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ever surrender
—–Original Message—–
From: “송사리”<tj*********@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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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ent: 11-12-30(금) 21:10:12
Subject: 지으나~
지은아
나 네 생일 파티때
나도 가면 안되????
물론 초대는 안 받았지만…
나도 가고 시퍼
~~~
네 생일 선물 뭐줄까??
그리고 나 가는거 싫으면 말해..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
어느날 친구가 이 메일을 보여줬다.
무려 2011년의 송사리는 생일파티에 초대해달라고 친구에게 이메일을 보내는 찌질한 놈이었다.
자꾸만 웃음이 났다.
저 생일파티가 얼마나 가고 싶었으면 자존심도 없이 저러지.
문자알 아낀다고 이메일로 보낸 짠한 모습, 내가 가는 것이 싫으면 말하라는 극강의 미련 덩어리 하나하나가 나의 일부였다니.
분명 안되가 아니라 안돼인것도 몰랐을 것이 뻔하다.
친구 생일파티에 초대받지 못한 초등학생의 송사리를 마음껏 비웃으며 불쌍해하다, 문득 지금의 내가 더 불쌍해졌다.
어딘가에 초대받지 못하더라도 왜 더 이상 아쉽지가 않지? 지금의 나는 저렇게 찌질해질 용기가 있던가?
어쩌면 지금의 난 아쉽지 않은게 아니라, 감정의 조각들을 잊어버린 것일지 모른다.
마치 신호를 받을 줄은 아는데 송출할 줄 모르는 액정깨진 텔레비전이 된 것처럼 말이다.
—–Original Message—–
From: “송사리”<tj*********@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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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ent: 21-09-14(화) 23:04: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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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나는 나를 되게 싫어한다.
꽤나 많이 싫어한다.
하지만 애석하게도 이것은 나는 날 너무 좋아한다는 뜻이다.
나에 대한 실망은 애초에 나에 대한 기대가 컸다는 뜻이니까
아니 근데 그렇다면..?
혼자서 어떤 것이 우선의 감정인지 의미없는 말씨름을 하다가 지쳐서 관두곤 한다.
그리고 사실 나는 요즘 화가 잘 안난다.
전에는 그렇게 화를 참지 못해 인간관계를 해칠 정도였는데, 요즘은 누구에게도 그냥 화가 잘 나지 않는다.
내가 과연 감정들에 있어 성숙해진걸까, 아니면 그냥 지쳐놓아버린걸까?
반복되는 굴레에 머리가 어지럽다.
마치 계란이 먼저냐 닭이 먼저냐와 같은 문제같다.
그래서 또 다시 엉킨 머릿속을 비워내기 시작한다.
그것은 너무 단단히 엉켜있어서 가위로 잘게 잘라내야 한다.
잘게 잘게 잘린 생각들은 수도꼭지를 세게 틀어 녹여낸다.
이때 정작 남아있어야 할 소중한 감정들도 같이 씻겨내려간다.
하지만 어쩔 수 없다.
그냥 케이크 한판이나 입안 가득 퍼먹고 싶을 뿐이다.
—–Original Message—–
From: “송사리”<tj*********@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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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ent: 21-10-10(일) 00:02:12
Subject:
나의 첫번째 신촌은 언니의 대학원생활 때문이었다.
언니는 신촌에서 치열하게 3년간 공부를 했다.
분명 내가 목격한 언니의 신촌은 사방이 막혀 빛이 들어올 수 없는 흑백이었다.
목표를 이루어 신촌을 떠난 언니에게 물었다.
“언니, 언니에게 신촌은 어떤 존재야?”
“많은 추억들이 담긴 곳? 재밌는 곳.”
“아 그래?”
나도 모르게 속으로 웃음이 났다.
‘자는데 방해된다고 날 새벽에 쫓아낼만큼 힘들었으면서.
모든 걸 다 포기할만큼 치열하게 살았으면서 무슨 추억이야.’
내멋대로 판단한 언니의 거짓말은 뒤로한 채,
나는 일단 아직 어리니까. 적어도 나의 신촌은 엄청 밝겠지.
이런 막연한 확신으로 나는 신촌을 몇번 더 갔었다.
어제도 신촌일대를 걸으며 혼자 신촌에 대한 생각을 했다.
‘그러고보니 홍익문고 정말 많이 들었는데, 한번도 본적이 없네?’
이 생각을 하는 순간 어라, 바로 내 눈앞에 있었다.
어이가 없을정도로 신촌역 출구 바로 앞에 있어서 당황스러웠다.
‘신촌역 피아노, 유튜브에서 본 적 있는 것 같은데 신촌 골목길인가에 있나보다, 한번도 보지를 못했네?
엥 말도 안돼.. 홍익문고 바로 앞에 있잖아?’
늘 듣기만 한 가게들, 물건들, 사람들이 알고보니 내가 늘 지나쳐온 곳에 있었다.
왜 그동안 못봤지. 신촌을 자주 가긴 했었는데.
맞아, 나는 신촌은 자주 갔었다. 하지만 늘 기분은 별로였다.
신촌에 오면 즐거워야만 할 것 같은데, 즐겁지 않은 나를 신촌이 비웃는 것만 같았기 때문이다.
놀림을 당한 나는 신촌을 수비적으로 향유했다.
아 그래서 내가 몰랐던 거였구나.
모든 것은 내 마음가짐 때문이었다.
오기가 생긴 나는 신촌을 계속 찾기 시작했다.
신촌이 나를 안아줄 때까지 가리라 하며, 끝까지 질척였다.
하루는 굳이 신촌에 있는 타투 작업실에 NEVER SURRENDER 이라는 문구를 새기러 갔다.
다들 인생에 좌우명 하나씩은 있길래. 나도 하나 만들지 뭐.
러브마이셀프, 노 페인 노게인 이런 뻔한 거 말고, 잃어버린 내 마음 속 신호들을 강하게 붙잡아 줄 수 있을 만한 걸로.
never surrender
여러 도안들 중 이게 내 마음속에 쏙 들어왔다.
적당히 담백하고, 적당히 진취적이고, 이 정도면 내 마음을 강하게 붙잡아 줄 만한데? 싶었다.

“도안 다 맘에 드는데, 혹시 사람 표정은 웃는 미소로 바꿔주실 수 있나요?”
작업대에 눕자마자 오랜만에 심장이 미친듯이 뛰기 시작했다.
내가 생각했었던 것보다 타투는 전혀 아프지 않았고 그래서 이상하게 괜히 아쉬웠다.
뭔가 잊지 못할 강렬함을 원했는데, 또 다시 그저 그러한 경험으로 남게 되려나 덜컥 겁이 났다.
사실 그게 맞다. 좌우명 하나 타투로 박는다고 무언가 바뀐다면 고민거리도 아니였을테니까.
하지만 타투로 해놓으니 멋은 좀 사는 것 같다.
—–Original Message—–
From: “송사리”<tj*********@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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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ent: 21-10-30(화) 13:04: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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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글을 업로드 해야한다. 아 무섭다.
나 되게 글 잘 쓰는 줄 알았는데 알고보니 나는 대치동이 좋아하는 글을 잘 쓰는 거였다.
때로는 나 자신을 꾸며내고, 느끼지 않은 것들을 과장하는. 미래가 창창한 청춘인 것 처럼 쓰는 글 말이다.
그동안 내가 쓴 글에는 내가 없었구나, 아 그래서 잘 쓴 거였나 새삼 깨닫게 된다.
하지만 지금 이 글은 누구보다도 투박하고 그래서 나답다.
그래서 가끔은 내가 어른이 되어가는건지 어린이가 되어가는건지 헷갈리곤 한다.
사실 그동안 날 반겨주지 않는 신촌에게 나 초대해주면 안되????라고 계속 메일을 보내고 있던 것일지도 모른다.
다 모르겠고, 깨져버린 내 감정의 액정을 고쳐보러 또 신촌에 가야겠다.

이런, 또 잊어버렸다.
진짜 너무 잘 읽었어요..ㅎㅎ.. 이메일 형식이나 타투 얘기도 너무 신선한 것 같아요!!!
잘 읽었습니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