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ㅓ리의 품
오싹한 하루였다.
뾰족한 것들이 잠시도 가만두지 않고 따.끔. 따-끔거리게 괴롭히는 바람에 도무지 정신을 차릴 새가 없었다. 무엇 하나 내 뜻대로 돌아가지 않는 상황이, 한껏 예민한 상태로 톡 내뱉은 단어 하나가, 부끄러움의 낭떠러지 끝으로 몰고 가는 누군가의 거센 말이, 감당하지 못해낼 정도로 날카롭다.
날을 세운 것들은 잔뜩 몸을 부풀린 복어처럼 위협적이다. 가만히 있든, 공격적으로 달려오든, 각진 것들이 자꾸만 주변을 맴도는 덕분에 내 온몸의 신경세포도 뾰-족하게 곤두선다. 뭐랄까, 마치 두꺼운 겨울 니트 안에 따끔하게 솟은 가시 하나가 있는 기분이야. 그래, 오싹하다.
이런 오싹한 기분이 온몸을 감쌀 때면 사람과 사람 사이가 절대 닿을 수 없을 것 같다는 생각이 찾아오곤 한다. 이때뿐만이 아니다. 하하호호 웃다가도 별안간 느껴지는 이물감에 곤란했던 적이 한두 번이 아니거든. 사람 사이에 있는 그 이물질은 참 날카로운 각을 가졌다. 무엇 때문에 각자의 사이에는 알 수 없는 뾰족각이 솟아있는 걸까. 의식하지 못하다가도 어느 순간 느껴지는 괴리 – 거리 – 아마 그건, 모서리.
모△ㅓ리: 면의 경계를 이루고 있는 선분.
면(面)의 경계. 이따금 나를 다치게 하는 것의 정체다. 네모난- 혹은 뾰족한- 면들의 접경, 우리 사이의 모서리. 몹시 애석하게도 이 날선 경계의 존재는 누가 어찌할 수 없는 당연한 것이다.
면과 면이 서로 가까이 마주한다면 – 그건 그냥 겹쳐진 하나의 면이 되겠지.

손을 잡고 나란히 같은 곳을 바라본다면 – 그건 좀 더 긴 면이 되겠지.
그치만 너의 면과 나의 면이 다른 곳을 바라보고는 경계를 긋고 서니 – 모서리가 생기는 거지.
인간이란 존재가 어찌 온전히 같은 곳을 향하거나 서로만 마주볼 수 있을까. 우린 모두 서로 다른 곳에 초점을 맞추고 몸을 틀고 있어서 사람 사이 성난 날의 존재는 필수불가결한 것으로 보인다.

우리는 모서리를 맞대고 살아간다.
면의 경계는 도저히 마모될 틈이 없어 보인다. 낯선 땅의 시간과 사람들의 가장자리는 이방인에게 더욱 첨예하다. 이에 닿을 때마다 움푹움푹 파이는 기분이 들어 나는 잔뜩 움츠리다 몸이 저려온다. 꾹꾹 누른 외로움과 슬픔이 역류하지 못하도록 안간힘을 주는 사이, 밤이 또 찾아왔다. 오싹했던 하루의 밤은 소름 돋도록 두려운 존재다. 이런 맘은 아랑곳 않고, 겨울밤의 바람이 무자비하게 신촌의 거리를 가로지른다. 거리가 한번 크게 휘청인다. 바람이 할퀸 자리에는 목적지를 향해 다시 중심잡기를 하는 사람들이 서 있다. 오후 아홉시 신촌의 거리를 걷는 사람들은 대단한 의지와 투기의 소유자들이다. 그들을 조심하도록.

서로의 사이에 날을 세우고 살아가는 사람들. 모두 자신의 각을 고집하면 다치는 수밖에 없다. 그래서 때론 그저 져주는 게 답 같아 보일 때도 있다. 이러다 모두 피투성이가 될 것 같으니까.
처음에는 한탄스러웠다. 왜 우리는 아픈 모서리를 서로의 사이에 두고 살아가야만 할까.
하지만-
날카로워만 보였던 모서리의 안쪽은

그 어느 곳보다 따뜻한 온기를 담기도 하고

가장 안락하게 숨 쉴 수 있도록 너끈히 한 존재를 받아주기도 하고

찬바람에 생채기가 나지 않게 피난처가 되어주기도 하였다.

모서리에 버려진 난쟁이 똥자루! 이건 나잖아?
한기가 나뒹구는 오후 9시의 신촌 곳곳에는 모서리의 품에서 따뜻한 쉼을 얻는 존재들이 가득했다.

누군가는 우리에게 날을 세우지 말라며 마모되길 권하지만
각진 마음의 안쪽에는 각자의 이야기가 담기고 있었다.

너와 내가 만나 수많은 모서리와 무한의 시간이 머금어지는 공간들이 만들어져서
우리의 이야기가 담기는 쉼터가, 우주가 된다.
맞아 난 처마 끝에 맺히는 고드름이, 끝이 둥글기보다는 네모진 책상이 더 좋았다. 서로 다른 시선을 가진 너와 내가 만나 만들어지는 그 뾰족함을 나는 이제 받아들인다. 그리고 그 안에 우리의 시간을 채워 넣으려 한다. 21시의 이 겨울밤도 해를 꼴깍 삼켜버린, 춥고 거칠고 날카로운 시간이지만 이 시간에만 담길 수 있는 나의 상념들이 벌써 한가득이다.
난 이제 모△ㅓ리의 품에 그득히 안길 준비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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