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의 예술이 담긴 곳, 예찬길
근래 바쁘게 지내왔다. 학교 수업이 끝나자마자 이어지는 기획 회의와 쌓이고 있는 과제들 그리고 동영상 편집까지. 온몸의 감각이 무뎌질 만큼 힘이 빠진 요즘, 휴식이 필요한 적절한 때였다.
그러다 마침,봄을 알리는 듯한 적당한 기온과 기분 좋은 햇살이 나를 반기었다. 그 모든 것을 내려놓아도 적절한 핑계가 될 수 있을 법한 화창한 날씨였다.
‘그래, 오늘만큼은 쉬어도 괜찮겠지!’

지난 달, 약속장소를 찾기 위해 길을 헤매다가 어떠한 골목에 들어섰던 기억이 떠올랐다.
골목과 골목을 지나 언뜻 보았던 예술을 품은 거리. 오늘은 여유 있는 마음으로 신촌의 ‘예찬길’을 찾았다.
#촉각
짙녹색 문 앞에서 갈색 봉투에 담긴 메모지를 꺼내 이리저리 살펴보고 있는 한 여성 분이 눈에 들어왔다. 여성 분에게 다가가 어떤 곳인지 물으니, 자세한 정보는 알지 못한다며 들어가서 둘러볼 것을 권하셨다.

초록색 문을 열고 들어가니, 알록달록한 메모지와 빈티지한 마스킹 테이프를 가지런히 정돈하고 있는 효은 씨가 웃으며 인사해주었다.
기록하는 것을 좋아하는 효은 씨는 마음에 드는 다이어리가 없어 직접 디자인하여 쓰게 되었는데, 그 계기로 ‘allwrite’라는 브랜드를 만들게 되었다고 했다.
고동색 나무 탁자위에 줄 지어 쌓여진 메모장과 벽면의 여백을 채우고 있는 효은 씨의 시선으로 담은 드로잉 그림들. 이 공간이야말로 따뜻한 감성을 기록하는 효은 씨를 잘 표현해주고 있었다.

개인의 취향을 담은 듯 깔끔한 색감을 가진 메모장의 표지를 손끝으로 만졌다. 전해지는 종이의 질감에 연필로 글을 쓰고 싶은 아날로그적인 충동이 일어났다.
쉽게 메모를 기록하고 삭제할 수 있는 디지털의 편리성과는 달리, 아날로그로 글을 쓰는 것은 여러모로 불편한 점이 많다. 하지만 직접 기록하는 것 만큼 그때의 감정을 더없이 솔직하게 표현할 수 있는 것이 또 어디에 있을까?
문맥과 맞지 않는 문장을 써도 좋고 맞춤법을 틀리게 적어도 좋다. 그럴수록 우리는 더 없이 솔직하게 감정을 써 내려갈 수 있게 되니깐 말이다. 그러한 매력에 수많은 손님들이 ‘allwrite’를 찾는 것은 아닐까?
#시각
젠들한 슈트가 걸려있어 자동으로 발길이 향한 곳이다. 김수현 같은 남자가 이곳에서 슈트를 입고 있을 거 같은 느낌이 들었다. 주저할 새도 없이 나의 발은 이미 매장 안으로 들어서고 있었다.
김수현을 상상하고 들어온 내게, ‘Abrazobespoke’ 의 한승구 씨는 평범한 중년 남성이라 미안하게 되었다며 유쾌하게 웃으면서 맞이해주셨다. 하지만 그가 디자인한 셔츠의 섬세함과 넘치는 세련미는 결코 평범하지 않았다.

셔츠를 가까이에서 보니 색깔의 톤이 고급스러웠고, 소매도 섬세하게 디자인되어 있었다. 구체적으로 어떻게 셔츠를 디자인하고 있으시냐고 물었더니 돌아오는 대답은 간결했다.
“제 이름이 한승구예요. 웃긴 말이지만 그냥 제 셔츠는 한승구예요”
알 듯 모를 듯한 표정을 짓는 내게, 웹사이트에 들어가 직접 디자인한 셔츠를 보여주셨다. ‘19800927’라는 상표를 가진 셔츠는 자신의 생일을, ‘20081213’은 딸의 생일을 의미하는 것이라고 하셨다. 이 외의 결혼기념일, 부모님의 생신 등으로 이름이 붙여진 셔츠들도 있었다.
깔끔하게 마감된 소매는 섬세했고, 카라는 부드럽게 미끄러지듯 곡선을 그리고 있었다. 그의 셔츠가 정감있게 느껴지는 이유는, ‘그’만의 방식으로 소중한 사람들을 생각하며 셔츠를 디자인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후각
아직은 정돈이 덜 된 곳이 나의 시선을 사로잡았다. 문밖에서 기웃거리니, 들어오시라고 환하게 웃으며 반겨주셨다.
정리가 덜 된 상태라서, 예쁜 모습을 보여드리지 못해 아쉽다고 하셨지만 따뜻한 차를 권유하며 편안하게 대해주시는 두 분의 모습이 이미 이 공간을 녹이기에 충분했다.
‘Rat-a-rit’ 은 덴마크의 향을 모티브로 하여, 일상의 향기를 담는 곳이었다. 일상의 순간을 어떻게 향으로 담은 것일까?
시향을 권유하셔서 ‘Rat-a-rit’를 대표하는 향을 맡게 되었다. 칙- 칙- 소리와 함께 기분 좋은 향기가 나의 주변에 흩어졌다.

첫 번째 향이었던 ‘Wood Mood’는 비 오는 날 창문을 열어놓았을 때 맡았던 이불 냄새였다. 더움을 식히는 듯이 시원하게 비가 내리던 그 날의 풍경이 떠올랐다
또 다른 향은 ‘Dancing in the moonlight’ 였다. 지난 겨울에 입었던 스웨터 냄새가 났다. 포근한 겨울 향기가 마음을 편안하게 해주었다.
‘Rat-a-rit’의 향은 스치듯 지나가던 일상의 기억들을 담고 있었다. 아늑한 방안에서 혼자만의 휴식, 좋아하는 사람들과의 저녁식사. 소소하지만 편안하고 따뜻했던 공간의 기억을 향으로 추억할 수 있었다.
어느 공간에서든 그때의 향내를 느낄 수 있는것. 그런 기억들을 추억하며 함께 공유하는 것이야말로 ‘Rat-a-rit’ 만의 덴마크 감성이 아닐까 싶다.
#미각
넓은 유리창 너머로 깔끔한 인테리어가 눈에 띄어 안으로 들어갔다. 구운 패티와 고소한 치즈냄새가 코를 자극하는 ‘Needs Burger’ 였다.

‘Needs Burger’ 뿐만 아니라 ‘예찬길’에도 좋은 사람들이 많이 찾아오기를 바라다는 광휘 씨.
좋은 사람들과의 만남이 이어져 하나의 브랜드로 형성 된다면, ‘예찬길’ 만의 색깔이 만들어질 것이라고 하는 그였다.

좋은 손님들을 만나고, ‘Needs Burger’ 만의 좋은 공간을 보여주도록 노력하는 것.
궁극적으로는 손님들이 ‘거기 정말 기분 좋았던 공간이었어.’라고 말할 수 있는 곳이 되는 것이 이상이라고 말하는 그였다
입맛 돋우는 향과 함께 버거를 한입 베어 물면, 촉촉한 패티와 아삭하게 씹히는 신선한 채소들의 식감이 전해진다. 거기다 치즈의 고소한 맛까지 풍부하게 들어있는 수제버거였다.
우울하고 괜시리 짜증이 날 때, ‘Needs Burger’ 에서 여유를 느끼며 기분 좋은 식사를 해보기를 바란다.
#감각 그리고 새로움
예찬길에서 만난 ‘그들’은 일상에 감각을 더하여 그들만의 방식으로 예술을 표현하고 있었다. 그런 일상이 있었기에, 예찬길은 더욱 정감 있고 따뜻하게 다가왔다.
앞으로도 예찬길은 그들만의 철학을 품은 채 변함없이 남아있을 것이다.

어쩌면 새로움이라는 것은 우리가 어떻게 보고 느끼냐에 따라 다르게 느껴지는 것일지도 모른다.
순간을 소리로, 이미지로, 향기로 그 어떠한 감각을 활용해도 좋다. 새로운 방식으로 감각을 즐긴다면, 반복되는 재생 구간은 없어질 것이다.
지루하게 반복되는 일상의 패턴에 지친 당신!
옥상에 올라가 소리도 질러보고, 발걸음의 템포를 늦춰 주변을 천천히 둘러보기도 하고, 다이어트 걱정 없이 마음껏 먹어보며 감각의 반항을 관대히 들어주는 것은 어떨까?
*Sinchon, new : 잔치는 2018년 신촌의 봄·여름을 SHOW라는 주제로 기록합니다. 매월 SHOW 중 하나의 알파벳을 메인 테마로 선정해 새로운 콘텐츠를 보여드릴 예정인데요. 이달의 ‘S’는 바로 ’Sinchon, new’입니다. 이곳에 숨겨져 있는 신촌 그리고 새로움을 찾아보세요:)

주소: 서울특별시 마포구 창전동 서강로 9길, 11길
‘allwrite’ 인스타그램: https://www.instagram.com/allwrite_shop/
‘Abrazobespoke’ 인스타그램: https://www.instagram.com/abrazo_shop/
‘Rat-a-rit’ 인스타그램: https://www.instagram.com/rat.a.rit/
‘Needs Burger’ 인스타그램: https://www.instagram.com/needs_burg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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