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록의 역사
비극이 이미 벌어진 상태에서 살아남은 자가 할 수 있는 건 무엇인가. 아마도 다시는 그런 폭력이 반복되지 않도록 하는 일일 것이다. 그렇다면 무엇으로 그들의 죽음을 헛되이 하지 않을 수 있는가. 다시 처음의 구절로 돌아가 보자. 소설 속 물음에 화자는 이렇게 응답한다.
“진실이란 형태가 없습니다. 이런 진실에 형태를 부여하는 작업이 예술이라고 저는 생각하고 있습니다. 소설 역시 마찬가지지요. 소설의 도구는 진실이란 형태에 닿기 위한 다리라고 할 수 있습니다. 광주를 소설의 도구로 이용했다는 것은 광주가 곧 진실의 형태에 닿기 위한 다리가 되었다는 뜻이죠. 이 속에 부끄러움이란 감정이 들어갈 여지가 없습니다. 부끄러움은 광주라는 다리를 진실의 형태가 아닌 다른 곳에 세워놓았을 때 비로소 제기되는 문제지요.” (출처 정찬, 아늑한 길)
그렇다. 예술은 진실에 형태를 부여하는 일이다. 그렇다면 예술은 무엇인가? 아름다움을 표현하고 창조하는 일에 목적을 두고 작품을 제작하는 모든 인간 활동과 그 산물을 통틀어 이르는 말이다. 거대한 권력 앞에서 인간의 존엄을 지키기 위해 자신을 기꺼이 희생하는 일, 그 자체가 이미 아름다움일지도 모른다. 고로 이 희생을 기억하는 것이, 진실에 형태를 부여하는 일, 즉 예술 그 자체인 것이다. 과거의 이들을 위해, 그리고 자신이 살아갈 시대를 위해 살아남은 자가 기억하는 방법은, 기록이다. 써야만 한다. 침묵은 곧 망각이 되고, 망각은 곧 폭력의 반복을 가능하게 하므로. 신문이든, 소설이든, 시든, 어떤 형태라도 좋다. 우리는 기록해야만 한다. 기록한다는 건 잊지 않겠다는 일종의 서약이므로.

상상 속의 악은 다채롭지만 실제로는 천박하며, 상상 속의 선은 지루하지만 실제의 선은 언제나 새롭고 놀라우며 매혹적이라고들 한다. 신촌에 아무 연고도 없는 청년이 불의에 맞서 이대 앞 사거리에서 산화되었던 1980년의 6월에서, 시간은 무색하게 흘러 2026년의 5월에 이르렀다. 신촌의, 우리의 5월은 어떠한가? 실제의 악은 천박하며, 실제의 선은 언제나 새롭고 놀라우며 매혹적인가? 앞에서 언급한 ‘그’의 생애를 보면, 정의란 없고 권선징악도 존재하지 않는 듯하다. 이런 현실 앞에서, 인간은 무력해진다.
그러나 악은 바로 그것을 원한다. 체념과 굴복이 초래하는 망각. 진실은 저절로 드러나지 않으므로. 진실은 항상 고통과 희생의 결과로써 쟁취된다. 폭력은 은폐되기를 원하고, 사회는 은폐의 구조를 생성한다. 따라서 기록되지 않는 진실은 망각되며, 결국 또 다른 비극의 반복을 낳는다. 그러니, 우리는 당사자가 아닌 일이더라도 기록해야만 한다. 단지 과거의 피해자들을 기리기 위한 것을 넘어, 언제든 폭력의 대상이 될 수 있는 자기 자신을 지키기 위해서. 폭력은 특정한 시대에 국한되지 않으며, 누구에게나 행해질 수 있는 것이기에.
아직 댓글이 없습니다. 첫 이야기를 남겨주세요.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