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록의 역사
2024년 5월의 어느 날

1980년 5월의 광주에 대해서 자세히 알게 된 건 2024년 5월이었다. 우연히 발견한 김종태 열사의 오월 걸상과 전공 수업을 통해서였다. 이전까지의 민주화 운동은 필자에게 한국사 시간에 배운 지식과 매체 몇 편이 부끄럽게도 전부였다. ‘5.18 민주화 운동은 1980년 5월 18일 광주광역시 및 인근 지역에서 일어난 신군부의 군부 장악에 맞선 민주화 운동이고, 이 사건으로 민간인에 대한 대량 학살이 일어나 다수의 희생자와 피해자가 발생했다.’ 라는 누구나 알 법한 지식이 전부였다. 그리고 그걸 다룬 매체 영화 <택시운전사>, 드라마 <오월의 청춘> 정도.

2026년 현재만큼 2년 전 5월의 대자보판도, 광주를 기리기 위한 벽보로 빼곡했다. 중고등학교에서는 경험해 보지 못했던 문화에, 그동안 우물 안 개구리로 살았다는 감정을 느끼며 강의실로 향했다.
“광주 얘기 소설로 쓰신 적 있으세요?”
“글쎄, 그것이…..”
나는 다시 고개를 끄덕였다.
“부끄럽지 않던가요?”
그는 직설적으로 묻고 있었다.
“부끄럽다는 게 어떤 의미죠?”
“그들을 소설의 도구로 이용한다는 사실에 대해서 말입니다.”
(출처 정찬, 아늑한 길)
당시 강의에서 교수님이 주신 텍스트는 가히 충격적이었다. 그것은 일종의 고발이었다. 고통을 공유하는 텍스트는 항상 선의를 가질 것이라고 생각한, 나의 무지에 대한 고발. “그 일을 계속 언급하는 게 생존자들에게는 트라우마의 기폭제가 되지는 않을까요?” “진정성 없이 단순히 책의 한 장을 채우기 위해 이를 사용하는 건, 이를 도구화하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등 다양한 의견이 오갔다. 필자는 그 어느 쪽에도 온전히 서지 못한 채 흔들렸고, 끝내 모든 말에 설득당한 사람처럼 아무것도 확신할 수 없는 상태로 남겨졌다. 강의가 끝난 후에도 그 감각은 잔향을 남긴 채 ‘쓰는 자’에게 몇 가지 질문들을 던졌다. 당사자가 될 수 없는 일에 관해 쓰는 것, 그것이 과연 옳은 일일까. 아니, 옳고 그름을 따지기 전에 그것에 대해 쓸 자격조차 있는 것일까? 반추는 꼬리에 꼬리를 물었고, 한 번 피어난 의구심은 답을 찾지 못한 채 커져만 갔다. 어디에서도 답을 찾지 못한 필자는, 결국 모든 질문의 출발점으로 돌아갔다. 김종태 열사가 목 놓아 외쳤던 1980년 5월의 광주로, 그가 불꽃이 되었던 1980년 6월의 신촌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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