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ELCOME TO ZANCHI! · 신촌을 사랑하고, 추억하고, 기록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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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RT 2020 · 09 · 21

이상한 나라의 로맨스

Editor 조각

“사람들의 웃음으로 가득찬 신촌은 늘 빛났으니 우리의 행성도 빛날 게 분명해요”

 

 

  여전히 이해할 수 없는 날들이 계속되고 있고, 우리의 지구는 자기 안의 미물들이 이 난리가 난 줄도 모른 채 부지런히 달려 어느덧 완주를 목전에 둔 상태입니다. 이러다 지구가 태양을 한 바퀴 다 돌면 우린 어떻게 되는 걸까요? 이 이상한 해를 수식할 기막힌 언어를 떠올리고 싶을 때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9개월에 달하는 긴 시간동안 바이러스는 내가 사랑했던 모든 존재들을 남김없이 들쑤셔 놓았고, 그 중 가장 헤집어진 무엇을 앞세워가면서까지 이 세계를 규정하는 것은 너무나 잔인한 일 아닌가요. 지금은 만날 수 없는 그 존재들을 지키기 위해 나는 결국 이 이상한 시대를 절대 문자화하지 않기로 했습니다.

 

  그 존재들 중 신촌도 있었습니다. 그 곳은 항상 따뜻했다는 이유로 바이러스의 표적이 되었고, 바이러스는 그 곳에 떠다니던 인적을 기어코 가라앉혔습니다. 나는 자그마한 상상의 숨을 불어넣어 그 공기를 잠깐이나마 헤집어 보기로 했습니다. 이런 요상한 상상쯤은 웃어넘길 수 있을 겁니다. 요상한 시대니까요.

 

 

“사람들을 찾아야겠어”

 

 

  이 친구를 기억하시나요? 저 속내를 모르겠는 얼굴과 오동통한 몸을 보면 금방 알 수 있습니다. 이 친구의 속내를 모르겠는 이유는 그 커다란 거울 속에 얼굴이 없거나 혹은 셀 수 없이 많기 때문입니다. 심장보다 붉은 색을 띠고서는, 또 그렇게 거대하면서 저보다 훨씬 작은 사람들이 보고 싶다며 늘 그 큰 몸을 접고 살아갑니다. 허리를 펴고 공중을 응시했다면 아무도 자기 얼굴을 봐주지 않고 존재마저도 달가워하지 않을 것을, 머리가 땅에 닿도록 수그리고 있으니 사람들마다 모여 저마다 다른 웃음으로 제 얼굴을 보며 사진을 찍어 이게 내 역할인가보다, 생각합니다. 가끔 너무 중앙에 있는 제 몸뚱아리가 행인들의 통행을 방해하지 않을까 하는 걱정에 위축되지만 언뜻 들리는 ‘빨잠 앞에서 봐’라는 문장 한 마디가 빨잠의 정신을 새롭게 합니다. 운이 좋으면, 제 바로 밑에서 시작되는 공연을 관람할 때도 있으니 그 가수보다 더 설렐 땐 제 몸통이 원래 붉은 색이라 다행이라고 여기는 겁니다. 대화소리, 구두가 부딪히는 소리, 웃음소리, 걸어다니는 비둘기, 벽돌 바닥, 자동차 경적, 다 좋습니다.

 

  사람들이 없어진 신촌이 내뿜는 적막은 한 치의 진동도 파고들 틈 없이 날카로워져만 갑니다. 둥그런 빨잠은 그런 날카로움을 견디지 못해 결국 조심스럽게 상체를 주욱 펴 둥그런 파동을 만들어 내봅니다. 세상에나, 신촌 바닥에는 제 생각보다 훨씬 많은 비둘기가 있었고 심지어 날개를 사용했으며! 가을 하늘을 얼굴 가득 담으려니 눈이 부십니다. 제 몸이 일자가 되어도 꼭대기를 볼 수 있을지 모를 만큼 높은 건축물들은 빽빽하게 늘어서 하늘빛을 그대로 반사합니다.

 

 

 

 

 

  빨잠은 넓은 길에서 좁은 길로, 도로 위에서 도로 아래로, 더 굽어진 길을 걸으며 세상이 평지만으로 이루어지지는 않았다는 걸 알게 됩니다. 천천히 한 발씩 내딛으며 가끔 발 끝을 묵직하게 끌기도 하고, 박자를 이상하게 바꾸며 종종걸음을 걷기도 합니다. 걸음 하나에 슬픔, 또 하나에 불안함, 또 하나에 설렘. 걸음마다 감정을 겹쳐 밟으며 길을 걸어봅니다. 길이 끝나는 곳에는 건물이 있어 길은 끝이 나고, 다시 시작됩니다. 초등학교 운동장에 들어가 시소에 올라타길 망설일 수도 있고, 문을 닫은 서점 유리창 너머 보이는 재미난 소설책에 눈길이 갈 수도 있겠네요. 이런 친구에게 캠퍼스의 청설모 한 마리를 보여준다면 그 바쁜 동물을 껴안고선 하루종일 학교에 터를 잡고 앉아있을 수도 있을 겁니다.

 

 

 

 

 

  결국 빨잠은 물을 마주하고 나서야 그 걸음을 멈춥니다. 신촌에서부터 시작된 여정이 여러 굴곡진 길을 거쳐 홍제천에 이르렀고, 물 속의 자신이 자신의 또 다른 얼굴을 하고 있음을 확인한 순간 그 영원한 반영에 빨려들어가지 않도록 빨잠은 서둘러 주의를 다른 곳으로 옮깁니다. 홍제천의 거대한 기둥들은 일련의 빛이 흐르는 듯한 효과를 내며 하천 위를 둘러싼 길을 만들었고, 그 기둥들 사이에서는 넓은 시간차를 두고 은은한 물보라가 피어올랐습니다. 그 물보라는 여러 빛 조명을 받아 다채롭게 빛나고 있었습니다.

 

  하천을 둘러싼 기둥들이 뿜어내는 빛깔이 빨강에서 초록으로, 초록에서 하양으로 바뀐 순간 빨잠은 이 빛들이 사람들이 자신의 기억을 담아 쏘아 올린 작은 희망일 것이라는 생각을 지울 수 없습니다. 은은히 빛나는 하천이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색을 띠고 나면 사람들이 다시 신촌으로 돌아올지도 모른다는 생각과 함께 말입니다. 걸어다니는 사람들은 보지 못했지만, 대신 그들보다 훨씬 큰 희망을 직접 보았기 때문에 이제는 신촌으로 다시 돌아가 그들을 마음 편히 기다릴 수 있겠습니다.

 

 

 

 

  마침내 빨잠은 다시 물을 건너고 좁고 굽이진 길을 걸어 신촌의 광장에 도착할 겁니다. 빨잠이 없다면 아마 그 광장은 약속 장소를 정하지 못해 서성거리는 불안한 사람들로 가득 찰 것이므로 빨잠은 서둘러 신촌으로 향합니다. 지금은 어떤 일이 있어 오지 못하지만, 여전히 신촌을 사랑하고 언젠가 자신과 같은 마음으로 신촌의 길을 걸어올 사람들을 맞이하러 갑니다. 사람들의 걸음을 상상하며 빨리도 걷고, 느리게도 걸어봅니다. 웃어도 보고, 울어도 보며, 끝에는 그 속내를 모르겠는 얼굴에 사랑만을 가득 채워 사람들에게 나누려 갑니다. 이상한 세계에서 펼쳐지는 이상한 로맨스가 여기 있습니다.

 

 

조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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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각

잔치의 시선으로 신촌의 장면과 사람, 장소를 기록합니다.

COMMENTS

댓글 1

  1. 혜수
    혜수 2020.09.21 19:14

    빨잠을 이렇게 해석하시다니… 빨잠이 없는 신촌은 약속 장소를 정하지 못해 서성거리는 불안한 사람들로 가득찰 것이라는 구절이 와닿네요. 마음이 따뜻해지는 동화 잘 봤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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