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DGE
“단어 하나에도 몇 가지의 다른 뜻이 있고, 같은 키의 노래라도 멜로디가 다르면 새롭게 들릴 수 있어요.”
“그런데 어떻게 사람의 감정을 가장자리만 보고 평가하겠어요?”
처음 듣는 노래가 귓속으로 정확히 꽂혀 나도 모르게 흥얼거리고 있다면, 보통 그 노래는 제가 좋아하는 키의 노래였습니다. 키에 맞는 코드 진행이 반복되면 익숙한 듯 새로움을 느꼈고, 와중에 뜬금없는 코드가 나오면 그것 나름대로 신선한 느낌을 받기 때문입니다.
개인적으로는 E, D, G 키의 노래들을 참 좋아합니다. E 키의 음악들은 사시사철 새로운 분위기를 연출해 주고, D 와 G 키의 음악들은 밝은 기분을 더해줘서 기분전환을 할 때 많이 듣기 때문이죠. 특히 요즘 같은 초가을에는 위의 키로 된 록 발라드 음악을 더 자주 듣는 것 같습니다. 시원한 바람, 청량한 보컬, 좋아하는 키의 코드가 합쳐지면 이 짧은 계절을 즐기기에 충분하지 않을까요?

1989년 발매되었지만, 저에게 이 음악은 매년 가을마다 새로 발매되는 것처럼 느껴집니다.
가을을 바라보는 저는 매년 다르기에, 항상 색다른 의미가 담기기 때문일까요?
*노래 제목에 링크 있습니다!
이렇게 노래를 듣다 보면 사람의 감정도 비슷한 것 같습니다. 같은 감정을 공유해도 개인이 느끼는 감정은 다를 수 있기 때문이죠. 슬픔이라는 키의 감정을 누군가는 눈물이라는 멜로디로, 또 다른 사람은 분노라는 코드로 표출할 수 있는 것 아니겠어요? 마치 키가 같은 음악이 서로 멜로디와 진행이 달라 완전히 새로운 음악이 되는 것 처럼 말이죠.
그렇지만 가끔 우리는 그 다름을 지나치게 가리려고 하는 것 같아요. 수많은 감정을 묶어 포장하고, 남들 눈에 보이는 가장자리를 만들죠. 슬퍼서 눈물이 나는데 남에게 밉보이지 않기 위해서? 즐거워서 웃음이 나는데 겸손함이 필요한 때라서? 그래서 눈물과 웃음의 멜로디는 포장지 속으로 사라지고, 포장지 위 가장자리에는 슬픔과 즐거움이라는 글자만 남겠죠. 사전적 의미 그대로.
그렇게 다양한 이유로 마음속의 음표들은 빛을 보지 못하고 자라는 콩나물이 되어갔던 것 같습니다. 그렇게 아래로 자란 뿌리는 우리의 마음을 좀먹기 시작하죠.
그래서 저는 좋아하는 노래를 듣듯이, 다양한 의미로 제 감정을 들여다보기로 해봤습니다.
위에서 말한 E, D, G키의 노래, E, D, G의 알파벳을 조합하면 EDGE라는 단어가 탄생합니다. 이 단어는 보통 ‘가장자리’라는 뜻으로 많이 쓰이지만 다른 뜻도 참 많더라고요. 그렇기 때문에 가장자리만 보는 것이 아니라, 그 속의 다른 의미로도 바라보는 게 가능하다는 것을 표현함으로써, 나의 감정을 제대로 볼 수 있다는 것을 시험해 보고 싶었습니다. 각각 감정의 딱딱한 겉모습 말고, 진짜 내가 표현하고 말하고 싶었던 감정들을요. 그리고는 무작정 무언가를 남겨 보기로 했죠. 항상 바라보면서 감정에 솔직해지기 위해서 말이에요.
그렇게 방바닥에 널부러진 조율 풀린 기타를 들고, 작은 카메라에 묻힌 사진들을 다시 꺼내보았습니다. 나의 10대와 20대가 오롯이 담긴 신촌이란 공간에 담긴 감정을 음악으로 다시 어루만져보고 싶었거든요. 그러고는 어떤 사진에는 E 코드로 시작하는 음악을, 또 어떤 사진에는 D 키의 음악을 넣어보고, 각자 다른 EDGE라는 단어의 뜻을 이어 붙여 보았습니다.
*이어폰 착용 후 감상하시면 더 좋습니다

Edge.
1. 가장자리
신촌 밖으로 나가는 관문은 여러 개가 있습니다.
그중 저는 항상 오가는 연대앞 버스정류장을 ‘가장자리 관문’이라고 부릅니다.
신촌을 떠나는 이곳을 지나면 하루종일 느꼈던 감정들의 멜로디를 포장해야 하거든요.
겉으로는 보이지 않게끔, 남들에게 들키지 않게끔 말이에요.
그렇지만 돌아보니 이곳에는 수많은 감정들이 포장지 사이로 흘러내려 있었습니다.
제가 다시 돌아와 주워 담아달라는 의미였을까요?
붉게 빛나는 즐거움,
5월의 초록빛 설렘,
파랗게 타오른 슬픔.
그저 사람좋게 웃는 것으로 포장했던 감정의 가장자리 밖은
사진에 비치는 무지개처럼 알록달록한 이야기들이 남아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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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테두리를 두르다
신촌의 한쪽 테두리는 선로로 둘러싸여 있습니다.
굴다리 위를 지나가는 기차들을 바라보면 괜히 멍해지고,
저 기차들의 목적지는 어디인지 생각해 보곤 했죠.
그리고 아무것도 정해지지 않은 나의 미래에 대해 생각해보다
공허한 감정들이 몰아 닥치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는 애써 기차의 반대방향으로 걸었습니다.
사이다처럼 올라온 감정의 물방울들을 애써 병뚜껑으로 막듯이 말이죠
그렇지만 사진을 다시보면서 그냥 걷기 시작했습니다.
달리는 기차를 따라서요.
그 순간 공허한 감정들의 껍질이 깨지고 설레는 감정들이 새어나왔습니다.
솔직하게 공허한 감정을 마주하니 정해지지 않은 미래를 생각하는 것도
하나의 설렘으로 변해있었습니다.
그리고는 생각났죠, 신촌을 지나는 기차에 한 번도 종착역이 써져 있는걸 보지 못했다는 것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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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약간 증가[감소]하다
술 한잔 걸치고 가장자리 관문으로 가기 전,
취기가 올라 조금 즐거운 감정이 증가한 상태로
거리를 바라보면 바삐 움직이는 사람들과 불빛들이 참 낭만적으로 보입니다.
색색의 조명들에 담긴 슬픔, 기쁨, 설레임,
사람들의 발걸음에 담긴, 스스로 미래를 찾아 달려가는 듯한 희망찬 감정들,
그 사이에서 잠시 멈춰있는 나를 돌아보니 어쩐지 즐거움이 감소했던 것 같습니다.
별 생각없이 집으로 향하는 나와 달리,
길 위의 사람들은 무언가를 이루기 위해 달리는 것처럼 보였기 때문이었을까요?
나도 어딘가로 가야 한다는 중압감 사이에서 애써 이겨낸 공허한 감정이 다시 몰려왔습니다.
머리는 “대체 어디로 갈 건데요 아저씨?”라고 묻는 택시기사님 같았고,
몸은 “글쎄 가재도….가자…..”라고 말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그렇게 제 다리는 목적지를 모르는 채
사람들 사이에서 꼬리의 꼬리를 물고 멀리멀리 사라져 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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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조금씩 움직이다
가장자리 관문에서 조금 떨어진 곳에는 시계탑이 우리들을 바라보고 있습니다.
예전에는 저 시계와 눈이 마주치면 “이제 포장할 시간이야.”라고 잔소리를 듣는 것 같았었죠.
그래서 눈치 보면서 주섬주섬, 하루동안 느낀 감정들의 멜로디를 묶어서
포장지로 둘러싸고 집으로 향했습니다.
그런데 지금 생각해 보니 저는 그 말이 참 싫었나 봅니다.
그래서 가장자리 관문에 일부러 감정들을 조금씩 흘려놓았던 것 같습니다.
그제야 알았습니다.
그곳을 지나갈 때 문득 느껴지는 감정들은 저라도 알아주길 바라는
과거 기억속 나의 몸부림이었습니다.
마치 꼬여버린 감정 속에서 길을 잃지 말라고
헨젤과 그레텔이 남겨놓은 과자 조각 같은 존재였죠.
저는 그렇게 조금씩 움직여보았습니다.
과거의 제가 남겨놓은 감정을 주우러 말이죠.
반짝거리는 무지개 같은 그 이야기들을요.
음표 하나, 사진 하나에 담긴, 가려지지 않은 감정들을 찾다보니 저도 참 보이는 대로 생각하고 걸어왔던 것 같습니다. 그렇게 생각해 보니, 감정의 가장자리, 겉으로 보이는 무언가만 따라가다 보면 어느 순간 마음속에 느껴지는 진짜 울림을 찾지 못하게 될 때가 있는 것 같더군요.
내가 진정 필요한 건 위로지만 겉으로는 웃음 짓던 순간, 외롭지만 그렇지 않은 척 그림자를 드러낼 때, 사람들은 그 모습만 보고 우리를 평가하죠. 그러니까 적어도, 우리라도 자신 감정의 가장자리가 아닌, 그 속에 다른 것들의 음색 하나하나를 들어줍시다. 아무도 들어주지 않으면 제아무리 좋은 음악이라도 그저 소음이 되어버리니까요. 우리라도 들어주면 언젠간 모두가 알아주지 않겠어요?
“그래서 말인데, 어떻게 사람의 감정을 가장자리만 보고 평가하겠어요? 그 사람이 들려주는 멜로디는 항상 새로운데 말이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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