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의 마술사, 에셔
잠깐, 이 글을 읽기 전!
아래 그림을 봤을 때 천사, 악마 중 어느 것이 먼저 보이는가?

Angels and Devils Tessellation, 1942
혹시 천사가 먼저 보였다면 이 글을 통해 소소한 축하를 보내고 싶다. 천사가 먼저 보였다면 당신은 선한 사람이고, 믿거나 말거나 악마가 먼저 보였다면 당신은 나쁜 사람이기 때문이다. (출처: 페이스북의 어느 글)
SNS를 즐기는 사람이라면, 이 글을 읽기 전 이미 위의 그림을 본 적이 있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누가 이런 그림을 그렸는지는 아무도 궁금해하지 않았을 테다. 그는 바로 유사심리테스트로 떠돌아 다닐만큼 한 그림에 여러 이미지를 담아낼 줄 알았던 화가, 수학적 개념을 그림에 도입하기를 즐긴 네덜란드 출신의 예술가, 오늘 이 글에서 소개하고자 하는 M.C. 에셔이다.

밀려오는 찬바람에 옷깃을 여미기 바빴던 어느 날, 척박한 연세대학교에 이제까지 볼 수 없었던 거대 현수막이 걸렸다. ‘그림의 마술사’ 에셔. 솔직히 고백하건대 미술/전시에 갓 입문한 나는 이 이름을 처음 들어봤다. ‘글쎄, 그림을 미친듯이 잘 그려서 마술사라고 부르나’. 관심을 갖고 지켜보다가 인간이라면 늘 그렇듯 전시가 끝나기 전 부랴부랴 다녀왔다. 볼거리가 많아 눈이 즐거울 줄로만 알았던 그곳에서 에셔가 전하는 뜻밖의 철학을 얻었다.
her‘senspinsel
Dutch 중성명사 ([복수형]-s) 망상, 공상, 몽상, 환영

Encounter, 1944
에셔의 그림은 기본적으로 몽환적인 느낌을 준다. 단순히 눈에 보이는 사실을 묘사하기 보다, 본질에 대한 자신만의 철학을 담아서 그러하다. 하얀 남자의 그림자처럼 보이는 까만 남자는, 그 뒤를 돌고 돌아 하얀 남자와 악수를 하는 모습을 보인다. 이미 눈치 챈 사람들도 있겠다. 하얀 남자는 낙관을, 검은 남자는 비관을 상징한다. 에셔는 그림을 통해 낙관과 비관은 동전의 양면과 같이 뗄 수 없다는 것을 보여준다.
누구나 살면서 겪고 느끼는 일을 이미지로 구체화해내는 능력, 그것이 바로 공상을 통해 자신만의 철학을 드러내는 에셔의 능력이 아닐까? 주변인들에게 망상이라고 치부 당했던 그의 상상력이 빛을 발하는 순간이다.
her‘structure’ring (놀랍게도 원래 이렇게 생긴 단어다….)
Dutch 여성명사 ([복수형]-en) 재구성, 재편성, 개조

Drawing Hands, 1947
에셔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작품이다. 손을 그리고 있는 다른 한 손도 그림이며, 그려짐을 당하고 있는 손도 다른 손을 그리고 있다. 마치 뫼비우스의 띠를 연상시키는 이 그림을 통해 에셔는 처음과 끝의 구분이 무의미함을 드러낸다. 그는 공간을 해체하고 시간의 선후관계를 무력하게 만듦으로써 세상을 그의 시선으로 재구성한다.
공간, 그리고 시간. 그의 그림을 보고 미처 생각해보지 못했던 근본적인 개념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해 보았다. 우리는 편리함이라는 잣대로 도로를 만들고 지역을 나누었다. 뿐만 아니라 시간을 분단위로, 초단위로 쪼개어 더 많은 노동을 하고자 했다. 시공간의 측정방법은 인간이 인위적으로 만든 개념이 아니던가. 그렇다면 우리는 얼마나 당연하지 않았던 많은 것들을 당연하게 치부해 버리고 있는 것일까?
**웬 영어단어가 나와서 놀랐을 사람들을 위한 TMI (Too Much Information)
네덜란드어로 her은 복잡한 의미를 지닌다.
her
Dutch (접두사) 동사의 행위의 반복. 즉, 동사에 ‘다시’라는 의미를 붙일 때 사용
(부사) 오래전부터
단어가 ‘오래전부터’라는 의미를 부여할 때는 자연스럽게 과거가 떠오르기 마련이다. 그러나 ‘다시’라는 의미를 부여할 때는 현재의 반복, 더 나아가 미래가 떠오른다. 고로, 이 단어는 시간의 수직선 어느 한 곳에 속하지 않는다.
에셔는 그림을 통해 그가 느끼는 세상의 모순들을 표현했다. 그는 가장 모순된 것을 가장 합리적이라고 보았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그는 어느 한 관점으로 정의할 수 없는 사람이다. 흠, her이라는 단어, 시공간을 넘나들었던 에셔와 잘 어울린다.

전시회장 안의 유일한 포토존
구구절절 적었지만 결국 ‘생각의 틀을 깨는 전시였다’, ‘매우 재미있었다’, ‘추천하고 싶다’ 이 세 문장이면 충분하다. 신진 작가들의 작품이 넘치는 신촌에 오랜만에 기성 예술가의 소위 ‘formal’한 전시가 등장한 것도 관람 포인트다.
어쩌면 에셔는 모든 것이 빠르게 변하는 신촌에 가장 필요한 예술가가 아닐까. 그의 세상 속에서 시공간의 변화란 무의미할 테니 말이다. 아무리 변해도 신촌은 여전히 신촌이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다만 이 글이 올라갈 즈음에는 전시가 딱 일주일 남았을 테니…
흥미가 생긴 사람들은 서둘러 다녀오길 추천한다(찡긋-)
*Her : 잔치는 2018년 신촌의 봄·여름을 SHOW라는 주제로 기록합니다. 매월 SHOW 중 하나의 알파벳을 메인 테마로 선정해 새로운 콘텐츠를 보여드릴 예정인데요. 이달의 ‘H’는 바로 ’Her’입니다. Let’s find “H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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