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촌을 음악하다 - 음악 속 신촌>
나에게 음악은 기억이다. 누군가에게 동의를 구하거나 설득하려는 것은 아니다. 음악이 무엇이냐고 백 사람에게 물으면 백 가지 대답이 나올 것이고, 음악이 기억이라는 것은 백분의 일에 해당하는 에디터의 대답이다. 이어폰을 귀에 꽂고 까만 삼각형을 누르면 귓속으로 다른 이의 기억이 흘러 들어온다. CD플레이어에서 mp3, 스마트폰으로 기계는 바뀌었지만 이 까만 삼각형은 항상 다른 이의 기억과 에디터를 이어주었다. 이어폰 줄을 타고 넘어온 기억은 가끔 마치 원래 내 속에 있던 것인 양 친숙하다. 친숙한 감정을 노래하는 기억을 만나면 내 기억과 다른 이의 기억이 섞이는 것을 느끼며 그 안에 한없이 푹 잠기곤 한다. 때로는 내 것과 전혀 다른 이질적인 기억을 만날 때도 있다. 느껴본 적 없는 낯선 감정을 노래하는 기억을 만나면 잠시 주의를 기울여 그 기억을 들여다보기도 한다.
어린 시절부터 에디터는 귀에 이어폰을 달고 살았다. 삶의 이런저런 순간마다 에디터는 늘 음악과 함께했고, 때로는 음악이 기억이 되어 그 때를 떠올리는 매개체가 되기도 한다. 아직 반밖에 지나지 않은 에디터의 20대 또한 마찬가지다. 지방에서 상경하던 그 날부터 책상 앞에 앉아 노트북을 두드리는 지금까지, 많은 시간들을 음악과 함께했다. 음악만큼이나 에디터의 20대를 차지하고 있는 것을 또 찾자면 바로 신촌이라는 공간이다. 아무것도 모르던 대학 새내기 시절 처음 맞닥뜨린 서울도, 처음으로 혼자 힘으로 살아냈던 장소도, 울고 웃던 그 모든 추억들이 깃든 곳도 신촌이다. 어디까지가 음악이고 어디까지가 신촌인지 모르겠다.
에디터가 기억하는 신촌은 늘 음악과 함께였다. 혼자 길을 걸을 때면 귓 속 이어폰에, 누군가와 함께일 때는 거리와 가게에 항상 음악이 있었다. 때로는 신촌에서 직접 음악을 연주해 볼 기회도 있었다. 신촌의 기억, 신촌의 음악에 귀를 기울이다 문득 궁금해졌다. 거꾸로 음악은, 신촌을 어떻게 기억하고 있을까. 음악 속에서, 신촌은 어떻게 다뤄지고 있을까?

자유다 널 사랑했던 내가 바보다 미련 없어 내 낙천주의는 대대로 물려받은 가보다…
신촌 홍대 강남 압구 어때 음 나이트 아님 클럽이나 가보자
<Solo>, 다이나믹 듀오
칠흑 같은 어둠에서 갈고 닦고 다듬어낸 치명적인 비음
가리온이 깔아놓은 홍대 신촌 리듬 위로 개코 let’s go get em!
<될 대로 되라고 해>, 개코
조금 우습지만 가장 먼저 떠오른 것은 이 노래들이었다. 다이나믹 듀오의 <Solo>를 즐겨 듣던 때는 고등학교 2학년이던 2008년, 처음으로 신촌 소재 대학교에 진학하고 싶다고 생각했던 해다. 그리고 <될 대로 되라고 해>가 차트를 점령한 2013년, 마침내 원하던 학교에 입학하게 된다. 많은 랩 가사 사이에 잠깐 스쳐가는 단어로 등장했지만, 이 노래들을 통해 에디터가 접한 신촌은 ‘좀 노는’이들이 모인 곳이었다. 꼭 이 두 곡만이 아니라도 특히나 힙합에서 신촌은 홍대, 상수, 강남, 이태원 같은 번화가들과 엮이곤 한다. 콕 집어 말하긴 어렵지만 뜨겁고 신나고 또 조금은 흥청망청한 느낌. 이제와 이런 곡들을 듣고 있노라면 폭풍 같던 에디터의 20대 초반을 고스란히 발견하곤 한다.

신촌을 못 가 한 번을 못 가 혹시 너와 마주칠까봐…
오늘 그 거리가 그리워 운다 또 운다 아직 많이 보고 싶나봐
<신촌을 못 가>, 포스트맨
신촌을 다룬 노래 중 빼먹을 수 없는 곡은 단연 <신촌을 못 가>다. 오디션 프로그램을 통해 이 노래가 널리 알려졌던 2014년, 이러다 신촌 거리가 텅텅 비면 어쩌나 싶을 만큼 많은 이들이 신촌을 못 간다며 울부짖었다. 공교롭게도 에디터가 이별을 겪은 지 몇 개월 지나지 않았을 무렵이었다. 신촌의 어느 가게에서 시작했던 에디터의 연애는 마찬가지로 신촌의 어느 거리 위에서 끝났었다. 골목 구석구석 그녀와의 추억이 없는 곳을 찾기 힘들었기에 그 거리가 그리워 울고 너를 마주칠까 신촌을 못 가겠다는 절절한 가사에 가슴깊이 공감하지 않을 수 없었다. 신촌이 몹시도 그립던 군생활 중에도 다른 의미로 이 노래를 많이 들었던 기억이 난다.

신촌에서 영화보고 홍대까지 손 잡고 걸었잖아…
다시 찾고 싶은 소중했던 시간들 잘 지내고 있니 어디 사니 니가 참 궁금해
<신촌에서 홍대까지>, 지아
그대 없는 홍대 상수동 신촌 이대 이태원 걸어 다닐 수도 없지
<사랑은 은하수 다방에서>, 10cm
함께 걷던 신촌 거리를 추억하기도 하고, 그대 없는 신촌은 걸어 다닐 수도 없다. 에디터의 모든 연애는 신촌과 엮여 있다. 신촌에서 사랑하고 이별하고 추억했던 그 감정들을 많은 노래들에서 똑같이 찾을 수 있었다. 아마 앞으로도 꽤나 긴 시간 동안 에디터는 신촌에 머물 것이다. 누군가와 사랑했고, 사랑하게 될 신촌을 음악 속에서 마주치기도, 담아두기도 하면서.
<Nostalgia>, 김세황 & 김정모
앞서 소개한 노래들에서는 많은 이들이 신촌의 흥과 사랑을 에디터가 기억하고 느낀 것과 비슷하게 노래하고 있었다. 그러나 한편, 에디터가 몰랐던 신촌의 기억을 선물하는 곡들도 있다. 전설의 기타리스트 김세황과 트랙스의 김정모가 올 해 발표한 <Nostalgia>가 그 곡들 중 하나다. 가사도 없는 3분 남짓한 이 연주곡은 도입부 10초만에 에디터를 90년대 신촌으로 데려가 주었다. 노스탤지아라는 제목 그대로 마치 90년대 청춘 만화의 주제곡 같은 기타 연주가 줄곧 이어지고, 애니메이션 형식의 독특한 뮤직비디오에는 90년대의 신촌과 신촌역, 지금은 사라진 향 음악사가 등장한다. 향 음악사가 아직 있던 때 그 곳에서 음반을 샀던 에디터의 기억을 징검다리 삼아, 경험해보지 못한 그 시절 신촌의 기억을 들여다볼 수 있었다.

그보다 좀 더 이전의 신촌은 한국 블루스의 시작을 알린 밴드 ‘신촌 블루스’가 간직하고 있다. 1986년 신촌의 라이브 클럽 레드 제플린에서 결성된 신촌 블루스는 엄인호, 이정선 두 기타리스트를 중심으로 하는 일종의 프로젝트 밴드였다. 이들은 마치 동아리처럼 다양한 객원 멤버들과 함께하며 신촌 등 대학가를 중심으로 활동하였는데, 고 김현식, 한영애, 이은미, 강허달림 같은 내로라하는 가수들도 신촌 블루스라는 이름을 공유한 적이 있다. 물론 신촌 블루스의 모든 노래들이 직접적으로 신촌을 언급하고 있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그들의 노래에 귀를 기울여 보면 신촌의 이름을 내걸고 발매한 노래들이 분명 신촌의 아련한 조각들을 품고 있음을 부정하기 힘들 것이다.

만나면 아무 말 못하고서 헤어지면 아쉬워 가슴 태우네
바보처럼 한 마디 못하고서 뒤돌아가면서 후회를 하네
<골목길>, 신촌 블루스
뒤돌아 가는 너의 모습 너무나 아쉬워 달려가 너의 손을 잡고 무슨 말을 해야할까
마주 잡은 너의 두 손에는 안타까운 마음뿐
<아쉬움>, 신촌 블루스
신촌 블루스의 곡 중 가장 널리 알려진 것은 아마 고 김현식이 부른 <골목길>일 것이다. 이 곡을 듣고 있노라면 번화가와 주택가가 겹쳐지는 신촌 외곽 어딘가에서 쭈뼛거리고 있었을 누군가가 떠오른다. <그대 없는 거리>나 연주곡 <신촌, 그 추억의 거리>에서는 새벽 어스름, 혹은 초저녁 신촌 거리의 조금은 서늘하고 조금은 상쾌한 공기가 느껴진다. 경쾌한 색소폰과 흥겨운 보컬이 어우러지는 <환상>에서는 지금과 다를 바 없는 신촌의 뜨거움이 고스란히 전해지고, 남녀 보컬이 서로에 대한 안타까움을 번갈아 전하는 <아쉬움>에서는 그 때에도 연인들의 사랑과 이별의 공간이었을 신촌을 떠올릴 수 있다. 30년 남짓한 세월이 흐른 노래들이지만, 신촌이라는 공간을 매개로 젊은 날의 그들의 기억이 에디터의 기억과 맞닿음을 느낀다.
지금의 신촌에는 신촌 블루스가 결성되었던 라이브 클럽 레드 제플린은 없어졌고 향 음악사도 사라졌다. 하지만 외형은 변했을지라도 여전히 많은 이들에게 신촌은 의미 있는 공간이다. 과거의 추억으로, 현재의 즐거움으로, 미래의 터전으로.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내가 사랑하는 공간 신촌이 오래도록 음악되기를, 아니 기억되기를 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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