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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EOPLE 2016 · 02 · 10

6-2. 신촌대학교 – 배기성 학과장 인터뷰

Editor 펭귄

‘혁명과 민란의 드라마틱 동아시아사’   배기성 학과장님

 

간단한 본인 소개 부탁 드립니다.

나이는 올해로 만 40세. 한국나이로 42세… 딸 하나를 두고 있고 지금은 또 임신 중! (둘 째도 딸이시래요~) 유부남에 애 아빠. 요새는 이런 것도 상당한 경력이더라고요.

그리고 지금 신촌대학교에서 1년째 특이한 역사강의를 신촌대학교에서 하고 있고, 인터넷 팟캐스트 정치 전문 방송을 하고 있습니다. ‘마이너리티 정치 리포트’라고, 줄여서 ‘마정리’라고 사람들이 불러요. 그래서 ‘이장님!’ 이렇게 사람들이 부릅니다. (하하) 신촌대뿐만 아니라 전국의 서원에서 성리학에 관련된 사상사를 강의합니다. 저는 광명에 오리서원과 용인에 심곡서원에서 공무원 청렴 교육, 동아시아 사상사 교육을 전담하고 있습니다.

 

현재 어떤 수업을 하시고 계신지 설명 부탁 드려요.

저는 태국 방콕에 있는 국제 학교에서 선생을 했었습니다. 국제학교는 중고등학교 수업을 하더라도 교사가, 교육지침은 있을지언정 모든 교과서는 자기가 개발해서 써야 합니다. 교과과정을 따로 개발해서 쓰는 이 과정을 우리는 IB(인터내셔널 바칼로레아) 과정이라고 합니다. 지금 한국에선 전국에서 몇몇 개의 국제학교에서 하는데, 고등학교 2-3학년 과정만 있다는 것이죠.

저는 이 ‘혁명과 민란의 드라마틱 동아시아사’뿐만 아니라 그 전에 있던 ‘가라오케 근현대사’까지도 IB식으로 수업을 해보고 싶었습니다. 독특한 관점을 던졌을 때 학생들이 호응을 하는지 보고 싶었습니다. 지금 보시면 아시겠지만 ‘가라오케 근현대사’가 신촌대학교가 자랑하는 최고인기, 최다수강생 강의에요. 제가 그걸 보면서, ‘아 이거 통한다. 강의만 잘하고 정확하게 전달만 할 수 있다면, 사람들이 배기성에 대한 신뢰가 있다면, 신촌대학교라는 시스템에 대한 신뢰만 있다면 성공할 수밖에 없다.’ 라는 생각을 갖게 되었습니다. 다른 전문 강사 분들도 잘 하시겠지만 – 제가 1년동안 그 분들 강의를 다 들어봤습니다. – ‘저 정도라면 내가 이길 수 있겠다.’ 생각했습니다. (웃음)

 

이 전에도 신촌대학교에서 수업을 여신 적이 있으신가요?

신촌대학교가 시작한 작년 4월부터 한 달도 빠짐없이 강의해왔습니다. 처음에는 ‘가라오케 근현대사’ 하나만 했고, 보조로 ‘드라마틱 한국사’라고 해서 유명 사극의 실제 역사를 사극과 연결시켜서, 제가 실제로 연기를 하면서 강의했죠. 그것도 상당한 히트였어요. 대조영, 해신, 태조 왕건… 그러다 보니 최수종 강의가 된 거죠. (허허)

봐서 알겠지만 수강생들의 이해를 돕기 위해 수업을 여러 가지 측면에서 진행하고 있어요. 제가 직접 연기를 한다든가, 노래를 한다든가 하면서요. 대중 가요라고 하는 것이, 지금 봐도 알겠지만, 사회를 많이 반영해요. 옛날에는 그게 더했단 말이죠. 옛날의 그 SNS는커녕 전화도 제대로 보급이 안되던 시절에 어떤 가요가 히트를 쳤다는 것은 해당 사회의 사고방식과 심리를 정확히 꿰뚫어보지 않았더라면 불가능한 일이에요.

예를 들어, 남진의 첫 히트작 ‘가슴 아프게’라는 곡은 가사가 이렇게 시작해요.

 

‘당신과 나 사이에 저 바다가 없었다면 쓰라린 이별만은 없었을 것을’

 전라도는 섬이 아주 많아요. 남진이 목포 출신이거든요. 그 섬들이 대부분 평야에요. 예전에는 일제가 농민 수탈을 위해, 농작물만을 생산하게 해서 수탈지로 삼기 위해 육지에 살던 사람들을 섬으로 강제로 이주시켰단 말이죠. 엄청난 군락을 이룬 거에요. 그 사람들이 박정희 정부의 수도권 집중화에 의해 또 서울로 이주를 했잖아요. 공부하러, 취직하러. 대학을 가려 해도, 취직을 하려 해도 (인프라가) 섬에 없으니 서울을 가야 했던 거죠. 그러니 대부분 섬에 고향을 두고 있거나 섬이 아니라 할지라도 ‘고향으로 돌아가고 싶다. 내가 이 타향에 와서 무슨 고생이냐.’ 하는 전라도 사람들의 그런 심리를 정확하게 뚫었던 거에요. 그래서 남진이 그렇게 히트를 쳤죠. 생기기도 그 때로는 잘생겼고. 거기에 이제 맞대결을 하려고 부산 출신의 ‘나훈아’라는 가수가 나왔죠. 이쪽은 호남, 이쪽은 영남. 그거를 박정희 대통령이 김대중과 붙던 70년대에, 영호남 지역주의를 상징하는 걸로 키웠죠, 정권 차원에서. 방송에 계속 출연시켜주고, 리사이틀을 할 수 있게 홀을 국정원이 나서서 빌리게 해주고…

이런 것들을 수업시간에 ‘남진-나훈아와 70년대’, ‘조용필과 80년대’, ‘애니메이션 주제가와 80년대’와 같은 주제로 수업을 진행하는 거죠. 제가 한번 수업을 하면 12곡 정도 노래를 해요. 절대 졸 수가 없어~ 아무도 안 재우는 역사 수업을 해 보자! 역사가 싫어서 이공계를 간 학생이 다수 발견되는 우리 사회에요. 역사를 하면 이가 갈리는 사람들이 너무 많아. 왜냐면 중고등학교 때 선생님들이 너무 재미가 없었거든.

 

 

보통 수강인원은 어떻게 되고 어떤 분들께서 찾으시나요?

요정도 규모(7-8명)가 굉장히 많은 거구요. 처음에는 제 지인들이 많이 와서 스물 몇 명씩 되고 그랬어요. 그런데 작년 가을 학기 때 흥행 참패를 했습니다. 그래서 세 명, 네 명 앉혀놓고 강의했는데 그 분들이 다 팬이 되었죠. 이번에는 그나마 많이 회복된 겁니다.

이게 아직까진 정식 교육기관이 아니고 시험을 친다거나 이걸 듣는다고 해서 스펙에 도움이 된다거나 하는 게 아니잖아요. 그게 되면 수강생이 폭발적으로 늘겠죠. 아직까지 그렇지 않은데도 불구하고 지금 돈 내고 수업 들으러 오시는 분들은 정말 대단하다고 생각해요. 그만큼 관심이 있고, 배기성을 신뢰하는 사람들인 거죠. 특히 네 번 다 나왔다는 건 대단한 겁니다, 이 추위에.

 

신촌대에서 수업하시면서 기억나는 수업이 있으신가요? 혹은 기억나는 수강생이라든지?

제일 기억에 남는 강의는 메이지 유신입니다. 드라마틱 제2강. 우리나라 사람들이 일본 역사에 대해 잘 몰라요. 기껏 알아봐야 이토 히로부미? 뭐 한 사람인지도 잘 몰라요. ‘내 잘 안다~’하면 도쿠가와 이에야스, 도요토미 히데요시 이 정도 아니겠습니까? 일본은 어떻게 근대화를 해서 저렇게 지금까지 강대국으로 자리잡고 있는가에 대한 것들, 이 모든 단초를 이룬 메이지 유신의 성공을 한국에서는 아마 제가 처음으로 학생들에게 생생하게 전달을 했을 겁니다. 어떤 제도권 강의실에서도 들을 수 없죠.

제일 인상 깊은 수강생이라 하면 오늘 저한테 총선 출마하라고 한 문성준 형님. 그 형님이 사실 제일 인상 깊어요. 저한테 장문의 문자를 보내셨어요. 이번 총선 출마하지 않겠냐, 너무 아깝다고요. 이 강사를 그 정도로 알아주고 인정을 해주는데 어떻게 감동을 안 합니까. 너무 감사하죠.

 

2월에 열리는 반려동물의 세계사는 어떤 수업인가요?

‘반려동물의 세계사’가 또 하나의 기대작입니다. 아주 블링블링한 강의가 될 계획입니다. 제가 동물을 되게 좋아해요. 신촌대가 아니면 이거 못합니다. 이 강의가 끝나면 1년동안의 신촌대의 역사를 한번 정리해서 책을 써보려고 합니다. 부제는 ‘세계에서 가장 독특한 신촌대 역사’ 이런 식으로요. ‘반려동물의 세계사’는 문화인류학과 세계사적 관점에서 동물과 인간이 어떻게 접촉하게 되느냐에 대한 아주 독특한 강의가 될 거에요. 이런 강의가 한번도 시도된 적 없기 때문에 감을 잡을 수가 없죠. 저 자신의 머릿속에만 있는 거에요. 개, 고양이, 소, 말, 알파카, 캐시미어, 코끼리, 흑표범, 낙타, 뭐 다 나올 거에요. 제가 양머리를 하고 수업을 할 지도… (웃음)

 

 

처음 신촌대학교를 어떻게 알게 되셨나요?

윤범기 운영위원장의 아주 단순한 권유였습니다. ‘형님도 강의 하나 하실래요?’ 이렇게.

 

신촌대학교에서 강의를 열게 된 특별한 이유가 있으신가요? 왜 굳이 신촌대학교였는지.

‘가라오케 근현대사’를 해보고 싶었습니다. 다른 어디서도 못하잖아요. 우리나라 어디서 이런 걸 할 수 있겠어요. 2000년도에 ‘한국사 시민강좌’라는 이름으로 수업이 있었는데, 거기서 ‘남진, 나훈아와 70년대’를 한번 해보려고 했었어요. 거기 선배들한테 제가 미친놈으로 찍혔어요. 그러고 나서 15년 동안 가슴 속에 품고 있었죠.

 

종강하시는 소감이 어떠세요?

종강을 하면서 느끼는 가장 큰 감정은 ‘다행이다’라는 거에요. 제 실력을 보여줄 수 있고, 제가 원하는 대로의 사회적 파장을 일으킬 수 있어서 다행이다.

제가 생각한 1, 2월 계절학기 최대 과제는 수강생의 확보였어요. 5명을 확보하지 못하면 공간 대관에 돈이 너무 많이 들어서 폐강시킨다는 게 원칙이었어요. 실용학문이야 폐강의 위협이 없겠지만, 저 같은 인문학의 경우에는 가을 학기에 한 번 실패를 해보니까 그게 되게 두렵더라구요. 혼신의 힘을 다해 홍보했거든요. 12월 달에 광명에서 동굴파티라는 행사가 있었어요. 거기서 제가 동굴의 역사에 대해 강의했어요. 인간에게 있어서 동굴이라는 게 어떤 역사를 가지고 있는지. 그걸 강의하는데 제가 15분 동안 고함지르고 구호를 외치게 하고, 동굴 안에서 쩌렁쩌렁 울리고… 그러니까 수많은 참가자들이 부흥회 온 것 같다고 하시더라고요. 그 정도였어요, 제가. 이렇게 하지 않으면 내 강의 폐강된다라는 생각 때문에.

신촌 맥주 축제에서도 한국 맥주의 역사에 대해 강의를 했었어요. 한국 맥주의 역사도 결국은 근현대사죠. 광명 동굴에서의 강의와 신촌 맥주 축제에서의 강의에 공통점이 하나 있습니다. 크레이지 모드로 하는 겁니다. 맥주 들고 술 마셔가면서 ‘아~기분 좋다~’하고 노래 불러가면서. 조용필의 단발머리를 부르면서 30대 단발머리 관객 있으면 맥주 주고 (웃음) 김태우가 메인 스트리트에서 디제이하고 있었고 저는 신촌역 쪽의 스테이지에서 했는데, 김태우가 디제잉을 못 할 정도로 제가 고함 빡빡 지르면서 했어요. ‘내 목표는 김태우를 꺾는 거야, 알았어?’ 하면서. 이 모든 게 다 신촌대 덕분에 저한테 생긴 기회들이죠.

새해에도 신촌대와의 인연은 계속 될 것 같아요.

 

인터뷰 내내 카페가 쩌렁쩌렁 울리도록 열정적으로 답변해주신 배기성 학과장님!

업도 똑~같이 혁명과 민란의 드라마틱한  역사의 소용돌이 같았다.

우리나라에서 지금 당장 제일 많은 현금을 가져올 수 있는 사람이 누구인가?라는 질문에 3초 안에 답이 나오지 않는다면 우선 배기성 학과장님 수업을 신청 하시고 다음 주 청강 후기를 읽어보시길. 

부끄럽지만 역사라고하면 우선 피하고 보는 에디터 본인도 하나도 모르지만 푹 빠져 들은 강의였으니 다들 역사라고 거부감 갖지 말고 다음주 수업 청강 후기를 기대해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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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만 사는 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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