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6. 영화와 철학을 공부하는 이선 (INTERVIEW)
어딜 가나 주목을 받고, 또 그에 익숙한 사람들이 있다. 그러나 설사 그 시선에 좋은 의미가 담기지 않았다 해도 그것마저 개의치않는 사람은 무척 드물다. 남들과 같은 생각을 하고 같은 행동을 하라고 강요하는 보통의(ordinary) 세상 속에서 자신을 지키는 사람, 사람들이 바글바글 모여있는 곳에서도 자신의 존재를 드러내기에 주저함이 없는 사람.
이선, 혹은 세용이는 그런 친구이다.

형식적인 것 싫어하는 거 알지만, 그래도 잔치는 처음이니 자기소개 부탁해.
안녕하세요. 저는 이선(본명 박세용)입니다. 옆에 꼭 ‘본명 박세용임’ 이렇게 괄호 안에 써 줘.…… (정적) 더 해야 돼?
아니 그렇게 하고 싶다면야 (웃음) 인터뷰 섭외 과정에서 바쁨을 굉장히 어필하던데 어떤 일을 하기에 이렇게 바쁘게 지내는 거야?
지금은 8월에 촬영하는 영화에 매진 중이야. 5월까지 1차 시나리오도 써야 되고, 팀원도 구해야 되고 거기에 학교까지 다니고 있으니까 시간이 없어. 어쨌든 그게 요즘 가장 심혈을 기울이는 프로젝트야. 매 순간 생각 안 하는 때가 없어. 진짜 똥싸면서도 생각해. 그리고 ‘아마도 있었을 거야’라는 웹드라마에서 촬영, 공동연출을 하고있어. 주말이면 끝이지만.
아, 새로 영화를 찍을 거야? 그럼 영화에 대해서 좀 더 설명해줘.
일단 4~50분 정도 되는 중편 영화가 될 것 같아. 쓰다보니까 길어졌어. 영화 내용은 한 줄로 요약하자면 ‘사소한 우연들이 우리의 삶에 어떻게 영향을 주는지’인데, 장르는….잘 모르겠는데? 독립영화 감성인가? 아, 뭐 깨달음을 얻는다는 거에서 성장이라고 볼 수도 있겠네. 주인공은 번역가야. ‘번역도 예술인가’에 대한 물음에서 시작했어.
그리고 뮤지컬 영화도 10월 정도에 찍을 예정인데 그것도 번역가에 대한 내용이 될 것 같아. 번역 2부작 시리즈로. 나중에 예술 복원가를 소재로 3부작을 만들어 볼까? ‘두오모에 가고 싶다.’ 이런 제목으로. 근데 그건 다 나중 얘기고, 그냥 해 본 소리야. 사실 안 할 거야. 하기 싫어.
그렇게 다 정해놓고 안 하겠다고? (웃음) 아까 내가 너에게 자기소개를 부탁했을 때, 너는 필명을 먼저 말하고 본명을 괄호 속에 넣어달라고 했단 말이지. 필명이 너에게 중요한 의미를 가진 것 같은데 어떻게 필명을 정하게 된거야?
인간의 능동성에 대해 고민을 하다가, 이름이 내가 가진 가장 큰 수동성이라고 생각을 했어. 이름은 부여 받는 거니까, 또 항상 어떤 의미가 담겨있기도 하고. 내 의미를 담아서 이름을 다시 지어보고 싶었던 거지. 근데 나랑 잘 어울리나?
이상하게 어울려. 처음에 들었을 때는 원래 이름이랑 느낌이 너무 다르니까 왜 그걸로 정했을까 했는데, 너랑 이야기를 많이 해보니까 뜻을 모르면서도 되게 어느 순간 잘 어울린다고 생각하게 됐어. 이름에 담긴 의미가 뭐야?
다른 선(different kindness). 남들과는 다른 선의 의미를 내가 규정해보고 싶어서 지은 거야. 사실 나에게 영화는 서로 다른 인간 군상을 보여줄 수 있는 실험실이거든? 거기서 다양한 선에 대해서 실험을 해보고 싶어. 이번 작품도 따지고 보면 그런 내용이야. 번역가가 마지막에 자기가 번역하던 소설을 자기 마음대로 수정하고 각색하거든.
그럼 너는 이선이라는 이름으로 활동할 때와 본명으로 참여하는 활동이 다르다고 생각해? 성격이나 성향 측면에서 말이야.
거기 까지는 생각해 본적이 없는데, 가끔 교수님이 출석체크할 때 나를 박세용이라고 부르면 이선으로 불러줬으면 좋겠다고 생각한 적은 있어. 내 모습을 구분 지으려고 필명을 만들었다기보다 그냥 그렇게 살고 싶다는 의미로 만든거야.

“아이디어나 이미지가 서정적인 문장으로 올 때가 있어”
다양한 예술 활동을 해서 필명이 어색하지 않았을 지도 모르겠다. 처음에 너 철학 복전(복수 전공) 한다 그래서 정말 놀랐는데, 주변에서 너가 철학을 복전한다고 하면 놀라지 않아? 철학을 선택하게 된 이유가 있어?
맞아. 처음 보는 사람들도 신기하다고 하는데, 원래 나를 알았던 사람들은 진짜 놀라. 왜 놀라지?
사실 문예창작과가 있었으면 무조건 그거 복전을 했을 거야. 대신 국문학 복전이 나을까 생각해봤는데 확실치는 않고. 그래도 철학이 문제제기를 하는 학문이니까 그 방법을 배우고 싶었는데, 배우면 배울수록 보편적인 문제만 다룬다는 생각이 드는 거야. 뭐 그렇다고 해서 철학 복전을 후회하지는 않아. 일단 복전을 하면 우리 과 전공을 덜 들어도 되는 이득이 있다는 점에서(웃음)
그렇다면 영화를 만드는데 철학이 도움이 된다고 느껴?
생각해 본적은 없는데 아마 그렇지 않을까? 내용이 좀 더 괜찮아진 것 같기도 하고… 불과 몇 달 전까지만 해도 내 능력에 자괴감을 느꼈다니까. 그래도 철학을 배우고 나서 작품 만드는데 쓰고 싶은 생각들을 철학적인 물음 하나로 싹 엮을 수가 있더라.
너 소설도 쓴다고 했던가?
영화 시나리오 쓰기 전에 소설을 먼저 쓰고 시나리오를 쓰기는 해. 시나리오 형식이 되게 용이하긴 하지만, 꼭 지켜야 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해서 나는 소설 형식으로 시나리오를 쓰거든. 사실 나는 주로 시를 쓰지. 인스타그램에도 하나 있는데 못봤어? 뭐 갑자기 본다고 해서 확 와 닿지는 않겠지만.
(에디터의 간절한 요청에도 불구하고 그는 부끄럽다며 시를 공개해주지 않았습니다.)
시를 갑자기 쓰고 싶을 때가 있어. 의무적으로 쓰진 않아서 엄청 많지는 않아. 뭔가 생각하다가 ‘어 이 소재 괜찮은데?’ 하면 아이디어 노트에 아카이빙을 해 놓는단 말이야. 근데 그 아이디어나 이미지가 나한테 서정적인 문장으로 올 때가 있어. 그럼 이제 그게 시가 되는 거지. 의무감에 글을 쓰는 건 안 좋은 것 같아. 좋은 소재를 생각해서 그걸로 쓰고 싶을 때 시작하는 게 좋은 듯.

“공간에서 파생되는 순수한 미적 이미지가 좋아.”
영상이나 사진은 너의 생각을 반영할 수 있는 기록성 매체잖아. 실제로 너의 아이디어 노트가 있다고 하기도 했고. 그런데 너는 아예 특성이 다른 뮤지컬이랑 연극 무대도 만든단 말이지? 무대는 일회성이고, 극의 흐름을 개인적인 생각보다 더 고려해야 되는 매체인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무대에 매력을 느끼는 이유가 있어?
무대를 좋아하는 이유는, 내가 건축에 관심이 있기 때문이기도 하고 또 공간이 주는 힘이나 공간에서 파생되는 순수한 미적 이미지, 그게 좋아. 사진을 좋아하는 것도 단순히 내 눈에 예뻐 보이기 때문이거든. 이걸 뭐라고 표현하지. 나의 시각적…환락?(웃음) 이렇게 말해도 돼? 어쨌든 나중에 만들고 싶은 영화를 잘 표현하기 위해 시도하는 중간 과정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겠고. 고민하면 할수록 공간이 어떤 예술 장르에서든 굉장히 중요하다는 생각이 들었어.
시각적 환락이란 표현 쉽지 않네 (웃음) 다양한 장르를 시도하는 건 대단한 일인 것 같아. 사실 대부분 하나의 장르에 초점을 맞추잖아.
나는 다 하나라고 생각해. 시는 내 감정의 단순 표출이니까 결이 조금 다르고. 나머지는 다 똑같은 것 같아. 다른 장르를 시도해보면서 배우는 거지. 글쎄, 결국 영화로 귀결되는 것 아닐까? 영화는 종합예술이잖아.
이렇게 많은 것들을 해봤는데도 또 시도해보고 싶은 장르가 있어?
연극 연출. 연극과 영화는 너무 달라. 근데 그 차이가 너무 좋은 거야. 나는 어떤 주제를 표현하고 싶을 때 그 표현하는 방식이 주제랑 잘 맞았으면 좋겠어. 그래서 시로 표현해야 되는 것, 영화로 표현해야 되는 것들이 다르다고 생각해. 그리고 다 필요 없고 그냥 머리가 좀 똑똑해서 철학 강의 좀 잘 이해할 수있었으면 좋겠어. 미치겠어, 너무 어려워.
요즘 고민이 그거야?(웃음)
그것도 그렇고. 아니 누나, 내가 영화 찍으려고 얼마나 힘들게 사는 줄 알아? 거짓말 안하고 하루에 7천원도 안 써. 크라우드 펀딩도 당연히 해야지. 조만간 돈 모으려고 임상실험도 해야 돼. 아니면 방법이 없어.

말썽쟁이 애묘 빵떡씨
인생의 우선순위는 돈과 명예, 그리고 고양이. 목표를 묻자 고양이에게 방 한 칸 내줄 만큼 성공하고 싶다 말하는 모습이 딱 22살 같으면서도, 하고 싶은 일에 대해 이야기를 할 때면 여느 전문가 못지 않게 사뭇 진지하다. 하는 말, 행동 모두 너무나 예상치 못한 것이라 헛웃음이 나오는데 그것이 밉지 않은 이유는 왜일까. 어쩌면 나도 지루한 세상 속에 세용이가 쏘아올리는 작은 공을 응원하고 있는 지도 모르겠다. 그렇다면 나도 누군가 ‘쟤는 저 수많은 일들을 벌이는 이유가 뭐야?’라고 물었을 때, ‘주제를 표현할 때 그 주제에 가장 맞는 표현 방식이 있답니다!’ 라고 당당히 대변해 줄테다.
이렇게 보통의(ordinary) 세상 속에서도 끊임없이 문제를 제기하고, 그것을 표현하려는 사람이 있기에 세상은 매일 조금씩 나아지리라 믿는다. 세용이가 앞으로 어떤 (영화, 아니 연극? 그것도 아니면 도대체 어떤) 새로운 예술로 우리를 놀라게 할 지 벌써부터 두근거린다.

*O : 잔치는 2018년 신촌의 봄·여름을 SHOW라는 주제로 기록합니다. 매월 SHOW중 하나의 알파벳을 메인 테마로 선정해 새로운 콘텐츠를 보여드릴 예정인데요. 5월엔 ‘O’가 팀별로 다.르.다! Match ‘O’ you want……………….and CLIC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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