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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EOPLE 2021 · 04 · 27

307. 소화불량

Editor 다슬

먹는 속도로 대결을 하면 늘 꼴찌였다. 살기 위해 먹는 사람이자 위장도 약한 탓에 밥도, 술도, 커피도 아주 느릿느릿 소처럼 먹었다. 그렇게 밥을 30분 동안 먹는 인간이 숟가락 든 지 몇 분이나 지났다고, 텅 빈 밥그릇에 붙은 밥풀만 떼어 먹고 있었다. 밥을 들이켰나. 포만감에 배를 통통 두드리고 있으면 오늘도 어김없이 그 녀석이 찾아온다.

 

두통이 찾아오면 작은 서랍을 열어 소화제 하나를 꺼내 삼킨다. 언제든지 바로 꺼낼 수 있도록 약통이 아닌 손이 잘 닿는 서랍에 고이 넣어두었다. 음식만 먹으면 찾아오는 쓰린 속이 이제는 제법 익숙해졌다.

 

이걸 쓰는 게 맞는 걸까. 지나고 보면 별거 아닌 이 시답잖은 고민도 잦은 소화불량의 원인 중 하나였으리라. 주위를 둘러볼 겨를도 없었고, 그러고 싶지도 않았다. 새로운 기억으로 과거를 덮는 것도 싫었다. 지금으로서 뱉어낼 수 있는 이야기는 이것뿐인데, 나 하나 살자고 토해내는 게 맞는 건지 겁이 났다. 

 

속 쓰림을 동반하는 고민과 데드라인의 압박에 늘어진 몸을 일으켰다. 일단 가보면 뭐라도 있지 않을까. 늘 혼자였으니까,  나라면 괜찮을 거라고 생각했다. 

 

 

덩그러니 

 

낯설다. 

 

간만에 찾아온 이곳이 편하지 않았다. 가볍게 입고 나온 맨투맨이 부끄러울 정도로 따뜻한 날씨와 평일 오후 6시의 조합으로 모든 거리가 사람들로 가득했다. 렌즈를 착용하기로 한 선택은 큰 실수였다. 젠장. 오늘따라 유난히 세상이 선명하게 보였다. 어디를 가야 하지. 머릿속에 떠다니는 거라곤 함께 걸었던 곳들뿐이라 새로운 곳을 찾아다닐 생각조차 들지 않았다. 그래서 그냥 걸었다. 기억을 따라 쭉-.

 

 

우리만 아는 1

 

구겨진 현금을 욱여넣으며 작은 인형을 손에 넣었던 곳. 나름 열정적이었던 그날의 모습이 떠올랐다. 웃음이 난다든지, 슬프다든지 하진 않았다. 걸음을 멈췄을 뿐이다. 사라졌을 거라 생각했는데 다행이다. 다시 걸어가다 또 다른 기억을 만났다. 무선 충전이 가능해서 서로 아이처럼 놀랐던, 흡연 구역을 찾아 미어캣처럼 두리번거리던 모습이 희미하게 그려졌다. 무더운 날씨에 땀 뻘뻘 흘리며 참 열심히도 다녔네.

 

분명 아무렇지 않게 걸었던 길인데, 왜 이렇게 갑갑한 걸까. 늘어선 가게 안에서 저녁을 먹고 있는 사람들과 시선이 부딪쳤다. 갑옷을 입은 것처럼 삐걱거렸다.

 

 

높고, 멀다 (2021)

 

사람을 피해 골목으로 들어오니 갑갑함이 조금은 가셨다. 상점과 터널을 지나자 익숙한 계단이 보였다. 작년 가을엔 계단을 올라 쭉 걸었었는데 오늘만큼은 올라갈 용기가 생기지 않았다. 낙엽이 뒹굴던 시기에 찾아왔었는데, 반년 사이에 계단 주위의 잎이 푸르게 변해있었다. 마침 바람이 불어와 잎 사이로 햇빛이 반짝거렸는데, 왜인지 그때만큼 따뜻하지 않았다. 

 

숨을 크게 들이쉬며 중앙을 지나 대로변으로 향하니 역시나 사람은 넘쳤고 불편했다. 순간 열이 오르고 등 뒤로 식은땀이 났다. 딱 두 곳만 더 가보자. 행여나 쿵쿵거리는 심장 소리를 누가 들을까 봐 움츠러든 채 다시 발걸음을 옮겼다.

 

 

우리만 아는 2

 

아메리카노 수혈이 시급해 카페를 찾다 아주 우연히  만난 골목이었다. 결국 편의점 커피로 타협했지만. 급히 사진을 찍고 되돌아갔다. 낮엔 이런 모습을 갖고 있었구나. 분명 이전에 와봤던 곳인데, 이상하게 처음 온 것만 같았다. 낮의 모습이 낯선 것일까, 혼자이기 때문에 낯설게 보이는 걸까.  

 

 

우리만 아는 3

 

미리 알아본 식당을 찾아갔다가 휴무를 알리는 종이에 이마를 짚은 적이 있다. 굶주린 배를 끌어안고 다른 가게를 찾다가 이곳을 처음 보았다. 신촌에 이런 곳도 있었나 하며 의자에 앉으려다 지나쳤었다. 오늘도 의자가 나를 밀어내는 듯한 느낌에 앉기를 포기하고 미련 없이 고개를 돌렸다. 우리의 기억은 여기서 멈췄고, 땀에 전 옷을 펄럭이며 빠르게 걸었다.

 

 

얼른 벗어나고 싶어. 

 

막상 와보면 괜찮을 줄 알았다. 소화가 다 된 줄 알았는데 착각이었다. 어떻게 사진을 찍었는지도 모르겠고, 먹은 것도 없는 빈속에 위가 뒤틀리는 것만 같았다. 함께 갔던 장소, 보았던 풍경들, 모든 게 그대로였다. 모두 제 자리를 굳건히 지키고 있었고, 변한 건 나뿐이었다. 

 

이곳을 등지고 역을 향해 계단을 내려가니 숨이 한결 편안해졌다. 걸어 내려온 계단이 다시는 올라갈 수 없을 것처럼 높아 보였다. 당분간은 이곳에 발길을 멈춰야 할 것 같다. 아직은 무리였다. 위장은 무슨, 식도를 타고 넘어오지도 못했다. 잎이 바싹 말라가는 계절이 오면, 소화제가 더는 필요하지 않은 순간이 오면, 그땐 혼자서도 괜찮을까.

 

속이 쓰리다. 집에 가면 소화제부터 꺼내 먹어야겠네.

 

2020. 09.xx

다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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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슬

잔치의 시선으로 신촌의 장면과 사람, 장소를 기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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