잔치마당 시네마당 #서대문구노동인권영화제 #팍스콘
지난 5월 1일은 메이데이였다. 메이데이는 만국 공통의 국제노동절이다. 하루 8시간 노동을 위한 미국 노동자들의 투쟁 과정에서 태어났고, 현재는 세계의 노동자들이 연대를 다지고 축하하는 날이기도 하다.
하지만 한국 달력의 5월 1일에는 ‘노동’이라는 단어가 빠져 있다. 한국에서 메이데이는 ‘근로자의 날’로 불린다. 여전히 ‘노동’이라는 단어가 지나치게 급진적이고 얼마쯤은 불온한 취급을 받는 나라답다.
2017년 메이데이를 맞아 이화여대 아트하우스 모모에서 제5회 서대문구 노동인권영화제 ‘보통 슈퍼우먼’이 개최되었다. 상영된 작품은 여성 노동자의 삶을 다룬 국내외 다큐멘터리들이다. ‘여성’인 ‘노동자’의 인권이라니. 여기는 무려 강간 모의 경험이 있는 대선 후보가 출마하는 나라이자 ‘노동이 있는 민주주의’라는 말이 대선 메인 공약 카피로 제시될 만큼 생소하게 받아들여지는 나라, 대한민국이다. 이러한 나라에서 여성 노동자는 얼마나 극한직업일까. 머지않아 여성 노동자가 될 에디터는 영화제의 폐막작을 보러 갔다.
‘슈퍼우먼’이란 무엇일까?
‘보통 슈퍼우먼’의 마지막 영화는 <팍스콘: 하늘에 발을 딛는 사람들>(이하 ‘팍스콘’)이었다. ‘팍스콘’은 애플의 부품제조 협력업체 팍스콘의 중국 톈진 공장 이야기다. 톈진의 팍스콘 노동자들은 하루에 12시간 일했고, 복지는 받아본 적도 없었고, 무슨 작업을 하고 있는건지 알지도 못한 채 관리직의 모욕을 참았고, 그러다 뛰어내렸다. 한 해에 24명. 팍스콘 공장에서 투신한 노동자들의 숫자다. 영화는 그들 중에서도 하반신 마비로 살아남은 20세 여성 티엔 위를 중심으로 진행된다.
시골에서 중학교를 졸업하자마자 톈진 공장에 취직한 17살 티엔 위에게 공장의 누구도 식당이 어딘지, 어떤 일을 해야하는지 알려주지 않는다. 작업 속도가 조금이라도 늦어지면 동료들 앞에서 수모를 당한다. 노동자들에게는 여가시간이 없다. 비인간적인 환경에 지친 티엔 위는 점점 일상을 잃어갔다. 티엔 위는 급여를 정산받으려고 시도하지만 실패했고 절망한 끝에 자살을 시도한다. 팍스콘에는 노동법도 국가도 없다.
살아남은 티엔 위는 현재 수제 샌들을 만드는 일을 하고 있다.
영화는 티엔 위를 비롯한 공장 노동자들의 인터뷰를 보여준 뒤 이 비극이 시스템의 문제로부터 왔다고 지적한다. 팍스콘의 부품으로 생산된 애플 제품 수익의 대다수는 미국과 한국으로 가고, 중국/팍스콘에는 3% 가량의 아주 적은 수익만 돌아온다. 노동자들의 임금은 팍스콘의 수익에서도 2%에 못 미친다. 결국 노동자들의 복지 환경이 갖춰질 수 없는 구조라는 것이다.
‘팍스콘’의 문제 제기는 어느정도 정당하지만, ‘노동자의 인권 침해’라는 영화제의 초점에 들어맞지는 않는다. 현재 국제 시장의 수익구조가 잘못된 것은 분명하다. 그러나 공장 노동자 24명의 투신을 단순히 거시적인 경제 시스템의 탓으로 돌리는 것은 무책임하다. 영화는 시장에서 중국/팍스콘이 충분한 돈을 가져가지 못하는 문제를 중점적으로 제시한다. 그러나 과연 팍스콘의 수익 증대가 곧 노동환경 개선으로 이어질까? 영화의 문제제기 속에서 노동자들의 복지를 무시하는 회사 운영진이나 관련 법을 제정하지 못한 국가의 책임은 어디로 갔는지 알 수가 없었다. 중국이 사회주의 국가라는 것을 차치하고서라도 ‘국가’는 등장하지도 않는다. 이 지점에서 이 영화가 지나치게 나이브하거나 혹은 그런 척 하고 있다는 인상을 지울 수 없었다. 논점에 대한 객관성이 떨어진다면, 소위 ‘좋은’, 또는 ‘옳은’ 주제로 영화를 만든다고 그 영화가 자동으로 좋은 영화가 되는 것은 아니다.
덧붙여 적어도 ‘여성 노동자’의 인권을 다룬다는 영화제의 상영작이라면 최소한의 젠더 감수성은 갖춰야 한다고 생각한다. 영화는 미국과 중국의 불평등한 수익 구조를 애니메이션으로 설명하는데 미국은 명품을 좋아하는 사치스러운 아내, 중국은 아내에게 돈을 벌어다 주는 불쌍한 남편으로 비유된다. 미국을 상징하는 아내는 강조된 몸매를 과시하면서 반지를 받고, 내레이션은 ‘항상 돈을 버는 쪽과 가져가는 쪽은 정해져 있다’ 고 언급하는 식이다. ‘팍스콘’의 결말에서 티엔 위는 착한 ‘남자’를 만나 가정을 꾸리고 궁극적인 행복을 얻는 것으로 그려진다. 사실 이러한 성차별적 장면들은 언급하는 것이 우스울 정도로 전형적이다. 그러나 문제는 ‘팍스콘’이 상영된 제5회 서대문구 노동인권영화제의 이름이 ‘보통 슈퍼우먼’이고 ‘여성’ 노동자들의 인권을 다뤘다고 설명된다는 것이다. ‘보통 슈퍼우먼’에서 여성의 삶에 초점을 맞춘 영화는 7개의 상영작 중 3개 남짓에 불과했다. 모든 상영작이 젠더 문제를 다루기를 기대하는 것마저 어렵다면, 차별적인 장면을 포함하고 있는 영화는 상영하지 않는 것이 맞다.
영화는 티엔 위의 바람이 자유로워지는 것 뿐이었다며 하늘을 날아가는 선녀의 영상으로 감상적인 결말을 맺는다. 하지만 조명이 켜진 뒤에도 우리의 문제는 사라지지 않는다. 티엔 위는 살아났지만 공장의 노동자들은 모두 해고되었고, 아직도 티엔 위와 같은 환경에서 일하는 노동자들은 수없이 많으며, 한국의 4차 산업혁명은 노동 환경의 혁명이 아니다. 한 대선후보가 지적했듯, 현재 IT 업계의 노동자들의 복지 환경은 70년대 공장 노동자들의 환경을 그대로 옮겨 현재 사회의 텍스트에 맞게 약간 고친 것에 불과하다. 과연 IT 업계 뿐일까. 이 헬조선을 여성 노동자로 살아갈 에디터의 마음은 답답했고 영화가 끝난 뒤에는 더 답답해졌다.
에디터 고온 : 투표하러 갑니다~ᕕ( ᐛ )ᕗ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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