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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RT 2021 · 11 · 08

Turtles Swim Faster Than Expected

Editor 메르헨

 11월은 어딘가 애매하다,

낙엽은 붉어져 마지막 힘을 다해 뜨거워 지고, 겨울이라고 부르기에는 아직 무르익지 않은 어정쩡한 분위기다.  평범한 일상 속익숙해진, 그러나 그냥 스윽 무시하고 지나가버리는 그런 것들, 찾아보면 꽤 있을 것이다. 평범함 속에서 모순적으로 아무 탈 없이 그러나 지루하지 않기를 바라는 사람들에게 11월은 어떤 의미로 다가올까. 혹자들은 그런 권태로운 11월을 작품 속 캐릭터들의 삶에 투영하기도 하는 모양이다. “Turtles Swim Faster Than Expected”는 이런 권태로운 11월의 신촌러들에게 어울리는 영화다.

 

Turtles Swim Faster Than Expected

 

 

23살 주부 스즈메는 집에서 거북이 밥을 주는 단조로운 일상을 보낸다. 그녀는 종종 자신이 투명인간이고, 금방이라도 소멸될 것 같은 존재라고 생각한다. 특히, 소꿉친구인 코토로와 비교되는 자신의 삶에 불만을 느끼지만 어쩔 수 없는 것이라 여기기도 한다. 그런 모노톤의 일상 속, 스즈메에게 어느 날 작은 전단지가 눈에 들어온다.  스파이를 모집합니다– 거북이 밥을 주는 삶보다야 아무래도 달리는 열차 위를 질주하며 저녁이 되면 마티니를 들이키는 스파이가 매력적으로 보인다.

 

 

 

 

특별해지고 싶은 스즈메

 

그랬다면 좋았겠지만, 스파이의 임무는 상부의 지시가 하달될 때까지 ‘무척 평범한’ 일상을 영위하는 것이다. 튀는 행동은 금물이다. 라멘집에서도 소유, 미소, 돈코츠만 시켜야 한다. 갑자기 캡사이신 탄탄면 같은 걸 시키면 안 된다. 스즈메는 평범에 소질이 있다고 생각한다. 

평생을 평범하게 살아온 스즈메는 냉장고 속에 500만 엔을 넣어두고 스파이로서 평범함을 연기하기 시작한다.

“연락이 올 때까지 가능한 한 평범하게 살기, 이게 스파이 활동이란다. 나는 스파이가 된거다. 생각해보면 거북군에게 먹이 주는 것도 스파이 활동의 일과인 거다. 뭘 해도 스파이라고 생각하니 두근거린다. 가능한 눈에 띄지 않게 평범하게 사는 거다. 근데, 평범이라는 게 뭐지?”

스즈메는 오히려 갑자기 평범한 행동을 하는 것이 더 어려워진다.

(스포방지 영화리뷰 끝)

 

초등학교 6학년 때 교실에서 이 영화를 본 기억이난다. B급 코미디 영화가 예전에는 싫었다. 감동받기도 뭐하고 그렇다고 뻔하게 재미있지도 않았기 때문이다. 그것보단 엄청난 명장면과 의미가 대놓고 드러난 짜릿한 영화를 더 선호했었지. 하지만 적지도 않고 많지도 않은 나이를 먹은 지금, 새삼 이런 영화를 다시 생각하게 됨은 나도 어쩌면 스즈메처럼 하루하루를 별거 아니지만 특별히 만들 어떤 계기를 필요로 했던 게 아닐까.

평범함(Normality)의 손에 이끌려 반복되는 하루 속에서 살아가는 것과, 평범함을 ‘연기(Acting)’하는 것은 다른 문제다. 평범함을 연기한다는 것은 다시 말해 그 주체가 평범하지 않음을 가정해야 한다. 평범한 사람이 평범함을 연기할 순 없다. 연기라는 것은 한 존재가 다른 존재 양식을 가진 존재를 모사하는 것이다. 스즈메는 역설적으로 평범함을 연기하게 되면서(스파이 활동의 일환으로) 주체적인 평범함을 손에 넣게 되었다. 평범한 스즈메가 평범해지자고 다짐한 순간 특별함을 느껴 어색해하는 것처럼, 평범함과 특별함은 어쩌면 같은 맥락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지난 세월을 돌아보면, 나는 평범함을 항상 특별함으로 채우려는 시도를 했고 실패하고 말았다. 실패의 역사는 크게 세 국면으로 나뉜다. 십대는 “오늘이 마지막이라면“이라는 자기계발서 문구로 상징되는 열정적 특별주의(그냥 이렇게 부를래), 이십대 초반까지는 “오늘이 무한히 반복된다면“이라는 회귀 사상으로 대표되는 허무적 특별주의, 그리고 최근에는 “오늘은 오늘이다“라는 아직 이름 없는 미완의 특별주의이다.

오늘이 마지막이라면

어릴 적부터 나에게는 한 가지 비밀이 있었다. 속이 텅 비어 있다는 것이었다. 사람들은 어린 나에게서 자신들이 보고 싶은 것을 보고 갔지만 그것들은 내가 느끼기에 모두 껍데기였다. 열 살이 되면서 나는 자연스럽게 죽음을 내 삶의 한 가지 선택지로 올려두었고, 막연하게 언젠가 스스로 생을 마감할 거라는 믿음을 가지고 살았다. 그런 나에게 “오늘이 마지막이라면”이라는 문구는 카페인 음료 같은 효과를 냈다. 오늘이 마지막이라는 심정으로, 내가 의미 있다고 여기는 일에 열정을 불사르는 것. 그것을 특별함이라고 믿은 덕분에 죽음이라는 선택지를 버리지 않으면서도 삶을 포기하지 않을 만큼은 각성될 수 있었다.

오늘이 무한히 반복된다면

그러다 정말 마지막 날이 왔다. 어느 겨울에 그만 살려는 시도를 했지만 실패했고, 얼마 뒤 나는 다시 세상으로 나왔다. 사람들도 세상도 아무것도 바뀌지 않았고, 잠에서 깰 때마다 마음 속 상처만 욱신거릴 뿐이었다. 나는 더 이상 “오늘이 마지막이라면”이라는 문구로 내 삶의 의미를 설명할 수 없었다. 그때 만난 것이 니체의 철학이었다. 니체의 “신은 죽었다”라는 격언은, 신으로 상징되는 가치 및 의미 체계가 모두 무너져 내린 허무주의적 세계를 가리킨다. 이것은 당시 나의 내적 세계에 대한 정확한 묘사였다. 나는 텅 빈 마음이 무한히 반복되어도, 의미 없는 삶이 무한히 반복되어도 그것을 기꺼이 받아들일 수 있을 만큼 강한 사람이 되고 싶었다. 

오늘은 오늘이다

앞서 말한 두 가지 버전의 특별주의를 생활철학으로 삼으며 살다가, 나는 그만 지쳐 버렸다. “오늘이 마지막이라면”, “오늘이 무한히 반복된다면”이라는 가정은 쓸데없이 비장하기 때문이다. 이것은 말 그대로 가정에 불과하다. 나는 이미 알고 있다. 오늘은 마지막이 아니다. 오늘은 무한히 반복되지도 않는다. 평범한 오늘은 그저 오늘이다. 아마도 나는 극단적인 가정을 해서라도 삶의 궁극적인 의미와 특별함을 얻고 싶었던 것 같다. 그래야 공허감을 채울 수 있고, 그래야 죽음으로 미끄러지려는 마음을 삶으로 되돌려 놓을 수 있기 때문이다. 사실 정말 마지막 날을 맞이하려는 시도는 생각보다 성공률이 낮다. 어느 콧수염 길쭉한 철학자의 말처럼, 신이 죽었다고 아무리 되뇌어봐도 살아있는 한 어제는 오늘로, 오늘은 내일로 이어진다. 그러면 어제도 오늘도 내일도 거북이도 밥을 먹어야 할 것이다.

특별하려고 노력하면 특별함을 느끼기 어렵듯이 의미를 찾고자 하면 의미를 찾기 어렵다. 어쩌면 의미는 최선을 다해 일하고 사랑하고 창조할 때 생겨나는 부산물인 것이다.  나는 ‘비어 있는 사람’과 ‘채우려는 사람’이 같은 말이라고 생각한다. 비어 있기에 채우려고 하고, 채우려고 하기에 비어 있는 것이다. 그러니 특별함으로 평범함을 채우려고 했던 시도가 실패했던 이유는, 선문답일지 모르지만 ‘내가 평범함을 채우려고 했기 때문’이었다. 궁극적인 삶의 의미를 발견하여 평범함을 채우려는 태도는 얼핏 보면 삶을 직면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오히려 회피에 가까울지도 모른다. 평범함과 불확실성을 마주하고 하루하루의 삶 앞에, 그리고 자신의 두려움과 부족함 앞에 솔직해지는 것이 오히려 특별주의의 기본 정신에 가까워 보인다.

뒤숭숭한 시기에 우리는 지루한 오늘을 어쨌든 살아야 한다. 버텨내야 한다. 그렇다면 스파이가 되는 것도 꽤나 괜찮은 아이디어라는 생각이 든다.  나 자신이 이전과 다른 무언가가 될 수 있다는 작은 계기 하나만으로 일상은 아주 조금은 달라지지 않을까. 할로윈은 지났지만 아직 돌아가지 못한 11월 신촌의 유령들에게 권해본다.

여느때와 다름없는 화요일, 신촌을 걷고 있다. 하지만 난 스파이다. 신촌에 있는 쓰레기들의 비밀을 캐내야한다.

 

     

    Spy file: Changcheon-dong, Seodaemun-gu

 

아니 잠깐만. 길가다가 뜬금없이 쓰레기더미 사진을 찍는 거 자체가 수상하잖아. 앞으로는 주의해야겠다 메모. 근데 진짜 왜 찍은 거냐고? 스파이 일이라서 알려주면 안됨ㅅㄱ.

 

 

 

메르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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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르헨

잔치의 시선으로 신촌의 장면과 사람, 장소를 기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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