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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LACE 2020 · 06 · 03

134. 한없이 가벼운 글

Editor pppakkssso

언제부터였을까? 무겁기만 했다.

 

  ‘뭐가?’

 

뭐든지 무거웠다. 내가 친구와 하는 대화도, 혼자 쓰는 글도, 인터넷으로 보는 뉴스도, 들고 다니는 가방 속 책들도, 제출해야 하는 과제의 분량도…

 

  ‘음, 그렇구나. 무겁…’

 

…머릿속의 생각들도, 부모님의 기대에 대한 무게도, 지금 하고 있는 일에 대한 불안감도, 앞으로 뭘 할지에 대한 고민도, 보이지 않는 미래에 대한 걱정도, 아침부터 느끼는 피로도, 매일매일 내쉬는 한숨도.

 

  ‘알았어 알았어. 어휴, 무겁다 무거워.’

 

눈치채지도 못할 만큼 천천히, 조금씩 조금씩 시작해서 정신을 차려보니 어느새 이렇게 많은 것들이 무겁게 쌓여 있었다. 티끌 모아 태산이라던가, 마음의 짐들은 돌탑에 돌 쌓듯 어깨위로 하나 둘씩 얹혀졌다.

 

  ‘아니 그 표현은 그럴 때 쓰는게 아닐걸.’

 

하지만 나뿐만 아니라 주변 사람들 누구나 자기만의 짐을 얹은 채로 열심히 살아가고 있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나만 무거운 것도 아니고, 어느 정도는 내게 필요한 것이기도 했다. 그래서 나는 묵직한 돌탑이 무너지지나 않도록 아슬아슬하게 균형을 맞추어 갔다.

 

  ‘모두가 그렇다 해도, 결국 힘든 건 힘든 거지.’

 

어깨가 가벼워지기를 원하지만 이 돌탑을 내려놓기에는 불안했다. 내리다가 실수로 와르르 쏟기라도 할까 봐, 또 다시 들어올릴 의지를 잃을까 봐, 지금까지의 노력들이 한 순간에 헛수고가 될까 봐 무서웠다. 그래서 짓누르는 무게를 차마 내려놓을 순 없었지만, 다행히 가끔 잊게 해주는 것은 있었다. 그건 바로 하루의 끝에 마시는 시원한 맥주였다.

 

  ‘오 그거 알코올 중독 증상 같은데, 조심해야…’

 

혼자 집에서 마실 때도 있지만 신촌 근처에서 자취를 하니 친구에게 ‘가볍게 맥주나 한잔 하자’며 연락이 오는 경우도 많았다. 그럴 때 내가 정말 좋아하는 곳이 있다. 무거운 어깨를 가벼운 맥주로 달래볼 수 있는 곳, “브롱스”였다. 이 곳에서만큼은 내가 찾던 가벼움을 느낄 수 있다.

 

  ‘결국 그 말이 하고 싶었던 거구나, 브롱스가 좋다고. 그런데 말이야, 아까부터 내 말은 안 듣고 있는 것 같던데 그렇게 혼자 얘기할거면 차라리 일기를 쓰지 그래?’

 

 

 

*   *   *   *   *   *   *   *   *   *   *   *   *   *   *   *   *   *   *   *   *   *   *   *   *   *   *   *

2020년 5월 21일 목요일

 

오늘은 잔치 회의가 있는 날이었다. 회의 안건 중 하나는 내가 다음주에 어떤 글을 쓰고 싶은지에 대해 이야기해보는 것이었다. 사실 이미 생각해둔 것이 있었다. 나는 “가벼움”에 대해 쓰고 싶었다. 요즘 나의 삶이 너무 무겁다는 생각이 들어서인지, 나는 가벼운 것이 찾고 싶었다. 여기까지 생각이 미치자 딱 떠오른 곳이 브롱스였다. 마침 잔치 모이는 날에는 뒷풀이도 있겠다, 운영진에게 회의 끝나고 브롱스로 가면 안되냐고 졸랐다. 결과는 성공, 그날 회식은 잔치꾼들과 함께 브롱스로 갔다.

 

< 화려한 조명이 나를 감싸네 >

 

 

오랜만에 들어와보는 브롱스였다. 역시나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오는 것은 다양한 종류의 맥주들. 아주 크지도, 작지도 않은 가게지만 맥주종류는 은근히 많아서 골라 마시는 재미가 쏠쏠하다. 내가 제일 좋아하는 고소한 위트비어부터 청량한 라거 계열, 쌉싸름한 흑맥주류까지 여러 가지의 수제맥주를 맛볼 수 있다. 특히 여럿이서 가면 서로가 시킨 맥주 한 모금씩 맛보는 재미도 있다. 우리는 거의 겹치지 않게 다양하게 시켜봤다. 잔을 모아보니 색감도 다 달라서 예뻤다. 역시 맥주는 사랑스럽다. 가볍게 맥주 한잔 하기에 여기보다 좋은 곳이 없는 것 같다. 잔도 내가 좋아하는 길쭉하고 한 손에 딱 감싸 쥐기 좋은 모양으로 들어올리기에도 좋고, 구름같이 퐁퐁 떠 있는 거품도 부드럽게 입술을 맞이해주고, 맥주는 너무 쓰지도 달지도 않아 고소하면서 종류에 따라 특유의 향이 가득차면서 꼴깍꼴깍 시원하게 넘어간다. 게다가 마음의 가벼움까지 가져다 주는 이유 한가지 더 – 바로 가격이다. 수제맥주인데 한 잔에 3900원에서 5900원사이의 저렴한 가격에 반해 맥주를 사랑하는 사람으로서 이 곳을 좋아하지 않을 수 없다.

 

< 중간에 무알콜 스파이 하나가..! >

 

 

가벼움을 찾으면서 브롱스가 떠오른 또 다른 이유는 바로 안주 때문이다. 더 구체적으로 얘기하자면 패스츄리 도우로 만든 피자가 생각났던 것이다. 원래는 피맥보다는 치맥을 선호하는 편이라 맥주 마실 때 피자를 잘 안 시키는데, 브롱스에서 만큼은 무조건 피자를 시킨다. 잘 만든 패스츄리 빵은 뜯어보면 얇고 부드러운 반죽이 여러 겹으로 겹쳐져 있고 사이사이에 공기가 들어가는 빈 공간들이 있어서, 밀가루의 거북한 탄수화물 느낌이 아닌 정말 가벼우면서 쫄깃쫄깃한 식감을 맛볼 수 있다. 패스츄리 피자는 바로 이런 반죽에다 피자재료까지 올린 것이니 맛이 없을 수가 없다. 텁텁하고 묵직한 그런 피자가 아니라서 끝없이 들어간다. 브롱스에 와서 패스츄리 피자를 먹지 않는다는 건 오레오를 먹을 때 ‘레’부분을 먹지 않겠다는 것, 즉 있을 수 없는 일이다. 메뉴판을 펴자마자 나는 패스츄리 피자는 꼭 시켜야 한다고 말했다. 지금 생각해보면 내가 동아리 들어 온지 얼마 되지도 않았고 사실 아직 어색한 사이인 사람들도 몇 명 있었는데, 너무 단호하게 굴었나 싶기도 했다. 그래도 피자를 맛있게 먹어준 잔치꾼들에게 고맙기도 했다. 혹시나 피자를 싫어하는 사람이 있었다면 패스츄리 피자 말고 씬 피자를 주문할까도 생각했었다. 씬 피자는 도우를 아주 얇고 바삭하게 구워서 더욱 가볍고, 한 조각씩 주문할 수 있어서 훨씬 부담이 적어 조금만 먹고 싶을 때 좋다. 다른 안주거리나 맥주에 더 집중하고 싶을 때 씬 피자 한 조각으로 에피타이저처럼 가볍게 시작하기에 딱이다.

 

<빨간색이 사진 찍을 때 예쁘다고 시킨 피자> by.에디터 이후

 

 

브롱스의 가벼움 포인트는 여기서 끝이 아니라, 한 가지가 더 있다. 바로 인테리어다. 프랜차이즈 사업으로서 브롱스 매장들은 모두 기본적으로 비슷한 분위기의 인테리어로 되어 있다. SNS에서 유행하는 맥주펍처럼 아주 화려하지도 않고, 또 그저 평범한 동네 술집처럼 작고 허름하지도 않게 적당한 조명과 깔끔하고 세련된 디자인으로 꾸며져 있다. 이러한 인테리어는 브롱스 체인점들의 트레이드마크라고도 볼 수 있는데, 바로 이런 분위기가 내게는 가벼움을 더해주는 것 같았다. 크게 꾸미지 않아도 되면서 친구들과 기분 좋게 한 두 잔만 딱 마시고 나와도 눈치보지 않아도 될 그런 분위기 말이다. 여기에다 신촌지점만의 매력은 바로 입구가 ‘폴딩도어’로 벽면 전체가 접히는 커다란 창문들로 구성되어 있다는 것이다. 커다란 창문들은 날씨가 따뜻한 요즘 같을 때면 양쪽 끝까지 접혀서 가게 전체가 활짝 열려있는 느낌을 준다. 이런 구조 덕분에 이른 저녁에 오면 막 지는 주황빛의 따스한 햇살을 받으며, 또는 오늘 회식처럼 늦은 밤이 되면 시원한 밤바람을 실컷 느끼며 맥주를 마실 수 있다. 확 트인 가게와 여유로운 분위기의 가게는 나로 하여금 한층 더 가볍고 편안하게 느끼게 해줬다.

 

<Food, Beer, Comfortable, Return Visit… 퍼펙트>

 

 

잔치 회식은 예상했던 것 보다 길어졌고, 재미있었다. 우리의 수다는 깊어지는 밤에 맥주잔과 함께 늘어갔다. 최근에 친구를 만나면 어둡고 답답하기만 한 진로 이야기로 한숨 반 한탄 반의 무거운 대화뿐이었는데, 이렇게 소소하고 시시콜콜한 대화를 오랜만에 하니 더욱 즐거웠다. 그래서인지 평소 같았으면 쉽게 흘려 보냈을 가벼운 이야기들이 오늘따라 소중하게 느껴져 아직도 마음 속에 남아있다. 그날의 피로가 잊혀지는 기분이었다. 모든 것이 가벼웠다. 시원하고 부드러운 음식도, 활짝 개방된 가게 안에 살살 불어오는 바람도, 새벽 감성에 젖어가는 잔치꾼들의 신난 웃음소리도 다 좋았다.

 

<가볍게 맥주나 한잔 하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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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잔치꾼들의 소소한 이야기들…

최근에 본 영화, 좋고 싫었던 영화 이야기,

알바에서 너무 잘해줘서 부담스러운 점장님 이야기,

감바스 요리 속의 구운 토마토 이야기,

모닝 알람을 효과적으로 맞추는 이야기,

마지막으로 무슨 맥주를 마셔야 잘 마셨다 소문이 날까 하는 이야기’

 

‘도대체 감바스의 구운 토마토는 어쩌다가 나온 주제인 거니? 어쨌든, 생각보다 꽤나 재미있게 잘 살고 있는걸. 물론 그렇다고 해서 네 어깨 위의 그 돌탑이 사라진 건 아니겠지. 지금도 무거워서 힘들게 버티고 있는 걸지도 몰라. 하지만 다행이야, 주변에 이렇게 좋아하는 것도 많아서. 시원한 맥주도 좋아하지만 그뿐만이 아니라, 길다란 모양의 잔으로 마시는 걸 좋아하고 부드러운 반죽의 피자도 좋아하고 너의 의견을 확실히 말하는 것도 좋아하고 꽉 막힌 곳보다 확 트인데를 좋아하고, 햇살과 바람을 좋아하고 사람들과 수다를 떠는 것도 좋아하니 말이야. 이렇게나 많은 것들이 너의 짐을 가볍게 덜어주는 것 같아 참 다행이야. 우울한 생각들로만 가득해서 뭐든지 무겁기만 하다고 했었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다는 것을 너도 언젠가 깨달을 수 있기를…

 

 

 

 

[한없이 무거운 글]

수제맥주 전문점 BRONX (신촌점)

서울 서대문구 연세로9길 24

창천동 52-36 1층

매일 17:00 – 0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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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ppakkssso

잔치의 시선으로 신촌의 장면과 사람, 장소를 기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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