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ELCOME TO ZANCHI! · 신촌을 사랑하고, 추억하고, 기록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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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RT 2017 · 09 · 13

<문학과 사회 히든트랙>

Editor 왕 잔치

가을도 좋고 비도 좋은 에디터인데, 가을비는 어련할까.

 

9월의 첫 번째 수요일은 가을비가 투둑투둑 내리는, 백로(白露)를 하루 앞둔 그런 날이었다. 에디터는 비 오는 날을 좋아한다. 빗소리, 비에 젖은 것들의 냄새, 어두운 하늘과 알록달록한 우산들. 그리고 그것들이 만들어내는, 쨍한 햇빛 아래선 어쩐지 낯부끄러운 속마음이나 이야기를 좀 더 자연스럽게 나누는 분위기를 애정하기 때문이다. 그런 의미에서 비가 내리는 시간은  서로에게, 그리고 스스로에게 더욱 솔직해질 수 있는 순간일 것이다. 진한 커피 향이 가득한 카페에 가거나 막걸리라도 한 잔 걸치며 고민을 털어놓기도 딱 좋다. 신촌 역시 평소의 생기 넘치고 복작거리는 분위기를 한 겹 씻겨낸 이 날, 마침 어느 고민 많은 사람들이 경의선 신촌역 근처에 위치한 카페파스텔을 찾았다. 문예지 ≪문학과 사회≫의 일곱 명의 편집동인과 그의 독자들이 각자의 고민과 못다 한 이야기를 나누기 위해 ‘문학과 사회 히든트랙’ 낭독회에 모인 것이다.

 

고민을 응어리로, 엉킨 실타래로, 말로 표현 못하게 이상한 형태로 지닌 당신. 에디터와 함께 이들 고민의 흔적을 따라 가보자.

 

한 걸음: 고민의 시작

문예지. 이 단어를 방금 막 읽은 당신의 머릿속에 무엇이 떠올랐는가? 어쩐지 예스럽고, 무언가 낡은 느낌이 들지는 않았는가? 그것이 편집동인들의 고민의 시작이었다. 사람들이 더 이상 문예지를 읽지 않고, 문학이 점점 힘을 잃고 있는 듯한 위기감이 이들을 덮친 것이다. 문학이 망해가는 게 본인들의 잘못도 아닌데 왜 그들이 그것을 감당해야 하는지 하는 억울함도 드는 한편, 그래도 가만히 있을 순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한다. 실질적으론 책임이 없는데 의무감은 느끼는 그런 세대가 우리 아닌가. 그리고 그것이 변화를 위한 토대가 아닐까하는 직감이 그들을 움직인 것이다.

 

두 걸음, 세 걸음, 네 걸음···: 고의 연속

이 맹아적 형태의 직감은 곧 ‘세대’라는 키워드로 압축되었다. 문단 내 비교적 젊은 나이대에 속한 그들이 자신들 세대만의 이야기를 해볼 수 있겠다는 생각에서였다. 한창 이화여대에서 놀라운 시위가 있었던 그때, 그들은 ‘무질서하지만 계속적으로 바꾸려는 노력을 하는 세대’로 스스로를 정의했다. 그리고 이러한 내용적 변화는 곧 책처럼 두껍던 문예지를 두 권으로 분리하는 형식적 변화를 만들어냈다. 시, 소설, 비평을 일괄적으로 싣기만 했던 과거의 타성을 거부하되, 기존의 전통을 유지하면서 그들의 독자적인 내용을 담고자 하는 의도가 본권과 별권으로의 분리로 나타난 것이었다. 그리하여 이들은 별권인 ≪문학과 사회 하이픈(-)≫의 첫 주제로 ‘세대론’을 다뤘다.

이들의 고민은 계속 이어졌다. 문단 내 성폭력 사건이 수면 위로 떠오른 시기, 안 그래도 ‘페미니즘’을 주제로 출간을 준비하던 이들은 급히 고발자 및 피해생존자들의 목소리를 실은 페미니즘 비평으로 방향을 선회하였다. 그리고 문학 속 페미니즘에 대한 고민은 결국 한국문학의 근본에 대한 물음으로 이어져 그 다음 호의 주제는 ‘문학성’이 되었고, 해당 사건들이 드러난 이후 문학의 당사자인 시인들과 그들의 심경 및 시관 변화를 담아내기 위한 ‘시인’ 특집이 그 다음 다음호로 이어졌다. 출간이 미뤄지는 한이 있어도 다뤄야하는 주제와 완성도 높은 결과를 위해 끊임없이 고민했던 그들이지만, 그들은 결국 혁신은 자신들이 만든 것이 아닌 바깥에서 온 것이라 말한다. 길었던 그 고민의 궤적이 #문단_내_성폭력 해쉬태그 운동을 포함한 외부의 것들로 인해 완성되었고, 그것이 그들이 의도한 혁신보다 좋았다면서 말이다. 에디터가 느끼기에 그것은 겸손에 불과했으나, 중요한 것은 외부에서 온 것이든 내부에서 온 것이든 ≪문학과 사회≫가 변화하고 있다는 사실이었다.

 

  ≪문학과 사회 하이픈(-)≫ 시리즈. 순서대로 세대, 페미니즘, 문학성, 시인 특집이다.

 

『참고문헌없음』은 문단 내 성폭력을 해결하기 위해 함께 책임지는 과정이자 발화와 연대의 과정이었던 여성 문인들의 목소리를 위한 출판 프로젝트로, 현재 카페파스텔에서 후원의 목적으로 책, 뱃지, 스티커 등을 판매중이다. 

 

걸음의 속도는 다 다르다: 각자의 고민

2부로 이루어진 본 순서가 끝나고 이어진 Q&A 시간에는 독자와 각 편집동인 개인의 생각을 더 솔직하게 들을 수 있었다. 가장 견제되는 잡지사를 묻는 가벼운 질문부터, 일상에서의 문학성을 회복하는 법에 대한 무거운 질문까지. 독자들은 그들의 궁금증과 고민을 한껏 담아 물음을 던졌고, 편집동인들은 이에 기꺼이 개인의 꾸밈없는 생각을 밝혔다. 누군가 윗세대 편집동인들과의 마찰을 털어놓을 때, 다른 누군가는 여성혐오적 요소가 가득한데도 그 작품의 예술성을 사랑하지 않을 수 없는 스스로의 모순을 고백하였고, 또 다른 누군가는 편집동인이라는 애매한 지위가 가진 애매한 힘에 대해 이야기하였다. 고민하고 출간하는 일련의 과정이 관성에 젖을 법도 한 제법 긴 시간이 흘렀지만, 여전히 이들은 따로 또 같이 앞을 향해 나아가고 있었다.

 

Young And Beautiful. But wait, young… then beautiful?

낭독회가 시작하기 전, Lana Del Rey의 ‘young and beautiful’이 카페에 울려 퍼졌다. 사회자는 beautiful and young이 아닌 young and beautiful인 이유가 아름다움의 조건이 젊은 건 아니지만 일단 젊으면 아름다울 수 있다는 걸 의미하는 것 아니겠냐며, ‘젊은’ 편집동인들의 혁신적인 이야기의 포문을 열었다. 그렇다, 이들은 기성세대가 아닌 신세대이다. 그렇기에 보다 자유로운 상상과 대담한 시도를 하며 아름다워진 것일지 모른다. 그러나 이들의 행동을, 이들의 아름다움을 ‘젊음’의 축복으로만 돌리는 건 지나치게 단순화된 비약일 테다. 초점은 ‘그들은 젊다’가 아닌 ‘그들은 고민한다’에 맞춰져야 하기 때문이다. 여기까지 생각이 닿으니 젊다는 건 사실 나이가 아닌 마음의 문제가 아닐까 싶다. 자신을 찾고, 자신의 내부에서 견고하게 되어 그 길이 어디에 닿아 있건간에 조심스럽게 자신의 길을 더듬어 나가는, 그런 마음의 문제말이다.

 

  I know you will, I know you will -young and beautiful 中

 

낭독회가 끝나고 카페를 나서니 비가 그쳐있었다. 노란 조명 아래서 치열하게 고민하는 사람들을 둘러싼 공기와 대조되는 개운하고 어스름한 신촌 거리는 왠지 모를 후련한 기분을 에디터에게 선사하였다. 무언가 성취한 것도 아니고, 이 시간 이후로 고민이 끝난 것도 아니지만 묵묵히 제 길을 걸어가는 사람들에게서 희망 비스무리한 감정을 느꼈달까. 여기서 희망은 ‘hope’가 아닌 절망적인 상황에서의 희망, 어두운 구름 속 빛줄기를 뜻하는 ‘silver lining’에 조금 더 가까운 느낌이었다. 비록 오늘의 비는 그쳤지만 어두운 구름은 존재하기에 비는 또 올 것이다. 그리고 계속되는 우리의 고민은 이내 한 줄기 빛이 되어 세상을, 아니 적어도 각자가 걷는 길을 환히 비춰줄 것이다. 그저 낭만에 젖은 말로만 느껴지는가? 못 믿겠는 당신을 위한 에디터의 마지막 한 마디. I know you will, l know you will

왕 잔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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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 잔치

잔치의 시선으로 신촌의 장면과 사람, 장소를 기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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