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 雲 좋은 날

구름은 느리거나 빠르게, 하지만 쉼 없이 흘러간다. 우리는 적막 속에서 유유히 그 움직임을 바라본다.
그 속에서 어떤 충돌과 소음과 소용돌이가 발생하고 있는지는, 알 지 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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갑자기 찾고 싶은 사진이 떠올라 네이버 클라우드에 들어갔다. 날짜를 거슬러 올라가 화면을 위로 쭉 올리는데, 머릿속에서 잠시 지워 버렸던 기억들이 툭툭 튀어나와 나를 흔든다. 정지 버튼 없이 몰아치는 현실의 현실은 가끔 내 기억을 지운다. 어제 무슨 옷을 입었는지, 누구를 언제 만났는 지도 한참 생각하기 일쑤다. 결국 답답함만 남긴 채 미지수로 남을 때도 많다. 그래서 사진을 찍게 된다. 그 순간을 그대로 흘려보낼 순 없어서, 순간의 영원은 없어도 영원히 기억하고 싶은 순간은 있을 테니까. 사진을 보면 그 장면에 담긴 일들이 재생된다. 너와 나누었던 대화, 눈을 맞추며 교감했던 감정, 차가운 손에 닿은 온기 같은 것들이, 이제는 흩어져 사라진 것들도 사진 속에는 오롯이 남아있다.
담고 싶은 것들이 너무 많았다. 가끔은 그 순간에만 온전히 집중하자고 생각하다가도, 이내 흐릿한 기억력을 불신한 채 실체가 있는 것으로 남겨두려고 안간힘을 쓴다. 이런 습관성 사진 기록 때문에 벌써 2개의 아이디를 다 채운 지도 일 년이 훌쩍 지났다. 저장 공간을 다 채우고 나니, 더 이상 새로운 사진이 업로드되지 않았다. 그래서 내 드라이브 속의 나는 여전히 과거의 나에 머물러 있다. 신촌에 맥도날드가 없어지고, 할리스와 파랑고래가 새로 생기는 동안, 드라이브 속의 나는 계속 과거의 신촌에 있었다. 이곳의 변화와 함께 바뀌어 온 고학번의 내가 아니라, 신촌의 모든 것이 새롭고 그래서 조금은 두렵기도 했던 새내기의 나로 말이다. 여전히 어른이 되지 못한 지금보다도 더 어렸던, 그래서 오히려 어른이 되었다고 착각했던 그때의 나로, 그대로 머물러 있다.

두둥실
파란색 배경에 흰색 구름이 그려진 작은 아이콘, 그 속에는 무수히 많은 순간들이 녹아 있다. 처음 신촌이라는 곳에 와 낯설어 했던 기억, 이곳에서 처음 만난 사람들, 그들과 처음으로 한 것들과, 울고 웃고 낙담하고 또 위로받았던 어린 나의 모습이 뒤섞여 존재한다. 내게 수많은 처음이 되어주었던 시간들이 끝도 없이 늘어서 있었다. 어느 정도 예상 혹은 각오를 하고 눌렀는데도 막상 들어가 보니 또 예상치 못한 사진들이 많아 강제로 추억을 소환할 수밖에 없었다. 좋든 싫든. 생각했던 사진들이 나와도 직접 마주하니 그 시간들이 더 생생하게 그려지는 듯했다. 물론 그 속의 현실은 현실의 현실과는 괴리가 있다. 달라진 것들이 너무 많아서 씁쓸하기도 하고 신기하기도 하다. 사진은 참 솔직하다.
클라우드를 뒤적이고 있으면 이미지의 생생함에 잠깐 홀려 라떼의 추억에 빠져든다. 하지만 정신을 차려보면, 그 모습들이 다시 복구할 수 있는 파일이 아니라 이제는 계속 그곳에 머무를 추억이라는 걸 알게 된다. 추운 가을 공기로 이미 얼어 있던 손발에 더 소름이 끼쳐온다. 끈질기도록 질척이던 뜨거운 여름과 얼어붙도록 추운 겨울 사이에 금방 지나가는 가을처럼, 참 많은 인연과 순간이 존재했다는 게 신기할 정도로 짧은 칸들을 스쳐 지나간다. 갈수록 희미해지는 것들을 잡을 용기가 부족해지고, 겁을 먹게 되고 지쳐 풀 죽어 버려서, 한없이 바라만 보게 된다.

잠식된 기억을 건져 올리는 구름 속으로
단 한 번의 클릭으로 꽤 오랫동안 잠겨 있던 추억들이 스르르 풀린다. 넘쳐흐른 시간들이 현재를 물들여 이곳에 현재의 과거와, 과거의 현재가 공존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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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선한 날씨에 하늘에는 구름이 가득한 날이었다. 떠도는 공기가 유난히 익숙하게 느껴졌다. 가을을 지나 겨울을 닮아가는 바람은 차가웠지만 시리진 않았다. 분명히 전보다 온도는 낮아졌는데, 바람의 결이 얼굴에 닿아도 매섭게 내리치지 않고 주변을 고요히 맴돌았다. 그 밖으로는 주변 소음이 낮게 깔린다. 바로 옆에 있어도 나와 다른 세상에서 오는 것처럼 멀게 느껴진다. 클라우드를 열자 그 속의 순간에 빠졌던 것처럼, 성급히 찾아온 서늘한 바람이 밀려오면 아직 오지도 않은 미래를 유영한다.
시끄러울 만큼 활기찬 신촌 거리를 걸으며 문득 그런 생각에 빠졌다. 몇 년 후에 여기를 다시 오면, 어떤 느낌일까? 이곳을 떠난다면, 또 떠났다가 다시 오면 어떤 기억이 떠오를까? 아직 가보지 않아 잡히지도 않는 미래에는 무수히 많은 추측들이 존재한다. 오늘의 순간이 떠올라 반가울 것 같기도 하고, 지나간 오늘을 그리워할 것 같기도 하다. 추억에 젖어 들뜰 것 같기도 하고, 지나간 세월이 야속해 씁쓸해질 것 같기도 하다. 알 것 같지만 여전히 짐작하기에는 섣부른, 그런 상념들이 부풀어 오른다. 매년 반복되는 이 공기는 놀랍도록 생생해서 시간이 흘러가고 있음을 확인시켜 준다.

빈틈없이 구름으로 메워진 하늘은 늘 무언가로 북적북적한 신촌과 닮았다.
클라우드 속 해맑게 웃던 새내기는 어느새 취업을 걱정하는 삼학년이 되었다. 해야 할 일들을 저 멀리 쌓아 두고 멍하니 창밖을 바라보면 움직이는 구름 뭉치들이 눈에 들어온다. 나아가지 못하고 그 자리에 멈추어 있는 나를 두고 너는 티도 내지 않고 순식간에 떠나가는구나. 마음껏 하늘을 휘젓고 다니는 구름이 부러워 입술을 삐쭉거리지만 뭐, 괜찮다. 보랏빛 하늘을 보고 있으면 금방 기분이 좋아질 테니까.
구름이 어떤 형태로 존재하든 나는 그 모든 구름을 사랑하고 싶다. 고개를 들면 늘 한가득 펼쳐지는 구름을 자주 올려다보고 싶다. 마주할 때마다 매번 나를 압도하는 거대한 구름도 모두 품을 수 있는 넓고 깊은 사람이 되고 싶다. 나는 운 좋은 사람이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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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 물방울이 높은 곳에 떠 구름이 된다면 안개는 이들이 땅에서 가까운 공기 중에 머물러 있는 것이라고 한다. 그러니 앞이 뿌옇게 흐려 보이는 것은 운雲이 없는 것이 아니라, 우리 곁에 가까이 있기 때문이다. 그러니 혹여나 다가오는 날들에 빛이 희미하더라도, 그 속에서 갈피를 잡지 못하고 헤매더라도, 주변에 운이 가득하다는 걸 기억했으면 좋겠다.
우리가 참지 못하고 터트린 눈물과 끊임없이 흐르던 땀방울은 안개가 되어 우리를 감싸고 있다는 것을, 기억했으면 좋겠다. 우리는 모두, 운 좋은 사람이므로.
운 좋은 날, 운 좋은 사람들과 함께 했던 신촌을 오래도록 기억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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