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이런 축제가 반갑다
우리는 이런 축제가 반갑다
부제: 2018년 한녀들의 수난사
사회에 만연한 성차별에 반기를 들고 일어난 페미니스트들에게 2018년은 생존의 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성범죄 피해 사실을 SNS에 밝히며 그 심각성을 알리는 캠페인인 ‘미투’ 운동을 시작으로, ‘홍대 누드 몰카 사건’에 대한 편파 수사에서 비롯된 혜화역 시위, 지난 7월 방영된 <그것이 알고 싶다>의 디지털 성폭력과 불법 동영상의 진실, 구하라·낸시랭과 같은 여성 연예인들이 피해자로 전락한 리벤지 포르노 사건, 잊을만하면 떠오르는 채용 성차별 등 2018년은 여성으로 살아가기에 참으로 다사다난한 해였다. 굵직한 사건 외에도 성별에 기인한 수많은 범죄 기사들을 접하다 보면, 한국에서 여성으로 지낸다는 것은 단지 자신의 삶을 영유하며 살아간다기 보다 살아‘남아야’ 하는 문제에 직면하는 것처럼 느껴지기 일쑤다. 자신의 애인을 상대로 헤어짐을 고하면 일가족이 몰살되는 파국을 맞이한다거나, 공적인 자리에서 여권 신장에 관한 화두를 던지면 ‘메갈’로 낙인 찍혀 지탄을 받거나 하는 일은 더 이상 남의 일이 아닌 것이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FEMINIST ONLY’라는 간판을 세우고 수 차례 신촌 여성 만화제를 주최해온 곳이 있다는 사실은 반갑지 않을 수 없다. 확실히, 우리는 이런 축제가, 이런 물결이 반갑다.
2018 신촌 여성 만화제의 포스터
올해로 세 번째를 맞이하는 신촌 여성 만화제는 신촌 <피망과 토마토 망가 BAR>의 사장님께서 주제에 맞는 만화를 직접 선정해 진열해두는 방식으로 진행된다. 서울 국제 여성 영화제, 광주 여성 영화제, 제주 여성 영화제 그리고 부산 여성 영화제도 있는데 왜 여성 만화제는 없을까? 하는게 그의 생각이었다고. 성별만을 놓고 보았을 때 이미 기득권자인 ‘남성’ 사장님께서 이렇게 목소리를 내고, 동참한다는 것에 흥미로움을 느낀 나는 사장님 옆에서 도수 높은 맥주를 꼴깍꼴깍 마시며 그와의 짧은 인터뷰를 나눴다.
호두: 신촌 여성 만화제에 대해 간략하게 소개해주신다면요?
사장님: 3회 정도 주최해 온 신촌 여성 만화제는 다른 분들의 도움을 받아서 시작한 것입니다. 매대를 마련하여 책을 추천해주는 것을 주로 하고 있죠.
호두: (매대를 가리키며) 혹시 저기 있는 책들 중 사장님께서 추천하고 싶은 책이 있을까요?
사장님: 최근에 산 책들이 많아서 아직 전부를 읽어보지는 못했지만 <두 여자 이야기>를 추천합니다. 굉장히 현실적인 만화여서 느끼는 것도 많고 생각할 거리들도 많은, 누구에게나 자신의 이야기가 될 수 있는 것들이 담겨있어요. 특히 30대 이상에게 더 많이 와 닿을 것이라고 생각하는데요. 결혼 이야기도 나오고, 그렇습니다.
호두: 지난 2016년 한창 이화여대에서 시위를 할 때, 학생증을 가져오면 무료로 음료를 제공하는 등의 행사를 한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당시 저도 핫초코를 먹으러 왔던 기억이 있는데요(웃음). 그 때도, 지금도 <피망과 토마토 망가 BAR>는 젊은 층과 함께 간다는 느낌을 받곤 합니다. 사장님의 특별한 이유가 있으신지요?
사장님: 특별한 이유가 있는 것은 아닙니다. 생각해보면 이화여대 시위는 국가적으로도 큰 사건이었고, 지금의 페미니즘 역시 전 세계적으로 큰 흐름이자 하나의 트렌드인 것 같아요. 거창한 이유가 따로 있지는 않지만 젊은 층과 동행하려고 합니다. 젊은 세대의 변화에 비해 대중문화가 느리게 따라가는 것 같거든요.
호두: <피망과 토마토 망가 BAR>는 입구에 ‘FEMINIST ONLY’라는 간판이 있고, 와이파이를 연결하기 위해 창을 띄우면 또 ‘FEMINIST ONLY’라는 이름의 설정이 뜨더라구요. 혹시 이걸로 인해서 문제가 되는 일은 없었나요?
사장님: 크게 문제가 되는 것은 없었지만, 우리 만화 BAR가 여성 전용이라는 이미지가 생기기는 했어요. ‘FEMINIST ONLY’라는 문구를 당연하게 받아들이고 넘어갈 줄 알았는데 받아들이지 못하시는 분들이 계실 줄은 몰랐어요. 페미니즘 안에서도 논의가 필요한 부분이 많고 다양한 해석이 나오는데, ‘FEMINIST ONLY’를 여성 전용으로 받아들이는 것이 아쉬워요. 다양한 방식으로 논의가 이루어지고 받아들여졌으면 좋겠습니다.

곳곳에 적혀있는 ‘FEMINIST ONLY’
호두: 만약 가게에서 이 문구를 쓰기 전으로 돌아갈 수 있다면, 또 다시 ‘FEMINIST ONLY’를 사용하실 건가요?
사장님: 돌아갔더라도 그 문구를 썼겠지만 장사를 하는 입장에서는 좀 더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고는 느꼈어요. 이왕 이렇게 시작한 거, 앞으로 어떻게 될지는 모르겠지만 알아서 정리가 되리라 믿습니다. 하지만 꼭 짚고 넘어가고 싶은 것이 있는데, 페미니즘을 내세워서 아무거나 다 해도 되는 것은 아니라는 점이에요. 사실 이러한 논쟁은 굉장히 미묘한 것이고 말하는 것도 조심스러울 수 밖에 없어요. 하지만 페미니즘을 방패 삼아 모든 것을 해도 되는 것은 아니라는 점을 말하고 싶어요.
높은 도수의 맥주 탓일까, 막막하게만 느꼈던 현실에 반가운 축제를 열어준 반가운 사장님에 대한 흥분 탓일까. 발그레한 볼을 하고선 매대에 한참을 서성였다. 책 <엄마, 오늘부터 일하러 갑니다!>를 한 손에 꼭 쥔 채.
한편으로는 마음 속에 피어오른 씁쓸함을 감추지 못했다. ‘여성’이라는 꼬리표를 떼고서 오롯한 자아만을 받아 들여주는 사회가 오긴 할까. 그곳에서는 어느 누구도 당당한 목소리를 낼 수 있을까. 확실히 자리잡혀버린 씁쓸함을 나는 여전히 느끼고 있었다.
딸-랑
“다음에 또 올게요 사장님”

11월 말까지 열리는 신촌 여성 만화제에서 맥주 한 잔과 함께 여성 만화 일독을 권한다.



여전히 우리 사회에서 ‘페미니스트’라는 용어 자체는 오래된 고정적 관념들이 만들어 놓은 의미로만 해석 되는 것 같아 안타깝습니다.. 저 부턴도 이 글을 보며 다시 한 번 내가 생각하고 있던 ‘여성’, ‘페미니스트’에 대한 의미와 모습에 대해 반성해 보게 되네요! 정말 좋은 글이었습니다~ 삶에 치우쳐서는 사회에 벌어지고 있는 다사다난한 사건들에 대해 깊이 생각해볼 여유가 없었는데, 이 글을 읽고 나니 사건들의 이면에 존재하는 아주 심히 곪은 우리 사회의 문제들이 보이네요ㅠ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