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ELCOME TO ZANCHI! · 신촌을 사랑하고, 추억하고, 기록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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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EOPLE 2020 · 11 · 17

292. MARIGOL:D

Editor 다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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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ARIGOL: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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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xx xx 사라지고 싶다”

 

지구를 떠나고 싶은 마음이 굴뚝 같은 요즘, 수면 부족과 과제의 ‘환장의 콜라보’는 끊임없이 나를 괴롭히고 있었다. 원래도 없었던 긍정 마인드를 전부 빼앗아간 이 녀석은 온갖 불만과 짜증만을 내게 남겼다. 평소 자신에게만 한정되었던 툴툴거림은 주위로 가지를 뻗어서, 끝내 최악의 사태에 이르렀다.

 

반짝거리던 신촌이 나의 타깃이 되었다.

 

신촌문화발전소에서 내려다 본 신촌

 

동아리 회의를 마치고 언덕에서 신촌의 야경을 내려다보았다. 캔맥주 한 모금을 떠올리게 만드는 탁 트인 풍경은 조명, 온도, 습도 모든 것이 완벽했다. 이 환장할 녀석만 아니었으면. 얼마 전까지만 해도 ‘크으-‘ 소리가 절로 나던 이곳에서, 낮고 어두운 주택단지와 화려한 조명이 나를 감싸는 고층 건물들의 괴리를 느꼈다. 대한민국의 도시 어디서든 쉽게 볼 수 있는 모습이었지만, 심사가 뒤틀리고 난 이후 이곳을 향한 불만이 싹을 틔우기 시작했다.


평일 오전. 학생들이 없는 신촌의 거리는 한산했다. 3번 출구에서 나와 정처 없이 걷던 내가 본 이들은 대체로 노인 분들이었다. 알 수 없는 기분에 휩싸이며 계속 걸음을 옮기다가 연세대 정문을 들어서기 전 한 골목을 만났다. 지나치게 고요하고 삭막했다. 제 갈 길 바쁜 청년들 사이에서 이곳만 고립된 것 같았다. 젊음 그 자체였던 이곳에서 또다시 괴리감을 느꼈다. 그리고 마주친 문구에 코웃음을 치지 않을 수 없었다.

 

‘행복도시 (진짜?) 서대문구’


대체 행복이라는 게 뭔지. 청춘과 설렘의 인상을 주었던 이곳은 어느 순간 꼬일 대로 꼬여버린 나의 미움을 사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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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곤함에 절은 상태로 밖을 나섰다. 요즘 유일한 나의 힐링은 지하철에 있다. Aimyon의 노래를 들으며 창밖의 한강을 바라보거나 허공에 멍때리는 고작 20분 남짓한 이 시간은 아무 걱정 없이 꼬로록- 잠수하기에 딱 좋은 시간이다. 물론 하차하는 순간 다시 수면위로 올라오지만.

 

아무도 없는 골목

 

좀비인가 저승사자인가. 눈 밑에 다크써클을 한가득 달고 신촌에서 하차했다. 내 이곳의 어두움을 낱낱이 파헤치고 말 것이다. 거창한 다짐을 하며 출구로 올라온 나를 반기던 것은 예상치 못하게 생기발랄한 신촌의 주말이었다. 망했다. 내 거친 생각과 불안한 눈빛과 함께 거리를 배회하며 곧장 이 전날의 골목으로 향했다.


골목의 초입에서 꽃집을 지나치는 데 사장님과 할아버지 한 분이 대화하고 계셨다. 낯가림으로 무장한 내게 무슨 용기가 생긴 건지 (사고회로가 고장 난 게 틀림없다) 가던 길을 멈추고 다짜고짜 꽃집을 향해 걸어갔다. 수줍음이 많으신 할아버지는 할머니를 모시러 가셨고, 사장님과 나의 지나치게 즉흥적이었던 짧은 담소는 그렇게 시작되었다.

 

꽃집과 사장님과 시선강탈 안개꽃

 

코로나로 인해 어른이나 아이 할 것 없이 모두가 힘든 나날을 보내고 있다든지, 복지의 한계에 대해 한숨을 짓기도 하면서 우리의 대화는 내가 다짐했던 방향대로 나아가는 듯했다. 이 골목에 대해 질문하려던 찰나 손님이 왔다. 어머니의 퇴원을 축하하는 의미로 꽃 두 송이를 포장해가던 그분과 사장님은 마치 언젠가 만난 적이 있다는 듯 자연스러웠다. 꽃을 품에 안고 멀어지는 그분의 뒤로, 사장님은 꽃이 중요한 게 아니라 어머니께 잘해드려야 쾌차하신다는 띵언을 남기셨다. 무슨 질문을 하려고 했더라. 한 프레임 안에 담긴 두 분을 가만히 바라보다가 순간적으로 질문을 까먹었다. 특별할 것 없는 상황임에도 머릿속에 잔상이 남았다. 


홀로 꽃을 다듬으시던 사장님께 혼자 일하시다 보면 외로울 때가 종종 있지 않으시냐고 물었다. 오고 가는 학생들과 이야기를 나누다 보면 외로울 시간도 없다고 답하시는 사장님의 말투에서 학생들에 향한 애정이 뚝뚝 묻어나왔다. 낯선 학생이 갑자기 찾아와도 편안하게 대화를 이어나가는 사장님을 보니 머리 위로 전구(!)가 켜졌다. 아, 그날 언덕에서 본 풍경과 이 골목은 신촌과 동떨어진 게 아니었다. 이곳은 다양한 채소들로 언밸런스한 조화를 이루는 일종의 샐러드 보울(Salad Bowl) 일지도 모르겠다.


뉘엿뉘엿 해가 지고 있었다. 자리에서 일어나 대화 내내 눈독을 들이던 안개꽃과 어울릴 만한 꽃을 찾아 열심히 눈을 굴렸다. 꽃 무더기의 중간쯤, 큰 꽃들에 가려져 있던 주황색 꽃에 시선이 멈췄다.

 

  “사장님, 이 꽃은 이름이 뭐예요?”

  “그건 메리골드예요.”

 

이렇게 기막힌 우연이 있다니. 유일한 힐링 시간, 지하철에서 듣던 Aimyon의 노래는 바로 “Marigold (マリゴルド)”였다. 묘한 설렘에 주먹을 살짝 쥐었다 풀었다.

 

  “메리골드의 꽃말이 반드시 오고야 말 행복이에요.”

 

꽃말을 전하며 완성된 꽃다발을 건네는 사장님의 얼굴에 미소가 활짝 피어났다. 우중충한 하늘의 먹구름이 이곳만은 피해갔는지, 환한 주황빛으로 물든 사장님에게서 눈을 뗄 수가 없었다. ‘반드시 오고야 말 행복.’ 덩달아 나의 입가에도 옅은 기쁨이 퍼졌다.

 

 

나와 메리골드와 안개꽃

 

그렇게 나는 오늘 메리골드 한 다발과 사장님의 작은 행복을 선물 받았다.


아, 이런.
신촌 미워하기 미션 실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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넘치는 과제, 미친 직장 상사와 동료, 개인적인 고민까지 내 마음대로 되는 것 하나 없는 이 지구에서 365일 우리는 혼돈에 다이빙한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찾아온 코로나 속에서도 이 악물고 오늘을 버텨낸 우리. 고된 하루를 무사히 넘겼으니 작은 기쁨 하나 정도는 누려도 되지 않을까. 우연이 만들어낸 대화, 음악, 혹은 어쩌면 아무것도 아닌 것에서 저마다의 작은 Marigold를 찾자. 수고한 자신의 어깨를 토닥거리며 떠올려보자.

 

 

“오늘 나의 MARIGOL:D 사장님의 미소 그리고 메리골드 한 다발

                                    

 

다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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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슬

잔치의 시선으로 신촌의 장면과 사람, 장소를 기록합니다.

COMMENTS

댓글 1

  1. 블라디보스톡
    블라디보스톡 2020.11.17 19:26

    글 잘 읽었습니다!! 저도 친구 졸업식때 매리골드 꽃을 준 적 있었는데 그때 사장님이 꽃말 말씀해주셨을 때의 느낌이 생각나네요.
    에디터님의 빡침과 신촌에서 본 상황이 상반되면서도 어떻게 보면 닮아 있어서 너무 좋았던 것 같아요. 다음 글도 기대할께요! 에디터님 힘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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