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ELCOME TO ZANCHI! · 신촌을 사랑하고, 추억하고, 기록하다
· 로그인
ART 2018 · 06 · 06

헌책방이 우리에게 들려주는 이야기들

Editor 노을

내가 또 이럴 줄 알았어. 전공 수업 교재로 쓰이는 책이 절판이란다.
이리저리 애써봤지만 방법이 없었다. 헌책방에 가야 했다.

 

신촌 어딘가 ‘숨어있는 책’들을 찾아서

 

교수님, 책이 절판돼서 구할 수가 없어요! 하고 수업 시간에 크게 소리치고 싶다는 생각도 안 해본 건 아니지. 교수님은 당신이 쓰신 책이 절판됐다는 사실을 알고 계시긴 한 걸까? 그러다 문득 내가 교수님이라면 그 사실이 슬플 수도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그냥 열심히 책을 구해봐야겠다.

그렇지만 도대체 그 책을 어디서 구하냐구요. 애초에 왜 절판된 책을 교재로 쓰는 걸까? 사실 우리는 모두 답을 알고 있다. 바로 교수님 자신이 쓴 책이기 때문이지! 간단해 간단해.

 

우리가 잊고 있던 이야기들

보이나요? 들리나요?

 

절판된 책을 자꾸 교재로 사용하시는 교수님들의 심리는 어쩌면, 자신의 목소리가 담긴 책이라는 매체가 이 세상에서 사라지는 걸 막으려는 안간힘일지도 모른다. 책이라는 건 내가 가진 이야기를 누군가에게 간절히 들려주고 싶다는 의지가 만들어낸 거니까. 그래서 절판은 그 이야기가 더 이상 세상에서 떠돌 수 없게 되는 일이다. 그러니까 교수님이 지금 하고 계신 건… 그러니까 일종의 보물찾기 같은 거야. 이 세상 어딘가에 숨어 있는 자신의 이야기를 누군가 간절히 찾아주기를 바라는 거지. 세상에 더 이상 나오지 않는 책이라 하더라도, 그렇게 계속 누군가에게 전해진다면 그 책의 생명은 유지될 것이다.

그렇게 스러져가는 숨은 이야기를 찾으러 흘러흘러 헌책방까지 왔다. 헌책방에 모인 게 죄다 이런 책들이다. 그들은 누군가가 자신을 발견해주기를 묵묵히, 하지만 간절히 기다린다.

 

20여년의 간극을 넘어 전해지는 이야기들

 

1987년. 누군가가 태어난 해일 수도, 누군가가 세상을 떠난 해일 수도 있다. 하지만 2018년을 살아가는 우리에게는 흑백사진으로만 남아 있는 과거일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2011년은? 7년 전에도 분명 무더운 여름날 집에서 수박을 먹으며 선풍기 바람을 쐬던 ‘오늘’이 존재했다는 걸 기억하는지. 그 사실을 떠올릴 수 있다면 1987년도 다르지 않다는 걸 알 수 있을 것이다. 1987년의 그들은 분명 ‘오늘’을 살았다. 그리고 그 사람들이 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었을 것이다. 그래서 책을 써냈다. 분명히 30년 전에도 그 현재를 살아가는 사람들이 존재했다는 걸 우리는 책을 통해서 알 수 있다. 그들이 쓴 소설과 시와, 수많은 이론과 생각을 통해서. 단순히 그들이 흑백사진 속에만 존재하는 멈춰있는 상이 아니라 목소리를 가진 존재였음을 읽을 수 있게 된다.

삶은 누구에게나 눈 앞에 펼쳐진 이 순간뿐이다. 하지만 그 순간은 곧 과거가 된다. 그렇게 흘러간 과거는 남지 않고 사라진다. 그래서 오늘의 내가 전하고 싶은 이야기를 남기려는 안간힘의 산물이 책이다. 헌책방 구석에서, 우리가 이런 사실을 잊고 살아간다는 걸 깨닫게 된다.

 

종이 사전을 찾지 않은지 오래되었지

 

그런가 하면, 우리가 애초에 이야기가 담겨있다는 사실조차 생각하지 못하는 책들도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1999년에 나온 표준국어대사전 초판에 실린 단어는 48만개라고 한다. 그리고 10년 후에는 3만 단어가 더 추가된 개정판이 나왔다. 사전을 만드는 이들은 단어 하나의 의미를 쓰는 데 온 하루를 쏟기도 한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 있다. 그들이 10년이라는 세월 동안 하루하루의 의지를 쏟아 쌓은 이야기는 3만 개의 단어가 되고, 그 단어들은 또다른 하나의 책이 되어 세상에 나온다. 쉽사리 종이 사전에 손이 가지 않는 시대. 헌책방에는 그렇게 쌓이고 쌓인 이야기들의 흔적이 묵묵히 자리를 지키고 있다.

우리의 말을 하나하나 담은 책이 다시 세상에 나온 어느 오늘 이후로, 또 10년이라는 세월이 흘렀다. 오늘 우리가 할 수 있는 이야기는 어떤 것일까. 또 그 세월 동안 우리가 잊은 이야기는 어떤 것일까.

 

어떤 이는, 세상에 자신의 이야기를 들려주고 싶다는 의지를 담아 한 권의 책을 쓴다. 얼마 지나지 않아 그 이야기가 잊힌다 해도 그 속의 의지까지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그래서 어떤 이는 그 간절한 의지를 담아두고 언젠가, 누군가 그 이야기를 다시 꺼내보도록 기다릴 수 있는 공간을 만든다.

2017년 한국에서 발행된 도서의 신간 종수는 약 6만 권이다. 하루에 160권이 넘는 새 책이 쓰여지는 셈이지만 그 중 대부분은 잊히고, 그렇게 잊혀진 이야기들은 마치 언제 존재했냐는 듯 세상의 뒤편으로 물러난다. 그렇지만 누군가가 묵묵히 이들을 가지고 있다면, 먼 훗날 언젠가 누가 그 책을 다시 펼쳐볼 날도 있겠지. 그래서 그 책이 누군가의 마음을 움직이고, 다른 이에게 전해진다면… 언젠가 그 이야기가 다시 세상에서 빛을 발할 날도 올 것이다. 헌책방은 그런 희망을 놓지 않으려는 공간이다.

알 수 없는 일이다. 자꾸 자기 책을 교재로 쓰는 교수님의 마음에도 이런 한 줄기 희망이 담겨 있는 것일는지. 그래, 우리를 골탕먹이려고 그러시는 건 아닐 테니까. 그렇게 생각하기로 하니 답답한 마음이 조금 누그러졌다. 아, 그래서 그 교재는 구했냐고?

하아아, 그게 그러니까 말이야…….

 

*Will : 잔치는 2018년 신촌의 봄부터 매월 SHOW 중 하나의 알파벳을 메인 테마로 선정해 새로운 콘텐츠를 보여왔는데요. SHOW프로젝트의 마지막 ‘W’는 바로 ’Will’입니다. 오로지 당신의 클릭만이 잔치의 SHOW를 이어지게 합니다. 끝이 나지 않을 잔치를 기대해주세요, 잔치의 Will Power!

노을
AUTHOR PROFILE
노을

또 하나의 시작

COMMENTS

댓글 0

아직 댓글이 없습니다. 첫 이야기를 남겨주세요.

댓글 남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