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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촌문예 2026 · 09 · 25

[신촌문예] 9월호, 낙엽

Editor 왕 잔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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팍팍한 일상에 촉촉한 윤기를 내어주는,
신촌문예는 잔치가 제공하는 북 큐레이션 서-비스입니다.

2026

신촌문예

9월호

<낙엽>


아야. 저는 그만 나무에서 떨어지는 도토리에 한 대 맞고 말았습니다.
아주 우박이 내리는 줄만 알았습니다.
도토리도 겨우겨우 저 다 컸다고 유세를 부리나 봅니다.
나뭇가지 끝에 간신히 매달려 오늘내일하는 삶은 더 이상 살지 않겠다고.
확, 세상으로 뛰어내리나 봅니다.

모든 도토리가 나무에서 뛰어내리고 나면,

떼굴떼굴 떼굴떼굴 도토리가 어디론가 가고 나면,
이제 나뭇잎 차례겠지요.

나뭇잎은 살랑살랑 떨어집니다.
지난 계절 봄 여름 가을 조금 나무와 함께했던 기억을 안고
그 전부였던 세계에서 사르르르– 쫓겨나겠지요.

누군가의 가장 높은 곳에 살포시도 앉아보았다가
영영 흙이 되어 사라지겠지요.

가을, 그리고 어느새 한창 낙엽입니다.

 

함께 할 에디터

 

 

 

크리

재미있는 책을 찾아 독서 블로그를 어슬렁거리는 하이에나를 본 일이 있는가.

추리, 로맨스, SF, 고전… 무엇이든 가슴을 울린다면 OK.

최근에는 웹소설과 오디오북까지 섭렵하는 중이다.

살면서 가장 곤란한 순간은 “좋아하는 책 장르가 뭐야?”라는 질문을 들었을 때.

가장 억울한 순간은 “국문학과인데 좋아하는 장르가 없다고?”라고 핀잔받을 때.

독서 취향에 ‘가장’은 없다.

심장이 반응하는지 아닌지만 있을 뿐.

 

 

 

유찌

오로지 도파민을 위해 독서하는 편이다.

때문에 소설 ♡ 나. 사실 비문학은 멀리한다.

좋아하는 명언이 있다. “나도 모르게 경제상식 생겨버리면 어떡해!”

 

 

 

 

이지

책과 멀어진 지 오래인… 전직 한국현대소설 러버 국문과생.
학창 시절에 잔뜩 읽어둔 책을 아직도 꺼내 읽는다.

‘이제는 새로운 책을 읽어야 할 텐데’라고 생각하지만,
‘그래도 좋은 걸 어떡해!’ 책은 읽을 때마다 새롭다.

마음의 고향이었던 고양이가 많이 사는 문학소매점에 다시 방문하고 싶다.

 

 

 

 

영

아주 어릴 적부터 어쩐지 이다음에 커서는 도서관에서 일하게 될 것 같다고 생각했다.

책을 좋아하지만 실은 책을 읽고 난 후에 오는 것들이 더 좋다.

 

 

 

 

 

 

 

 

 

 

9월의 서가

궁금한 책을 눌러 바로 확인해보세요!

🌕크리 💌유찌 🦭이지  ♾️영

 

 

크리’ s Pick

▸『순례주택』, 유은실

간결한 문장으로 간결하지 않은 메시지를 전하는, 가장 익살스러운 인생 사용 설명서.

냉소적인 말투 뒤에 묘한 다정함을 숨긴 중학생 수림은 가족들과 살던 집이 경매에 넘어갔다는 소식에 ‘잘됐다’라고 생각한다.

할아버지 소유의 고급 아파트를 무단 점거하고 사는 부모님. 세상을 살아가는 방법이 공부뿐이라고 굳게 믿는, 성적은 높지만 허영심마저도 높은 언니. 그런 혈육들을 답답해하며 살던 수림은, 할아버지가 돌아가신 뒤 갈 곳이 없어진 가족들을 데리고 ‘순례 주택’으로 향한다. 그 공간이 자신에게 가르쳐 준 인생의 지혜를 부모님과 언니에게 전수하기 위해서.

인생을 사는 방법은 다양하다. 누구나 알고 있기 때문에 누구나 잊어버릴 수 있는 명제다. 우리는 다른 사람의 삶을 살아본 적이 없기에, 때때로 내가 사는 방식만을 정답으로 여기곤 한다. ‘저 사람은 왜 저럴까?’라며 남을 이해하기보다 무시하기를 택할 때도 있다. 『순례 주택』은 우리가 모르고 있었던 타인의 삶의 단면을 유쾌하게 그려내고, 그러한 익살을 바탕으로 삶의 다채로운 모습을 이해해 보라고 권한다.

“태어난 게 기쁘니까, 사람으로 사는 게 고마우니까, 찝찝하고 불안한 통쾌함 같은 거 불편해할 거야. 진짜 행복해지려고 할 거야. 지금 나처럼.” p.226

1군들에게 원더 그랜디움은 하나의 성(城)이었다. 성 밖의 사람들을 깔보며, 성 밖의 삶을 멋대로 재단했다. 나는 성의 쪽문으로 드나들며 성 밖에서 삶을 배웠다. 순례 씨 말처럼 나 혼자 어른이라는 생각이 들진 않는다. 하지만 성 밖의 삶을 두려워하지 않는 사람은 나뿐인 것 같다.(*1군들: 수림의 가족들) p.8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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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리’ s Pick

▸『아버지의 해방일지』, 정지아

정치는 나뉘지만 사람은 나뉘지 않아.

이데올로기에 환멸을 느끼던 딸이 빨치산 아버지를 이해하게 되는 이야기.
요약문만 보면 이렇게까지 정치적인 소설이 또 없겠다는 생각이 들겠지만, 사실 그렇지 않다.
빨치산의 딸이라고 손가락질 받는 삶을 살아온 ‘나’는 자신을 고통 속에 살게 한 사회주의자 아버지를 원망하였으나, 아버지의 장례식장에서 여러 인물을 만나고 과거를 거슬러 올라가며 비로소 아버지에게 연민, 사랑, 감사, 반성 등의 감정을 느끼게 된다.

책에서 ‘나’가 알게 된 아버지의 모습은 다양하다.
노동자를 위한다면서 정작 본인이 노동하는 건 싫어하는 모순적인 아버지.
사회에 대한 비행 청소년의 반항심을 높이 사며 그 아이의 절친이 된 호방한 아버지.
지식인을 싫어하면서도 딸의 대학 합격만큼은 누구보다 기뻐하던 아버지.
동료들을 지키기 위해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 위장 자수를 하여 전과자가 된 아버지.

책은 이분법적 이데올로기에서 벗어나 자신의 신념을 나름의 방식대로 지키며 사는 입체적인 인물들을 조망한다. 이번 호의 주제는 낙엽이지만, 낙엽을 이해하려면 먼저 나무를 알아야 하지 않겠는가? 인간이라는 하나의 잎사귀가 어떤 나무에서 자라나 끝내 어떤 낙엽이 되어 떨어지는지 따뜻한 시선으로 살펴보는 법을, 이 책은 우리에게 가르쳐 준다.

한때 적이었던 사람들과 아무렇지 않게 어울려 살아가는 아버지도 구례 사람들도 나는 늘 신기했다. 잘 죽었다고 침을 뱉을 수 있는 사람과 아버지는 어떻게 술을 마시며 살아온 것일까? 들을 수 없는 답이지만 나는 아버지의 대답을 알 것 같았다. 긍게 사램이제. 사람이 어떻게 그럴 수 있냐고 내가 목소리를 높일 때마다 아버지는 말했다. 긍게 사램이제. 사람이니 실수를 하고 사람이니 배신을 하고 사람이니 살인도 하고 사람이니 용서도 한다는 것이다. p.1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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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찌’s Pick

▸『괴테는 모든 것을 말했다』, 스즈키 유이

끊임없이 생산되는 문장, 그 속뜻을 살핀다.

낙엽의 특성 중 가장 좋아하는 점은 ‘스며듦’이다. 이 책은 가치관이 딱딱하게 확립됐을 법한 인생을 살아온 중년의 괴테 학자가 자질구레한 일들을 겪으며 새로운 생각 속으로 스며드는 모습을 그렸다. 이야기는 곧 한 문장으로 귀결된다: “괴테는 모든 것을 말했다.” 괴테는 운 좋게 제목 속 주어로 한 자리를 차지하게 됐지만, 책이 시사하는 바를 참고해보자면 이 문장은 이렇게도 표현 가능하다. “유찌는 모든 것을 말했다…”

문장의 본질, 그리고 언어의 힘을 몸소 느끼고 싶은 사람에게 추천한다.

“모든 건 이미 말해졌어도 자기가 말하지 않으면 재미없지.” p. 2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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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찌’s Pick

▸『사양』, 다자이 오사무

스러지는 인물의 고해에서 아름다움을 발견한다.

『인간실격』은 읽다 덮었지만 『사양』의 페이지는 순식간에 넘겨버리고 말았다. 몰락한 귀족, 이외에도 여러 아픔을 지닌 여성의 이야기를 그린다. 내내 허망한 상황 속에서도 어쩌면 지나치게 솔직한 그의 생각들과 편지를 훔쳐보며 질긴 투지를 엿봤다. 사랑, 그리고 혁명. 두 단어는 개인의 삶 속에서도 새롭게 정의될 수 있다. 책을 읽은 이후로 그 여자가 마음 속에서 떠나질 않는다.

인간은, 거짓말을 할 땐 언제나 진지한 표정을 짓게 마련이다. 요즘 지도자들의, 그 비장함이라니. 푸! p.78

남에게 존경받으려 의식하지 않는 사람과 어울리고 싶다. 하지만 그런 착한 사람들은 나와 놀아주지 않지. p.7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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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지’s Pick

▸『하품의 언덕』, 문보영

책말이 – 책을 뭉치로 읽는 법

책을 낱장으로 읽는 사람에 대한 연작 단편이 나오는 시인 문보영의 단편 소설집. 책 전체를 추천하기에 하나의 단편 제목을 따로 적지는 않겠다. 단번에 이해하기엔 쉽지 않은 단편들이 이해할 수 있을 법한 아름다운 문장들로 직조되어 있다. 연작 단편「책말이」의 주인공 도이람 작가는 그날 읽을 분량만큼 책을 찢은 후 돌돌 말아 끈으로 묶어 주머니에 넣고 다닌다. 읽을 때마다 한 장씩 버리기 때문에, 책을 읽으면서 동시에 책과 헤어진다. 마치 나무에서 한 장 한 장 떨어지는 낙엽처럼, 그녀가 읽는 책 뭉치는 흩날린다. 그녀를 휘감으며, 그녀와 멀어지며. 그렇게 읽고 버린 책들은 어디론가 사라지고, 남은 것은 읽는 동안 그녀를 스쳐간 문장들뿐이다. 가을의 어느 날, 한 장의 낙엽을 주워 들 듯 이 책을 펼쳐보는 것도 좋겠다.

사랑은 아침에 눈을 떴을 때 문득 삶이 불편하지 않다는 느낌이다. p.19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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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지’s Pick

▸『슬픔이 없는 십오 초』, 심보선

내 방에는 조용한 책상이 장기 투숙하고 있다.

떨어지는 낙엽엔 쓸쓸한 구석이 있다.  심보선 시인의 시집 『슬픔이 없는 십오 초』에는 그렇게 지나간 것들을 바라보는 순간들이 담겨 있다. 즉, 시인과 시인의 세계 전체가 담겨 있다. 사랑과 이별, 가족과 청춘, 도시의 풍경처럼 익숙한 것들에서 시작해 어느새 삶과 시간에 대한 생각으로 나아간다. 그래서 이 시집을 읽는 일은 누군가의 마음을 들여다보는 동시에, 내가 지나온 시간과 그 곁에 남겨진 것들을 돌아보는 일이기도 하다. 슬픔을 애써 떨쳐내기보다는 그 감정을 가만히 바라보고, 그 안에서 또 다른 장면과 문장을 발견하는 책. 선선한 바람이 불기 시작한 가을, 『슬픔이 없는 십오 초』를 천천히 읽으며 오래 곱씹을 문장 하나를 발견해 보는 건 어떨까?

하나의 이야기를 마무리했으니
이제 이별이다 그대여
고요한 풍경이 싫어졌다 p.13

노래가 아니었다면 우리는 생의 완벽을 꿈도 꾸지 못했으리 p.6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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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s Pick

▸『소설 보다: 가을 2026』, 박우연, 윤단, 최미래

사라진 뒤에 남는 것

박우연의 「권승희의 어둠과 빛」, 윤단의 「말과 풍경」, 최미래의 「킬링 파트」가 실린 소설집. 가족의 죽음, 지나간 인연, 사랑과 관계 속에서 잃어버린 것들까지, 세 작가는 서로 다른 화자의 목소리를 빌려 저마다의 방식으로 ‘사라진 뒤에 남는 것’을 조망한다. 어떤 상실은 어둠으로 남고, 어떤 이별은 함께 걸었던 풍경이 되어 남는다. 누군가는 타인의 시선 속에서 자신의 모습을 끊임없이 만들어가고, 그 과정에서 미처 돌아보지 못했던 마음과 마주한다. 그렇게 세 작품 속 인물들은 각자의 방식으로 무언가를 잃고, 그 빈자리를 천천히 들여보게 된다. 어떤 이야기는 어둡고 내밀한가 하면 어떤 이야기는 쓸쓸한 청춘의 풍경을 담았다. 또 다른 이야기는 오늘날의 연애와 자기연출을 예리하게 포착한다. 서로 다른 세 편의 소설이지만, 다 읽고 난 뒤에는 이상하리만치 비슷한 감정이 남는다. 이미 지나가버린 시간. 종종 사라졌기에 도리어 더 선명해지는 것들이 있다.

내가 걷는 동안 그들은 어느 순간 사라져버렸다. 아니면 내가 먼저 떠났거나. 뭔가 얘기를 한다면 나는 이런 것들에 대해 이야기하고 싶었다. p.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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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s Pick

▸『나의 9월은 너의 3월』, 구현우

우리의 소실점을 향해서

소실점. 실제로는 평행하는 직선을 투시도상에서 멀리 연장했을 때 하나로 만나는 점. 같은 시간대에 살지만 누군가는 9월이고 또 다른 누군가는 3월인 그들은 그 점 위에 서 있다. 사랑한다고 해서 매 순간 다정할 수는 없고, 이별이라고 해서 언제나 마음이 식은 뒤에 찾아오는 것도 아니다. 사랑했던 마음과 미워했던 마음, 잊고 싶은 마음과 다시 그리워하는 마음이 한데 뒤섞인 채 오래도록 남아 있을 뿐. 일상의 익숙한 풍경과 사소한 감정에서 출발한 시들은 때로는 한 편의 이야기처럼 이어지고, 때로는 불현듯 튀어나온 한 문장처럼 마음에 걸린다. 이 시집에서 시인은 63편의 시를 통해, 같은 시간을 보내면서도 서로 다른 계절을 살아가는 이들의 모습을 섬세하게 관찰한다. 이를 테면 나에게는 이제 막 시작되려는 것이 너에게는 이미 끝나버린 순간들. 사랑의 시차라는, 쉽게 설명할 수 없는 마음을 적확하면서도 낯선 언어로 붙잡아두는 시집.

너는 사랑과 죽음이라 했다.

나는 너를 사랑의 죽음으로 이해했다.

유서 같은 것이었다. 이 세상 어디엔가 있어도 살아서는 다시 만날 수 없는 너의 것이라 유서 같은 것이었다.

시인의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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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면 우리는 10월에 또 만나요, 안녕!

 

 

 

참여한 잔꾼들

크리크리 유찌유찌 이지이지 영영
왕 잔치
AUTHOR PROFILE
왕 잔치

잔치의 시선으로 신촌의 장면과 사람, 장소를 기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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