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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RT 2018 · 04 · 25

떨림이 만드는 시선, 위트 앤 시니컬 낭독회

Editor 노을

Hertz. 헤르츠. 오늘날 진동수의 단위가 되는 헤르츠는 독일의 과학자 하인리히 루돌프 헤르츠의 이름에서 따왔다. 이 진동수는 주파수라고도 하며 소리의 높낮이를 나타내는 데 쓰인다. 1Hz는 1사이클, 1초 동안에 한 개의 진동이 지나간다는 뜻이고 인간의 가청 주파수는 20~20000Hz 사이…… 아니지, 이런 게 중요한 게 아니다. 중요한 것은 헤르츠라는 단위가 말해주는 너무나도 명확한 사실이다.

소리는 결국 진동이다. 떨림이다.

 

뭘 살지 고르는 건 늘 떨리잖아, 그게 시집이든 뭐든

 

신촌 기차역 앞에 위치한 ‘위트 앤 시니컬’. 이곳은 유희경 시인이 운영하는 시집 전문 서점으로, 주기적으로 시인을 직접 모시고 시 낭독회를 연다. 이번 낭독회의 주인공은 얼마 전 새 시집을 펴낸 김언 시인.

그런데 ‘낭독회’라고? ‘저자와의 대화’도 아니고 ‘북토크’도 아니고 낭독회다. 시 낭독회라니, 길지도 않은 시 몇 편 소리내 읽는 것이 전부가 아닌가? 소설 낭독회라면 중간중간 대사를 실감나게 읽어보려는 작가의 모습을 보며 웃기라도 할 것 같은데, 시를 가지고는 어떤 낭독회를 하려는 걸까 하는 생각도 든다.

 

“떨리네요. 그래서 지금 제 호흡이 시를 읽기 적당한 호흡인지 잘 모르겠어요.”

 

낭독회는 총 3부로 진행된다고 한다. 오, 생각보다 구성이 꽤 기네. 그러더니 이내 시인이 손수 골라온 자신의 시를 읽기 시작한다. 1부에서는 5편을 내리 읽는다. 시인은 별 말도 하지 않고, ‘이 시는 이러이러한 마음으로 쓴 시인데…’ 하며 해석을 주절주절 덧붙이지도 않는다. 그러더니 1부는 끝!

…이라니. 아니 정말 한 꼭지가 끝난 건가? 하는 생각을 하는 찰나 시인이 직접 고른 노래 한 곡이 흘러나온다. 조금 당혹스럽기까지 하다. 물론 알고 왔지만 이건… 정말 그냥 ‘낭독회’ 잖아!

그치만 노래가 좋네, 눈을 감고 노래를 듣다 보니 어느새 2부가 시작된다.

 

그 노래가 뭐였는지는 안 알려줄 거야.

 

이제는 시인의 목소리에도 어느정도 적응이 되었다. 떨린다는 그의 말대로 시를 읽는 시인의 목소리에는 떨림이 그대로 담겨 있다. 아직 긴장한 기색이 역력하다. 그렇지만 그 가운데에서도 ‘이건 내가 쓴 시지’ 하는 묘한 안정감도 느낄 수 있다. 떨리는 목소리에 그 사람의 여러 감정이 담겨 있는 것이다.

그저 시 한 편 한 편을 읽는 너무나도 단순한 이 낭독회의 가장 중요한 지점은 여기에 있다. 시인은 시를 쓰는 사람이지 성우도 아나운서도 아니다. 그래서 그의 낭독은 아주 또렷한 목소리도 명확한 발음도 아니다. 그렇지만 시인의 목소리와 떨림이 전해주는 시는, 내가 눈으로 읽는 시와는 분명히 다른 느낌을 준다. 귀로 들어오는 시인의 목소리는 단어 하나하나, 문장 하나하나에 조금 더 집중할 수 있게 한다.

한 걸음 더, 단순하게 눈으로 읽을 때는 내 관점을 다른 이에게 전달해줄 수 없다. 내가 어떻게 읽는지 아무도 알 수가 없다. 그렇지만 소리 내어 읽는 것은 다르다. 시인은 내가 눈으로 읽을 때에는 빠르게 넘어갔던 곳에서 잠깐 쉬어가기도 하고, 어떤 단어는 강하게, 어떤 단어는 천천히 읽는다. 단어를 끊어읽는 방식도 나와는 다르다. 그의 떨림은 곧 그의 시선이다.

물론 그 시들을 직접 지은 사람이라고 해서 그의 낭독이 절대적인 정답은 아니다. 한 시를 소리내어 읽어보라 던져준다면 모두들 다르게 읽을 것이다. 그 떨림은 그대로 하나의 시선이 된다. 그래서 다른 사람의 낭독을 듣는다는 것은 나와는 다른 시선을 엿보는 것이기도 하다.

 

김언, 「지금」, 『한 문장』, 문학과지성사, 2018.

낭독회에서 가장 먼저 읽힌 시.

 

위 시에서 화자가 말하려고 하는 것은 무엇입니까? ‘지금’이라는 시어가 이 시의 구조상 어떤 역할을 하고 있습니까? 괜찮다. 이제 더 이상 우리에게 그런 질문을 하는 이는 없다. 3번 아니면 4번인데, 그런 고민을 할 필요도 없다. 그러니 걱정하지 말고 다시 한 번 천천히 읽어보자.

그리고 이제 들어보자. 이 글을 쓰고 있는 사람의 떨림!

자 이제, 여러분이 눈으로 읽은 이 시와 귀로 다시 들은 이 시의 느낌이 완벽하게 같은가 묻는다면 아마 고개를 저을 것이다. 낭독은 활자로 적힌 시에 비해 명확하지도 깔끔하지도 않다. 각자가 눈으로 읽은 시의 느낌과도 분명 다를 것이다. 자신은 굉장히 빠른 흐름으로 읽었는데 낭독은 생각보다 느려서 놀랄 수도 있고, 각자가 느꼈던 것보다 낭독의 분위기가 더 밝을 수도, 어두울 수도 있다. 심지어는 중간중간 낭독의 발음이 정확하지 못하거나, 낭독자의 숨소리 때문에 흠칫할 수도 있다. 이 모든 것이 결국은 떨림이다. 그리고 그 떨림이 눈으로 읽을 때에는 놓쳐버렸던 단어들에 대해 다시 한 번 생각하게 할 것이다. ‘지금’이라는 활자와 “지금”이라는 떨림. ‘말하라’라는 활자와 “말하라”라는 떨림은 다르다. 물론 누군가의 떨림과 또 다른 누군가의 떨림도 모두 다르다. 그렇게 나와는 다른 이가 자꾸 지금, 지금이라고 말하는 낭독을 들으며 글자를 지그시 바라보면, 글자가 조금 생경하게 느껴지면서 내가 알고 있던 지금이라는 단어가 맞나? 싶은 묘한 기분도 든다.

그런 다음부터는 이 시가 아주 조금 다르게 다가올 수도 있다. 그렇다면 그걸로 된 것 아닐까. 이 느낌이 명확하게 뭔지 너무 고민할 필요는 없다. 뭔지 알 수는 없지만 조금 다른 시선이 끼어들어 내 생각과 시선을 한번 더 돌아볼 수 있다면. 떨림이 만들어내는 건 그 정도면 된다.

활자는 변하지 않고 남는다. 그러나 소리는 남지 않는다. 그렇기에 ‘위트 앤 시니컬’의 시 낭독회는 온전히 그 순간의 떨림을 기억하려는 이들이 모인 자리다. 이 시가 이야기하고 있는 것처럼, 낭독회라는 자리는 ‘지금’으로만 존재한다. 그 순간의 떨림은 우리가 읽던 활자에 조금 다른 색을 입히고 우리를 조금 더 생각하게 만든다. 우리는 모두 다르게 보고 다르게 읽는다. 그것이 시든 세상이든.

그래서 목소리를 내서 읽는다는 것, 각자의 떨림을 누군가에게 들려준다는 것은 각자의 시선을 표현하는 하나의 길이다. 각자가 한 편 한 편의 시를 바라보는 방식은 모두 다르다. 그것은 각자가 세상을 바라보는 방향과도 닮아 있을 것이다. 그렇기에 그 모든 것들이 예술이 아닐까. 낭독회를 채우는 떨림은 단순히 낭독을 하는 시인의 것만이 아니다. 이 자리에 모인 모든 이들이 각자의 목소리를, 각자의 떨림을 간직하고 있을 것이다. 낭독회는 그것을 나누는 자리다.

 

돌고 돌아 다시 Hertz. 헤르츠가 발견한 것은 눈에 보이지 않는 파동이었다. 글 몇 줄과 사진 몇 장이 이 낭독회의 모든 풍경을 생생히 보여줄 수는 없을 것이다. 하지만 여러분에게도 이 순간의 떨림이 조금이나마 전해졌으면. 그래서 여러분이 발견한 그 떨림이, 여러분의 시선에도 조그마한 진동을 일으킬 수 있다면.

 

*(안 알려주려 했지만) 낭독회 중간에 흘러나온 노래는 ‘3호선 버터플라이’의 ‘꿈꾸는 나비’.

**Her : 잔치는 2018년 신촌의 봄·여름을 SHOW라는 주제로 기록합니다. 매월 SHOW 중 하나의 알파벳을 메인 테마로 선정해 새로운 콘텐츠를 보여드릴 예정인데요. 이달의 ‘H’는 바로 ’Her’입니다. Let’s find “HER”!

노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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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을

또 하나의 시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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