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픔이 예술이 되는 순간
전 세계 모든 사람들의 사는 방식을 바꿔놓은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이 창궐한지도 1년이 지났다.
마스크를 낀 동상
이제는 카페도 가지 않고, 외식 대신 배달 음식을 시켜먹고, 강의실 대신 노트북 앞에 앉아있는게 너무도 익숙해졌다. 바뀐 일상 패턴은 나와 신촌의 접점도 많이 줄일 것이라 예상했지만, 운명적으로 나의 신촌 방문은 지속될 수밖에 없었다. 그 이유는 바로 언택트 문화의 사각지대에 놓여있는 병원 진료 때문이었다.
신촌 세브란스병원
지난 겨울 나의 가장 중요한 계획은 라식 수술을 받는 것이었다. 새해를 시작하며 나쁜 눈을 고치고 깨끗한 한 해를 맞이하려는 의지였다. 하지만 목표를 이루려 병원에 갔을 때, 상황은 상상도 못한 방향으로 전개되었다. 그동안 의식하지 못했지만 망막에 질환이 있어 시력 교정 수술을 할 수 없었다. 더 큰 문제는 이대로 방치하면 더 심각한 질병까지 초래할 수 있어 빨리 치료를 받아야만 했다는 것이다. 긍정적으로 생각하자면, 단순히 안경과 렌즈와 멀어지려 한 내 심보가 인생을 바꿀 수 있는 중요한 검진을 받게 해준 것이지만, 그 때 당시에는 적잖은 충격과 두려움을 느꼈다. 그렇게 내 발걸음은 라식 의원에서 대학병원으로 향하게 되었다.
안과 병원
연세 세브란스 병원은 신촌을 풍요로운 동네로 만드는 중요한 건물 중 하나이다. 국내 최대 규모의 종합 병원이 젊음으로 상징되는 거리와 공존한다는 것이 질적으로도 우수한 느낌을 안겨주고 동네의 균형을 맞춰준다고 생각한다. 대학생의 시각으로는 보건과 안전은 물론이고 지성으로 가득차보이는 건물이기도 하다.
통과 인증 스티커
무슨 이유에서건, 이 시국에 종합 병원을 왕래하는 일은 일상에 느끼지 못했던 다양한 감정을 선사한다. 무엇보다 뉴스 소식으로만 접할 수 있었던, 안전을 위해 희생하시는 분들의 노고를 눈으로 확인하며 직접적으로 느낄 수 있다. 집에만 있다보면 잊게되지만, 우리 주변에 불편함을 안고 살아가는 분들이 많이 있다는 것도 새삼 알게 해준다.
이 시국에 특별히 달라져 보이는 풍경이 있다면 병원의 스티커이다. 1년 전부터 연세 세브란스 병원에서는 발열체크를 통과하고 문진표를 작성하면 인증을 해주는 스티커를 준다. 아무래도 질병에 가장 취약하고 위험에 쉽게 노출될 수 있는 공간인만큼, 방문자들의 관련 증상을 확인하는 것이 중요한 모양이다.완전히 안심할 수는 없지만 내원하는 환자, 방문객, 직원과 의사 선생님들까지 서로 배려해주는 의미를 담고있다. 불편을 끼치지 않고 내 상태를 알려줄 수 있는 소리없는 소통 방식이다.
“생각하기에 따라 세상은 달라보인다.”
작년 봄 쯤, 한 번 병원에 방문할 일이 있어 스티커 제도를 알게 되었을 땐 속으로 우려하기도 했었다. 처리하기 까다로운 쓰레기를 엄청난 양으로 만드는 것이 아닌가 하는 걱정이 들기도 했다. 하지만 생각하기에 따라 세상은 달라보인다. 마음 속에 여유가 더 생겼는지, 아픈 눈이 오히려 개안을 했는지 이번 진료를 오가며 본 스티커들은 2020년과 2021년을 표현하는 예술작품 같았다.
우선 세브란스 병원에서 스티커를 회수하려 한 방식은 “센스있다”라는 말이 딱 어울린다. 출구에 배치된 안내판에 나무와 나뭇가지가 그려져있어 동그란 스티커를 그 위에 붙이는 것은 풍성한 나무를 만드는 것 같기도 하고 열매를 달아주는 것 같기도 하다. 아무 생각 없이 나가려는 사람에게 마치 작품을 만드는 일에 참여하는 듯한 감정을 주며 자연스럽게 몸에 붙이고 있던 스티커를 안내판으로 옮기게 한다.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이 출구로 나갔나 확인하는 재미가 있고, 문 밖을 나가면 쓰레기가 될 스티커에게 의미와 생명력을 불어넣어준다.
그러나 미처 스티커를 버릴 곳을 찾지 못하고 출구를 나선 사람들도 역시나 있다. 갈 곳을 잃은 스티커들은 길거리로 나가 벤치, 화단, 벽 여러곳으로 향한다.
정류장 벤치와 길바닥
연세대학교 정문 주변 일대는 곳곳에 스티커가 모여 붙어있다. 버릴 곳을 찾다가, 혹은 다른 사람이 붙여 놓은 걸 보고는 따라 붙인 것이다. 이렇게 하나하나 모여 스티커 가득한 거리가 만들어졌다. 누군가는 이를 보고 시민의식 없고 길에 쓰레기를 버린 것이라고 질책할 수 있다. 또 거리가 지저분해졌다고 세브란스 병원을 탓할 수도 있다. 하지만 현 시국을 고려하면, 사회의 반영하여 표현하는 일종의 참여예술 같기도 하고, 평범한 사람들의 정서가 개입된 공공미술같기도 하다.
이 시대의 공공미술
낡은 벽에 알록달록한 스티커가 옹기종기 붙어있는 모양이 재밌기도 하다. 그리고 붙은지 오래돼보이는 헌 스티커들은 끝이 말려있고 상처가 나있어 시간의 흔적을 드러낸다. 전기 계압기나 바리케이트, 어디에서든 이 예술 작품을 만날 수 있다. 동그랗고 조그마한, 요일별로 다른 진한 단색의 스티커들은 단순하고 애매한 느낌을 준다. 못나고 엉성해 보이기도 하지만 시크하고 무심한 매력을 풍긴다. 무엇보다 길거리를 걷다가 우연히 던진 시선에서 스티커들을 마주쳤을 때, 병원에 대한 생각이 우선적으로 피어오르면서 걸음걸음마다 이 시국의 아픔과 현 사회에 대한 생각을 품게 만드는 것이 이들이 갖고 있는 가장 큰 예술적 가치라고 생각한다. 결국 언젠가는 누군가의 수고스러운 노동을 통해 떼어지고 청소가 될 것이지만, 현재로서는 코로나 19가 만든 또 하나의 색다른 거리의 풍경이며 의미있는 작품이다.
예술은 너무나도 어렵다. 현대 미술에서, 어린 아이가 낙서한 듯한 그림들이 수십억의 가치를 지니며 거래되는 일을 이해하기는 쉽지않다. 다만 오랜 기간 예술에 대한 고민을 하면서 나만의 원칙을 하나 갖게됐다. “예술이라고 하면 예술이다!” 아무런 가치가 없던 것도 내가 의미를 부여하고 “이건 예술이야”라고 칭하는 순간 예술이 되는 것이다. 이미 예술 작품이라고 불리고 있는 것들의 예술적 가치를 뺏을 수는 없지만 가치를 부여하는 건 모든 사람들의 마음대로이다. 마치 슈뢰딩거의 고양이 마냥 같은 사물이지만 1초 전엔 예술로 인정할 수 없던 것이 의미를 부여함에 따라 1초 후에는 작품처럼 느껴질 수도 있다.하지만 예술이 완전히 의미부여에 의존되는 것은 아니다. 때로는 의미가 없어도 무의미 그 자체가 예술이 될 수도 있다. 말 그대로 무적의 논리이고 웃기기도 하지만 오랜 고민 끝에 얻은 결론이다.
그러므로 신촌역의 이 쓰레기통도 코로나19 시대상을 표현하는 작품이 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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