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ELCOME TO ZANCHI! · 신촌을 사랑하고, 추억하고, 기록하다
· 로그인
ART 2018 · 09 · 24

청년문화의 개척지: 신촌

Editor 구름

우물 속에는 달이 밝고 구름이 흐르고 하늘이 펼치고

파아란 바람이 불고 가을이 있고 추억처럼

사나이가 있습니다.

윤동주, <자화상> 中

 

윤동주가 생각나는 가을 밤이다. 하늘은 언제 미세먼지에 앓았냐는 듯 맑고, 코 끝을 스치는 파란 바람이 분다. 윤동주가 머물렀던 신촌, 그 때의 신촌은 어땠을까?

 

청년문화의 개척지: 신촌 전시회는 서울역사문화박물관 기획전시실에서 10월 21일까지 열린다.

 

 서울역사박물관에서 신촌의, 신촌에 의한, 신촌을 위한 전시회가 열렸다. 전시회는 신촌의 역사부터 문화까지 청년문화의 중심이었던 신촌을 재조명하고 있다. 전시회에서의 신촌은 지하철 2호선 신촌역을 중심으로, 신촌로터리에서 연세대학교로 이어지는 창천동 일대와 이화여자대학교 및 인근 상권까지 포함된 것이다.

 

 

 신촌은 역사 속에서 억제와 탄압의 피난처가 되었다. 일제강점기 저항시인이었던 윤동주를 담은 영화 <동주>를 보면, 영화 속 학생들이 일제의 탄압을 피해 시를 쓰고 낭송회를 열었던 장소가 바로 신촌이다. 그리고 그들의 시 낭송은 사회운동으로 발현되기도 하였다. 그들의 정신은 일제강점기부터 몇 십 년이 지난 후에도 신촌에서 이어졌다.

 

 

 1980년대 문화 탄압으로 신촌은 새로운 문화의 피난처이자 발상지가 되었다. 정권비판적 작품으로 탄압의 대상이 되었던 연극단들은 1981년 공연법이 완화되면서 소극장들이 신촌으로 이전하자 그들을 따라 신촌에 자리를 잡았고, 사회비판적이며 실험적인 작품들을 공연했다.

 

극단 산울림, 민예극장의 탬플릿과 리플릿들

 

 또한 1975년 가요정화운동과 공연법, 소방법 등 관련 법규 강화로 기존의 주류 대중음악과는 차별화된 이른바 ‘언더그라운드 음악’ 들이 연주되는 라이브 음악 공간이 신촌에 등장하기 시작했다. 신촌의 소극장, 카페, 클럽 등에서는 다양한 장르의 언더그라운드 음악이 공연되었다. 신촌에서 활동하였거나 인기를 얻은 밴드들은 ‘신촌파’라 불리기도 하였다. 이를 통해 신촌은 대안음악의 발상지가 되었다.

 

1986년 4월 신촌의 카페 ‘레드 제플린’에서 결성된 ‘신촌 블루스’.

한국 블루스를 대표하는 그룹으로 블루스의 대중화에 기여하였다고 평가받고 있다.

신촌블루스의 대표곡 ‘아쉬움’을 89년 쇼특급에서 연주하는 영상.

어쩌다 마주친~ 그대 모습에~ 내 마음을 빼앗겨 버렸네~

 

 이런 문화의 흐름과 함께 신촌은 민주화운동의 한 가운데서 학생들의 중심지로 역할을 하고 있었다. 1960년 4월 19일에 일어난 4.19 혁명은 대학생에게는 저항의 주체로서의 역할을, 대학에는 저항운동의 보루로서의 역할을 일깨워준 사건이었다. 이후 이어진 한일협정반대, 베트남파병반대, 학원민주화를 외치는 크고 작은 시위에서 대학생들은 권력에 맞서는 가장 강력한 주체가 되었고 신촌은 그 중심지로 기능하였다.

 

1960년 4.19 혁명부터 1996년 제 6차 범청학련통일대축전까지 37년에 걸친,

청년들을 중심으로 신촌에서 일어난 민주화 운동들

 

 특히 1987년은 대학가에서 민주화운동이 가장 극심히 벌어졌던 해이다. 1987년 1월 박종철 고문치사 사건이 발생하고, 그 해 5월에 이 사건이 은폐/축소되었다는 사실이 밝혀지게 되었다. 이로 인해 확산되던 시위에서 연세대생 이한열이 전경이 쏜 최루탄을 맞고 사망하였다. 이를 계기로 산발적으로 전개되던 민주화 투쟁이 전국적으로 확산되었다.

 

연세대 정문에서 최루탄을 맞은 이한열 열사가 실려가는 사진.

‘한열이를 살려내라’, 최종수, 1987

이한열 추모 정기전 만화전시회(왼)와 연세대학교 총학생회에서 개최한 추모행사(오)의 팜플렛

 

 6월 항쟁이 전 국민적 저항으로 확대되는 기폭제가 되었던 이 사건은 직선제 개헌 이라는 결과까지 이끌어냈고, 우리나라 민주주의의 눈부신 발전을 이끄는 사건이 되었다. 이후 신촌의 학생운동권 출신 인사들은 대학가를 떠나 노동자, 도시빈민, 여성, 농민운동 등 다양한 영역에서 활동하며 한국 사회의 민주화운동을 이끌었다.

 

6.10 대회 참가를 독려하는 유인물.

‘폭력이 난무했던 어둠의 거리를 모든 시민이 한마음 한뜻으로 손에 손을 잡고

민주화의 물결로 가득 채웁시다.’ 라는 구절이 눈에 띈다. 

 

 전시회를 뒤로하며, 에디터는 왠지 모르게 눈물이 났다. 전시회의 다른 내용도 매우 좋았지만, 가장 마음에 와닿았던 것은 신촌에서 목이 터져라 민주화운동을 벌였던 청년들의 모습이었다.

 

굴다리 앞까지였어요. 그녀가 말했다.

 

 12년의 교육과정 동안 근대 민주화운동에 대해서 수 없이 배우고 외웠음에도 불구하고 잘 몰랐을뿐더러, 그 시대에 있지 않았기 때문에 대수롭지 않게 넘어갔던 것들이 청년문화의 개척지: 신촌  전시회를 통해 마주하게 되자 다르게 다가왔다. 전시회에서 만난 그 시절의 그들은 뜨거웠다. 내가 아무렇지 않게 딛고 있던 신촌이라는 공간은  수 많은 사람들의 목소리로 가득찼던 곳이었다.

 

서울역사박물관을 뒤로하며. 

 

 움베르트 에코의 <가재걸음>이라는 책에서 작가는 ‘평화란 우리에게 근원적으로 주어져 복원해야 하는 상태가 아닌, 많은 이들이 목숨을 걸고 힘겹게 획득해야 하는 상태’ 라고 이야기하고 있다. 우리는 1960년대부터 1996년대까지 이뤄진 이런 민주주의를 이룩하기 위한 항쟁들을 지나, 평화롭다고 하는 사회에 살고 있다.

 

이 날의 하늘은 유독 맑았다.

 

창 밖에 밤비가 속살거려

육첩방은 남의 나라

시인이란 슬픈 천명인 줄 알면서도

한 줄 시를 적어 볼까

땀내와 사랑내 포근히 품긴

보내 주신 학비 봉투를 받아

대학 노트를 끼고

늙은 교수의 강의 들으러 간다

생각해 보면 어린 때 동무들

하나, 둘, 죄다 잃어버리고

나는 무얼 바라

나는 다만, 홀로 침전하는 것일까?

인생은 살기 어렵다는데

시가 이렇게 쉽게 씌어진다는 것은

부끄러운 일이다

육첩방은 남의 나라

창 밖에 밤비가 속살거리는데

등불을 밝혀 어둠을 조금 내몰고

시대처럼 올 아침을 기다리는 최후의 나

나는 나에게 작은 손을 내밀어

눈물과 위안으로 잡는 최초의 악수

윤동주, <쉽게 쓰여진 시>

 

 시위에 참여했던 연세대학교 학생들, 이화여자대학교 학생들뿐 아니라 그 시대의 대학생들. 굴다리 앞을 가득 메우고 민주주의를 외치며 부당함에 맞섰던 그들 중 하나는 우리의 부모님이었을 지도 모른다. 지금은 어떤가. 우리는 우리의 목소리를 높이고 있는가?  <쉽게 쓰여진 시>에서의 윤동주처럼, 나는 부끄러워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구름
AUTHOR PROFILE
구름

잔치의 시선으로 신촌의 장면과 사람, 장소를 기록합니다.

COMMENTS

댓글 0

아직 댓글이 없습니다. 첫 이야기를 남겨주세요.

댓글 남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