잔치마당 시네마당 #8MILE
지난 5월 9일 2002년에 개봉했던 에미넴 주연의 영화 <8MILE>이 15년 만에 재개봉 되었다. 에미넴의 자전적 인생 이야기를 담은 것으로 유명한 이 영화는 ost인 Lose Yourself도 빼놓을 수 없다. 힙합이라고는 최근의 예능 프로인 ‘쇼 미더 머니’, ‘언프리티랩스타’로만 접해본 에디터가 이 영화를 본 이유는 엄청나지 않다. 단지, 언뜻 스쳐 지나가는 주인공 지미의 자조적인 대사 한마디 “꿈은 높은데 현실은 시궁창이야”에 매료되었기 때문이다.

제목으로 쓰인 8MILE은 실제 디트로이트에 존재하는 도로로 도시와 교외를 가르는 도로의 이름이다. 주로 이 도로는 흑인 거주지와 백인 거주지를 가르는 상징적인 경계선으로 알려져 있다.언더그라운드 힙합계에서 주류는 흑인이고 백인 래퍼는 마치 호랑이 굴에 들어간 것과 같다. 단지 백인이라는 이유만으로 비웃음과 조롱의 원인이 되어버린 주인공 지미는 그들에게 맞서 자신의 실력을 발휘하는 것조차 너무 두려운 일이었다.
그래서 에디터는 이 영화의 오프닝이 매우 인상 깊었다. 영화의 첫 시작 3분가량, 지미는 랩 배틀을 앞두고 화장실 문을 걸어 잠근 채 홀로 헤드폰을 끼고 랩을 웅얼거린다. 바깥에서는 빨리 문을 열라고 윽박을 질러 대도 오로지 거울에 비친 자신을 바라보며 랩을 내뱉을 뿐이다. 그리고 너무나도 갑작스럽게 지미는 변기로 뛰어가 자신의 속을 게워낸다. 너무나 단순한 장면이었지만 그를 짓누르는 긴장감과 두려움을 느끼기엔 충분했다.
그리고 반전은 없었다. 지미는 상대에게 45초 동안 디스 랩을 쏟아내야 하는 랩 배틀에서 한마디도 내뱉지 못한 채 무대에서 내려온다.

8MILE은 지미의 삶과 꿈을 가두는 현실의 경계선을 의미하기도 한다.
지미의 환경은 더 이상의 끝이 상상되지 않을 만큼 참담하다. 전 여자친구는 임신했다는 핑계로 자신을 떠나고, 엄마는 자신의 고등학교 동창인 친구와 동거 중이다. 엄마가 생일선물로 준 자동차는 엔진조차 가동이 안되는 폐차와 같다. 그래서 지미는 버스를 타고 알바를 위한 출근길을 나선다. 그 속에서 너무나 무기력하고 자신감이 없어 보이는 지미는 주머니 속에 꼬깃꼬깃한 종이 뭉텅이를 꺼내어 글을 끄적인다. 종이는 지저분하고 글씨는 빼곡하다. 창밖으로 본 간판들과 풍경들을 보고 생각나는 가사들을 단지 종이의 빈틈에 욱여넣을 뿐이다.

피부색 차이, 네 랩에선 안 느껴져
지미의 친구들은 계속해서 다시 무대에 설 것을 권유한다. 지미가 그때의 수모를 되갚기를, 상업적 성공을 하기를, 엄마의 집에 얹혀사는 것이 아닌 떳떳하게 자립하기를 바라는 각자의 소망을 담아 지미를 응원한다. 하지만 지미는 자신이 없다. 당장 3달치의 월세를 밀려 쫓겨나게 된 가족들, 특히 동거남과의 결별 때문에 나락으로 떨어져 버린 엄마는 “넌 무슨 대단한 일을 하길래?”라며 쏘아붙인다. 당장 어린 여동생과 함께 살아갈 날이 막막하다.

꿈은 높은데 현실은 시궁창이야
“꿈은 높은데 현실은 시궁창이야” 이 대사 한 줄에 매료된 에디터는 곧바로 영화를 예매했다. 사실 이 대사는, 에디터가 평소 친구들과 농담하듯이 자조하며 내뱉던 문장이었다. 영화를 보고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내가 강조하고 싶은 것은 꿈의 높이일까, 시궁창 현실일까? 혹은 둘 다일까? 이런 말을 뱉는 나는 꿈의 높이에 부응하지 못하는 현실의 나에 대한 변명을 하는 것은 아닐까?’
누가 봐도 지미의 현실은 분명 시궁창이다. 영화가 끝나가면서도 주인공의 현실이 나아지지 않는다. 패싸움을 벌이다 어리숙한 친구는 자신의 다리에 총을 쏴 버렸고, 새롭게 만났던 여자친구는 자신의 친구와 바람이 난다. 그러나 이 모든 것은 아이러니하게도 지미가 무대로 향하게 하는 원동력이 되었다.
그것은 절실함이었다. 배신과 무시 속에서 그리고 현실의 시궁창 속에서 절실해진 지미는 무대에 서고 싶었을 것이다. 45초 동안의 침묵을 깨부수는 수많은 가사들을 내뱉고 싶었을 것이다. 출근길에 적었던 가사들, 폐차를 선물 받고 폐허 같은 집에 살고 있는 자신을 자조적으로 표현했던 랩, 공장에서 즉흥적으로 참여했던 랩 배틀 등은 모여 ‘지미’를 만들었다. 결국 지미는 공장에서의 야간 업무를 잠시 친구에게 맡기고 무대로 향한다.

난 백인 쓰레기야 그래서 떫어?
결국 지미는 모두의 환호 속에서 챔피언의 자리를 차지하고 친구들과 함께 무대를 내려온다. 친구들은 들떴고, 지미의 얼굴은 밝다. 어느 영화에서나 볼 수 있는 1등의 모습이다. 그런데 그는 다시 제강회사로 돌아간다. 랩 배틀 경기를 함께 꾸려나가자는 친구의 조언에 “난 그냥 내 일이나 할래”로 답한다. 친구도 더 이상 그에게 무대에 서기를 권유하지 않는다. 그렇게 지미는 자신의 원래 자리로 돌아간다. 지미는 백인과 흑인으로 구분되었던 랩의 실력, 시궁창 같은 현실 속에서 높은 꿈의 경계를 허물기만 하면 됐다. 그것으로 충분했다.
영화 속 너무나 극단적인 지미의 ‘시궁창’과 비교하며, 지금 우리의 현실은 ‘그보다는 낫지 않냐’는 어쭙잖은 위로를 하고 싶진 않다. 우리 모두는 각자의 ‘꿈’과 ‘시궁창’을 갖고 있을 뿐이다. 에디터 또한 그 둘 사이에서 방황하고 있다. 시궁창에서 벗어나 꿈의 중심에 우뚝 서는 로맨틱한 엔딩은 바라지 않는다. 단지 그냥 둘 사이에서 고민할 뿐이다. 영화는 끝이 났고 한 가지의 물음은 내 머릿속을 떠나지 않는다. ‘나는 과연 절실한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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