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2. 신사들과의 만남 그리고 만담
“우리 직업이 꼭 나쁜 것만은 아니에요. 아파트 경비나 근무 경비로 취업할라 하면 나이 많다고, 그 나이에 도둑 잡을 수 있겠냐고 한대요. 그런데 우리는 할 줄 아는 기술이니까 자기 건강만 허락하면 얼마든지 할 수 있다는 게 좋은 거죠. 기술직이라 급여는 작아도 당당하게 일하는 거예요 .”
신사는 흰 와이셔츠 위로 입은 조끼의 지퍼를 올린다. 무심하게 건넨 그의 말에 당당함이 숨어있는 듯, 말소리는 유난히 크게 들렸다. 들고 있던 가방에 빵과 우유를 넣고 문밖으로 나서는 그는 서대문 05번 마을버스 기사다.
Chapter 1: 신사와의 만남
나는 버스여행을 좋아한다. 낯선 지역 그리고 사람들, 어딘가 익숙해 보이지만 처음 가는 그곳. 도착지를 정해두지 않은 채 버스에 올라타는 감정은 설렘으로 가득하다. 그럼에도 항상 거치게 되는 곳이 있다면, 그곳은 신촌이었다. 신촌은 광역버스를 비롯해 마을버스까지 아우르는 정거장이 다양하게 존재한다. 버스 여행도 끝날 무렵이면, 나는 신촌에서 마을버스로 갈아타고 나의 일상 공간인 아현동으로 향한다. 신촌 명물거리 광경을 바라보며 지나치는 것이 내 여행의 마무리이다. 나에게 이런 즐거움을 선사해주는 풍경, 그 풍경을 담아낸 아이폰 사진첩 그리고 또… 그렇게 앞을 바라보았을 때 버스 기사님의 얼굴이 전광판 밑 작은 거울 위로 비쳤다. 나에게 여행의 기분을 느끼게 해주는 모든 요소들 가운데 간접적이지만 어쩌면 가장 중요한 부분일지도 모르겠다. 버스를 타는 것이 하나의 여행이라고 여기는 나와 달리, 버스를 운전하는 것이 일상일 기사님의 이야기가 듣고 싶어졌다. 하루는 아현동에서 내리지 않고 종점까지 머물러 있었다.
(#은 여러 버스 기사님의 답변을 구분하기 위해 사용했습니다. )
기사님 여기가 종점이에요?
#네 어디로 가는데요?
내게 도착해야할 곳은 없었다. 기사님을 인터뷰하고 싶다고 해야 하나. 아 뭐부터 말하지? 찰나의 생각들이 내 머리를 스쳐 지나갔고 하나의 생각이 내 입 밖으로 튀어나왔다.
기사님과 이야기를 나누고 싶어서요…
미심쩍은 듯 나를 바라보던 기사님은 운전대 위에 팔을 걸쳐놓고는 검은 빌딩 하나를 가리켰다.
#저 빌딩 뒤에 가면 기사 양반들 많아요. 1시 40분. 그때 와요 평일에.
나는 기사님의 손이 가리킨 검은 빌딩 하나를 뚫어지게 바라봤다.
Chapter 2: 신사들과의 만담
검은 빌딩 뒤편의 파란 유리문 하나가 자동으로 열린다. 각자의 이름이 적힌 사물함이 문 바로 앞에 굳게 서있었다. 나는 말소리가 들려오는 방을 따라 들어섰다. 기사님들은 모두 같은 흰 와이셔츠를 입고, 똑같이 생긴 식판을 앞에 두고 점심을 드시고 계셨다. 마치 ‘서대문05 학교’에 온 것 같은 기분이었다. 나와 가장 가까이 있던 기사님은 내게 의자 하나를 가리키며 앉으라는 듯, 나를 향해 젓가락을 움직였다.

음식도 나누고 정도 나누는 신사들의 점심시간.
기사님들! 뭐하고 계셨어요?
#우리 밥 먹고 있지 뭘. 지금이 식사시간이에요. 딱 1시 40분.
지금 이 시간마다 교대로 운전하시는 건가요?
#두시 반부터 교대로 운전을 하는데 밥 먹고 슬슬 교대하는 거죠.
근무시간은 어떻게 되시나요?
#9시간인데 우리는 2교대로 나뉘어요. 오후조는 14시 30분부터 24시. 오전조는 06시부터 15시까지 정리하고.
#오전조도 나오기는 4시부터 나와야 돼.
언제부터 마을 버스기사를 하신 건가요?
#그거야 사람마다 다르지. 정년퇴직하고 하는 사람도 있고 시내 버스하다가 마을버스로 옮긴 사람도 있고.
#최하 1년에서 한 20년까지 있어요,
버스 기사를 하게 된 계기가 있나요?
#먹고 살기 위해서지 뭐. 하고 싶어서 하는 사람은 딱히 없어,
#나같은 경우는 학교도 자동차과, 군대도 수송직 맡고, 직장도 자동차 기술직하다가 이거 하게 된 거에요.
#그 이번에 새로 들어온 애는 가수하다가 버스 기사하는 거더만.
#젊은 기사들은 대부분 여기서 경력 쌓고 시내버스 가려고 하는 경우가 많아요. 거긴 티오가 잘 안 나니까 여기를 거쳐 가는 거지. 서울 시내버스는 서울시에서 주관하는데 우리는 개인 사업자 형태로 일해요. 그만큼 나라에서 주는 혜택이 거의 없지.
#서울 시장한테 가서 시내버스 기사 티오 좀 내주라고 해요. 그런 것 좀 적어가.
나는 노트북 자판에 손을 내려놓고는 나도 모를 헛기침을 했다.
마을 버스 배정은 어떻게 이루어지나요? 서대문 05번 버스로 지원하신 건가요?
#결원이 많은 곳에 충원을 하되, 왔다갔다하는 거예요. (서대문 05번은) 대학가로만 돌고 길이 평탄하니까 연세 있는 분들이 선호하죠~ 젊은 기사들은 예쁜 대학생들보고 한눈 팔까봐 06번을 하고 있죠~(주변 일동 웃음)
마을 버스 기사로서의 장점은 무엇인가요?
#좋은 점은… 아 연령 제한이 없어. 정년퇴직이 없어. 뭐 75살까지 하라는 그런 제약이 없어서 좋지. 우리같이 나이 든 사람들이 어디 가서 일하겠어요. 여기서 겨우 하는 거지.
#아니 시내버스는 안 그렇잖아 이 사람아~ 마을버스 말고 버스 기사하면서 좋은 게 뭐냐고.
#우리가 마을버스 기사니까 그거 말한거지. 난 마을버스밖에 몰라요.
그렇다면 버스 기사로서의 힘든 점은 어떤 게 있을까요?
#쉴 틈이 없어요. 교대가 시작되면 6분-7분 정도가 휴식시간이에요. 그때 말고는 없어요. 시내버스는 최하 15분 이상인데 우리는 앞 차가 나가면 바로 나가야해요. 아침이랑 점심만 좀 챙겨먹지 저녁은 빵하고 음료수만 먹어요. 14시 30분부터 교대로 하면 밤 12시 22분이 되어야 끝나는데 그때까지는 (상자를 가리키며) 이게 끝이에요. 오전조는 밥 2끼 먹고, 오후조는 1끼 먹고.

꿀떡이 아무리 달고 맛있을지라도 저녁으론 안됩니다.
버스기사로서 언제 가장 보람을 느꼈나요?
#난 그냥 열심히 하고 있는 게 보람차요. 승객도 마을버스랑 시내버스 승객이 틀려. 시내는 타고 가는 거리가 길지만 마을버스는 시장가면서도 타고 지하철을 이용하려고 타고, 작대기를 두 개씩 짚고 다니는 분들이 특히 많아요. 그런 분들을 잘 태워다 드릴 때가 보람이 있죠.
#우리 손자가 한성중학교 1학년이에요. 요즘 애들은 덩치도 나보다 크고 하니까 나는 잘 못 봐요. 그래도 그놈이 날 보고 할아버지 반갑다고 그러는 거야 얼마나 고마워. 나중에 내가 용돈 좀 줬지.
같은 버스의 기사님을 만날 때 꼭 손을 들어 인사를 하시더라구요. 같은 버스를 타신 기사님들의 사인인가요?
#그것이 의무는 아니지만 같이 식사하고 또 운전하는 사람들끼리 안전 운행하라고 격려의 목적으로 하는 것입니다.
#어떤 양반들은 그러더만, 막걸리 한잔하자는 싸인이다 그런 식으로 이야기하는 경우가 많은데 그런 건 아니지~
기사님들이 창 너머로 보는 이대, 신촌과 같은 대학가들은 어떤 모습이던가요?
#대학가 부근이니까 이대, 연대, 추계예대, 이대 기숙사도 있고 대학생들 많이 타요. 젊은 청춘들이 참 많아요.
05번은 신촌 명물 거리 정거장이 있잖아요! 명물 거리에서 신촌 축제나 행사, 공연을 진행하는데, 기사님들도 보신 적 있으신가요?
#여유가 없어~ 차가 막히면 좌우를 보고 다닐 시간이 없어. 앞만 보고 가야돼.
#요즘은 신촌 거리에서 축제를 계속 하는데, 서대문구에서 신촌 연세로 명물거리를 금요일 낮 12시부터 일요일 밤 10시까지 통제를 해요. 뭐 맥주 축제 물총 축제 이런 거 하면서 하루 더 땡겨 가지고 준비하는데 그럴 때는 우회를 해서 가는 편이에요. 그러면 세브란스 병원 같은 곳 가는 승객들이 불편해해요. 병원 가는 나이 많으신 분들이 신촌에서 내려서 걸어가기가 어려우니까 동교동 위에서 15-20분을 낭비하면서까지 타고 돌아가고 해요.
#우리가 봤을 때는 연세로를 막아서 행사를 하는 게 좋진 않아요, 사람도 별로 없고 하는 것도 없고 그래요. 그래서 우리가 생각하기에 그렇게까지 할 필요가 있나 싶은 거지.
#지역 경제 살린다거나 뭐 그런 얘기를 하는데, 일부 사람들 때문에 다른 피해를 보는 사람들이 있다고. 여론은 안 들어본 거라고. 요즘은 불타는 금요일이다 해가지고 또 그 전 날부터 준비를 해요.
예전과 지금의 신촌거리는 어떻게 다른 가요?
#나는 7년 정도 몰았어요. 뭐 딱히 다른 건 없지만, 연세로가 지금처럼 안 되어있고 길이 좁았어요. 지금은 승용차나 작은 차들이 못 다니는데 옛날에는 다 다녔어요. 도로 환경이라던가 그런 건 많이 좋아졌죠. 재개발을 해서 길도 넓어지고.
그때도 축제를 많이 했나요?
#그때는 축제를 많이 안했어요. 길이 그렇게 안 되어 있었으니까.
지금 버스를 운전하고 계시지만, 이전부터 삶의 운전대를 잡고 인생을 살아가고 계신다는 생각이 문득 들어요. 사회로 나아가는 신촌 청춘들에게 해주고 싶은 말이 있으신가요?
#앞으로 열심히 노력해서 우리나라를 지켜줄 수 있는 사람이 되어 줬으면 좋겠어요. 지금 학생들은 어떤지 모르지만, 이게 되게 중요해요. 그렇다고 정치는 쉽게 시작하지 말고.
기사님의 종착역은 어디인가요? 그곳이 신촌은 아니겠죠 흐흐.
#그건 모르겠고 나중엔 여행도 가보고, 즐기면서 살아야지, 내 나이가 몇인 줄 알아요? 지금 칠십 둘이에요. 얼마 안 남았어.
아, 기사님 궁금한 게 한 가지 남았는데 벽에 붙어있는 신조는 어떻게 정한 거예요?
#회사에서.

신조에는 순서가 없습니다. 다 중요합니다.
“자 모입시다. 한번 읽고 나갑시다.”
이쑤시개를 들고 있던 신사도, 커피를 들고 있던 신사도, 모든 신사들이 쇼파를 중심으로 둥그렇게 모인다. 반장 기사님의 신호에 맞춰 사무실에 있던 모든 기사님들이 신조를 외친다.
“승객은” “왕이다”
“숭무원은” “신사다”
“나는” “주인이다.”
“빨리 가려하지 말고 그냥 천천히 가요~”
박스에서 빵을 꺼내 가방에 넣는 기사님의 모습이 전투를 준비하는 용사처럼 보인다.
“학생 같이 안 나가요?”
나를 향해 손짓을 하는 신사의 말에, 나는 들고 있던 노트북을 급하게 에코백에 담았다. 내 앞으로 신사들이 버스를 향해 걸어간다. 버스 운전석 뒤편에 있는 좌석에 앉는다. 분주하게 나는 사람들의 발걸음 소리가 잦아질 때쯤 문의 경보음이 울린다. 버스 시동과 함께 발밑으로 진동이 울린다. 반쯤 열린 창문 밖으로 앉아있던 신사들이 나를 향해 손을 흔든다. 그들의 모습이 멀어져갈 쯤, 머리카락 사이로 바람이 불어왔다. 오늘도 그렇게 나는 여행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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