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5. 시공간과 오브젝트
‘예쁜 쓰레기’라는 단어는 누가 만들었을까? 보기 좋은 외형과 쓸모없는 속성을 이리도 간단하게 설명하다니, 누군지는 몰라도 언어에 천부적인 재능을 갖추었음에 틀림없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별 생각 없이 이 단어를 남발하던 어느 날 문득 품은 의문, ‘꼭 쓸모있어야 해?’
물건이든 사람이든 모든 개체는 용도를 가지고 살아간다. 없다면 찾아야 하는게 이 시대의 숙명이다. 물건은 가격표로, 사람은 스펙 또는 벌이로 각자의 존재 가치를 증명하고자 아등바등이요, 유용하면 남겨지고 무용하면 도태되는 적자생존의 세계이다. 지겹다, 지겨워. 가치고 뭐고 그냥 살아가면 안돼? 그런 의미에서 이 ‘예쁜 쓰레기들’은 꽤나 파격적인 존재들이 아닐까 싶다. 쓸모있지 않아도 좋아해주는 사람들이 있기 때문이다. (혹은, ‘예쁨’이 이들의 용도인 것일까?) 용도가 없는, 또는 ‘예쁨’ 부문에서 쓸모있는 것들의 집합소를 소개한다. 악세사리샵 ‘시공간’과 소품샵 ‘오브젝트’이다.

어서와 2층짜리 악세사리샵은 처음이지?
시공간은 개성 강한 신촌에서도 특이한 분위기를 가진 곳이다. 귀를 찌르는 음악과 화려한 외관으로 지나가는 이들을 붙잡으려는 명물거리의 대다수 가게들과 달리, 이 곳은 조용하고 신비롭다. 유리벽 너머 드리워진 흰 천 사이로 얼핏 보이는 나무 선반들이 예사롭지 않다. 홍대, 건대 지점도 가보았지만 역시 고기도 제 놀던 물이 좋다고, 두 곳 모두 익숙하고 아늑한 신촌지점만 못하다. 은은한 조명, 묘한 향냄새, 그리고 원목 인테리어까지, 정신없고 변화무쌍한 신촌에서 잠시나마 시공간이 멈춰지는 곳이다. 특히나 이 곳의 분위기를 좌우하는건 아무래도 ‘향’이다. 이곳에서는 깊은 산 속 절에나 가면 맡을 법한 향을 피운다. 그래서 그런가, 마루에 걸터앉아 새 지저귀는 소리와 바람에 흔들리는 풍경을 감상하듯 차분해진다. 덕분에 선반에 즐비한 악세사리들의 반짝이는 아우성을 풍경소리 삼아 구경할 수 있다. 물론 시간을 가지고 차분하게 구경하다가 나도 모르게 손에 바구니가 쥐어지고, 그 안에 하나둘씩 악세사리가 늘어가는 것은 어찌할 수 없는 노릇이다.

Stairway to 텅.장
난 주로 반지와 귀걸이를 산다. 그 둘이 가장 많이 하는 악세사리이다. 사실 시공간의 피어싱은 전문 피어싱샵에 비해 종류와 디자인이 다양하지는 않다만은, 그래도 반짝반짝한게 구경하는 맛이 있다. 시공간이 타 악세사리샵에 비해 좋은건, 가격 거품이 심하지 않다는 것이다. (어디까지나 지극히 개인적인 느낌일 뿐이다) 연남동 플리마켓에서 만이천원 하는 비즈반지를 선심쓰듯 만원에 주겠다고 하는 판매원의 말에 혀를 내두르며 자리를 떴는데, 여기서는 같은걸 만원도 아닌 팔천원에 팔고 있었다. 사천원이면 국밥은 못 먹어도 신촌역 8출 앞 포장마차에서 떡순에 오뎅까지 먹을 수 있는데, 이 얼마나 뿌듯한 이득인가.
1층과 2층의 구분은 딱히 없다. 2층에 계산대가 있을 뿐이다. 그나마의 차이점이라면, 1층에만 머리끈과 머리핀이 있다는 점? 1층과 2층 모두 구경하라는 상술이 아닌가 싶다. 여기는 계단을 오르는 벽마저 귀걸이로 빼곡해서–그다지 높지도 않지만–계단 오르는게 힘들지 않다.

내 귀에 미러볼
처음 귀를 뚫은건 갓 스무살이 되어서였다. 마지막 대학 면접을 끝내자마자 나는 피어싱샵으로 달려갔다. 나의 고등학교는 학칙이 매우 자유로웠고, 염색, 교복, 악세사리 모두 일절 간섭하지 않았다. 어차피 줄일거면 학교에서 미리 줄여주겠다고 짧게 나온 치마가 불편할 정도였으니. 느슨한 규칙에 감격하며 친구들이 하나둘 귀를 뚫는 와중에, 나는 ‘학생이라면 모름지기 단정하게!’라는 다소 보수적인 생각으로 귓불을 깨끗하게 놔두었다. 그런 의미에서 피어싱샵으로 곧장 향한 일은 답답했던 과거의 나를 청산하고 새로 살겠다는 다짐이나 다름없었다. 내 몸의 일부가 반짝인다면 나도 조금 더 반짝일 것 같았다. 하지만 사람의 욕심은 끝이 없어서, 귓불에 만족을 못하고 이젠 연골까지 뚫는 지경에 이르렀다. 누구는 나에게 그렇게 많이 뚫으면 구멍에 바람 드는 기분이 들지는 않냐는 엉뚱한 질문을 했고, 누구는 연골을 관통한 모습이 조금 징그럽다고도 했지만 아무렴 어때, 귀에 생긴 7개의 구멍–그리고 미래에 추가적으로 생길 n개의 구멍까지–모두 나의 개성이자, 더욱 빛나고픈 욕망이라고 생각한다. 삶이 지겨우면 악세사리를 돌파구 삼아 새로운 개성을 만들고 반짝이는 것들을 구경한다. 그럼 좀 살만해진다. 벌써 시공간의 쿠폰 도장이 10개 가까이 찍히고 있다. 지겨운 날이 꽤나 잦았나보다.

어서와 4층짜리 예쁜 쓰레기는 처음이지?
경의선 책거리 쪽에 위치한 오브젝트는 1층부터 4층까지 있어서 예쁜 쓰레기들을 구경하느라 반나절을 보낼 수 있을 정도이다. 1층은 전시, 2층과 3층은 이것저것 판매, 4층은 서점 및 책 읽는 공간으로 이루어져 있다. 1층부터 3층은 정말 ‘인스타 감성’ 낭낭한 디자인의 물건들이 가득하다. 다이노탱 등 인스타에서 한번쯤은 봤을법한 브랜드들부터, 예쁜 디자인의 포스트잇과 스티커가 무수하다. 다이어리나 노트북 꾸미기가 취미인 사람에게는 가히 성지라고도 표현할 수 있겠다.
엄밀히 따지자면, 4층은 서점이라기보단 책 편집샵 (같은게 존재하는지는 모르겠다만) 이라고 부르는게 더 적합할 듯 하다. 서점이라고 하기엔 종류가 다양하지 않기 때문이다. 소설 몇 권과 다수의 에세이, 그리고 감각적인 표지의 디자인북들이 많았다. 소설과 에세이는 주로 신인 한국 작가들의 작품들이 많아서 고전명작을 선호하는 고집스러운 취향을 가진 나로서는 그다지 손길이 가지는 않았다. 그럼에도 꽤나 이목을 끄는 제목의 책들이 많다. 인상에 남았던 제목을 하나 대보자면, <인생이 거지같은 사건들로 채워진 이유>가 있겠다. 인생이 거지같은 사건의 연속이라 해도, 이런 책을 보고 피식 웃은 날은 조금이나마 덜 거지같을 수 있지 않을까.

예쁜 쓰레기 대회 1등: 크레용 반지 (굳이? 크레용을? 손가락에?)
난 원체 뭐든 머리를 굴려 따진 다음에 행동으로 옮기는 사람인 탓에 쇼핑이 힘들다. 가격이 좋으면 생긴게 별로고, 생긴게 마음에 들면 가격이 망설여지기 때문이다. 오브젝트에서도 마찬가지. 가성비를 따지는 내 천성과 한번쯤은 충동구매를 시도해보고픈 의지의 충돌로 인해 가격표를 수시로 들춰보며 살까, 말까, 한참을 고민했다. 이 짓을 네 번이나 반복하는건 나에게 너무 큰 고역이었다. 한 층 한 층 오를수록 아래층에 차마 사지 못하고 이별을 고한 예쁜 쓰레기들이 ‘우리의 만남이 이렇게 끝날수는 없다’며 내 바짓가랑이를 붙잡는 느낌이랄까. 오래 켜둔 노트북의 팬이 미친듯이 돌아가듯 풀가동하던 내 머리는 인지부조화라는 바이러스에 걸려 다운되어버렸고, 결국 아무런 결정도 내리지 못한 채 가게를 나와버렸다. 나와 같은 사람이 있다면 ‘아무것도 사지 않고 구경만 하기’, 또는 ‘첫 번째로 손에 잡히는 것 사기’ 등 단순한 규칙을 마음 속에 정하고 가게에 들어가는 것이 좋겠다.

마음: 여기부터 저 끝까지 다 주세요
뇌: 아냐 자제해…..
*
“난 원체 무용하고 아름다운 것들을 좋아하오. 달, 별, 꽃, 바람, 웃음, 농담, 그런 것들…”
김희성, <미스터션샤인>
나라가 주인을 잃고, 옛 것과 낯선 것이 어지러이 뒤섞이는 시대 속에 김희성은 일종의 도피로 무용한 것들을 탐닉하고자 했다. 매 순간 생존방법을 도모하기 위해 머리를 굴리기란 분명 피로했으리라. 무용하고 아름다운 것들은 많은 고민을 요하지 않는다. 단순한 것을 보며 단순하게 사는 것, 그것이 김희성의 생존방식이었다.
나의 생존방식은 무엇일까. 끊임없이 능력 찾기? 다 포기하고 단순하게 살기? ‘무용’해도 좋다고, 사는 것 별거 없다고 위로를 구하러 찾은 시공간과 오브젝트는 손님의 발길이 끊이지 않았다. ‘예쁜 쓰레기’를 구경하면서 탄식을 내뱉는 그들을 보자 물건들이 부러워졌다. ‘반짝이는건 네 귀가 아니라 너야’ 라는 말을 듣고 싶었다. 이 아이들처럼 별로 쓰임이 없어도, 똑똑하지 않아도, 어딘가 나사 빠진 듯 부족한 면이 있어도 나를 찾아주고 좋아해주는 사람이 있을까. 반대로, 나도 그런 사람을 좋아해줄 수 있을까. 무엇보다, 나는 이런 나를 언제쯤 사랑해줄 수 있을까. 살아남기 위해 사는 이 지겨운 세상, 쓸모없어도 잘만 지내는 귀걸이와 반지들, 스티커와 엽서들을 보며 마음을 비워보고자 했지만 되려 우울한 고민만 남는다. 별의별 것에도 의미를 부여하고 생각을 쥐어짜게 되는 나도 참 피곤하게 산다. 단순하게 살긴 글러먹은 것 같다.

시공간 신촌 연세로점
서울 서대문구 연세로 3
매일 12:30-22:30
오브젝트 홍대본점
서울 마포구 와우산로35길 13
매일 12:00-2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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