서를 이해학 목사에게 전달할 것을 당부하고, 6월 9일 이대 앞 네거리에서 “유신잔당 물러가라” “노동삼권 보장하라” “비상계엄 해제하라”를 외치면서 자신의 몸을 불살랐다.(출처 민중의 소리)

자신을 스쳐가는 셀 수 없이 수많은 사람들에게, 그 문구는 묵묵히 외친다. 이곳에서 누군가가 목소리를 높이며 불길 속으로 걸어 들어갔다고. 비극이 개인의 일상적인 공간과 마주하는 순간, 시간은 멈춘 듯 그 당시로 회귀하고, 희생의 고통은 피부로 다가온다. 산화의 흔적 앞을 지나는 우리에게 그 희생은 더 이상 단조로운 한 문장 정도가 아니다. 비극의 희생자가 자신과 크게 다를 것 없는 스물 초중반의 청년이었다는 점. 그도 그저 꿈 많은 평범한 나이였다는 점은 산화된 청년의 이야기를 비로소 ‘나’의 일부로 편입시킨다. 자신과의 유사성을 인식하기 전까지는 안타깝게 여기면서도 여전히 ‘나’와는 동떨어진 일로 간주하다니. 이런 점에서 우리는, 아니 인간은 자기중심적이다. 하지만 절망하기에는 이르다. 인간은 누구나 실수를 하고, 실수 후의 대처가 가장 중요하니까. 아직 만회의 기회가 남아 있다. 이 글은 역사를 실감하지 못했던 인간 중 하나였던 필자의, 같은 실수를 반복하지 않기 위한 참회록이라고 할 수 있겠다. 

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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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이

잔치의 시선으로 신촌의 장면과 사람, 장소를 기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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