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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RT 2020 · 06 · 29

여름을 찾아서

Editor 섬데이

 

 

 

 

 

 여름이다. 녹음이 드리우는 계절이다. 나무의 갈색 몸통 위로 초록이 흔들거리는 계절이 온다.

그 시간 속, 자연의 선명한 빛을 우리들은 마주한다. 지평선 위에 서있으면 태양의 햇살을 정수리부터 발바닥까지 순차적으로 흡수하게 된다.

내 몸 한 구석에 여름이 파고드는 순간이다.

 

 

 

 

 

 

 

<내가 여름을 좋아하는 이유>

 

내가 여름을 좋아하는 이유는 꼭 나의 생일이 여름에 있다는 이유만은 아니다.

여름 특유의 냄새가 내 코끝을 찡하게 만들었을 때 비로소 나는 여름이 왔구나- 를 느낀다

하지 저녁노을이 붉게 타오르는 그 시기에 알맞은 여름 밤 향기

쨍쨍하게 모든 만물을 쬐는 볕의 냄새

이 모든 향기가 한 데 어우러져 여름의 분위기를 지탱할 것이라

 

여름의 진리를 아는 자는 여름을 사랑한다

바람의 열기에서 전해오는 진실한 풀내음을 알고

개구리의 울음소리에서 전해오는 대자연의 이치를 알고

밤바다가 그리워 저절로 나온 몸이 바닷바람 소리에 마음을 기대고 있음을 알 것이라

여름 풍경은 그 만물만의 특유의 분위기를 자랑한다

그래서 나는 여름의 분위기를 사랑한다. 여름 사진을 보면 그 분위기가 나에게 샛바람같이 불어오기 때문이기도 할 것이다

 

그 중에서도 내가 여름을 사랑하는 이유의 8할은

여름 안에는 당신의 사랑이 머물기 때문이다

당신의 잔상은 나를 오랫동안 잔잔하게 지탱하게 해주기도 하였다

하지만 이제 너와의 여름의 행복은 과거의 회상으로만 남을 것이지만

그래도 나홀로 낭만을 유지한 채 어여쁜 여름을 아낄 것이라

여름은 내년에도, 내후년에도, 여전히 돌아오고 분명히 지금보다도 더 내음을 선사할 것이니까 난 그것이 기다려진다

여름은 정열적이어서 역동적이고 청량하게 내리쬐어서 가장 젊은 계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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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종강을 한 나른한 월요일의 오후이다. 침대에 누워 시험기간 때 공책에 끄적였던 글을 꺼내어 읽으며 여유를 즐기고 있었다. 월요일이란 단어는  어느순간 현대인에게 있어서 괴로움의 의미까지 부여된 단어가 되었다. 나에게도 마찬가지였으나 종강을 하고 맞이한 첫 월요일은 6월의 싱그러움을 내뿜는 한 주의 시작으로 다가왔다. 침대에 누워있으면 창문 너머로 따듯한 빛이 나를 향해 미소를 띠운다. 나는 멍하니 그 빛을 바라본다. 그리고는 서서히 그 빛을 따라가서는 창문을 연다. 방충망 사이에 보이는 파란 하늘과 빌딩들- 타오르는 열기에 아직 잠이 가시지 않은 나의 정신이 번쩍 든다.

 

‘오늘은 상도동을 벗어나야만 하는 날이군.’

 

여름을 사랑해야 하는 시간이니까 여름을 찾으러 떠나야 한다.

 

 

 여름은 왠지 숲속의 요정님의 자태를 하고 있을 것만 같다. 등허리에는 반짝이는 하늘색의 날개를, 고운 얼굴엔 초롱초롱한 검은 눈동자, 작고 날렵한 코, 선홍빛의 입술색, 연두색의 치마를 입고 있을 듯한 어여쁜 요정의 모습이 여름일 것 같다.

 그녀를 기대하며 버스에 몸을 실었다. 주변은 무자비한 포장길과 건물숲투성이지만, 그 속에서 일말의 희망을 손에 쥐고 한강대교를 건너는 참이었다. 창 밖으로 보이는 파아란 강물의 표면이 은빛을 머금고 있다. 눈부신 표면이었다. 그 아름다움에 시선이 빼앗긴 찰나에 은빛이 춤추고 있는 것을 보았다. 위아래로 몸을 움직이며 피어오르는 듯한 몸짓이었다. 춤추는 그들을 보며 ‘일말의 희망’이 헛된 것만은 아니겠거니 안도하였다.

 

                                                                           은빛이 넘실거린다.

 

 

 

 

 

 

 

 

오후 3시 경의 서대문구

 

 

 버스는 서대문구까지 달렸다. 고즈넉한 담벼락과 무성한 담쟁이덩굴이 보이는 곳에서 나는 하차하였다. 요정이 숨어서 살아갈 수는 있을 정도의 도심으로 판단되었으므로 이곳에서 내렸다. 뜨거운 태양이 분주히 요동치는 오후 2시였다. 35도를 웃도는 기온에 머리가 어지러웠다. 신호등 앞에서 초록불을 기다리며 목적지 없이 건너편 길을 향했다. 여름 찾기. 목적은 그뿐이니까. 한참을 직진했다. 나뭇잎이 이다지도 젊은 6월의 어느날이다. 키가 큰 나무 앞에 멈춰서 잠시 더위를 피했다. 오늘은 습하지 않아 그늘에 있으면 참 시원하였다. 이따금 불어오는 바람이 이마에 맺힌 송골송골한 땀을 날려준다.

 

 

 

 

 

 

 신촌 세브란스 병원 앞에서

 

 무작정 걷다보니 세브란스병원이 보인다. 병원 앞은 가로수들이 일렬로 나란히 서있다. 나무를 따라 또 걸으니 육교가 보였다. 육교는 정말 오랜만에 보는 건축물이다. 육교는 아날로그 감성을 두드리는 건물 중 하나인 것 같다. 왠지 육교는 엄마를 따라 저녁 장을 본 후 집갈 때 건너야만 할 것 같은 다리이다. 그 육교의 계단을 천천히 오른다. 한 발 한 발 터벅터벅 올라간다. 

 

 

 

 

 육교 한 가운데에 상록수가 있었다. 그 상록수는 육교보다 조금 커서 그 나무와 내가 동등한 위치에 있게 되었다.

어렸을 때 할머니 동네의 입구에 저 홀로 있는 나무에 올라 타던 과거를 떠오르게 했다.

 

 

육교의 중앙에 홀로 서있는 소나무

 

 

 

 초등학교 저학년 때까지 우리 가족은 여름이 되면 할머니댁에 곧잘 가곤 하였다. 아빠의 고향이기도 한 그곳은 논에 모내기가 아주 잘 되어 있는 조용한 시골이었다. 논두렁을 시멘트로 포장한 지 얼마 안 되어 저녁을 먹은 후 깨끗한 길 위로 부모님과 산책을 하곤 했었다. 논두렁을 지나면 큰 길이 나왔다. 그 큰 길은 세 갈래로 나누어져 있는데 그 가운데에 나무 한 그루가 있었다. 아빠의 말씀으론, 아빠가 아직 나만하였을 때, 마을의 어른 한 분이 그 나무를 심으셨다고 한다. 아빠와 동네 친구들은 그 나무를 보며 자라셨다. 아빠는 내게 나무타는 법을 알려주셨다. 나는 날다람쥐처럼 재빠르게 나무에 올라 타는 그의 모습에 감탄하였다. 난 한 발 내딛고 올라가는 것조차 어려웠다. 아빠가 등을 받쳐주셔도 난 가장 낮은 가지에 오르는 것도 무리였던 그 시절이 떠올랐다.

 

‘그래, 그런 시절이 있었지.’ 

라고 생각하며 돌아갈 수 없는 아련한 추억의 회고를 마무리했다. 육교 너머에 신촌역 경의중앙선이 보였다.

 

옳거니. 저쪽으로 가자.

 

여름을 정말 좋아하지만 35도부터는 여름을 동경하는 나조차도 버티기 힘들다. 화상으로 따가워질 수 있는 피부를 보호하기 위해 셔츠를 걸친 것이 다행이구나라고 혼자 생각하며 육교를 내려왔다.

 

 

 몇 보 내딛으니 이대 초등학교가 보인다. 돌들이 가지런히 잘 올려져 있는 돌담이었다.

색이 진한 담쟁이덩굴이 괜찮은 패턴을 만들어 낸다.

 

 

                                                                    담쟁이는 여름과 잘 어울린다.

 

 

 

 

 

 

초등학교와 신촌역 사이

 

 

 

 

 

 

 초등학교 건너에 역이 있다. 그 역 앞에는 벤치가 있었다. 잠시 쉬었다 갈 요량으로 한 벤치에 앉았다. 내 눈앞에 있는 담쟁이를 감상하며 속으로 생각한다.

 

‘역시 요정은 헛된 망상인가..’

 

여름의 요정을 찾으리라는 꿈은 놓아주어야 할 때가 온 듯했다. 그래도 올해도 여름을 즐길 수 있다는 사실에 감사하며 조금만 더 쉬다가 집에 가야겠다는 생각을 하는 그때, 한 검은 긴 머리의 여인이 내 시야에 비쳤다. 그 젊은 여인은 내 옆에 앉았다. 내 양옆에는 벤치가 두 개나 있었고 그 두 벤치엔 사람이 아무도 없었는데 구태여 내 옆에 앉은 그녀를 나는 이상하다고 생각했었다. 무표정이었지만 생그러운 분위기가 풍기는 여인이었다. 그녀는 뙤약볕에서 아주 더웠는지 그녀의 오른손으로 연두색의 둥근 부채를 한동안 부쳐댔다. 움직이는 오른팔은 뽀얗고 보드레하였다. 그녀는 제법 좀 시원해졌는지 부채질을 멈추고 그 부채를 내 왼손과 그녀의 오른손 사이에 두었다. 나는 그 둥글고 여름향이 날 것 같은 연두빛에 시선이 쏠렸다. 부채를 부칠만큼 덥지도 않았거니와 주변에 있는 풀잎 사이에서 이는 공기의 선선함을 느끼고 있었는데, 난 그것이 아른거렸다. 별안간 타인에게 말을 거는 행위는 실례이므로 말을 걸지 않는 나인데. 또한 살면서 말을 건넨다는 생각조차 해보지 않았는데, 무슨 바람이 불었는지 그녀에게는 말을 건넸다. 내 마음속 어디선가 그렇게 해보라고 부추기는 듯한 힘이 나를 그녀에게 말을 건네게 하였다.

 

“부채가 참 싱그럽네요.”

 

“…”

 

“그 부채 여름과 잘 어울려요.”

 

“…”

 

“부채심에 써져있는 이름, 그쪽 이름인가요? 저와 이름이 같네요. 윤희.”

 

“…”

 

“갑자기 말 걸어서 죄송해요. 당황하셨죠. 저도 평소에 남에게 잘 말걸지 않는데 갑자기 이러네요. 죄송해요. 쉬다가 가세요~”

 

상대쪽에서 대답이 없어 조금 민망해진 나는 가방을 들고 벤치에서 일어섰다.

 

  “그렇죠. 참 청량한 부채예요. 예전부터 아끼던 부채였죠.”

 

6월의 잔잔한 바다같은 음색이었다. 그녀가 내게 말했다.

 

  “그리고 윤희는 제 이름은 아니고, 이 부채 이름이죠.”

 

 “네? 아.. 네. 그렇군요.”

부채에게도 이름이 있다니, 꽤 재밌는 사람이라 생각했다. 아니다. 생명력있는 사람이라 생각했다. 작은 것에도 생명을 불어넣을 줄 아는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요정.

 

 그녀가 여름의 요정이 아닐까. 요정의 행방을 발견할 수 없어 잊혀져가는 그 존재가 문득 떠올랐다.

 고개를 숙이며 부채를 만지작거리는 그녀 앞으로 가 얼굴을 정면에서 보았다. 그녀는 내 시선이 느껴졌는지 천천히 고개를 들었다. 그리고 내 눈을 마주보고 맑고 깨끗한 미소를 보여주었다.

 

 

“당신은 여름 같으시군요.”

 

나도 그녀를 보며 환하게 웃으며 말했다.

여전히 미소를 띠우며, 나의 표현에 대꾸하지 않고 그녀는 이렇게 말했다.

 

 

“여름이네요.”

“네. 여름이네요.”

 

오후 4시,

여름 안에서 우리는 여름을 맞이했다.

섬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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섬데이

잔치의 시선으로 신촌의 장면과 사람, 장소를 기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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