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iaspora: Persepolis _ 이화그린영상제(EGMF)

“영화를 본다는 것은 상상적인 것과 현실적인 것의 경계가 흐트러지는 것이다.”
장 루이 보드리(Jean-Louis Baudry)는 영화보는 행위가 “극장의 어두움, 관객의 상대적인 수동성, 그리고 빛과 어두움의 교차를 통해 인위적으로 거울 단계로의 퇴행적 상태를 만들어낸다”고 주장한다. (Turner, 1993: 158~159) 거울단계는(mirror stage) 정신분석학자 자크 라캉의 이론으로, 6-18개월의 아이가 거울 속 자신의 모습을 발견하고 자기 자신에게 집중하는 시기로서, 처음으로 자기 자신과 마주하며 자아가 형성되는 단계이다. 어두운 극장 속 스크린에 집중하고, 영화 속 인물에 자신을 동화시킬 수밖에 없는 환경 속에서 영화를 관람하면 인간은 시각과 청각 외의 다른 감각에는 무뎌지고, 자신이 처한 상황 속에 빠져들게 된다. 이런 상황이 거울단계로의 회귀라는 것이다. 그래서 우리는 영화관에서 다른 사람의 방해를 받으면 화가 난다. 주인공과의 동화가 깨지고, 내가 화면 속의 나에게 집중하던 것이 깨지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화그린영상제에서는 이런 영화의 불문율을 깼다. 한 공간에서 으레 기대되는 소리인 소리 지향성을 깨고, 풀 숲에서, 광장 한복판에서, 언덕에서 영화를 보게 만든다.

이렇게 되면 영화에 많은 것들이 개입하게 된다. 이를테면 날씨부터, 주변에 시끄러운 사람이 앉기도 하고, 청각부터 시각, 때로는 후각까지 방해 받는다.
5/31에는 비가 왔다.
그렇기에 우리는 영화를 다른 방식으로 즐길 수 있다. 한 자리에 가만히, 화장실 나가는 것도, 음료 한 모금 삼키는 것도 다른 사람의 눈치를 봐야 했던 영화관을 벗어나 주변 사람들과 대화를 나누고, 사진이나 영상으로 기록하며, 핸드폰 불빛이 다른 사람을 방해할지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
에디터가 보기로 한 영화는 <Persepolis>, Vincent Paronnaud, 2007.
<Persepolis>는 마르잔 사트라피의 동명의 만화책으로 만들어진 애니메이션 영화이다. 이란/이라크 전쟁 속 이슬람 세력의 독재와 이슬람 근본주의 속 억압된 이란 사람들의 삶을 마르잔의 성장기로 표현했다. 이 애니메이션을 보면서 가장 와 닿았던 건 두 가지 모습의 마르잔이었는데, 바로 유럽 속 이방인의 모습이었던 마르잔과, 히잡을 쓴 여성으로서의 마르잔이었다.
‘이방인’
독일에 교환학생으로 살면서, 피부로 가장 잘 느낄 수 있었던 단어였다. 독일에서 나는 ‘동양인’, ‘여성’ 이었으며, 많은 인종이 모여 살고 있는 대학교 도시에서도 가장 약한 존재였다. 인권을 중요시 생각하고, 소수자를 존중해야 한다고 이야기하는 그들에게 동양인은 소수자 논외의 존재였다. 그들은 내가 독일어를 알아듣지 못할 거라 생각하며 뒤에서 수군댔으며, 보안요원들은 나를 지켜주지 않았다. 독일어를 잘 못한다는 나에게 던진 말은
‘독일어 못하면 너네 나라로 가!’ 였고,
하루에 한 번 이상 길을 갈 때 비꼬는 듯한 ‘니하오~’라는 말은 나를 노이로제에 걸리게 하기 충분했으며 한국에 돌아와서도 게임 캐릭터의 니하오를 더 이상 귀엽다고 느낄 수 없었다. 이런 문제에 대해 독일 교수님과 이야기를 한 적이 있는데, 돌아오는 답은
‘친해지려고 인사한 거 아닐까?’였다.

마르잔 역시, 이란인 여성이며 모국어와 다른 나라의 문화권으로 대학을 가게 되었다. 프랑스어를 사용했던 그녀는 독일어 문화권인 오스트리아 빈으로 가게 되면서, 자유로운 친구들과 함께 어울리게 됐지만 결국 그 사이에서의 소외감을 이겨내지 못한다. 그녀의 모국을 야만적이라고 표현하는 친구들부터, 무조건 독일어로 이야기하는 사람들, 기숙사에서 다른 사람과 대화하지 못하고 겉돌던 그녀는 끝내 자신을 이란인이 아닌 프랑스인이라고 이야기하기까지 한다. 그러나 결국 자유를 포기하고 고국으로 돌아간다.

고국인 이란에서 그녀가 느낀 것은 여성에 대한 억압과 차별이었다. 이슬람 근본주의의 독재 속에 히잡이 여성을 보호하기 위한 도구라고 이야기했던 그들은 히잡을 제대로 쓰지 않았다는 이유로 마르잔의 어머니에게 폭언을 하기도 한다. 또, 이런 상황도 있었다.

밀로의 비너스 그림에 모자이크 처리를 하며 가르치는 미술사 교수님
이런 상황 속에서, 그녀는 깨닫는다.
일상생활의 작은 곳까지 파고드는 억압은 사람들을 두렵게 하고, 두려움은 사람을 마비시킨다.
그래서 그녀는 머리카락을 보이게 히잡을 쓰거나, 차 안에서 히잡을 벗고 달리는 등 작은 저항을 하기 시작한다.


그런 그녀의 원동력이 되었던 건 그녀를 지지해주고 보듬어주었던 가족이었다. 유럽에서 어떻게 보면 실패한 대학생활을 하고 온 그녀를 아무 말없이 받아주고, 이란에서 그녀가 무너지지 않도록 해주었던 가족들. 영화는 그녀를 지지하는 주변 사람들과 그로 인해 성장해가는 마르잔의 모습을 보여주면서 막을 내린다.


영화는 흑백 애니메이션인데, 컬러인 장면이 총 세 번 나온다. 각각은 다른 의미를 가지고 있다고 생각하지만, 그 중에서도 마지막 장면이 인상깊다.
그녀가 빈에 갔을 때
이란에 돌아왔을 때
다시 떠난, 프랑스의 택시 안에서.
자신을 프랑스인이라고 이야기했던 그녀가, 정체성을 받아들이고 나아가는 모습을 보며,
나에게 어떤 것이 히잡일까?
를 되묻게 되었다.
본 게시글은 ‘이화그린영상제(EGMF)’에서 상영된 <Persepolis>를 바탕으로 작성되었습니다.
행사명 EFF(Ewha Flim Festival/이화영화제) / 타이틀: eco echo
일정 2019년 5월 30일(목) – 6월 1일(토), 20:00 – 23:00
개막행사 5월 30일(목) 19:00
장소 ECC 밸리, ECC 정원, 중강당, 중강당 정원, 진선미관 광장 등
주최 이화여자대학교
주관 이화여자대학교 조형예술대학
후원 모터원, 솔베이, 아이소이, 어도비, 잇츠한불
파트너 서울환경영화제, 아트하우스모모, 토탈미술관, Ujazdowski Castle Centre for Contemporary Art, OVNi Festival, 이화IN스타, 주한프랑스대사관, 주한프랑스문화원
협찬 무백, 삼성생명, 녹미회
부대행사 <여배우는 오늘도> GV, 2019년 5월 30일 15:30 / <누에 꿈틀사> GV, 2019년 6월 1일 1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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